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챕터 6.
널리 우기가 불어닥치고 있음에도, 대진법이 펼쳐진 지역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성자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누가 날아?
-아니, 나는 성자가 대체 뭐냐고.
-다들 우기에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건가.
-조수도 있다던데?
-성자가 뭔 조수야. 이거 완전히 사기꾼이로구만.
-아니, 진짜라니까!
처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자들도 상당했다.
성자가 대체 날 필요가 왜 있으며. 성국도 아닌 곳에서 대체 왜 이런 곳에 성자가 오느냐는 말까지 있었다.
믿기지가 않는 거다.
-다들 미친 게 분명해.
-하…… 없던 희망이라도 만들고 싶은 거겠지. 성자는 개뿔.
-어? 어어어어어!?
-뭔데? 헛?!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스스슷-
저 멀리 하늘을 거칠게 가르고 움직이는 자.
느껴지는 상당한 존재감을 가진 자가 하늘을 떠다녔다.
그 옆에 있는 존재.
“야이, 망할 놈아! 날릴 거면 똑바로 좀 날려 달라고!”
소문으로 들렸던 성자의 조수. 땅딸막한 몸을 지닌 드워프 같은 자가, 하늘을 떠다니며 그를 따른다고 하던 그 장면까지.
“이쪽도 이게 최선이야. 드워프인 네가 지닌 마법 저항력이 너무 높단 말이다.”
“크흐. 그러면, 나는 도구라도 하나 만들고 움직이자니까!”
“시간이 없다, 시간이. 조금만 버티라고.”
“이, 망할 녀서어어억!”
소문에 딱 맞아떨어지는 존재의 출현이었다.
-지, 진짜였어?
-성자가 진짜였다!
-아니, 그냥 날고 싶은 미친 마법사일 수도 있지 않나? 성자라고 하기엔…….
백문이 불여일견. 그럼에도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는 자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성자가 출현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일엔 그들도 아니라 말할 수 없었다.
화아아악-
저 멀리서 보일 만큼 거대한 빛의 기둥이 출현하고.
두껍게 만들어진 빛의 기둥에서, 성스러운 듯한 빛이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는 그 순간.
-어어? 힘이?
-……이, 이게 대체 뭐야?
-전에 얻었던 상처가 다 나았어!
실제로 효능을 느끼게 된다.
몸의 재생력과 생명력이 증가한다. 작은 기운이 아니었다. 직접 느낄 정도로 맹렬한 기운의 요동침이었다.
이쯤 되면 소문의 진위는 확실히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성자에 대한 소문이 진짜라고!
성국이 아닌 곳에서 출현한 성자가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한발 더 나간 자들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마나 아닌가?
-그런가? 그런 힘이 대체 왜…… 아아.
진득하게 느껴지는 생명력, 그 안에 내포돼 있는 마력, 담겨져 있는 의념…….
푸른 빛이 품고 있는 거대한 속성들.
그것들이 자신이 지닌 재능을 개화하지 못한 자들의 안을 두드렸고, 계기가 됐다.
-이게 뭐지?
-……설마?
-대기 중에 뭔가 떠다니는데.
마치 마법에 재능을 지닌 자가 마나 샤워를 통해 능력을 개화하듯, 수많은 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능력을 개화해 갔다.
본디 재능을 가진 자는 소수.
그러나, 수많은 자를 대상으로 개화를 시켜 버리면 그 수는 더 이상 소수가 아니게 돼 있었다.
-……아아. 성자가 내게 힘을 줬어.
-이 힘이라면…… 이번 우기를 버티는 것도 가능할지도!
절망이 희망이 되다 못해, 실제 능력까지 줘 버렸다.
이는 테스로서도 생각지 못한 효과!
정작 그러한 일을 벌인 테스. 그는.
“으어어억! 바로 띄우지 말고 좀 쉬다 가자고! 드워프가 땅을 떠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느냐!”
“시끄럽고, 다음이 급해.”
“슬슬 우기도 지나가고 있는데!”
“아직 전부 지난 건 아니잖아.”
