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챕터 1.
자신의 영지 안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 테스. 그는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움직이는 건가?
“다 죽고 나서 움직여서야 문제가 될 테니까.”
-드디어 이번에 네가 만든 걸 시험해 볼 때가 온 거로군.
“이게 먹혀야 많은 자를 구할 수 있겠지.”
물의 정령의 말에 답하며 테스는 흘끗 옆을 바라봤다.
그 옆엔 수없이 많은 무구들이 쌓여 있었다. 종류도, 구동 방식도 각양각색의 것이지만, 단 하나 공통점이 있었다.
한 가지 돌들이 박혀 있었다.
진법석이다!
테스가 성국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으며. 동시에 이 세계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도록 만들어낸 원흉!
그러한 진법석이 각 무구마다 하나씩 달려 있었다.
우우우웅-
겉모습은 전과 같은 형태였다. 그러나, 그 안은 전과 전혀 달랐다.
이전엔 여러 속성을 흩뿌리는 게 진법석이었다면, 지금은 오롯이 한 가지 속성만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속성은 물.
우우웅- 우웅-
무구들에 박혀 있는 진법석의 빛이 흘러내릴 때마다, 주변의 물의 기운이 함께 요동친다.
기운이 요동칠 때마다, 무구들의 기운도 함께 요동쳤다. 물의 기원으로부터 담았던 기운이 안에 그득 담겨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테스는 한참 진법석이 박힌 무구들을 바라봤다.
‘될까? 돼야겠지.’
지난 시간, 행정관들과 제자들이 영지를 수습하는 사이 공을 들여 만든 것들이다. 이것들이 그가 원하는 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테스가 원하는 결과물은 절대 나오지 않을 터였다.
“후우…….”
잘 되길 바라며, 이제 그 결과물을 직접 확인하러 가야 할 때다.
테스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지막 각오를 다지고는.
“가자.”
몸을 일으켜, 영지 바깥으로 나섰다.
* * *
영지 바깥에 도달한 테스.
그는 의념을 이용해 실패물이라 명명한 무구들을 띄워 올렸다.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떠다니는 무구가 수십.
상당한 의념이 소모될 텐데도, 테스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역시나 넘쳐나.”
-여기부터는 네가 말하는 진법이란 것도, 내 힘도 작용하지 않으니까.
쏴아아아아-
한 발 내딛자마자, 안과 밖의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평소와 같은 테스의 영지와 달리, 바깥은 비가 미친 듯 쏟아져 내렸다.
거센 빗줄기였다.
이 빗줄기를 뚫고, 유민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의 거셈이다.
‘목숨을 걸고 달려온 덕이겠지.’
테스는 빗줄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무구 하나를 자신의 주변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드워프가 공들여 만들었을 검이 새하얀 칼날을 드러낸 채, 그의 옆에 도달했다.
우우웅-
끌어당긴 무구에서 울림이 전해져 온다. 그가 박아 넣은 진법석이 그의 기운에 자동적으로 호응한 덕이다.
“보자아.”
철컥.
테스는 박혀 있는 진법석을 조작했다. 테스의 기운에 호응하는 게 아닌 주변 물의 기운에 호응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들고 있는 무구의 기본 속성은 물의 기운.
스스스스-
약간의 조작만으로 대기 중, 물의 기운이 빨려들어 온다.
안 그래도 그가 지닌 무구의 기운은 물의 기원이 만들어낸 기운. 같은 물의 기운이라도 바깥의 것보다 더 진득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정령을 탄생시키는 것으로부터 태어난 기운이니까.
마치 삼투압 현상처럼 옅은 물의 기운들이 빨려들어 온다.
무구가 지니고 있던 기운과 바깥의 기운이 서로 동화돼 간다. 진법석을 박아 넣은 무구는 한계치까지 주변 기운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러자, 거대한 공백이 하나 만들어졌다.
-물의 기운이 사라졌다.
“사라졌다기보단, 본래로 돌아왔다고 봐야겠지.”
