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챕터 8.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에나원에서 뵙지요.”
테스의 명령을 받은 자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에나원, 프로스트, 셀리언, 샤너드. 가장 먼저 침공의 야욕이 드러난 곳을 향해 다수의 의선문 문파원과 병사들을 보냈다.
그리고 남은 병사들 중 일부는 영지의 끄트머리로 보내두었다.
혹여나 산맥 지류를 타고 넘어올 몬스터를 막기 위해서였다.
과하다고도 볼 수 있는 조처였으나,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본디 몬스터가 지닌 특징은 성장과 흡수.
몬스터는 같은 몬스터를 잡아먹고 성장하는 존재들이었다. 때로 같은 동족까지도 잡아먹으며 성장하는 게 그들의 속성.
그런 몬스터들에게 있어 마계의 기운은 최상의 진미일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들이란 것들은 던전의 기운에 본능적으로 홀리는 법이니까.’
대침공의 기운이 테스 영지에 흐르는 순간,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것들이 달려온다는 의미다.
‘싹 다 쓸어 놓아도, 몇 개월 가지 않아 몬스터가 넘치는 곳이 울픈 산맥이니…… 이 정도쯤은 해야겠지.’
그러니 일부 병사들을 보냄으로 안전을 확보한 그였다.
영지 안과 밖. 이 둘 전부를 방어하는 조치를 순식간에 행한 테스는 그제야 가장 가까이, 짙은 마기를 뿜어내는 바깥을 향했다.
* * *
파아앗- 파앗-
그의 마력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그의 몸이 공간을 접었다.
그가 사용하는 이동 방식은 무공이 아닌 오로지 마법뿐이었다. 단거리 공간 이동. 마탑에서 블링크라 칭하는 마법을 연속적으로 이동에 사용하고 있었다.
본디 단거리 공간 이동이 가져다주는 정신적 과부하는 상당했다.
공간을 접으며, 제 육신을 옮기는 일이 쉬운 게 더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과부하보다 더 치명적인 약점도 있었다. 한 치의 오차라도 갖게 되면 제 몸의 일부가 차원 미아가 됐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마법사는 단거리 공간 이동을 쉬이 쓰지 않았다. 이동으로 얻는 효용보다도, 그 위험성이 강력했으니까.
그런 마법을 테스는 망설임 없이 사용해 내고 있었다.
애당초 망설임을 갖는 게 그에겐 이상한 일이었다.
그가 위치한 이곳은 그의 영지였으니까.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 영지는 완벽한 그의 영역이었다.
진법과 마법진을 통해 완벽히 그의 통제를 받고 있으므로 변수 따위는 없기에 벌일 수 있는 묘기였다.
그렇게 도착해 보게 된 장소는 기묘했다.
그 바로 앞. 던전 게이트가 형성돼 가고 있었다.
“주변 마나를 이용하는 건가. 한 치도 손해를 안 보겠다는 거네.”
게이트 형성을 위한 재료는 테스의 영지를 구성하고 있는 마나.
이 세계를 침공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데에도, 그 재료로 이 세계의 것을 사용하다니. 지독하다 할 정도로 계산적이지 않은가.
세계의 부정이 빚어져 만들어졌다는 마족다운 짓들이었다.
테스는 게이트가 다 형성되길 기다리지 않았다.
눈앞에서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희귀한 상황을 그는 호재로 봤다. 형성되는 게이트 앞으로 다가가, 제 마나를 뿌렸다.
스스스-
흡수돼 가는 그의 마력. 그의 마력은 게이트 안을 구성하는 마나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외부가 아닌 내부에 들어가 상황을 살피는 건 더 쉬운 일일 수밖에 없었다.
테스는 여전히 유효한 제 통제력을 갖고, 게이트의 구성을 살폈다.
‘후음…… 이런 방식이란 말이지.’
마계의 지식 일부. 공간에 관한 지식, 게이트 형성, 침공의 방식…….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이 마력을 통해 그의 뇌로 파고들어 간다. 정신력이 뛰어난 마법사라도 광인으로 만들 법한 비의들을 테스는 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광기에 잡아먹히는 대신에, 지식들을 잡아먹었다.
