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챕터 13.
베빈을 두고 코어로 향하는 테스.
영지에 침공한 던전을 포함하여 이미 여럿의 던전을 처리하고 온 그다. 게이트 그리고 코어와 직접 접촉했다. 그에 얻은 지식도 상당한 터.
즈즈즈즉-
코어를 이해하는 덴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의 시야에 코어의 상태가 담겼다.
‘변형이 심해. 베빈은 이걸 이용해서 마탑에 갇힌 자기 상태를 고치고 싶었던 듯한데…….’
그의 이해. 그중엔 베빈의 의도까지도 담겼다.
마탑이라는 개념 아래에 갇힌 베빈.
마탑이 가진 영역이 제아무리 방대하다 하더라도 갇힘은 곧 자유를 잃음을 뜻했다.
자유를 갈망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닌가. 갇혀 버린 마탑 바깥에 대한 열망이 누구보다 강할 그녀다.
‘몇 십번이고 도전했겠지. 마치 발악처럼.’
그 결과물 중 하나로 만들어진 게 리페.
승천에 실패한 제 영혼 일부를 갈아 넣고. 마탑의 비전들을 섞어 만들어 넣은 인공 생명체가 그녀였다.
그 수준은 창조에 가까운 행위.
창조를 흉내 낸다는 골렘, 호문쿨루스도 닿지 못한 경지다. 골렘은 감정이 없고, 호문클루스는 한 가지 감정만 증폭되었으니 더더욱 비교될 수밖에.
그러한 대단한 존재를 만들어냈으나, 결국 그녀의 목표였던 자유는 실패였다.
그녀가 여태껏 바깥을 나서지 못하는 것. 겨우 만들어낸 리페의 존재감이 계속해 흐려지는 것도 그 실패의 증거였다.
수많은 실패를 겪었을 거다.
손으로 세기도 힘들 만큼의 실패였겠지.
그럼에도 그 실패를 발판 삼아 계속해 도전한다는 점은, 전생을 겪은 테스로서도 놀라우리만치 대단했다.
‘독하다 못해 집요할 정도지. 그 탈출구라 생각하는 게 승천일지도. 그러니 집착하는 것이고.’
승천은 실패했지만, 그 대가가 전혀 없던 건 아니다.
테스가 알아보기로 그녀는 승천에 실패한 대신, 그녀의 육신은 마탑이 존재하는 한 불멸이었다.
설사 마탑이 영락하여 그 영역이 한 뼘밖에 되지 못한다 해도, 그녀는 베빈이란 이름 하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해 도전하였고. 그 실패작 중에 하나가 바로 그의 눈앞에 있었다.
우우웅-
그가 결계를 뚫고 변질된 코어 앞에 닿았다.
베빈으로선 봉인 혹은 파괴를 택할 거라 여겼던 코어. 하지만 그는 봉인도 파괴도 택하지 않았다. 그 대신.
‘흥미롭네.’
제 손을 변질된 코어를 향해 가져다 대었다.
‘너는 또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 거냐.’
그리곤 읽어 들였다.
전에 제 영역에 온 게이트를 읽어 들였듯. 게이트 안에 등장한 코어를 통해 마계를 읽었듯. 그때의 방식으로 읽고자 했다.
쉬운 일은 아니다.
스스스스-
변질된 코어 안의 기운은 흉포했다. 타인의 기운을 본질적으로 배척했다.
본래 지니고 있던 기운이 변질되니, 그 무엇보다 파괴적이었다.
코어는 테스의 단순한 접촉조차 거부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예상했던 바다.’
몇 번이고 경험을 하였던 테스였다. 그는 자신의 손으로 타고 들어오는 코어의 반발력을 억누를 요령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마력으로 맞상대하고, 튀어나오는 건 내력으로 감싼다, 이내 흉포한 것들은 선천진기로 잠재우면 될 일이야.’
선천진기, 마력, 내력.
동시에 세 가지를 다룰 줄 아는 그이기에 가능한 요령!