그의 주변.
분명 대범람인데도 불구하고, 물의 기운이 지닌 농도가 옅어졌다. 물의 기운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
그 모든 기운들이 그가 손에 쥔 무구 안에 가득 담겨 있는 셈.
물의 기운이 공백이 된 지역.
이곳은 그의 영지만큼 화창하진 못하더라도, 거세던 빗줄기가 옅어졌다. 물의 기운을 빨아들이는 것만으로 만들어낸 성과.
테스는 단지 빨아들인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 둬 봐야 다시 저 옆의 물의 기운들이 달려와 농도를 높일 터였다.
제대로 하기 위해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가야 했다.
‘이제 이거는 동력원이다. 아깝다만 제대로 써먹어야겠지.’
푸우욱-
테스는 마음을 굳히며, 제 손에 쥐어져 있던 무구를 땅에 박았다. 공들여 만들었을 검날이 땅을 두부처럼 가른다.
칼자루만 남아 있는 무구. 그 위로 박혀 있는 진법석만이 요사롭게 빛이 났다.
투우웅-
테스는 빛을 내는 진법석으로부터 기운을 끌어당겼다.
진법석과 뒤범벅된 물의 기운이 그의 손을 타고 올라왔다.
스스스스-
진법석, 무구에 담긴 기운과 주변 물의 기운. 이 셋을 머금고 있는 무구의 기운은 막대했다. 물의 기운에만 한정되나, 최상급 마석을 넘어서는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
거대한 기운. 이 기운을 테스는 흔들림 없이 조율했다.
그의 손을 타고 길게 이어진, 기운을 가지고 선을 그렸다. 선을 겹치고, 뒤틀고, 꼬아냈다. 가벼워 보이는 손길이나, 그 안에 담겨 있는 깊이는 무거울 터.
거치나, 동시에 세밀한 계산 안에서 이뤄지는 기운의 조율이었다.
-온다!
“잠시만 막아 줘.”
그러한 기운의 조율을 방해하는 것들도 있었다.
대범람의 기운들이다.
그들은 물의 기운을 빼앗은 테스에 약오른 듯, 거대한 기운을 갖고 공백이 된 영역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
어쩌면, 그로부터 물의 영약을 받아내지 못한 게 약오른 물의 정령들이 벌이는 장난일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그는 기운을 조율하는 손을 더 빠르게 놀려야 했다.
-어서!
“지금이다!”
츠츠츠츠-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선의 조화가 한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 모양. 마법진이었다.
진법과 마법진을 섞은 그 특유의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아아악-!
완성된 마법진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됐다!’
빛은, 마법진이 제대로 완성됐다는 의미. 동시에 그의 방식이 먹혔다는 뜻이었다.
그가 마법진을 통해서 얻어내려 하는 것.
“성공이야.”
대범람 속, 물의 기운의 약화였다.
* * *
콰아앙-!
그에게 달려들던 물의 기운들이 더 다가오지 못했다. 그가 만들어낸 마법진을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콰앙. 쾅.
거칠게 부딪쳐 오지만, 그뿐이다.
“이 수준이면 최소 이 주는 버텨 주겠지.”
-최대 이 개월도 될 것이다.
“그렇지.”
이이제이라 해야 할까. 일대의 물의 기운을 빨아들임으로써, 그 기운을 동력원 삼아 물의 기운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성공을 함으로써, 주변의 물의 기운은 안정화됐다.
그의 영지만은 못해도, 이 지역도 대범람의 피해가 한결 줄어들었다. 이 상태가 유지되는 게 최소 이 주에서 최대 이 개월.
“대우기가 지속되는 게 최대 반년이었던가.”
-보통은 한 달이다. 이번은 꽤 길겠지. 물의 정령들이 성질을 내고 있으니까. 최대 이 개월이라 해도 전부를 막진 못할 거다.
“상관없어. 어차피 이 지역만 막고자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하면 할수록 더 좋아지는 게 있거든.”
-무슨 말이지?
