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챕터 17.
테스가 대진법에서 만들어낸 기운. 동쪽에서 날아오던 마기 폭풍.
그 둘이 마주했다.
쩌어엉-!
그 마주함에, 멀리 동부에서부터 이곳까지 퍼져 나오던 마기 폭풍의 흐름이 처음 멈췄다. 테스가 날린 기운에 폭풍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가 처음 그렸던 마지노선 위로 경계선이 그려졌고. 하늘이 반으로 나뉘었다.
저 동부는 거뭇한 마기의 색으로 물들었다. 반대로 그가 서 있는 동부는 진한 푸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서로 다른 기운이 경계를 이루니 마기 폭풍은 그대로 멎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재차 움직임을 보인 쪽은 테스가 서 있는 동부였다.
“가서 부숴 버려.”
그의 머리 위로 떠 있는 기운. 그의 의지를 잔뜩 머금은 상태이지 않던가. 그 의지는 테스에게 반하는 모든 것들의 말살이었기에, 명령을 내리는 건 쉬웠다.
하늘 위 기운이 보기에, 테스에게 가장 반하는 것은 바로 앞의 마기 폭풍이었으니까.
스스스스-
푸른빛이 점차 동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대응하듯, 마기 폭풍이 부딪쳐 왔다.
부딪침은 단순하나 그 결과는 결코 단순치 않았다.
곳곳에서 천둥벼락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힘이 격돌하며, 나오는 잔재였다.
비산하는 천둥벼락이 터져 나올 때마다 그 아래 땅엔 파괴가 일어났다. 파편에 부서지거나, 폐허가 돼 갔다.
가벼워 보이는 충돌이나, 그 안에 맺혀 있는 힘이 거대한 덕분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그그그극-
파편의 세례 하나, 하나가 고클래스 마법이나 마찬가지였다.
충돌이 지속되면 카르소니아 곳곳이 파괴의 흔적만으로 폐허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테스도, 그에 마주하는 마기 폭풍도 멈출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멈춰서 패배하면, 그 뒤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테지. 그러니 여기서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테스는 앞에 그려지는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였고.
쿠우웅-!
저 멀리 다가드는 마나 폭풍은, 자신의 본래 목적인 파괴를 이루기 위해서였다. 파괴 끝에서 승리하는 건 결국 마계가 될 테니까.
이곳은 자신들의 마계가 아니니, 어떤 피해가 나든 상관없다는 생각도 있을 터였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
테스도 이 상황을 모르진 않았다. 파괴가 결국 저들에게 득이 될 수도 있는 걸 계산 못 할 만큼 멍청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멈출 수도 없기에 그는 우뚝 서 있던 경계선에서 한 발자국 더 나갔다.
콰아앙-!
그가 나서자, 마기 폭풍이 지니고 있던 기운 일부가 그를 때렸다.
“허접하긴.”
그러나 그는 그걸 피하지 않고 맞았다.
그의 단전으로부터 돋아난 내력이 그의 온몸을 감싸 그를 보호했다. 폭풍 전체가 그에게 부딪치면 모를까, 일부가 와서 그를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테스도 그를 알기에 하는 일이었다.
처음 한 걸음이 어려울 뿐이었다.
그는 경계선을 지나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의 발걸음 위. 그가 만들어낸 푸른색 기운이 그를 따랐다. 그가 걸어가는 만큼 마기 폭풍이 걷히어 갔다.
흡사, 하늘을 가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 * *
그러나 마기 폭풍의 영역이 줄어든다 해서, 마냥 좋아하고만 있을 일은 아니었다.
‘더 짙어졌군. 역시 시간 싸움인가.’
그그극-
걷히는 만큼 마기 폭풍의 농도는 더 짙어져 갔다.
마기 폭풍이 머무르는 영역은 줄어드는데, 남아 있는 힘은 여전하니 농도만 짙어지는 거였다.
농도가 짙어지면 불리한 건 테스 쪽이었다.
‘이대로면 슬슬 밀리겠어.’
그가 마기를 변형시켜 얻은 기운들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옅어지는 그 순간. 마기 폭풍은 때를 틈타듯 움직여 그의 기운을 잡아먹으려 할 테니까.
애써 흡수하고 변형시킨 기운이 잡아먹히는 그 순간, 패배하는 쪽은 테스였다.
테스가 변형시킨 기운을 잃으면, 마기 폭풍은 그때를 틈타 서부로 침공을 해 올 터였다. 그때는 그가 대진법을 변형시켜 새로 기운을 흡수할 시간도 안 줄 게 분명했다.
테스라 해서 이를 모르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전진해야 했다.
백중지세의 상황. 이 상황에서 이기기 위해선 그로선 한 가지 수를 더 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얼마 안 남았어.’
콰아앙-! 쾅-!
그를 때려 오는 마기의 번개를 몸으로 받아내고. 한편으로 소모한 기운을 채워가며 전진하길 얼마나 되었을까.
‘저기다!’
달리던 그는 그가 원하던 곳을 찾았음을 알았다.
* * *
그곳. 그에겐 낯선 곳이 아니었다.
검게 변해 있는 검이 박혀 있는 이곳. 이전에 그가 범람을 막기 위해서 대진법을 설치하였던 축 중에 하나였다.
‘변형됐구만.’
테스가 마기 폭풍을 걷어내기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마계의 영역이나 다름없던 바. 마기 폭풍이 날려낸 이 차 폭발을 몸으로 받은 보구는 전에 없이 검게 물들어 있었다.
본래 머금고 있던 수기의 기운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아 그 원형을 겨우 보존하고 있을 뿐이었다.
테스는 그 검을 덥석 부여잡았다.
그러곤, 곧바로 주문을 외워 바로 이전에 부렸던 대진법 형성을 재빨리 시도했다!
