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37화 (136/191)

제137화

챕터 12.

전에 없이 생기가 가득한 그녀.

‘전에 갔던 데빌 던전 이상의 힘을 지녔을지도.’

깨져 나간 그릇 사이로 흘러내리던 존재감이 채워지던 순간, 그녀의 생명력은 전에 없이 강대했다.

리페는 강해졌음보다도, 자신이 살 수 있음에 더 감사한 듯했다. 몸을 일으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테스를 향한 감사 인사였다.

“……감사합니다. 제 스스로 가진 것은 없어도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제 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게 힘을 주면 죽음이지 않아? 그러면 애써 살린 의미가 없는 거 같은데.”

“후후.”

테스의 농담에 그녀가 처음 웃음 지었다. 베빈과 다른 화사한 웃음이 그녀의 표정에 있었다.

“그거 말고도 달리 힘을 드리는 방법은 여럿 있으니까요. 기대하세요.”

“기대라…… 꼭 기억하고 있도록 하지.”

“예.”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자체가, 지금의 테스에게 있어선 새로운 경지로 가는 영감이 될 터. 테스는 진심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리페 당신이 여기까지 와서 해야 할 일이 뭐지?”

“전언이었습니다.”

바로 그녀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이자 목적이었다.

“무슨 내용이지?”

“마탑의 대표로서 거래를 요청합니다.”

“거래라…….”

처음엔 퀘스트 따위로 이야기하더니 이번엔 거래. 서로가 동등해야만 이뤄지는 것이 거래.

그러니, 이번 거래 요청은 마탑이 그를 동등한 자로 대우해 준다는 걸 의미했다.

‘나쁘진 않군.’

새삼 자신의 위치가 꽤 올라왔음을 느끼는 테스였다.

문제는 그 거래의 내용.

테스가 묻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내용을 말했다.

“저희가 요청하는 건 마탑 내부에 담겨 버린 차원의 뒤틀림을 해결하는 겁니다. 베빈이 손을 써 버티고 있으나, 잠재우진 못하고 있거든요.”

“뒤틀림을 닫는 거라. 과연, 그녀도 못 한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걸 가늠할 수준이 못 되니까요.”

“그런데도 날 찾아왔다는 건, 베빈은 내가 그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건데…….”

“분명 그리 생각할 겁니다. 그녀가 허투루 저를 보냈을 리 없으니까요.”

“흐음…….”

과연 베빈은 뭘 믿고 테스 자신이 그게 가능하다고 여기는 걸까.

‘뒤틀림이라…….’

테스가 알기로 차원의 뒤틀림은 쉬이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수십 년에 한 번 일어나는 대범람. 그쯤 돼야 일어나는 게 뒤틀림이었다. 대범람 당시 물의 정령들이 날뛰었던 것도, 그러한 뒤틀림이 일어난 탓.

그 뒤틀림의 파편으로 인해서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계의 침공도 비슷한 경우였다.

작게 만들어진 뒤틀림을 비집고 들어와 크게 만들어내면 그게 뒤틀림이고, 동시에 차원 침공이었다.

차원에 대한 지식, 혹은 권능이 있어야만 개입이 가능한 게 뒤틀림.

그러한 뒤틀림을 잠재운다라.

‘부수는 게 만드는 거보다 쉬운 게 당연하듯…… 뒤틀림을 다시 잠재우는 게 더 어려운 일이 분명한데. 베빈 녀석은 대체 뭘 믿고 날 부르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베빈이 그리 결론을 내린 이유를 가늠하기 힘든 테스였다.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최대의 조력자 중 하나인 베빈. 갇혀 버린 그녀가 있는 마탑이 무너져 내리면, 조력자인 그녀도 어찌 될는지 알 수 없으니까.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가지.”

“……이동을 위한 준비를 시행하겠습니다.”

가야만 했다.

* * *

츠츠츠측-

시시각각 일어나는 파동. 마나의 파편이 튀어 나갈 때마다, 만들어 놓은 결계에 부딪힌다. 파편이라지만 그에 담긴 파괴력은 4 클래스의 폭발 마법 이상.

