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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40화 (139/191)

제140화

챕터 15.

마계의 마기가 한데 뭉쳤다.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마기. 흡사 오러처럼 형상화되어 버린 거대한 마기. 거대한 마기의 기둥이 만들어졌다.

그그극-

기둥은 마기가 지닌 속성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저 존재함으로 주변을 광기로 물들였다.

-키에에엑!

-켁!

그 농도가 짙어, 마기를 머금고 성장한다는 몬스터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

섬찟한 살기가 바람처럼 부는 듯하고.

-죽여! 죽여!

전에 없던 살인 충동이 일어난다.

스스스스-

그 기운이 농밀하여, 온몸을 기로 두르고 있는 테스조차 넘보려 했다. 뱀처럼 흘러든 기운이 넘실거리며, 그의 뒤를 노렸다.

“하…….”

콰즉.

은밀히 다가드는 마기. 그를 중독시키려는 그 기운을 테스는 짓밟아 흐트러트렸다.

후우웅-

그로 모자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마기를 향해, 그가 지닌 선천진기를 흩뿌렸다.

마기와 전혀 반대되는 기운이 선천진기. 그의 선천진기가 휩쓸자 그 주변의 마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하나 이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의 기운이라도 모든 마기를 정화시키는 건 무리였다. 그저 그가 존재하는 주변 정도를 저 마기의 흐름이 닿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었다.

그조차도 겨우 흐름을 잠깐 비틀 수 있을 수준이다.

다른 곳은 오죽하랴.

-키이이익!

-케엑!

마기를 먹어 자란다는 몬스터조차 광기에 젖었다.

콰즉- 콰즈즉-

동족 의식조차 사라지고. 저들끼리 서로 죽이기 시작했다.

마기를 연료 삼아 살아가는 몬스터가 무너지는데 인간이라 버틸 리가.

-죽어, 이 새끼야!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

-커윽…….

동부에 남아 있던 다수의 인간들도 서로를 노렸다.

인간과 몬스터를 가리지 않는 광기!

때아니게 벌어진 살육전!

서로에게 망설임조차 없이 벌어진 살육전은 금세 결과를 드러냈다. 죽은 자의 시체가 쌓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어어- 그륵-

새로운 시작이었다.

단 일, 이 분. 살육전의 결과로 만들어진 시체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데 걸리는 잠시의 시간이었다.

언데드가 자연 생성 됐다.

죽음을 스스로 거부한 언데드!

원혼과 원한으로 빚어져야 할 존재들이 땅 위를 뒤덮었다.

몸을 일으킨 언데드. 좀비, 스켈레톤 따위가 아니었다.

듀라한, 데스나이트, 플레시 골렘, 사거트…….

고위 흑마법사가 공을 들여 만들어야 할 수준을 지닌 것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죽음의 땅이 만들어졌다.

죽음의 땅이 되어 버린 동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 * *

마기 기둥이 중심. 그 주변으로 불어닥치는 마기의 태풍.

격류 한가운데 선 테스. 그는 앞을 바라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대진법을 이용하는 방법을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건데.’

마계가 그의 예측 이상의 수를 썼다. 마계와 그. 둘이서 서로 두는 수 싸움에서 한 번 밀렸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의 저것이다.

죽어 버린 땅. 언데드. 마기를 머금고 점차 자라나고 있는 마계의 것들.

앞은 순식간에 황폐해지고, 그 영역을 점차 늘리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흐름이었다.

그러한 마기의 강 위에 작고 초라한 돛단배처럼 떠 있던 테스. 안타까워하던 그는 아직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아직 전부 잃은 건 아니었잖아?’

* * *

카르소니아 동부를 집어삼킨 마기의 기둥.

기둥은 금방 주변을 잠식했고. 그 여파는 남부와 중앙의 왕도에까지 이르렀다.

“저게 대체 뭔가!!”

왕도를 지키고 있던 수많은 귀족들. 수백 년간 이어져 오는 카르소니아의 권력을 잡고 있던 왕이 가장 먼저 이변을 발견했다.

그 또한 강자 중 하나였기에,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여파였고.