대진법을 다시 연동시키고, 우기를 잠재우자마자 바로 다음을 향하고 있었다.
대범람과 전염병. 이 둘을 전부 해결하기 전까지 그의 행보는 멈출 줄을 몰랐다.
* * *
계속해 이어지던 대범람.
수십여 년에 한 번 인류를 절망으로 몰아넣던, 자연재해가 점차 스러져 가고 있었다.
스스스스-
날뛰던 물의 마나도 점차 잠들어 갔으며.
기운 아래에서 춤추듯 놀며, 변덕을 부리던 물의 정령들도 자신들의 정령계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어둡기만 하던 하늘이 개어 가고 있었다.
-끝인가?
-살았어! 살았다고!
밝은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자, 몸을 피신하고 있던 자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대범람의 우기 속에서도 제 터전들을 지키고 있던 자들. 멀리 있는 어센션의 영지에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자들 모두 같은 심정이 됐다.
-이제 다시 시작인가…….
-이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살았다는 안도감이 그들 가슴을 가득 채웠다.
모든 것이 무너졌고, 터전은 사라졌으나 그들은 살아남았다.
아니, 성자가 지나갔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거칠기만 한 절망 속에 있던 그날, 그가 하늘 위를 지나가고 나서야 희망을 볼 수 있었다. 힘을 얻었다.
그러니 성자가 살려 줬다고 할 수밖에.
수많은 자들이 나는 성자를 봤다. 수많았던 눈은 결국 그의 정체를 알아냈다.
-테스 어센션……. 그자, 아니 그분이 우리를 구원했다.
-터전을 잃은 자들도 받아 주신다지?
-유민을 받아 준다는 소문이 뜬소문이 아니었던 거야.
-어차피 새로 시작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리로 가 볼까.
-자리가 있으려나?
-없더라도 만들어 주시겠지. 무려 성자님이지 않은가!
정체를 알자 자연스레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생겨났다.
없는 터전을 만들어내기보다도, 차라리 그의 품으로 들어가는 게 더 낫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꿈도 꾸었다.
-가서 의선문이란 곳에 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군. 새로 각성한 이 힘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나?
-아서게. 자네 나이가 몇인데!
-에이. 그래도 이걸 봐 주신다면 받아 주실지도 모르지! 무려 성자의 세례를 받은 내가 아닌가.
-헹. 아직 미약하잖나. 어쨌거나, 가 보자고.
뜻하지 않게 진행된 각성자들.
그들이 꿈을 꾸었다. 오래전 조상으로부터 이어지던 피든, 이 세계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지닌 잠든 재능을 각성한 거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성자의 세례라 칭해지는 진한 생명력을 모두 겪었고. 그 생명력 속에서 재능을 개화했다는 것이다.
그 계기를 준 자는 테스 어센션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로부터 힘을 받았으니, 그 이상의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꾸는 거였다.
이는 개개인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수 있었으나.
-당신들도 어센션의 영지로 가는 건가?
-오. 자네들도?
그 행렬이 계속해 더해지고, 길게 이어지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게 된다.
능력을 개화하고, 가능성을 지니게 된 자들. 그들 무리가 어센션 영지를 향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 셈이었으니까.
오롯이 테스의 선(善)만으로 만들어진 행렬이었다.
처음 영지 바깥의 자를 구하고자 결심했던 테스로서도 생각지 못한 결과였고. 그를 견제하고자 하는 자들도 감히 예상치 못하던 장면이었다.
* * *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은 몇몇 곳에서 생각지 못한 반향을 일으켰다.
저 멀리.
테스의 요청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성국. 제국에 비견되는 그곳을 이끄는 교황들. 그들에게 성자의 출현이 전해졌다.
-성자라니! 대체 성자가 성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왜 나온단 말인가.
-제 말이 그것입니다!
소식을 들은 그들. 그들은 성자가 나타나게 된 사연보다도, 자신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성자라는 칭호가 다른 자에게 내려졌음에 분노했다.
광신이란 이름 앞에서 미쳐 버린 이들에게 반성 따위란 있을 리 없었다.