그 성공의 결과.
“마저 완성시키는 건 쉬운 일이겠어.”
그는 제 마력을 양껏 게이트에 집어넣었고. 미처 다 형성되지 못한 게이트를 억지로 완성시켰다.
거뭇한 게이트가 그의 기운을 닮은 흰 빛으로 물들었다.
즈즈즈즉-
본래 게이트의 소유권을 지니고 있던 마족들. 그들이 통제력을 잃지 않고자, 반항을 해 본다. 하나, 그게 먹힐 리 없었다.
지금 그가 서 있는 곳은 그의 영역이었으니까.
그의 영역 안에서, 그 누구도 그의 마나 지배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장소를 잘못 선택한 거지.’
쯔으으윽-
그의 마력 앞에서 게이트가 제 속살을 드러냈다.
“좋아.”
흰빛과 검은빛이 섞인 회색빛의 게이트가 그 눈앞에 자리했다.
던전 게이트 주제에 통제당해 버린 기묘한 게이트가 돼 버렸다.
그가 게이트를 통해 읽어 들인 정보대로라면 본디 마족들은 데빌 던전을 막은 테스의 본거지를 침공하여, 그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려고 했던 터.
그러나 역으로 테스에게 게이트의 구성과 비전을 읽힘으로써 그들의 의도는 완벽히 실패했다.
되레 테스에게 전에 없는 공간에 대한 이해를 더 안겨 줬다.
마계에서 이 세계로의 침공하는 공간 비전이 결코 얕은 지식일 리는 없었으니.
‘이들이 지닌 비전들을 전부 흡수한다면, 승천 할 때 도움이 더 되겠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테스는 승천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갈 터였다. 그렇기에 그는 지식에 대한 완벽한 흡수를 위하여.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터억.
제 몸을 게이트 안에 스스로 들이밀었다.
* * *
파아아앗-
본디 게이트로 들어서면, 게이트를 형성해낸 자가 설정한 곳에 떨어지는 게 상식. 그러나 테스는 게이트를 이동하며, 교묘히 조작했다.
‘내가 선택한다.’
적들이 가장 바라지 않는 곳. 저들이 던전의 핵심으로 삼을 만한 곳을 향해서 바로 이동했다.
이 던전 게이트의 정보를 읽어낸 지금, 가능한 한 수였고.
‘성공이다.’
타악.
던전 핵심 공간 안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그의 한 수는 보기 좋게 성공했다.
-……인간!?
-어찌 벌써!
-게이트 형성이 아직 되지 않았을 터인데.
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건 소수의 존재들이었다. 그 수가 넷. 모두 한 가지 종류의 것들이었다.
‘리치들인가.’
리치!
세상의 비의를 찾고자 하는 마법사의 광기가 만들어내는 존재. 제 존재의 증거인 영을 생명 그릇에 담음으로써 만들어지는 존재들.
날 때부터 지닌 감각과 욕구를 버리고 빚어진 그들은 본디 강대한 존재들이었다. 리치가 되기 위한 자격의 최소가 7클래스의 마도사급은 돼야 하니 당연한 이야기.
그러나 편법은 존재하는 법이었다.
7클래스 이하의 마법사도 영원불멸을 꿈꿀 수 있는 법이지 않은가.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도 리치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중 하나, 마족과의 계약이었다.
부족한 제 격을 마족과의 계약으로 끌어올려 리치가 되는 거다. 그 대가는 영원토록 계약한 마족의 노예가 되는 것.
이는 불공평하다 못해, 본래 제가 지녔던 비전조차도 뺏기는 계약이었다. 노예가 된 자들이 세상의 비의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리도 없으니까!
그런데도 광기에 잡아먹힌 마법사들은 어느샌가 계약을 해 버린다.
비전을 찾겠다던 희망은 잊고, 영원불멸이라는 그릇된 욕망만이 광기로 남아 계약하게 되는 머저리들이었다.
그러한 머저리들이 테스의 바로 눈앞에 존재했다.