터져 나간 파편에 결계가 흔들려 온다.

결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 중심에 베빈. 그녀는 터져 나가는 폭발에도 굳건히 버텨 나가고 있으나 그 주변이 문제였다.

“커흑…….”

“스, 슬슬 한계입니다.”

그녀 주변을 지키고 있는 마도사들. 원로를 제외하고 마탑의 최상위 마법사라 할 수 있는 그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수십여 차례였다.

츠츠츠측-

무리도 아니었다.

터져 나가는 파편은 하나가 아니었고, 수십 수백이었으며. 이조차도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으니까.

이제껏 버텨낸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럼에도 베빈은 저 중심에 돌고 있는 코어를 부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야.’

우우웅- 우웅-

그녀에게 있어 저 중심의 핵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보물이었다.

변질된 코어 안에 담겨 있는 힘. 그 힘에 관련된 것이 ‘차원’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명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원에 대한 지식!

그 지식만 알아내면 실패한 승천을 또다시 시도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승천이란 본질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를 알아낼 수도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지난 수백 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도달해내지 못했던 승천에 대한 단서가 저 안에 담기어 있었으니까.

그 단서를 얻어낸 건 우연일지라도, 지켜내어 얻는다면 필연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마탑의 마도사들을 데리고, 버티고 또 버티어 볼 뿐이었다.

그렇다 해서 무한정 기다리는 건 아니었다.

그녀에게도 희망이란 게 있었다.

‘그 녀석, 대체 언제 오는 거야?’

그게 테스였다.

마탑에 갇혀 있는 자신은 저 조각으로부터 마탑을 지키는 게 최선. 반대로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로운 테스는 저 힘의 조각을 살필 수 있을 테니까.

힘의 상하 때문이 아니라, 묶여 있고 묶여 있지 않고의 차이 때문에 그가 결국 희망이었다.

해서 그녀의 일부라 할 수 있는 리페까지 어렵사리 보냈거늘, 예정보다도 더 늦어지고 있었다.

파즈즉-

“흐읏…….”

또다시 결계에 닥쳐오는 파편. 결국 그녀도 잘게 입술을 깨물며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필 지금…….’

이전의 파편 조각에 의해 마탑 마도사들이 쓰러진 지금. 이 순간을 노린 듯 파편 수십여 개가 날아들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어렵사리 버텨내고, 정신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강대한 정신력을 알아줄 만했다.

파즈즈즉- 파즉-

파편의 태풍 속에서. 영겁과도 같은 버팀이 얼마나 지나갔을까.

그녀가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도 잊어갈 즈음.

“이거 대단한데?”

혼몽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그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상인가. 아니었다.

파편의 파도 속에서 겨우 버텨 나가던 그녀의 육체. 그에 담겨 있는 서클의 파동은 여전히 주변을 제대로 읽어 들이고 있었으니까.

그녀 옆에 존재하는 저 강대한 마력을 지닌 존재는 분명 테스였다.

그녀가 알기로 저러한 힘들을 여럿 움직이면서도, 제 육체를 제대로 구성하고 있는 건 테스가 유일하였으니까.

또한.

‘못 본 사이 기운이 더 커졌어.’

아직 인간의 육신을 지녔음에도, 저 정도 정순한 기운을 지닌 자는 오롯이 테스뿐이기도 했다.

강대하고도 강렬한 기운의 그릇 상태에 놓여 있는 테스.

저런 대단한 기운을 지녔음에도, 여태껏 승천을 하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의 존재가 또한 테스였다.

괴이했다.

또한 괴이하기에 그는 그녀에게 희망이었다.

‘……그가 아직 승천의 문을 열어내지 못한 이유가, 내가 승천에 실패한 이유와 일맥상통하겠지.’

그로부터 그녀가 승천하지 못할 이유를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인과에서 원인을 알게 되면, 결과도 또한 도출할 수 있게 되는 법이었으니. 같은 이유로, 테스가 곧 승천을 해낸다면 그녀의 승천도 이어질 터였다.

처음 그를 보는 순간엔, 단지 가능성만을 지녔을 뿐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확신에 가득 차 있는 그녀였다.

