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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36화 (135/191)

제136화

챕터 11.

대화를 열기 위해선 그녀의 존재가 흐려선 안 된다.

특히나, 눈앞의 리페가 지닌 존재감이 흐려져서야 그 뒤에 벌어질 일이 염려스러웠다.

때문에 테스는 자기 마력을 돋웠다.

‘베빈은 내가 이럴 줄 알고 리페를 여기로 보냈을지도.’

스스스-

돋워낸 마력을 이용하여, 리페를 끌어당긴 그.

“으읏…….”

평소라면 버텨내었을 그녀지만, 존재감이 흐려진 지금에 있어 그녀가 버텨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끌어당긴 그녀를 안아 바닥에 눕혔고. 그 주변에 있는 마나 전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었다.

지배하에 둔 마나에게 가장 먼저 행한 명령은 ‘동결’.

츠으-

흐름을 지니고 움직이던 모든 마나들이 일순간 멈춰 섰다.

“아!”

“이제 좀 나은 기분이 드나?”

“……덕분에요.”

마나가 멈춤과 동시 그녀의 존재감이 흐려지던 현상도 같이 멈추었다. 그제야 창백해져 있던 그녀의 안색이 일부 돌아왔다.

그러나 완벽하지는 않았다.

‘멈췄다 해서, 전에 있던 존재감으로 다시 돌아온 건 아니니까.’

지금은 주변 마나를 동결함으로써, 현상을 멈추었을 뿐이다.

그가 마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순간, 그녀의 존재감은 다시 흐릿해지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세계에 허락된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갇혀 버린 베빈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고자 부린 편법. 승천에 실패했으나, 대마도사라 불리기에 충분한 그녀기에 부릴 수 있는 묘기.

그리하여 만들어진 존재가 리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편법과 묘기가 지독히 교묘하여 어지간해서는 읽어 들일 수 없었을 정도다. 그러니 이 세계의 시야조차도 잠시 속여 리페를 존재케 할 수 있었겠지.

대단하며 경이로운 재주였다.

그리고 동시에, 테스는 자신이 리페의 현 상태를 완벽히 읽어 들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이전에는 도무지 읽을 수 없었는데 말이지.’

자신이 전보다 성장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성장을 통해서, 전에는 할 수 없던 한 가지를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녀의 존재감 일부를 찾아내는 게 가능하단 사실을 알게 됐다.

달리 말하면, 그녀에 대한 치료!

“살고 싶지?”

“예?”

“가능하다면 영원히는 아니어도, 남들 사는 만큼은 살고 싶을 거야. 그렇지 않아?”

“쓸데없는 욕심이에요.”

“쓸데없기는.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

테스가 새로 깨달은 것에 대한 가능성을 들은 그녀의 눈이 크게 떠진다.

‘이 정도로 감정 표현을 할 줄 알았나.’

냉막하기만 한 그녀치고 큰 표정 변화였다. 테스는 그녀의 그러한 변화 속에서, 그녀가 가진 삶의 열망 일부를 읽었다.

언제부턴가 살고자 하는 자를 살리는 건, 그가 지닌 의무 중 하나가 아니었던가.

수많은 자를 살린 대범람 이후부터, 세상에 완벽한 개입을 하기로 마음먹은 지금. 그녀의 치료를 하는 거 정도는 개입 축에도 끼지 않는 작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에게 바로 제 의지를 말했고.

“그러니 대답을 해 줘야겠어. 살고 싶어?”

“……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그녀가 그의 의지를 받아들이는 순간, 그만의 치료를 바로 시작했다.

* * *

인간도, 본래부터 생명도 아닌 존재에 대한 치유.

테스로서는 처음 있는 일. 하나, 전생의 의선이던 시절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전생에서 그가 치유하고자 했던 존재는 강시.

죽은 시체를 고향까지 운구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던 게 강시.

단단한 몸을 지닌 강시의 육체를 탐낸 일부가 있었고. 그들은 강시를 운구가 아닌 전투를 위한 존재로 탈바꿈시켰었다.

그들은 이미 죽어 버린 시체를 강시로 만드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산 자를 강시로 바꾸고. 산 자를 변형시켰다.

생전에 지녔던 기억, 능력, 무공. 그 모든 것들을 그대로 갖고 있는 산 강시를 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반강시.

