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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24화 (124/191)

제124화

챕터 24.

“죄송합니다! 우선 소란을 죽이는 게 맞다 생각했습니다.”

“이해는 하네. 그래도 유민들이 보기엔 불안할 수밖에 없으니, 다음엔 더 친화적인 방법을 찾아보자고.”

“명심하겠습니다.”

그들을 구원하는 목소리의 주인공. 제리코였다.

그는 평소보다 더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유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에 떨고 있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함. 아쉽게도 그의 미소가 큰 효과를 드러내지는 못했다.

“으으…… 저래 놓고 우리를 죽이겠지.”

“노예로 팔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젠장. 어떻게 하지.”

고작 미소로 해결하기에 유민들은 크게 겁에 질려 있었으니까. 절망스런 상태를 미소 하나로 해결하는 건 역부족이었다.

‘이건 효과가 없나.’

효과가 없음을 알자, 제리코는 미소를 바로 거둬들였다.

대신, 더 효과적인 수단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들이 안심할 수 있을 말이었다.

“어센션 영지에 온 걸 환영하네. 그대들이 상상하는 절망적인 일들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그의 목소리가 마법을 이용한 확성기를 타고 웅혼하게 울려 퍼졌다. 때마침, 병사들은 오러를 거둬들이며, 기세를 죽였다.

그의 목소리와 맞물려 병사들이 보인 대응. 효과는 극적이었다.

어센션 영지가 그들을 받아들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자.

“아…….”

“……정말로 산 건가.”

유민 다수의 긴장이 팍 풀렸다.

당장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는 자도 있었지만, 그런 자들까지 두고 볼 제리코가 아니었다.

‘할 일이 태산인데 시간을 끌 이유가 없지. 영주님을 다시 찾아뵈려면 급히 움직여야 한다.’

그는 확성기를 이용해 유민들에게 명을 내렸다.

“같이 온 마을이나 지역 단위로 모이도록. 차후, 그대들이 머물 공간 배정에 불리함이 없도록, 허투루 움직이는 법 없이 제대로! 알겠는가?”

긴장이 풀리던 유민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엇…….”

“모, 모이자고.”

“병사들은 뭐 하나. 어서 도와주지 않고!”

“명!”

그의 명에 따라 병사들도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을과 지역 단위. 범람을 피해 오다가 정이 붙은 자들이 함께 모였다.

‘이왕이면 서로 흩어 놓는 게 전체 통제는 쉬워지겠지만…… 다들 정신이 없는 상황이니 우선은 모이게 할 수밖에.’

그의 말을 따라, 사람들이 모였다.

최소 10명 아래에서 최대 수백 명까지. 각계각층의 수많은 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제리코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던 제리코는 미리 준비된 행정관들을 보냈다.

“각 행정관들은 200명 단위로 끊도록.”

“명!”

“미리 약속된 대로 각기 1명의 보조 행정관이 200명을 맡고. 그 다섯이 모여 천 명이 되면 정식 행정관이 그를 맡도록 한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던 행정관들이 흩어졌다.

보조 행정관은 이번에 마련한 영지의 행정 아카데미의 학생들이었다.

각기 수개월에서 일여 년 정도 수업을 받은 게 그들이 가진 경력의 전부. 행정의 대가인 제리코가 보기에 턱없이 낮은 수준을 갖고 있었다.

‘실제 행정을 겪다 보면 성장하는 녀석이 나올 테지.’

하지만 당장 200명 정도의 인원을 데리고 움직이는 덴 그들만 한 인재도 또 없었다. 그로선 아쉬운 대로 보조 행정관을 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예상보다 잘 움직여 줬다.

“그쪽은 여기로!”

“이쪽으로 오십쇼!”

금방 사람들을 모았다. 보조 행정관은 200명을 모으자마자, 다섯씩 모였다.

200씩 다섯이면 총 천 명. 그때가 되면 정식 행정관이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천여 명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다 모였습니다!”

“그래? 움직이지. 가야 할 길이 멀어.”