츠츠츠- 츠츠츠-
최소가 7클래스 이상. 계약으로 인해 격이 올라 강대한 마력을 흩뿌리고 있는 리치들. 그러한 리치들을 테스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러곤,
“상태로 봐선 베마스의 노예들인가.”
영원불멸 노예가 돼 버린, 리치들에게 사실을 고하자.
-허접한 마법사가 감히!
-다섯 고리밖에 형성하지 못한 것이!
-노예라니! 우리는 계약을 했을 뿐이다!
그의 출현에 당황하던 리치들은 살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은 뼈를 갈갈 흔들어대며 분노했다.
투우웅. 퉁.
그들은 분노를 동력 삼았다. 당황을 버리고, 제 손에 지닌 지팡이를 흔들었다.
그러자 테스와 함께 존재하는 던전 영역에 그들의 마나가 흩뿌려졌다.
흩뿌려진 마나가 퍼져 나가며, 주변 마력을 물들였다.
마나가 완벽히 물들자, 주변은 리치들의 완벽한 영역이 됐다.
“호오. 꼴에 마법사랍시고, 제 영역들을 만들어내는 건가.”
-……너 같은 본질에 다가서지 못한 것들은 감히 이뤄내지도 못하는 비의!
-흐흐. 어떠냐, 네 녀석 따위가 감히 우리를 이겨낼 수 있겠느냐.
-용케 이곳에 들어선 걸 보면 기묘한 능력을 지닌 거 같으니, 그조차도 우리가 빼앗아 주마.
-키키킥.
영역이 구축되자, 리치들은 승리를 자신한 듯 갤갤 웃어댔다.
그 웃음마저도, 거죽조차 없어 뼈를 흔들어댈 뿐이다.
하지만 저들이 지닌 자신감 정도는 이해할 만했다.
‘영역화라…….’
본디 마법사의 마법은 제 영향력을 세계에 흩뿌리는 데서 시작하는 터.
일 클래스 마법사가 고작 작은 원소를 건드리는 데 그친다면, 이 클래스부터는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가능했다.
삼 클래스는 그를 다중으로 늘렸으며, 사 클래스부터는 공간도 일부 점하게 되는 게 마법이 지닌 본질.
점차 그 영향력의 범위를 넓혀 가며 세상을 이해하고 점하는 것이 마법이었으니.
-키킥. 죽어라!
-아니, 죽어선 안 되지. 우리보다 못한 상태로 만들어 주마!
일대의 모든 곳을 제 영역화시킨 저들의 자신감도 이해는 할 만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영역화를 하는 것조차도 결국 테스의 계산 안에 있었으니.
“같은 마족과 계약하여 영역을 공유한다라. 그를 통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식. 과연 재미는 있네.”
-흘. 궁지에 몰린 주제에 여유로운 척을 하는구나.
“과연 그럴까.”
테스가 저들이 영역을 구축하는 동안 가만 두고 본 것은, 광기에 사로잡힌 마법사라도 지니고 있을 비의를 일부 살펴보기 위함이었고.
‘리치가 돼서 수백 년은 묶었을 텐데도, 별거 없네.’
저들이 만들어낸 영역화의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를 모두 분석하는 데 성공한 결과 남은 건 하나.
‘방식이 세련되지 못 해.’
지독한 실망이었고.
수백 년을 묶고, 마족으로부터 힘을 얻었을 그들이 지닌 수준이 지극히 낮다는 그 사실. 그것이 분노를 일으킬 정도였다.
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었더라면, 차라리 바깥에 남아 게이트를 더 분석해야 했다.
그리했더라면 그에게 남는 게 더 많았을 테니까.
‘잘못된 선택이었어.’
더 밀도 높은 지식을 얻어내지 못했단 사실에 분노한 테스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더 오래 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진짜 영역이 뭔지를 보여 주마.”
제 품 안에 존재하던 새로운 무기를 꺼내 들며, 그것을 땅에 박아 넣었다.
우우우웅-!
그 순간, 이 안에 전개되었던 리치들의 영역이 전부 반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