최고최악의 강시였다.

그러한 반강시에도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사용자에 대한 반감이었지.’

살아 있는 자신을 강시로 만들어 버린 제작자. 그에 대한 원한이 강했다.

제작자도 그를 알기에 온갖 술법과 주술을 부여하고. 살아생전의 가족까지 인질로 삼아 반강시를 묶어 버리기도 하였으나.

때로 그들이 지닌 원한의 무거움은 그러한 족쇄들을 뚫고도 남았다.

결국 자신을 제작한 제작자를 죽이고. 그가 속한 문파까지 멸문시켜 버렸던 일화는 유명했다.

모든 복수를 끝마친 반강시.

그때의 강시가 의선이었던 그를 찾은 건,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몰랐다.

살지도, 죽지도 않은 채로. 영원히 그 상태로 머물러야만 하는 저주 같은 삶을 끝내고자 그를 찾았다. 그리고 원했다. 지금의 상태를 끝마쳐 주기를.

의선이던 시절 그는 수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결국 반강시를 생전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가 반강시로 지녔던 천하제일의 힘을 잃는 것이었으나, 그는 괘념치 않았다.

그리고 모든 치료를 끝마치고, 인간으로 돌아오는 데 성공한 그는.

‘죽어 버렸지.’

제 스스로 죽음을 찾아 들어갔다. 그 이유는 전생의 기억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 테스로서도 아직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또한 죽음을 맞이한 경험이 있었으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기사, 한 인간이 다른 존재를 완벽히 이해하는 게 본래부터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의선이던 그는 치유에 성공함으로써 되었던 것이고. 그는 원하던 죽음을 맞이하였음으로 그때의 일은 끝을 맺은 셈이었다.

그리고, 끝을 맺은 줄 알았던 그때의 경험이 이런 식으로 다시 또 이어졌으니.

‘이러니 사는 게 재밌는 법이지.’

두 번째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세상 자체가 신선한 것일는지도.

테스는 전생에서의 기억, 이 세계에서 얻은 힘과 요령, 리페로부터 느껴지는 생명의 순환을 더듬어 갔다.

“으으음…….”

동결된 마나 속에서. 흐릿해져 가는 정신에 신음을 삼키는 리페. 그녀의 상태를 온연히 느끼면서, 그는 그녀가 지닌 순환의 고리를 찾았다.

‘찾았다! 만류귀종이라고 하더니. 역시 내 예상대로 기운의 순환 방식이 강시랑 완전히 다르진 않아.’

그녀의 몸에 각인된 흐름을 찾아냈다.

드워프들이 가진 신의 힘을 담는 그릇. 보구보다도 더 복잡한 회로가 새겨져 있는 게 그의 기감으로 느껴졌다.

그것은 마법진이며 동시에 ‘권능’과도 같은 어떠한 힘이었다.

실패했으나, 승천자에 다다르는 데 거의 성공했던 베빈. 갇혔으나 그 집념만은 이미 마탑을 초월해 버린 그녀만이 할 수 있을 묘기.

‘과연……. 이 정도쯤 돼야 이 세계 눈을 속인다는 거겠지.’

그 결과물이 리페였고, 테스는 실존하는 결과물을 읽어 들이고 분석했다.

우우웅-!

찾아낸 순환의 고리에 제 기운을 실었다.

“읏…….”

실린 기운에 몸을 떠는 리페.

어마어마한 고통이 차오른 게 분명했다. 불완전하나 동시에 완성된 그녀의 회로에 새로운 힘이 개입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만 참아내도록 해. 오래 가진 않을 테니.”

“……네.”

테스는 고통을 그대로 두었다. 아무리 그라도 그녀의 상태를 새로이 만들어 가며, 동시에 고통을 잠재우는 것까진 무리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의 몸에 새로운 기운의 구축을 빠르게 끝내는 것뿐이었다.

‘……생명을 담을 그릇이 깨져서 계속 새어 나가고 있었네. 그러다 보니 몸의 존재감이 흐려지는 것이고. 세계의 눈을 속이려면, 계속해 흘러 내려가는 게 맞기는 한데. 소모도가 너무 많아.’

그는 더 깊숙이 개입을 시작했다.

