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챕터 5.
“일? 무슨 일?”
“사람들을 살리는 일.”
테스는 묵묵하게 답했다.
그러곤 설명을 이어 줬다.
영지가 한계에 이르러 있는 지금. 그가 꺼낼 수 있는 유효한 카드는 얼마 되지 않았다. 대진법을 마무리하고, 그가 나선다 해도 그의 몸은 하나였다.
그게 문제였다.
능력의 문제는 아니었다. 홀로 수만, 수십만도 치료하는 게 가능은 했으니까.
문제는 시간.
그가 아무리 많은 자를 치료하더라도, 그사이 디프터가 퍼지면 끝이다. 그의 영지야 문제는 없겠지만, 다른 곳은 끝을 맞이하겠지.
그리되면 애써 테스가 나선 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대범람으로 망할 게, 전염병에 의해 죽는 걸로 바뀌었을 뿐이다. 많은 자들이 망가진단 절망스런 본질은 달라지는 게 없다.
그렇기에 테스는 텍트를 불렀고, 그에 따른 상황을 설명했다.
텍트는 상황을 금세 이해했다.
문제는 이다음.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었다.
“상황이 그래서 어떻게 하잔 거냐? 나를 부른 걸 보면, 내가 필요해서는 맞는데. 아무리 나라도 전염병 치료 장비 같은 건 못 만든다.”
“이미 있는 장비를 개조하는 건 가능하잖아? 네가 방금 본 저 무구들. 저걸 가지고 치료를 해 보자는 거다.”
“음?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데?”
아무리 드워프라도 여기까지는 닿지 않는 건가.
‘개념적 차이일지도.’
테스는 아쉬워하며 설명을 이었다.
“물이 지닌 속성은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삼대 속성 재생, 생명, 흐름만 해도 뛰어난 것들이지.”
“그래. 나는 그걸 이용하려고 하는 거다. 네가 살펴서 알다시피 저 무구들 안엔 대범람으로 인해 가득 찬 물의 기운들이 담겨 있지 않나. 그걸 약간만 비틀자는 거다.”
“아아……! 이제 이해했다!”
상황을 이해한 텍트의 얼굴이 환해진다.
텍트는 금세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혼자, 이해를 하더니 이론을 발전시켰다.
“기운을 담는 보구의 속성을 반대로 비틀어서, 방출로 잇게 만들자는 거구나.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재생으로 비틀면…… 호오. 재미난 물건이 나오겠군. 아아. 이건 우리 드워프들로서도 처음 시도하는 건데…… 크흐, 처음이라! 짜릿한데!”
……드워프가 저리 말이 많았던가.
그를 지켜보는 테스로선, 혼자 잔뜩 흥분해 버린 텍트를 보고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단번에 이해함을 넘어, 발전시키는 것까지는 대단하긴 한데. 새로운 걸 만들 때면, 항상 저런 식으로 변하는 건가.’
드워프란 종족이 지닌 속성이 참 특이하다 싶은 그였다.
삼 분가량 기다려 줬을까.
“……계산은 끝났다!”
마법사가 머리로 주문을 영창하듯이, 텍트는 제 머릿속으로 실패작이라 칭한 무구를 변환시킬 방안을 계산해냈다.
실패작으로 알려진 무구만 수백 개. 같은 게 없으니 그 종류도 수백이다.
‘미쳤구만.’
그런 걸 개조하는 식이 결코 쉬울 리 없었다. 대마법사가 단번에 수십 개의 주문을 그려내는 거와 같은 난이도였다.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한데, 고작해야 사 분이란 시간 만에 그걸 계산해냈다. 텍트가 드워프가 아닌 인간이었더라면 믿기지 않을 속도였다.
“흐흐. 왜 그리 놀란 표정을 짓느냐? 우리에게 있어 이 정도는 당연한 거다. 우리는 부수고 만들라고 만들어진 자들이니까.”
“……네놈들이 지하 공동에서만 온 힘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왜? 세계라도 정복할까 봐?”
“바깥에서도 힘을 쓸 수 있다면, 가능할 거 같은데. 하여간에, 이 세계는 특이한 존재들이 넘친단 말이지.”
테스의 질린 표정에, 텍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헹. 내가 보기엔 네놈도 특이한 녀석이다. 우리가 생각지 못한 그런 개념을 말한 건 네가 처음이니까.”