세 가지의 기운을 이용하면 코어의 반발력 따위 쉽게 잠재울 수 있었다.
그리 잠재움으로써, 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코어의 안을 살피고자 했다.
그때를 기다린 듯,
츠츠측-
코어가 다시 반발을 해 왔다.
마지막 반항이었다.
이 순간, 그가 기다렸던 순간이기도 했다. 지금 완벽히 반발을 잠재워야만 코어는 제가 지닌 비밀을 보이곤 하였으니까!
반발력이 최고조에 올라섰을 때, 그는 마지막 힘을 열었다.
‘아직 다루기 힘들지만, 그래도 감수해 볼까.’
그 마지막 힘. 천지와 감응한다 하는 상단전의 힘이었다.
흔히 영안이 열렸다 표현되는 상단전.
그곳의 힘을 그는 코어를 읽어 들이는 데 이용했다.
스스스-
그제야 코어의 반발력이 완전히 잠재워졌다.
‘……후우.’
그 어떤 언어로도, 이론으로도 설명되기 힘들 개념들이 코어를 통해 흘러들어 왔다.
베빈이 코어를 변질시키기까지의 비의, 그에 관련된 마탑의 비전, 코어에 얹혀 있던 차원의 비밀 일부, 코어의 전 주인이었던 마계의 기억…….
고작해야 직경 50cm도 되지 않은 원형의 코어 안엔, 수많은 비밀들이 들어 있었다.
한번 비밀을 열어젖힌 코어는 테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제 속살을 강제로 열어젖혔다는 것에 뿔이라도 난 듯, 품고 있던 비의들을 그에게 사정없이 쏘아댔다.
때로 지식과 비의란 건 그 자체만으로 지닌 무거움이 상당한 터.
이러한 비의들의 쏟아짐은 제아무리 고클래스 마법사라도 미쳐 버릴 만한 수준의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 베빈조차도 쉬이 접촉하지도, 또한 쉽게 건드리지도 못했던 것이지 않던가.
그러한 것들을 테스는.
“……죽이는군.”
되레 즐기며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탑의 비전을 읽으며, 여태 가지지 못한 전통 마법사의 비전을 스스로 배웠고. 흩어진 퍼즐조각처럼, 중구난방으로 퍼진 차원에 대한 지식 일부를 채웠다.
침공해 오는 마계에 관한 정보를 얻었다.
얻은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코어 자체를 완벽히 읽어 들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영안이 더 크게 열렸다.’
더 벌어질 줄 몰랐던, 상단전의 영안이 전보다 크기를 키웠다.
상단전의 영안은 곧 물질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신기(神氣)와도 같은 것!
이번에 얻은 그 어느 비의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게 영안의 확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득이라. 좋은데.’
생각지 못하게 얻은 성장이었다.
그 성장의 기쁨을 그는 잔뜩 만끽하며, 코어의 안을 끝끝내 완벽히 살피었고. 이해했다.
봉인도, 파괴도 아닌 완벽한 이해를 그가 해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야…….”
“괴물…….”
그걸 바라보는 베빈, 리페, 마탑의 마법사들. 그들의 놀람이 잦아들기까지 한참, 그는 코어와 공명하고 있었다.
* * *
공명이 완벽히 끝났다.
그가 완벽히 이해하고, 코어의 모든 기운을 그의 것으로 물들이는 데 성공했단 의미.
딸칵.
그 끝에 도달하자, 폭주하던 코어는 잠잠해졌다. 부유하고 있던 몸체를 슬그머니 낮추더니 그의 손 위에 떨어졌다.
코어를 품안에 담아 넣으면서, 테스는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안 말고도 코어를 통해 얻은 바가 있었다.
꽤 많은 부수적인 효과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도 생각지 못한 이 사태의 해결법이었다.
‘여기서 배운 방식을 전에 설치한 대진법에 활용한다면, 대침공을 막아낼 수 있을지도.’
대침공!
범람 이후를 노리고 들이닥친 이계들의 침공. 특히 마계가 주도하고 있는 이 침공을 막아낼 방도가 생각났다.