단순히 기운을 불어넣음을 넘어, 자신이 지니고 있던 선천진기의 일부를 그녀에게 나눴다.

깨달음을 얻음으로써 누구보다 정순하여진 게 그가 지닌 선천진기!

스스스-

생명령의 근원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그의 선천진기가 주입되자, 그녀의 몸에 있던 떨림이 잦아들었다.

“아…….”

전에 없던 생명력이 느껴져서일까.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리페. 그녀는 저도 모르게 탐욕스레 그의 선천진기를 원해 왔다. 본능적으로 느낀 거다.

저 선천진기가 존재하는 만큼 자신의 삶이 더 길어질 것을.

그러니 테스가 주입하는 그 이상의 선천진기를 원하는 것이겠지.

‘죽어도 상관없다고 하더니. 역시나 죽고 싶을 리가 없잖아?’

그 심정을 이해 못 할 리 없는 테스였다.

그러나 지금 이어지는 치료는 그 어느 때보다 세심해야 했다.

무작정 선천진기를 주입한다 해서 치료가 될 리 없었다. 생명의 근원이랄 수 있는 선천진기도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특히, 그녀와 같은 괴이한 존재는 더 주의해야 했다.

선천진기를 주입하는 만큼 만들어지는 존재감이, 그녀가 더는 세상의 눈을 속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릴 테니까.

결국 중요한 건 균형이었다.

여전히 세상의 눈을 속여, 세계에 배척당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동시에 적절한 생명력을 지녀 이 세계를 활보하면서도 존재감이 흐려지지 않게 만들어야 했다.

그 미묘한 균형을 알아내고자.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도록 하지.”

스스스-

테스는 선천진기를 주입하며, 동시에 그녀의 모든 걸 샅샅이 읽어 들이고자 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녀의 육신, 그리고 그를 뛰어넘어 저 세계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핵’에 도달하고자 했다.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일.

‘과연…… 아공간을 이용해서 혼의 일부를 구성하게 만든 건가. 재밌네.’

하지만 온갖 방식을 통해 이 세계를 읽어내고, 게이트와 그 너머의 차원에 대한 지식들을 빨아들인 지금이기에 가능했다.

아슬아슬하게나마 저 공간 너머에 있는 그녀의 존재를 구성하는 혼을 읽어냈다.

‘……베빈의 영혼 일부로구만.’

아공간. 그 안엔 승천에 올라서려다 실패했던 베빈의 영혼(靈魂) 일부가 있었다. 베빈이 제 영혼의 일부를 깎아, 리페를 만들어냈음이 증명된 순간이었다.

-……아직 여긴 네가 올 때가 아냐.

“아…….”

아공간 속에 머물러 있기만 해야 할 베빈과 그의 눈이 마주쳤다.

파편이 되었음에도 그녀다운 생기 어린 웃음을 지어 주던 그녀는 테스를 저 바깥으로 밀어냈다. 그녀가 생각하는 때가 아니기에 하는 추방이란 거겠지.

‘베빈답네. 그나저나 승천에 실패하면 이런 식으로 영혼이 조각조각 나는 건가. 어쩌면 전생의 나도 우화등선에 실패했으니, 영혼 일부가 쪼개졌으려나. 그렇다면 지금 있는 내 기억은…….’

내쫓김에도 테스의 상념엔 온갖 영감들이 떠올랐다.

전생을 겪었고, 그 전생에서 승천과 같은 우화등선을 하려 했던 그였기에 떠오르는 영감들이었다.

그는 떠오르는 영감들을 계속해 유지하면서도, 제 할 일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연결.

그리고 치유.

저 아공간에 갇혀 있는 베빈의 영혼 일부를 리페의 몸에 이어 붙임으로써, 생명력이 가득 찬 그녀의 육신을 완벽히 이 세계로부터 속이는 거였다.

지금 그가 행하는 건 완벽한 치유.

동시에 다른 방식으로 보았을 때는 이 세계에서 이미 사라졌다 여기는 창조 마법과도 같은 어떠한 일이었다.

그러한 일을, 테스는 제 모든 기운과 힘을 살려 해내었고.

“성공이다!”

“……으으음.”

계속해 존재감이 흐려져 가던 리페를 결국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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