제144화
챕터 19.
많은 자들이 열어 준 길. 테스는 망설이지 않고 길을 나섰다.
일직선으로 그려진 길 사이, 언데드들이 재차 발을 디뎠다. 열린 길을 막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콰즉-
테스는 채워져 가는 언데드들을 베어가며 전진했다. 일 점 망설임조차 없는 그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걸어 다니는 모든 죽은 자를 처리하고, 그는 끝끝내 마기 기둥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보이는 광경.
‘게이트인가.’
일전에 본 그 어떤 게이트보다도 거대한 게이트가 존재했다. 거대하나 게이트는 홀로 한 몸을 이룬 게 아니었다. 수십여 개의 게이트가 벌집처럼 이어져 있었다.
그 안에서 나오는 음습하고 거대한 마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마계화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다.
‘과연…… 이래서 그간 마기 폭풍이 이는 사이에 게이트가 잘 생겨나지 않았던 건가. 여기에 게이트를 치덕치덕 발라야 했으니, 당연했을지도.’
침공을 위한 마계의 모든 힘이 뭉친 거나 다름없단 의미.
거대 게이트는 꿀렁이며 마기를 흘려냈고. 바깥으로 흘러나온 마나는 다시 마기 기둥에 흡수됐다.
흡수된 기운은 제삼 차 폭풍을 불러일으킬 연료이자, 언데드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원이었다.
‘대단은 해.’
침공을 위해 잘 설계된 병기가 눈앞의 것이었다.
감탄하는 테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스스스스-
제 몸을 구성하던 마기 일부가 테스를 향해 채찍처럼 쏘아져 왔다. 그는 날아오는 채찍들을 피하며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곤 이내.
“끝을 보자고.”
그의 손이 거대 게이트에 닿았다.
* * *
수십 개 게이트가 뒤섞인 게이트와 접촉이었다.
하나의 게이트에 닿는 것만으로도 마법사를 미치게 할 수 있었다. 범인의 수십여 배는 되는 정신력을 지닌 마법사조차도 버티지 못할 비의를 지녔으니까.
그러한 게이트가 수십 개다.
그에 혼재되어 담긴 기억만으로 사람을 미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보다 더 안.
‘차원에 관한 지식들인가. 이전의 것과 또 새로운 게 있는데.’
마계가 이 세계 침공을 위해 담아 놓은 차원의 지식들이 담겨 있었다.
차원 간 이동. 각 차원의 좌표. 마계의 방향. 그에 대한 동력원…….
이 세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지식들.
이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마법사는 미쳐 있을 게 분명했다.
받아들이지 못할 비밀을 탐구하고, 또 탐닉하다가 미치는 거로도 모자라 제 생명을 끊었을 거다.
자기 그릇에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이니까!
테스조차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들의 향연이었다.
그러나 그는 탐닉을 멈추지 않았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던져 넣은 채, 그보다 더 안을 탐닉했다.
‘지금 필요한 건 이런 것들이 아냐.’
탐닉하며 그가 찾고자 하는 건 거대 게이트를 이루게 하는 핵!
던전 게이트를 엮을 수 있을 그 어떠한 존재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 존재를 부숴내야만 이 세계에 현현한 거대 게이트를 차단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차단한다 해서 끝은 아니었다.
‘차단하면 이 거대 게이트를 이루고 있는 모든 마기가 곳곳에 흩어 퍼져 나가겠지.’
이 차 폭풍을 일으키고도 남은 거대 마기.
게이트가 터지면, 그 마기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갈 터였다.
퍼져 나간 마기는 또 다른 재앙을 불러일으킬 거다.
변종 몬스터, 작은 던전, 옅어지는 차원막을 노리고 들어오는 마족…….
온갖 폐해가 일어날 터였다.
그 모든 일이 예상되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 거대 게이트가 존재하며 지속적으로 마기를 퍼트리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훨씬 나았으니까.
세계에 존재하는 마기 총량을 늘리기보단, 이미 있는 것들만 제거하는 게 훨씬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어딨는 거냐. 대체 어디에!’
그는 알 수 없는 언어, 지식, 정보를 스쳐 지나가며 그보다 더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아래로. 더 아래로.
타 버릴 듯 과부하를 일으키는 뇌를 버티고. 소모되어 가는 정신력을 내력으로 보충해 가며 얼마나 더 침잠해 나갔을까.
“……찾았다!”
결국 그는 거대 게이트를 이룬 핵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 * *
그 핵.
마계의 고위 마법이 빚어진 것도, 마족이 제물을 바쳐 만들어낸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 아니 생명이었을지도 모를 다른 존재였다.
마족도, 인간도, 천족도 아니었다.
하물며 몬스터도 아니다.
이미 이전에 테스가 접촉했던 전혀 다른 존재였다.
전사 혹은 야만인의 신. 그때 접촉했던 자들과 같은 종류의 기운을 뿌리는 자가 있었다.
“……신?”
마족들이 빚어 만들어낸 곳에 신이라.
육신을 버린 채, 오롯이 기운만으로 제 몸을 형성하고 있는 건 그가 알기로 신뿐이었다.
‘마계에서 온 자가 분명할 테니, 마신이라는 건가?’
분명 신인 건 확실하나, 그가 무슨 신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마신이라고 하기에 상대가 지니고 있는 기운은 깨끗했다. 이 순간조차도, 삿된 기운이라곤 단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저러한 존재가 마신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마족이 신을 가둬 거대 게이트라도 만들었단 말인가.
