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챕터 10.
어느 던전이 되든 승리를 자신한 테스.
그렇다 해도 그 승리가 결코 쉬운 승리가 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라도 승리를 위한 과정은 거쳐야 하기 때문.
그럼에도 그는 영지에 침공해 온 게이트 중 꽤 많은 수를 제 손으로 부숴낼 수 있었다.
게이트를 읽어내고, 그 안으로 바로 직행하였으니까.
그리고 그 마지막.
도시 에나원을 노리고 들어온 게이트 앞에서, 테스는 괴이한 존재를 발견했다.
2미터 50센티는 됨직한 키. 사람과 같은 사지를 지닌 주제에, 온몸은 시뻘건 혈흔으로 물들어 있는 존재였다.
-키킥. 재밌는 존재가 있다더니 그게 너로구나.
“나로선 네가 더 재미있는데? 너는 마족이 아냐. 대체 뭐냐?”
마족이 아닌 존재를 발견했다.
‘내가 읽어 들인 마력대로면, 게이트는 분명 마계로부터 온 것인데.’
마계에서 왔음에도, 마족이 아닌 존재라.
괴이쩍은 존재였기에 그걸 물었으나 상대는 순순히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직도 내가 마족이 아니라 칭하는 자들이 있는 건가. 그런 존재들은 다 죽인 거 같은데. 여기 하나가 남아 있었구나!
“……미친놈이군.”
되레 마족이 아니란 그 말이 그의 광기를 끓게 하는 듯, 기세가 강해졌다.
스르릉-
그의 양손이 길게 쭉 뻗어 나왔다.
그러더니 검의 형태로 변해 테스에게 겨눠졌다. 그 검의 형태가 테스가 지니고 다니는 애검과 비슷한 면이 있었다. 중원식의 검이란 소리.
자신과 같은 방식의 검이라. 테스는 혼란을 느꼈다.
‘뭐지? 역시 저놈은 마족은 아냐.’
후우우웅- 후웅-
꼭 검의 모양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는 방식 자체도 테스의 검술과 비슷했다.
투박하고 야만적이나, 그 본질은 중원의 검술과 비슷했다.
테스는 검을 마주하며 그 본질을 읽어냈다.
너무도 오래도록 변형되어, 읽어 들이는 자체가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결국 테스는 그를 읽어 들이는 데 성공했고. 있는 그대로를 말했다.
“……청해진검? 청진파의 것일 텐데.”
-키킥.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는 자가 있다니. 뭐, 상관없는 이야기지.
테스 스스로 본질을 알아내서일까. 상대는 히죽 웃으면서도, 부정은 하지 않았다.
‘육체는 인간의 것이 아닌데, 중원의 검을 다룬다. 대체 이 녀석 뭐야?’
-키키킥.
상대는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르륵-
그저 검을 부딪쳐 올 뿐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제압해서라도…….’
테스는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상대를 제압하려 했으나. 그조차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졌다.
-죽어! 죽어! 죽으라고!
어느 순간부터, 상대는 목숨을 도외시했다.
-떨어져 내리느니, 차라리 마족인 것이 나으니! 키킥. 너도 진실을 알게 되면 재미있어질 것이야.
광기에 차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어댔다.
광기가 오를수록 혈흔은 더 짙어졌고, 검은 매서워졌다. 그 대가로 이성을 잃어가는 듯, 상대는 어느 순간부터 괴성만 내질러댔다.
-그르륵…….
“하…… 완전히 돌아 버린 건가.”
한 마리 괴수가 됐다. 설사 사로잡는다 해도, 더는 알아낼 것이 없어 보일 듯한 수준.
‘……내가 알아서 알아봐야겠구나.’
마족도, 리치도, 그 어디도 속하지 못한 마계에서 온 존재. 그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했으나, 실마리가 될 자는 완전히 미쳤다.
그러니 결국 테스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
“그만 끝내자.”
차아아앙-!
그 존재의 말살이었다.
* * *
수백 합을 나눴고. 그 본질에 다다른 청운검을 상대해 간 테스.