-역시 성전을 벌어야 함이니…….
-곧 허락이 떨어질 것입니다. 관측자들의 전수도 끝나가고 있고요.
-어서 준비를 하세나. 그리고 하나를 잊지 말게. 성자라 이름 높인 그자는, 사특하기 그지없는 악마라는 사실을 공고히 알리게나!
-악마라. 맞습니다. 그는 악마지요. 당장 성구단을 움직이겠습니다!
성자라 불리게 된 자는 그들 앞에서 악마이며. 최대의 선을 행하는 자는 언제나 자신들이었으니까.
성국 내에서부터 바깥까지, 테스에 대한 힐난의 수위를 높여 갔다.
그러며, 곧 찾아낼 예비 승천자를 상대하기 위한 성전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광신도인 그들답다고 할 수 있을 모습이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도 반향이 있었다.
카르소니아 왕국의 중심인 왕궁.
대범람의 우기 가운데서도 전수받은 비전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모여 있는 수는 총 열.
카르소니아 왕국 내에서만큼은 태생부터 지도자로 태어났으며, 오래전부터 작위를 이어받던 귀족들이자 왕국의 중심들.
대범람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이 모였다.
“그자가 성자라고…… 불린다고 하더군.”
“성자라. 다 살렸으니 성자는 맞지 않습니까? 클클.”
그들은 테스의 급작스런 상승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오샤프 백작. 망언은 그만하지.”
“왜요?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문제는 현 상황일세. 저번엔 던전으로 남부를 휘어잡더니, 이번엔 전역에 그의 이름이 퍼져 나갔네.”
“흘. 안 그래도 비루한 것들이 다들 난리더군요.”
그들 아래에 평민.
평소 그들을 고귀한 피를 이어받았다는 자신들에 비해 한없이 비루한 자들이라 칭하고 있으나 그들이 가진 힘을 알고 있었다.
평민들이 한 세력, 아니 테스라는 한 개인에게 몰려들게 되면 그 뒤는 그들로서도 걷잡을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터.
평소라면 이들 세력이 움직이지 못하게 묶는 걸로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범람의 우기가 발생하고, 터전이 쓸려 나간 지금이다.
통제는 불가능했다.
특히나 이 재앙에서 살아남은 자들 특유의 독기까지 머금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떻게든 이 기세를 짓눌러야 놔야 했다.
그리해야만 수백 년을 이어가던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당장 급류처럼 흘러가는 흐름을 되돌릴 순 없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타협책을 냈다.
“이대로면…… 모든 균형추가 기울어지게 되네.”
“그렇다고 뭔가를 할 수도 없잖습니까? 지금에라도 친화책을 펼치는 것이…….”
“과연 그가 받아들이겠는가.”
“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아닙니까.”
“후우…….”
정작 테스에게 의사는 묻지도 않고, 그에게 친화책을 펼친다는 헛된 소리나 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다들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만 눈이 멀어 있던 때.
그 상황에서 잊고 있는 사실을 꺼내고 있는 자가 있었다.
거친 입심을 갖고도, 현자라고 불리는 오샤프 백작. 그였다.
“아니, 그거보다도…… 우리는 이 대범람 이후를 생각해야 할 겁니다.”
“뭔가?”
“대범람 이후. 그 뒤에 벌어지는 사건 하나가 있지 않습니까?”
“……아!”
“잊고 있으셨습니까? 대우기가 펼쳐진 그다음. 항상 일어나는 일이 하나 있다는 걸 말입니다.”
오샤프가 모두 잊고 있던 걸 상기시켰다.
“가장 중요한 게 따로 있었군.”
“이 자리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당장 살아남을 걸 걱정했어야 하거늘…….”
그러자 모두의 얼굴이 침중해졌다.
대범람.
그 이후에 벌어질 예견된 사태의 무게감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무게의 짓눌림은 테스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예상치 못한 방문자. 그로부터 테스도 뒤이어질 사태에 관한 소식을 듣고 있었다.
“다짜고짜 찾아오더니 그게 무슨 말이지?”
방문자인 그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