일사불란하게 이뤄진 통제.

정식 행정관들은 그에 그치지 않고, 병사들의 보조를 받아 이들을 바로 이끌어 움직였다.

그 방향, 몇 달 전부터 마련된 임시 숙소이자 터전이었다.

* * *

끊임없이 몰려오는 유민을 제리코가 맡고 있는 가운데.

가장 처음 왔던 자들은, 새 터전에 이미 도착해 가고 있었다.

유민들은 도착하자마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미 땅이 다 골라져 있잖아?”

“저기는…… 농사 지을 터인가? 대체…….”

살자고 영지로 달려왔지만, 고생길이 훤할 게 분명하다 생각했던 그들이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건 뭔가.

임시로 만들어진 천막이지만, 몸을 누일 곳이 있었다.

새로 농경지를 만들려면 가장 힘든 일이 터를 마련하는 일인데 그도 이미 구획이 마련돼 있었다.

단순히 땅에 줄만 쭉 긋고 마련한 터가 아니었다.

“토질을 보고 만들어 놓은 거 같은데.”

“이게 말이 되나.”

생산량을 예측하여 구획을 나눈 게 분명해 보였다. 농사를 생업으로 한 자들 눈에는 그게 보였다.

유민들이 잔뜩 놀람에도, 그들을 이끄는 행정관들은 무슨 소리를 내기는커녕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터를 볼수록 정착 욕심이 날 것이고. 그에 따라 통제가 더 쉬워질 거란 제리코의 말을 기억한 덕분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1,000명가량 되는 유민들이 임시 숙소에 한데 모이는 덴 한 시간가량이 걸렸다.

그때가 돼서야, 보조 행정관과 정식 행정관들은 행동을 개시했다.

“대다수가 농사를 생업으로 할 것을 알지만, 다른 특기가 있는 자도 있을 터. 대장장이나 약초꾼은 특히 우대할 것이고. 다른 특기가 있는 자도 일자리를 알아봐 줄 걸세.”

“저, 저는 쇠를 좀 다룰 줄 압니다!”

재능과 특기에 따라 사람을 나눴다.

그들의 재능을 확인하고, 새로 일꾼이 필요한 곳에 그들을 가족 단위로 보냈고. 전혀 새로운 업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어센션 영지에 편지를 보내 관련한 명을 기다렸다.

분류에 따라 사람이 나눠지고.

그에 맞춰 경작지를 일구도록 도왔다.

간간이 일어나는 사건 사고를 해결하며 유민들을 받아들이기를 한참.

대범람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리 준비를 하였기에, 유민을 받아들이는 일은 순조롭게만 보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만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그들이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전혀 반갑지 않은 자들이 영지에 찾아들고 있었으니까.

* * *

영지에 초대받지 못한 존재들.

그들도 대범람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것들이었다.

바로 몬스터다.

인간처럼 시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종족이 드물었기에, 대범람의 피해는 이들이 더 처참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키이이…….

-취익!

그 결과.

몬스터들은 살 곳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처음 도달한 곳은 언덕이나 산.

자리는 한정돼 있었다.

소수의 몬스터가 자리를 잡으면, 다수는 또 다른 안전한 곳을 찾아 떠돌아야 했다. 그러다 발견된 곳이 테스의 영역이었다.

츠츠츠츠-

이들은 영역 전체에 걸쳐져 있는 막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몬스터에게 중요한 건 바로 눈앞의 막을 깨부술 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뒤에 있을 테스까지 생각할 지능 따위를 가진 개체가 있을 리 없었다.

쿠우웅. 쿵.

소형이고 대형이고 가릴 거 없이 몬스터 떼가 그의 영역에 다가왔고.

콰즈즉-

막을 뚫어내, 지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전진.

그 모든 장면들을, 저 높이 올라 있는 망루 위에서 바라보는 자들이 있었으니.

“산맥 지류를 쓸어버렸더니, 이번엔 북쪽이네.”

“스승님 말대로, 저 위에서 일부러 흘려보내는 거겠죠. 자신들이 처리하기는 귀찮을 테니까.”