그는 결국 그 존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쿠우웅.
굉음을 내며 죽어 버린 광자(狂者). 존재를 알 수 없는 그자의 사체는 자취를 숨기려는 듯 녹아내려 갔다.
[마나][부동][차단][응집].
녹아내려 가는 혈흔 전체에 테스는 마법을 걸어 묶었다.
녹아내려 가는 혈흔 자체를 묶어낸 그. 그는 한 줌밖에 남지 않은 그 존재의 증거를 제 품의 아공간 안으로 넣어두었다.
‘언제고 알아내면 되겠지. 처음부터 이런 존재를 만나자고 여길 온 건 아니었으니, 일종의 덤이라고 생각해도 될 일이야.’
던전에 와 제자들을 구출하고. 알 수 없는 존재를 죽임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해냈다.
어차피 이곳이 영지를 침공해 온 게이트 중 마지막이지 않은가.
우우웅-!
광자가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 모습을 드러낸 던전 코어를 테스는 완벽히 수습하였고. 그러자 던전이 무너져 내려갔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모두 돌아가자.”
“명!”
“알겠습니다!”
부서져 내려가는 던전에서의 탈주였다.
* * *
그그그긍-
게이트를 빠져나온 테스. 그의 뒤로 게이트의 형체가 무너져 내린다.
흐트러지는 게이트 사이로 뻗어 나가는 게이트의 마나.
이 세계 것을 포함하여, 그 일부를 구성하고 있던 마계의 마나마저도 일순간 퍼져 나갔다.
게이트였다지만, 그 안에 구성되어 있던 건 던전이란 작은 세계. 퍼져 나가는 마나량이 결코 옅을 리가 없었다.
츠츠츠-
거대한 마나가 격류가 돼서 주변을 휩쓸었다.
“으읏…….”
“큽…….”
게이트 안을 빠져나온 데 성공한 제자들 전부가 신음을 흘린다. 안에 있던 격렬한 전투, 그 후 이어진 마나의 흐름이 상당한 부하로 다가온 탓이겠지.
그 사이에서도, 굳건히 두 발을 버티고 선 테스. 그는 나지막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버텨라. 이 흐름 가운데서 얻는 바도 분명 있을 테니까.”
“……옙.”
이 가운데서도 얻을 바가 있으니, 얻으라는 그의 말.
거대한 과부하에 흔들리는 제자들 입장에선 일견 잔혹해 보일 수 있는 말.
그러나 그 말을 따르지 않은 자가 없었다.
스스스-
테스로부터 익힌 의생공을 끌어올리고. 각자의 피에 흐르는 타고난 힘을 이용하여 격류를 버티어냈다. 또 일부는 격류에 몸을 맡겨 흐름을 타며 격류를 피했다.
피하든, 막든, 같이하든. 그 방식이 뭐든 상관은 없었다.
그걸 통제할 필요도 없었다.
‘배운 건 모두 같더라도, 성장하는 방식은 서로 다른 법이니까.’
시작은 같아도,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면 될 뿐이다.
버텨내는 방식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결국 다를지라도 무슨 상관이겠는가. 결국, 모두가 의선문의 문파원이고 함께하는 것을.
그렇기에 테스는 그의 제자들이 각자 격류를 버텨내는 그것을 가만 지켜만 보고 있었다.
“후으…….”
“사, 살았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제자들은 전부, 흘러나오는 격류 가운데서 버티는 데 성공했다.
그 던전에 담긴 마나는 강하다 못해 결렬하였으니, 던전 게이트를 통해 일보 더 성장했다 보아도 무방했다.
츠츠츠-
그때가 돼서야 테스는 주변의 마나를 통제했다.
‘흡수하는 손길.’
성장의 과실이 되었던, 던전의 마나. 게이트의 잔재들을 전부 거둬들였다.
고오오-
손길을 타고 들어오는 거대한 마나. 그 마나 전부를 테스는 제 품에 넣기보단, 손에 쥐고 있던 무구 하나에 집어넣었다. 그건, 진법석이 박혀 있는 무구였다.