* * *
이전에 대진법을 변형시키는 데 성공한 그다.
그 뒤로 변형된 대진법이 그를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는 지금. 그는 이전에 했던 세 가지 단계를 순식간에 해낼 수 있었다.
그 셋. 흡수, 변형, 이동이었다.
전엔 서부 전체에 대진법을 형성해야 했다면, 지금은 손에 쥐고 있는 이 구역에만 형성하면 될 뿐이었다.
어차피 이전에도 연동돼 있던 상태였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마기 폭풍 때문에 그 연동이 잠시 꺼졌을 뿐이었다.
테스가 하는 건 그 연동을 다시 잇는 거뿐!
‘됐다.’
그가 재연동을 다시 끝마치는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검게 변했던 보구에서 빛이 생성됐다.
겨우 머금고 있던 수기의 푸른빛이 순식간에 증폭되고. 주변에 농도 짙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검은 마기를 흡수했다.
그 기운을 변형시킴과 동시에 하늘 위에 머무르고 있던 푸른빛 기운이 빠르게 들이닥쳤다.
들이닥친 기운은 연동된 대진법과 함께하며, 아직 남아 있던 마기를 살라먹기 시작했다.
그가 연동시킨 영역만큼.
스스스스-
하늘을 채우며 농도를 키우고 있던 마기가 재차 잡아먹혔다. 잡아먹힌 기운은 하늘 위에 있던 변형된 그의 기운에 다시 흡수.
그 영역을 키웠다.
마기가 잡아먹히자, 얼마 전까지 마기의 영역이었던 이곳은 완전히 테스의 영향력 아래로 떨어졌다.
‘성공이야.’
테스로선, 재연동을 통해서 새 구획 하나를 얻어낸 셈이었다!
* * *
동부의 영지 하나가 그에 의해 인간 영역으로 다시 돌아왔다.
‘좋아. 그럼 바로 다음으로 가 볼까.’
하나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먹은 그는 재차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동쪽으로.
마기 태풍의 근원지가 있는 그곳을 향하며, 그는 전에 연동이 끊어진 대진법을 계속해 다시 이었다.
재연동을 계속해 진행할수록 일은 더 쉬워졌다.
그의 영역이 갈수록 커져 가는 만큼이나, 마계가 침공한 영역은 점차 줄어들기 때문. 힘의 우위가 점차 달라지니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샤아아아-
북동부의 마기가 걷혔다. 폐허가 된 왕도만 있던, 중앙의 마기가 걷혔다. 남부에 있던 마기가 완벽히 걷혀 갔다.
남아 있는 곳은 동부.
거대한 마기 기둥이 일어났던 동부뿐이었다.
이전보다 더 짙고 거대한 마기 기둥. 제 영역을 잃은 것에 성이라도 난 듯, 기둥은 더 검게 변해 있는 상태였다.
단순, 상태만 변해 있는 게 아니었다.
콰즈즈즉- 콰즉-
이전과 다르게 거대한 마기 덩어리를 곳곳으로 날려댔다. 마지막 남은 동부 영역을 지키기 위한 발악과 같았다.
그 아래.
-그어어!
-그륵.
마계 침공과 함께 몸을 일으켰던, 언데드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그 누구라도 오지 못하게 만들려는 듯, 남은 마기 영역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그 수가 너무도 많아 눈으로 세어 보기도 힘들 정도.
본래 이곳에 자리하고 있어야 할 주민들과 몬스터가 죽어 만들어진 언데드였으니, 그 수가 많은 것도 당연했다.
그 반대편, 마기를 변형시키며, 이곳에까지 도달한 테스가 홀로 서 있었다.
* * *
쉼 없이 앞으로만 가던 그의 걸음이 멈춘 것도 그즈음이었다.
앞서 홀로 움직이기만 하던, 그였다.
기실 그가 원해 홀로 움직인 건 아니었다. 선택권이 없었다. 대진법을 연동시키고, 연동을 잃어버린 대진법을 변형시키는 건 오로지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마지막 대치에서는 아니지.’
눈앞에 있는 언데드. 축소되다 못해 카르소니아 왕국 동부의 한 어귀만 차지하고 있는 저 희미해진 마기 기둥.
그 둘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 오로지 그만 나설 이유는 없었다.
‘꼭 무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그그그극-
테스는 부딪쳐 오는 마기 파편들을 걷어내며, 기다렸다.
그가 원하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그가 기다리던 자들이 찾아왔다.
“스승님!”
에나를 위시한 의선문의 제자들이 영지에서 달려왔다.
“이야. 이거 거래를 확실히 마친 거 같진 않은데, 지금 나서는 건 제 손해 같은데요?”
“이거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예요?”
그에게 거래를 요청하던 그레놀, 그의 치료를 받아 존재력을 보존하는 데 성공한 리페. 그의 몇 안 되는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주군!”
“명 받고 왔습니다!”
그의 명만을 기다리고 있던 영지군이 그를 찾았다.
영지병 중에서도 정예만 모았음에도 그 수가 이천. 창법과 창진을 기본으로 삼아 성장한 그들의 눈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의선문의 제자들. 아군. 영지의 병사들.
그가 원하던 자들이 전부 모였다.
순식간에 급증하는 그의 전력!
전력이 상승했으니,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이지 않겠는가.
“최종 목표는 저 눈앞에 있는 마기 기둥의 파괴. 그를 위한 길을 내주겠는가?”
“기꺼이!”
“그럼 전진! 이 세계 주민도 아닌 주제에, 감히 이곳을 탐하는 것들을 전부 격멸하도록 하자.”
“명!”
“창진, 개진하겠습니다!”
“제자들은 이곳으로!”
테스. 그를 선두로, 마지막 남은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