그런 그를 보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딱 하나.

“……테스! 늦었다고!”

반가움과 약간의 떼가 섞인 한마디였고.

“푸핫. 그 꼴이 뭐냐. 어렵사리도 버티고 있었구나? 하기야, 저 대단한 걸 버티고 있었으니 이해는 간다만.”

테스는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그러곤.

“자, 보자. 우선 어디부터 이 실타래를 해결해 줘야만 상황이 나아지려나.”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테스는 가장 먼저 베빈의 곁으로 섰다.

결계의 중심이 된 그녀의 주변으로 나 있는 복잡한 마법진. 그 사이를 거닐면서도 테스는 마법진을 단 한 점조차 훼손하지 않았다.

마법진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해냈다는 의미였다.

그 짧은 사이, 마탑의 마도사들이 만들어낸 다차원적 마법진을 이해한다라. 그 식견이 대단했다.

재밌는 건 그 이후.

마법진을 건드리지 않고 베빈에게 닿은 테스.

스스스-

무슨 묘기를 부리는 건지 그가 왔음에도 마법진은 정상 작동하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안 될 마법진에 그가 개입해 있는데도 그러했다.

그는 그러한 일을 해놓고, 베빈에게 다가가 한 가지 더 놀라운 일을 했다.

“우선 중심이 되는 베빈, 당신부터 정상을 찾아야겠지.”

“아아…….”

츠츠츠-

그는 자신이 일으킨 기운을 베빈에게로 주입했다. 진득한 생명력을 가진 기운이 그녀의 육체를 타고 휘돈다.

그의 힘이 그녀의 온몸을 휘감는 순간.

“……덕분에 살 거 같네.”

“이 정도야, 기본이지.”

그녀는 지난 시간 동안 쌓였던 피로가 깨끗이 씻겨져 나감을 느꼈다.

그녀가 저 결계를 유지하고자 사용한 심력과 힘을 감안하면, 이 한순간에 치료를 해낸 게 신기할 지경.

그녀를 치유하는 그 순간에도 마법진에 흔들림은 전혀 없는 걸 또 생각하면.

‘……이젠 무서울 지경이야.’

그녀가 마탑을 지키고 있는 사이. 몇 년밖에 되지 않는 그 시간 사이에 과연 테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베빈이었다.

순간 베빈은 그의 가능성을 본 자신의 눈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자기 확신을 얻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강력해진 그로부터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두 가지 양가적 감정이라.

평생을 자기 확신에 찬 채로 살아 왔던 그녀로서는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나쁘지 않아. 차라리 승천의 중심에 내가 아닌 그가 서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녀는 제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감정들을 거부하지 않았다. 되레, 즐기었다.

스스스-

결계를 구성하는 그녀의 심상이 편안해지니, 결계는 더 단단하게 굳었다.

콰아앙-! 콰앙!

이전보다 격렬한 파편의 폭발에도 그녀는 쉽게 버텨냈다.

“이 결계, 역시나 네 심상하고 연결돼 있었구나.”

“알고 나를 치유해 준 거 아니야?”

“예상은 했지. 다만 확인이 필요했을 뿐이야.”

옅어졌던 결계를 다시 단단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그는 이곳에 와 자기 할 일을 반은 해냈다 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반은 하나.

“확인이 끝났으니, 이제 저걸 해결해 보도록 할까.”

츠츠츠츠-

막대한 파편을 뿌려대고 있는 변질된 던전 코어의 해결이었다.

‘과연 어떻게 해결할까?’

또 다른 공간을 지니고 있는 코어를 부숴낼까. 아니면 코어 자체의 힘을 봉인시킬까. 그게 어느 쪽이든 그녀는 기대가 됐다.

그가 던전 코어를 해결하는 걸 보면서, 그녀도 얻는 바가 분명 있을 테니까.

파괴 혹은 봉인.

어느 쪽이든 놀라지 않을 거라 생각하던 그녀였다.

“……어?”

그러나 뒤이어지는 그의 방식엔 그녀도 결국 놀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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