“현자. 이걸 어찌 해야 할지 이야기를 해 보게.”

왕은 곧바로 왕도 귀족들을 소환했다.

그중엔 현자도, 궁정 마법사도 존재했다.

당장의 재해를 막는 덴 오러 마스터와 같은 전사 계열보다도, 마법사가 더 뛰어난 게 사실. 그렇기에 모두의 시선은 그들에게 쏠렸다.

왕은 답을 구하려 했으나.

“저것은 막지 못하는 재해입니다.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뒤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최선을 다해 대비하고 있었잖나!”

“그 덕에 당장 왕도까지 바로 들이닥치지 않은 겁니다. 왕도 결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대로면…….”

그 답은 부정적이었다.

수백 년 전 초대 왕가가 쌓아 놓은 결계. 카르소니아 왕의 피로만 이어지는 왕도 결계. 그로도 막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대로면?”

“고작 일, 이 주 버티는 게 다입니다. 차라리 왕도를 버리는 것이…….”

“허……. 연합, 제국, 몬스터 웨이브. 그 모든 걸 견디었던 결계가 고작 저 마기에 잠식이 된다고?”

“마기가 고작이겠습니까. 무려 마계의 힘이 마기입니다. 천계와 더불어 상위의 것으로 칭해지는 힘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죠.”

현실을 부정해 보나, 현자는 그 답을 최악으로 내리고 있었다.

현자인 그도 원하여 최악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희망을 말하기엔 상황이 절망적이기에 그리 말할 뿐이었다. 만약 한 점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희망을 그렸을 터였다.

본디 왕을 구하는 현자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틔워야 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에도.

“왕도를 버리면 우리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

“이 왕도 모든 유산을 버리고 움직이는 그 순간, 우리가 가장 여실히 약해질 터인데.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건가. 말을 해 보게나.”

“…….”

또다시 답을 하기 어려웠다.

카르소니아 왕국의 왕. 그가 왕도를 버리고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동부는 마계의 영역화가 돼 버렸고. 동북부는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남부는 일이 벌어지자마자 어센션 영지에 붙었단 소문이 파다했다.

남부의 귀족들은 차라리 옳은 선택을 한 거였다.

당장 마기의 근원지에 가까운 왕도보다도, 저 멀리 북부와 연합하는 게 그들 생존에 유리할 테니까.

대침공 바로 이전, 범람의 시절에도 어센션 영지가 있는 북부만큼은 안전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그 어느 곳보다 북부가 안전할 확률이 높았다. 다름 아닌 테스가 존재하는 곳이니까.

분명 생존만 생각한다면 왕도 북부로 움직여야 함이 옳았다.

하지만.

“말해 보게, 현자여. 아니, 오샤프 백작이여. 왕으로서 묻겠네. 내가 그리로 가서도 왕이라 칭할 수 있겠는가? 왕이 아닌 나는 살아 있는 건가, 아니면 그저 살아만 있는 죽은 시체인가?”

“왕도가 끝남으로써 왕위도 끝이 나겠지요.”

“그래. 그러겠지.”

왕도도, 그 유산도 사라지는 그 순간 왕은 왕일 수 있겠는가.

이 세계의 왕은 귀족과 수하들의 충성을 통해 이어지는 왕이 아니었다.

수많은 귀족들 중 가장 많은 권력과 힘을 지니었기에 왕이었을 따름이다. 서로가 서로를 묶는 쌍무적 계약이 유효할 때에나 왕일 따름이었다.

저 수백 년간 계약이 이어졌다 하나, 왕도가 구실을 다 못하는 그 순간 왕으로서의 수명은 끝이었다.

더불어 왕이 사라진 이 왕국조차 순식간에 스러질 터였다.

무상한 일이나 그게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그 순간, 왕이 아니게 된 왕은 과연 살아 있다 말할 수 있을까.

“다만 그 목숨을 보전하신다면 언제고 기회를 얻으실……”

“하…… 기회라. 그 어센션의 테스가 있는 곳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보는가. 그건 이미 죽음을 택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마계에 동부가 잡아먹힌 순간, 어렵사리 이어가고 있던 이 나라는 명맥을 다한 것일지도 몰랐다.