“한번 지켜봐. 보면 알게 될 거야.”
성과를 얻은 테스. 그는 자신을 재촉하며 바로 다음 단계로 나갔다.
* * *
그가 하고자 하는 다음 단계.
푸우욱- 푸욱-
양껏 끌어올린 무구의 진법화였다. 처음 물의 기운을 잠재운 곳으로부터 벗어난 그는, 곧바로 다음 지역을 안정화시켰다.
처음이 어려울 뿐, 두 번째부터는 점차 쉬워졌다.
바로 옆에 안정화시킨 지역이 있으니까. 그의 마법진으로 안정화된 곳은 다른 지역처럼 그의 마법진 생성을 방해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숙련도가 오르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덕분에 속도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무구를 이용해 순식간에 스무 곳 정도의 안정화가 되는 순간. 그는 물의 정령도 궁금해하던 바로 다음 단계를 시행했다.
고오오오-
테스는 제 기운을 잔뜩 끌어올렸다.
선천진기, 내력, 마력. 그 셋이 휘돌며 상승효과를 만들어냈다. 기운을 일으킨 것만으로 그의 주변에 거대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상승효과가 만들어졌기에 그의 기운은 단순히 그 양으로 측정할 개체가 아니었다. 이미 한 인간이 지녔다 하기엔 믿기지도 않는 농도를 지녔으니까.
스스스-
기운을 풀어내는 것만으로, 주변의 마나 농도가 달라질 정도였다. 달라진 농도 안에, 그의 의지가 풀어지니 주변의 마나가 그에게 동조하기까지 했다.
동조한 마나는 그의 의지를 떠받들었으니, 이는 대마법사들이나 한다는 일종의 영역화였다. 제가 지닌 영역 내에서, 제 의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게 영역화!
고클래스의 대마법사는 영역화를 통해, 제 의념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었고. 표출된 힘은 그 자체로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를 초인처럼 만들어 주곤 했다.
마법의 효율도, 능력도, 파괴력도 달라진단 의미.
그 의미를 그대로 테스에게 적용하면, 이 영역 안에선 테스의 힘이 배가 된단 의미!
거대한 영역을 구축한 테스. 그는 바로 다음 단계에 들어섰다.
-설마…….
“네가 생각하는 그게 맞을 거다.”
그건 바로, 그간 설치한 진법의 연동이었다!
* * *
스스스스-
그가 설치한 스물의 진법. 그 규모만으로 거대한 진법에 테스는 연동을 시작했다. 작지도 않은 대진법을 연동하는 건 본디 불가능에 가까운 일.
제아무리 진법의 천재랄 수 있는 제갈가의 진법사들이라 해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세계엔, 그가 있던 중원엔 없던 새로운 힘이 있었다.
‘마법이 있기에 가능해져.’
바로 마법.
오클래스의 마스터에 가까워져 가고 있는 그는 마법을 활용했다.
진리를 내포하고 있단 룬어를 다루는 게 바로 마법. 그렇기에 무엇보다 진리를 연동시키고, 주변에 영향력을 행세하는 게 마법의 기본이었고.
그 기본을 이용하여 거대한 대진법들을 연동시키는 게 가능했다.
이 마법의 힘을 이용하여 테스는 진법들을 연결시켰다. 마법이란 진리의 힘을 이용한 기적 중 하나!
츠츠츠-
거대한 이적을 만들어냄으로써, 그는 결국 대진법들을 연동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미친 짓을 성공시킬 줄이야.
“겨우 해낸 거지. 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안 됐을 일이야.”
연동된 진법들.
하나 된 진법들은 거대한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진법의 결속이 단단해지며, 진법의 지속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단단해진 힘은 바깥으로 뻗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뻗어 나간 기운은 대범람의 기운들을 밀어냈고. 대범람의 기운이 밀쳐지며, 그 지역의 비는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연동된 대진법을 중심으로, 대범람의 기운이 쇠락해 갔다.
단 스물, 실패작이라 칭한 무구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하나의 기적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