“그런가. 뭐 여하튼, 답은?”
“안 할 거면 계산도 안 했겠지! 자, 어디서부터 만들면 되나?”
“바로 지금. 여기부터.”
“거, 시원시원해서 좋구만. 그래, 바로 해 보자고!”
따아아앙-!
답을 한 텍트는 연장통에서 종류도 모를 공구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순간 다시 생문을 비집고 들어가 무구를 두드렸다.
화아악-!
그 순간 무구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순식간에 흘러나온 빛은 여러 수식을 그리고 있었으며, 동시에 무구 안에 담긴 속살을 보이고 있었다.
무구 안의 속살은 단순 쇠로만 이뤄져 있지 않았다.
‘……회로인가?’
마법사가 만들어내는 마도구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듯, 그 어떠한 진리에 도달하는 회로 같은 것들이 그려져 있었다.
“인간으로선 자주 보지 못하는 거니 영광으로 알거라!”
감탄하는 테스. 텍트는 그런 그의 표정을 가만 보더니, 호탕하게 웃고는 제 손에 새로운 연장들을 쥐었다.
두툼한 손으로 용케 여럿의 연장을 동시에 들고는 그는 세밀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곤.
두우우웅-!
무구 안에 담겨져 있는 힘을 순식간에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 * *
역전 이후.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테스는 곧바로 디프터가 퍼져 있는 곳을 향했다. 그 옆에 텍트가 함께하고 있음은 당연한 이야기.
대진법을 구축하고 있는 무구 앞에 선 테스.
“바로 조율하지. 여기는 스무 개의 무구를 연동시킨 곳이거든.”
“여긴 또 뭔 짓을 해 놓은 거야? 흐아. 대체 너란 놈은, 어디서 툭 튀어나와 가지고는 이런 짓을 잘도 벌인단 말이지. 어디, 외계에서라도 온 거냐?”
“……시끄럽고, 일이나 하지.”
그는 저도 모르게 핵심을 찌르는 텍트를 무시하곤, 일을 시작했다.
스스스스-
애써 스무 개를 연결하여 구축해 놓은 대진법을 잠시 해체했다.
그 대가로 거대한 과부하가 테스를 덮쳤다.
무구끼리 서로 연동하며 증폭하는 대진법을 해체한 사이, 대범람이 지닌 기운들이 이곳을 덮친 덕이다.
테스로선 그걸 홀로 버텨내야 했으니, 강력한 과부하가 들이닥칠 수밖에.
“크흐……. 오래 버티긴 힘드니, 어서 움직여.”
“흐흐. 이제 내가 나설 때인가! 조금만 버티라고.”
따아앙- 따앙-
그가 일을 벌여 놓으면 텍트가 나섰다. 그는 수십여 개의 연장을 제 손처럼 사용하며, 금방 무구를 변환시켰다.
츠츠츠츠-
순식간에 회로를 열고, 바꿔낸다.
“크흐흐. 즐겁구만!”
“망할. 드워프야, 어서 끝내기나 해.”
“크흣. 걱정 말라고. 곧 끝이니까.”
이미 펼쳐진 마법을 변형시키는 게 불가능하듯, 이미 펼쳐진 회로를 고쳐내는 것도 쉬울 리 없다.
그 어려운 일을 텍트는 즐기듯 시행했고. 성공했다.
“됐다!”
“다시 연동하지!”
변환에 성공하면, 어김없이 빛이 터졌다.
화아아악-!
거대한 빛엔 그간 무구가 머금고 있던 물의 기운이 맺혀 있었다.
무구를 변환시키며 강화된 힘의 속성은 바로 재생과 생명!
디프터에 걸린 병자들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게 하는 데 충분하고도 남을 힘이었다.
-아? 모, 몸이 일어나진다!
-오오오. 제인! 네가 어떻게!
-살았어! 살았다고!
그 힘. 되레, 병에 걸리지 않은 자들조차도 체력의 회복을 돕는 힘이었으니.
고오오오-
그 거대한 힘의 궤적에 수많은 자들이 취했다.
-이 힘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저, 저기 아냐?
-우기로 다 뒤진다고 생각했는데…… 사, 산 건가?
터전을 잃고, 삶을 영위하던 모든 걸 잃은 상황에서 없던 희망이 만들어졌다.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그려지던 절망이 지워져 간다.