‘그럴 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제아무리 마족이라도 신을 쉽게 가두는 건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죽이는 게 더 쉬운 일일 터였다.
설사 잡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신을 고작해야 거대 게이트를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말이 안 돼.’
손익이 맞지 않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차원 침공에 미쳐 있는 마족이라도, 하지 않을 일이다.
마족이 신을 가두고 이용할 힘이 있었더라면, 이 세계는 이미 마족에게 넘어갔을 터였다. 신도 가둬 사용하는 종족에게 다른 하위 차원을 지배하는 건 더 쉬운 일일 테니까.
어쨌건 풀리지 않는 의문은 제쳐 둬야 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본래부터 하나였다.
‘부순다.’
눈앞의 핵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와 눈이 마주친 신. 그는 단지 테스를 바라만 보고 있으니, 그 순백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음으로 일은 끝날 터였다.
즈으윽-
그의 손에 검이 만들어진다.
새하얗게 만들어진 오러엔 그간 그가 접촉했던 신들의 힘이 담겨 있었다.
중과 패.
파괴를 위한 거대한 힘이 담긴 검이었다.
그에 더해 그의 깨달음이 담겨 있으니, 설사 신이라 할지라도 벨 수 있을 터.
아니 베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단순히 상처만 남기더라도 교묘하고도, 치밀하게 설계된 이 거대 게이트는 무너질 거였으니까.
이 핵을 찾기 위한 탐닉.
그 안에서 얻은 그의 지식대로라면, 그를 베는 것만으로 게이트는 무너진다.
그걸 알기에.
테스는 검을 곧추세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스윽-
검을 들어 베려 하는 그 순간.
-아직 신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
“뭐!?”
가만 그를 바라보던 신의 음성, 아니 의지가 들려왔다.
귀가 아닌 머리에 박혀드는 의지. 난생처음 듣는 그 어떠한 의지였으나, 그 뜻을 해석하는 덴 무리가 없었다.
테스의 놀란 반응이 우스웠을까.
신의 얼굴에 빙긋한 호선이 그려지는 듯했다. 웃음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이곳에 도달하고도 자격을 갖추지 못하였구나…….
상대는 그의 물음에 답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으니…… 가거라, 가서 네가 예언을 실현하거라.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릴 뿐이었다.
자격. 의무. 예언.
그 어느 하나 테스로서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테스의 눈에 혼란이 가득 찼다.
혼란 가운데 알 수 있는 게 있다면 단 하나.
‘진실만 전하고 있다.’
상대로부터 느껴지는 의지 가운데, 삿된 거짓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오롯이 진실.
그 근거도, 지식도 갖추지 못했으나 이 하나만은 확실했다. 그걸 느낀 테스는 저자로부터 작은 지식 하나라도 더 얻어 보고자, 말을 걸려 했다.
“무슨 말인지를…….”
그러나 그 순간.
푸화악-!
상대는 제 손을 들더니, 제 왼쪽 가슴에 스스로 손을 박아 넣었다.
말릴 새도 없는 순식간의 움직임이었다.
신이라 하더라도 심장은 같은 곳에 위치하는 거였던가. 아니면, 이 존재만이 비슷한 곳에 위치해 있던 것일까.
꿰뚫린 왼쪽 가슴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핏줄기.
차악.
터져 나간 핏줄기가 테스의 온몸을 때렸다.
무려 신의 피였다.
신에 미친 광신도라면, 그 피를 성수라고 받아들였을 거다. 신에게 직접 세례라도 받았다고 찬양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그를 받아들인 테스의 인상은 크게 찌푸려져 있었다.
스스슷-
그는 자기 몸을 적신 피 사이에 맺혀 있는 기운을 배척했다. 그러며 흥분에 차 말했다.
“……알 수도 없는 예언. 그걸 내가 실행한다고 한다면, 나는 실행할 수 있을 때 거부할 것이다.”
-과연 그게 될까. 아니 된다면, 차라리 잘된 일이겠지.
그가 말한 예언을 거절하겠노라고. 그게 무엇인지 몰라도, 반대하겠다 말했다.
그러나 테스의 반발에도 신은 여전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가슴이 꿰뚫린 주제에 고통 하나 느껴지지 않는 듯, 미소는 더 짙어졌다.
그리고.
“……망할 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테스가 말을 읊조림과 동시에.
파아앗-!
이내 그의 몸은 빛으로 화했다.
테스와 신. 아니 신이 존재했던 그 공간이 새하얀 빛으로만 존재했다. 그리고 그 모든 빛이 테스조차도 물들였을 때.
“……아!”
어느새 그는 다시 핵이 있던 세상을 넘어 되돌아와 있었다. 핵 안에서 멈춘 듯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였고.
세상 무엇으로도 깨부수지 못할 듯했던, 마기 기둥이 스스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 * *
그그그그긍-
무너져 내려가는 마기의 기둥.
그 안에 담겨 있는 거대한 마기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기둥을 구성하는 핵이 사라졌기에, 실체화된 힘이 흐려지고 있었다.
형상화된 마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단지 눈앞에서 보이는 형상화만 사라진 것뿐이었다. 이 세계에 침공을 위해 마련한 마기는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다.
이곳에 도달한 마기가 본래 있던 마계로 돌아갈 리도 없었다.
파아앗-
사방으로 마기가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