“덕분에 꽤 귀찮아졌어.”

“그러게요.”

그들. 의선문의 제자들이었다.

중앙에 검을 들고 선 에나. 오른편에 프로스. 왼편에 자리하고 있는 건 특이하게도 독의 이소프였다.

셋밖에 안 되는 인원.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뭉쳐 오는 몬스터 떼를 보고 떠는 자는 없었다. 되레 이들은 각기 한 가지 방위를 맡기로 서로 정할 정도였다.

“그럼 전 왼편.”

“저는 오른편이 되겠네요. 중앙은 에나 사저가 맡아 주실 거죠?”

“맞아, 사매. 정확히 봤네. 후후.”

각기 달려오는 몬스터만 하더라도 수백여 마리. 그들을 상대해야 함에도 이들은 자신감 있게 망루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셋만이 아닌, 영지 곳곳에서 그의 제자들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고자 나서고 있었다.

* * *

휘익-

망루 아래로 떨어져 내린 에나. 그녀가 가장 먼저 한 건 검을 꺼내 드는 게 아닌, 눈을 감는 거였다.

연류신공을 익히고 대성해 나가고 있는 에나. 그녀는 연류에 담긴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최상이었고, 그 이해도는 그녀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어 줬다.

그녀가 다시 눈을 뜨는 순간.

‘보인다.’

그 새로운 차원이 그녀 눈에 새겨졌다.

눈앞에 담겨 있는 선(線).

선은 곧 흐름. 연류의 오의였으며, 표식. 흐름을 눈에 담는 데 성공한 그녀는, 보게 됨으로써 한 가지를 허락받았다.

콰즈즉-

그것이 바로 단절.

그녀의 검이 나풀거릴 때마다, 눈에 새겨져 있는 선 하나가 스러져 내린다. 선이 스러져 내리며 흐름을 단절시키니, 그 사이에 있는 존재는 말 그대로 반으로 으스러진다.

흐름의 시각화와 단절.

이게 그녀가 깨달은 셋 중 두 가지.

그러고도 남은 하나는 단절을 잇는 연이음이었으니.

그녀가 선 하나를 자르며 만든 선. 그 선이 새로운 흐름이 되었다.

샤아아- 샤아-

나풀거리듯 그녀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선은 길게 이어졌다. 이는 흐름이 길게 이어진단 의미. 길게 이어진 흐름에 그녀는 의미를 담을 수 있었다.

이번에 그녀가 담은 의미는.

‘절멸…….’

그녀가 만들어낸 흐름을 방해하고 있는 모든 몬스터의 절멸.

츠츠츠츠츠측-

만들어진 선 위에 그녀의 의지가 수놓아진다. 그녀 눈에만 보이던 선이 실체화되는 그 순간이었다.

빛이 번쩍거리더니, 이어진 모든 선이 동시에 진한 파괴력을 낳았고.

콰아아앙-!

서로 얽히고, 연이어 이어지며 그 안에 있는 모든 존재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

-크륵…….

종류고, 크기고 가릴 거 없이 선이 아로새겨질 때마다, 같은 결과가 만들어졌다.

쿠우웅. 쿵.

그대로 쓰러져 무너져 내렸다.

“후우…….”

그녀가 만들어내는 흐름 안. 그 안에서 그녀가 허락하지 않는 한, 계속해 몬스터는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 흐름이 그녀가 연류신공을 초월해 나가며 얻은 비기이며. 동시에 테스의 옆에 서고자 그녀가 자신의 격을 초월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한없이 고매하기만 한 초월적인 힘.

그러나 그러한 궤적을 만들어낸 그녀는 아직도 스스로 만족할 줄을 몰랐다.

“……역시 아직 모자라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바로 옆. 그녀와 같이 뛰어내린 그녀의 사제와 사매. 둘도 그녀와 다른 종류의 새로운 격을 만들어내고 있음이 보였으니까.

그런 둘이서 만들어내는 흐름은.

‘……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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