그 모든 일들을 누가 행했는지, 많은 자들이 본질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느껴진다.
-저긴가?
테스가 대진법을 펼쳐내며, 그를 구성하는 무구에는 그의 의지가 담겨 있었으니까.
때로 인간이 지닌 의념이란, 그 어떤 힘보다도 깊은 터이기에 보지 않아도 느껴질 때가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테스는 저 멀리 있는 것도 아닌 아주 가까이에 있었으니.
-저, 저기서 빛이 터진다.
-저 안에 있는 자는 누구야?
-모, 모르지. 그래도…… 우리를 살린 건 분명하다고!
-전에도 저자가 하늘을 지나갔을 때 비가 걷혔었어!
-전에 말한 그 사람이라고? 거, 거짓이 아니었던 거야!?
-내가 그런 걸로 거짓말을 치겠냐! 이 상황에!
-……그 말이 진짜였다니.
우기를 피하여 저 높은 곳에 자리한 자들은 전부 멀리서나마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작은 영지의 평민들, 농노, 노예…….
수많은 자들이 자리했으나, 그들 전부가 테스의 얼굴을 알 리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테스의 얼굴이 각인되듯 그들 머리에 박혔다.
빛의 궤적을 뿜어내고.
진득한 생명력을 그들에게 선물하고.
없던 희망을 주었다.
세상에선 그런 자를 칭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아아…….
-성자야.
-……성자. 그래, 저런 자가 성자지.
성자(聖者).
본디, 성국의 자들이 아니고선 칭해지지 않는 호칭. 감히 허락되지도 않는 호칭이건만, 이곳에 있는 자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성자란 말을 꺼내 들고 있었다.
그 모든 목소리들이 이곳에 있는 테스와 텍트에게는 쉽게 들려왔다.
아무리 멀리 있더라도, 이곳에 무구와 진법이 존재하는 한은 둘 모두 능력이 평소보다 더 강화되기 때문.
성자라 들려오는 목소리에 텍트가 웃음 지었다.
“키킥. 네놈한테 성자라니. 평소의 네놈이라면 쥐뿔 어울리지도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 아니라고도 할 수 없으니…… 거 참.”
“나도 내가 그리 불리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기야, 전의 네 말대로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삶이 돌아가니 세상이 재밌는 게 아니겠는가? 인간 놈, 성자란 소리를 들으니 어떤가?”
“커흠. 아직은 잘 모르겠네.”
테스로선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왔다. 아니, 전생에서 느끼던 감정들이 느껴졌다.
‘……뿌듯하네.’
전생의 의선이던 시절. 수많은 자들을 치료하고 듣던 칭송. 그때의 뿌듯함과 보람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수많은 자들이 보내오는 큰 감정과 감사들.
감정이 지닌 기운은 상당히 컸기에, 철인이 되어가는 그라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표정을 본 텍트의 미소가 더 짙어진다.
“푸흐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기는, 이때를 즐기도록 하라고.”
“즐긴다라. 그래, 즐겨 줘야지.”
그도 테스와 같은 감정을 느낀 듯, 그 미소 안엔 진득한 만족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즐기려면 더 많은 자를 고쳐 줘야겠지. 자, 다음은 어디냐?”
“이미 정해졌지. 남은 전부를 고쳐야 하니까 말야.”
“전부라. 등골이 빠지도록 연장질을 해야겠구나. 뭐, 그래도 나쁘진 않으니. 가자!”
전보다 더 의욕을 내며 움직이는 텍트. 그런 그를 못 말리겠다는 듯 바라보며 고개를 젓던 테스는 곧바로 마력을 일으켰다.
일어난 마력이 테스와 텍트의 몸을 띄운다.
“어억. 어어억!? 이 망할! 가자고 했어도 이런 식은 아니지! 본디 드워프는 땅을 뜨지 않는단 말이다!”
태어나 땅에서 떨어져 본 적 없던, 텍트의 얼굴이 놀람으로 변한다.
“좀 더 속도를 높여 보려면 어쩔 수 없지. 자, 날자!”
“이, 이 망할 노오오옴!”
하늘에서의 움직임을 즐기는(?) 텍트의 괴성과 함께, 둘은 바로 다음 변환을 위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그 둘을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의 주인들이.
-성자시여…….
-……새로운 성자시다.
저도 모르게 무릎을 굽히며, 그를 향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