드워프의 실패작이었으나, 진법석이 박힘으로 테스의 것으로 완전히 완성된 무구.
우웅-
그 무구는 안에 진득한 마나가 담기자 빛을 흘려냈다.
‘언제고 쓸 일이 있겠지.’
이것으로 끝이었다.
스스스-
게이트의 잔재 마나를 씻어내는 것으로, 영역 내 모든 게이트를 처리하는 데 성공했다. 영지에 닥친 위기를 해결했단 의미.
그 모든 위기를 손수 해결한 테스로선 한결 시원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깨를 뒤덮던 무거운 업을 하나 해결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흡족한 기분은 오래 가기 힘들었다. 그가 마나를 수습하고 바로 그다음,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지?”
* * *
테스가 영지에 지니고 있는 영향력은 막대했다. 단순히, 그가 영주로서 지닌 영향력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본질은 그가 지닌 지배력!
장원 시절부터 키워 온 영역에 관한 그의 지배력은 막강했다.
다른 곳이 아닌 적어도 영지 내에서의 그는 모든 걸 읽고 알아낼 수 있는 전지(全知)에 가까운 권한을 지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새로운 지식들을 잡아먹으며 그러한 권능을 점차 키우고 있는 상황.
그런 테스가 보기에 리페의 출현은 너무도 급작스러웠고. 또한 놀라웠다.
“분명 내 방해를 뚫고, 내가 여기 있는 걸 읽어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건데?”
“그레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가 읽어내 줬죠.”
“허…….”
그를 놀랍게 한 물음에 대한 정답은 그레놀.
테스는 그가 자신의 위치를 찾는 데 제 능력을 이용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쉬웠다.
‘거래를 바로 받아들여야 했을지도. 급작스레 침공이 터진 게 아쉬울 정도군.’
그의 능력을 갖고 거래를 하려는 그 순간, 일이 터져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으니까. 하기야, 무슨 상관인가.
‘시간차가 있을 뿐 어차피 얻을 일인데.’
테스의 품으로 들어온 그레놀이 떠날 곳은 없었다.
그의 영지에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떠날 수도 없는 터. 늦고 빠름의 문제일 뿐, 결국 그레놀의 관측 능력은 언제고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능력의 일부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영역 내서도 그를 관측할 수 있는 능력을 곧 얻을 수 있다는 거니까.
‘내가 던전 안에 있었단 걸 생각하면…… 차원을 넘어 관측하는 게 가능한 능력일지도. 어떤 면에서 보면, 성국이 지닌 관측자들보다도 한 수 위야.’
테스는 그레놀과의 거래에 관한 부분은 그렇게 정리했다. 동시에 그는 턱을 슬쩍 만지며 리페를 관찰했다.
아니,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나를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알아냈으니 됐고. 대체 그 꼴을 하고 찾아온 이유가 뭐야?”
“……당신에게도 보이나요?”
“일부는.”
그의 눈으로 보기에 그녀의 상태는 몹시 불안정했다.
그의 기감으로도 그녀의 존재감이 흐릿했다.
이 세계에 머물며, 동시에 그가 속하지 못한 다른 세계에 부유되어 있는 듯한 감각. 일반적인 생명체에게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이었다. 그만큼 그녀의 상태가 불안정하단 의미.
초 단위로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녀의 존재감은 더 옅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고작해야 몇 시간 정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건가.”
“……예.”
그녀는 곧 사라진다.
“그 꼴을 하고 찾아올 정도의 일이라…….”
테스와 리페가 가진 인연은 짧은 편. 그러나 리페와 관련된 베빈과의 인연은 깊다 할 수 있었다. 느껴지는 존재감으로 리페는 베빈의 일부.
리페가 사라지면, 자신의 일부가 사라진 베빈의 상태가 어찌 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그에게 있어 베빈은 좋은 조력자 중에 하나였으니까.
그 사실이 못내 신경이 쓰이기에 테스는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해야 했다.
그중에 하나를 그는 바로 시행했다.
“이야기를 하려면, 우선 그에 맞는 상태가 돼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