범람을 막기 위해서 설치했던 대진법에, 이번 코어에서 배운 방식을 활용할 수만 있다면.
‘완벽히 대침공을 막아낼 수 있거나, 적어도 그 빈도를 상당히 떨굴 수 있겠지.’
일종의 벽을 세울 수 있었다.
대진법을 그의 기운으로 물들이고, 이번에 이해하여 얻은 지식을 통해 차원의 벽을 하나 쌓는 방법이 떠올랐다.
이 방식만 활용하면 적어도 그가 속한 왕국 내의 대침공을 막는 건 가능해 보였다.
‘우선 계산은 완벽해.’
거기다 이번은 전과 달랐다.
전엔 차원과 힘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에, 사고를 일으켰었다.
진법석을 날리다 온 곳곳에서 문제가 일어나기도 했고. 그에 말미암아 나온 물의 영약을 만들었다가 대범람을 당기기도 했다.
생각지 못한 여파가 터지며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여파조차도 조종이 가능한 듯 보였다.
적어도 그가 계산하기론 완벽했다.
‘이 왕국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장을 해 나가면 주변을 완전히 뒤덮는 게 가능할지도. 그럼 성국에 대침공이 몰리려나. 그렇게 되면 이이제이(以夷制夷)로구만.’
잘하면 이득까지 얻을 수 있을 듯 보였다.
‘대침공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일이 풀리자니 이렇게도 풀리는구만.’
마탑을 도와주겠다고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얻을 듯 보이는 상황. 테스는 손에 쥐어졌던 코어를 갈무리하며, 빙긋 웃기까지 했다.
“당장 움직여야 하나. 아니면 이걸 가지고 계산을 해야 하나.”
“……코어를 잡아먹더니, 정신이라도 나간 거야? 혼자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대체 그 코어를 길들인 건 어떻게 한 거고?”
그런 테스가 이상해 보였을까.
테스가 코어를 갈무리하기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베빈이 어느새 그에게 다가와 묻고 있었다.
“정신이 나갈 뻔하긴 했지. 다행히도 나가진 않았다. 아슬아슬했다.”
“그래 보이긴 해. 그런데 대체 어떻게 길들인 거지?”
“길들인다라……. 뭐 그런 표현도 맞긴 하네.”
“중요한 게 표현은 아니지.”
그녀의 표정엔 여전히 놀람의 여파가 가득했다.
동시에 짙은 호기심이 배어 있었다.
그녀로선 상상도 못 한 방식으로 변질된 코어를 잠재웠으니, 무리도 아닌 반응.
평소의 테스라면 이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줬을 터였다.
아니, 적어도 지금 얻은 지식을 가지고 거래라도 하려고 했을 거다.
테스 자신은 코어에 대한 지식을 건네주고, 그 대가로 마탑의 힘을 빌렸을지도. 그들의 힘을 이용해 대침공을 막는다면 크게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코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은 지금은 다르다.
‘당장 거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아쉬운 건 테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였다.
안 그래도 마탑 내, 코어의 폭주를 막아 주었으니 빚까지 지운 상황. 여기에 테스가 코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었음을 그녀는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몸이 달아오를 만도 하지.’
그러니 평소라면 유리한 이 순간을 즐겼을 거다. 코어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이용해 꽤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맞소. 대체 어떻게 한 겁니까!”
“알려주십쇼! 아니, 차라리 마탑에 귀의하시는 것도 생각해 보심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 곁에 있는 마탑 마법사들의 외침도 그에겐 중요치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코어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거든.”
“……지금 이 순간 그거보다 중요한 게 대체 뭔데?”
“아무래도 이번 대침공을 막을 방안이 생각났거든.”
“뭐?!”
그녀가 놀람에 테스는 더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니 우선 거래는 나중에 하자고. 우선 이거부터 막아야 하는…… 뭐지!?”
당장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기에 나온 미소였다.
하지만 역시 세상은 그의 예측대로만 돌아가지 않았다.
그그그그긍-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그는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