끝이 다가온다.

왕은 그 끝을 제 몸으로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대범람을 버텨냈는데도 바로 이다음에 멸망이라. 우습구나.’

궁정에서 태어나. 나고 자랐고. 형제들의 견제를 물리쳐 왕에 올라섰으며. 그 스스로가 강자가 되고자 수련을 게을리한 법이 없었다.

자리를 지키고자 모계와 계략을 꾸미는 데 서슴없었고.

수백 년 전부터 이어지는 귀족들과의 줄다리기에 끼어 왕권을 지키고자 그의 전념(專念)을 바쳤다.

그 결과가 이토록 허망한 끝이다.

그러나, 그가 끝이라 하여 그 모든 걸 끝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법이지 않은가.

‘여기까진가 봅니다.’

문뜩 떠오르는 전대의 왕.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카르소니아의 왕은, 왕으로서 할 수 있을 마지막 명령이 문뜩 떠올랐다.

“왕이시여!”

“왕이여! 저 기사 무트가 끝끝내 보필할 터이니 차라리 결단을…….”

“살아야 기회가 오지 않겠습니까. 왕이 고개를 숙이신다면 그 테스라도 자리를 내줄 터입니다.”

그에게 끝끝내 모진 목숨을 잇자 하는 왕도의 귀족들.

수많은 자들이 떠나가 대전이 휑한 가운데서도, 그 빈자리를 일부라도 채우고 있는 저들에게 내릴 명령이 있었다.

명맥이 끊어져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게 된다 하더라도, 저들조차 목숨을 잃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못난 왕, 마지막 왕과 그들이 함께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명을 내렸다.

“……모두 떠나게. 나는 나대로 남아 이 자리를 지킬 터이니. 그게 내가 이곳 왕도에 가질 마지막 예의일 테니까.”

왕은 왕으로서 마지막 자리를 지킬 터이니, 아직 남아 있는 자들은 모두 떠나도록 명을 내렸다.

왕도의 여우라 소문난 그답지 않게 자애로운 명령.

또한, 왕권을 위한 명이 아닌 그를 따르는 소수의 자들을 위한 명을 내렸다.

“자네들 말대로 살아남을 가장 높은 가능성을 지닌 곳은 북부이니, 그리로 가게나. 가서 이 왕도를 잊고 차라리 그곳에서 새로 자리를 잡게나. 이 왕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니…….”

“…….”

그의 명에, 남아 있던 왕국 귀족들 거의 모두가 빠져나갔다.

왕궁을 지키던 근위기사도, 왕실의 비전을 연구하던 마법사도, 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던 현자도 자리를 떠나갔다.

그러고 나자 남아 있는 자는 몇 되지 않는 소수. 한 손으로 꼽을 만한 수만이 남았다.

“자네들은 가지 않는가?”

“……왕이 계시는 곳이 제가 있을 곳이지 않겠습니까.”

“허허. 그게 자네의 선택인가? 퍽이나 어리석은 선택이로구만.”

“꼭 현명하기만 한 선택을 하는 게 답은 아니죠.”

“그런가…….”

“그런 겁니다.”

어린 시절, 왕이 왕이 되기 전부터 그를 지키던 시종 둘과 근위기사를 이끄는 단장이자 동시에 그의 친우였던 로운.

그 셋이 남았다.

왕족조차 떠나보낸 지금, 저들 셋이 왕에게 남은 왕국의 마지막 유산들이나 다름없었다.

그 수는 다른 자가 보기에 퍽이나 적어 보였으나. 왕이 보기엔.

“이 대전이 가득 찼는데, 이리 끝을 내야 하는 게 아쉽군.”

“……후후. 그렇습니까?”

“그런 거네.”

왕실이 귀족으로 가득 찼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안이 가득 차 있어 보였다.

“아쉽게도 끝이로군…….”

그러나, 이 대전을 채운 그 순간도 결코 길지만은 않았으니.

왕도가 비워지고 얼마 뒤.

그그그긍-

거대한 마기 기둥이 재차 폭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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