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22화 (122/191)

제122화

챕터 22.

테스의 걱정과 달리, 바깥의 일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먼저 그의 영지. 새로운 도시 건설과 유민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 갔다.

테스에게 부탁을 받은 셋. 제리코, 알스, 바이트. 이 셋이 가장 열심이었다.

“기반 작업은 모두 완료됐습니다. 나머지는 유민들이 와서 마무리하는 식으로 맞춰 놨습니다.”

“영지에 와서 공짜로 퍼줄 수는 없는 일이니 그게 맞는 방식인 거지.”

들이닥칠 유민들을 계산. 하여 그들이 할 수 있을 일들을 남겨 놓았고.

“막무가내로 받아주기만 해서는, 이 땅에 애착을 갖기도 힘들 거니까요.”

“바로 그거야. 잘 했겠지만, 마무리까지 잘 지켜보라고.”

“옙! 맡겨만 주십쇼!”

정착이 완료되고 나면, 그 뒤에 있을 발전에 맞춘 토대까지 쌓아 놨다.

그의 준비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이서 스스로 올 수 있는 유민들도 있겠지만, 그게 아닌 자도 있을 터. 테스는 그런 자들을 미리 신경 썼고, 행정관이 아닌 다른 자들로 하여금 그들을 챙기게 만들었다.

바로 의선문의 제자들이었다.

“우리 야만인들을 받아준다굽쇼?”

“예. 대범람이 예측되는 이때에, 유목은 무리지 않습니까.”

“그렇다 해도……. 족장과 한번 상의를 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야만인을 찾아갔다.

이곳 카르소니아 왕국에 떠도는 야만인 부족의 수는 수십여 개. 그중 반을 찾아갔으니, 테스가 그들을 얼마나 신경 썼는지 알 만한 대목.

그들은 이미 여러 차례 의선문의 제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상황이었다.

왕국 곳곳으로 제자들이 퍼져 나갔던 당시, 비욘의 부족 말고도 많은 유목민들을 만났던 상황. 이미 한 차례 도움을 준 전례가 있기에 그들은 의선문 제자들을 쉬이 받아들였고.

주변에 있는 영지 귀족들보다도 더 진지하게 대범람 소식을 받아들였다.

각 부족의 주술사들이 주술을 시전했다.

츠츠츠츠츠-

마나에 선조의 영혼이 스며 있다 믿는 게 그들의 오랜 신앙 중 하나.

그들은 오래전부터 가진 주술을 이용해, 멀리 떨어진 각 부족과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주술사 회의.

-정말로 우기가 닥친단 말인가?

-대주술사의 말이 사실이었어? 그렇다면 전에 있던 예언도 사실일 수가 있지 않나.

-쉿. 예언은 아직 모를 일이야.

-그렇다 해도……. 후음. 이건 보통 일이 아니군.

그들만의 옛 예언을 나누고, 난상 토론을 벌여가기까지 하며 그들은 의견을 구했다.

-이제 어떻게 한다?

-우선은 들어가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럼 우리의 유적지는?

-이미 몇 번의 우기를 버틴 유적지들이야. 망가질 리가!

-그렇담…… 답은 나왔군!

그리고 내려진 결론은 하나. 바로 테스 영지로의 합류였다.

“결정되셨습니까?”

“우리 부족은 바로 따라가겠네.”

“잘 생각하셨습니다! 위기는 피하고 보는 거죠.”

“흘. 피하는 건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네. 우리 생각대로라면…… 되레 피의 길일 수도 있으니.”

“예?”

“아, 이건 못 들은 걸로 하게나. 가세. 우리는 이미 준비가 끝났으니.”

각 유적지를 돌며 순례길에 올랐던 자들. 수많은 유목민 중 다수가 테스의 영지를 향해 움직였다.

물론, 모두가 따른 건 아니었다.

-우리는 유적지로 향하겠네.

-약속의 때가 왔을지도 모를 일이지.

-설욕인가?

-아니, 복수일지도. 자, 먼저 감세.

일부 소수의 부족원들은 그를 따르지 않고, 유적지를 향했으니까. 그러한 소수의 인원들이 과연 무슨 생각으로 유적지로 갔을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그렇게 이뤄지고 있는 외부의 일들.

테스의 명에 수많은 자들이 움직이고, 영지는 재정비되었으며. 오랜 기간 순례를 하던 유목민들의 순례의 수레바퀴가 멈추었다.

-대범람이라…… 우리도 준비를 해야겠지.

-후응…… 테스 녀석, 저답지 않게 주변을 돕는다라.

-돈을 벌 기회로군요.

테스로부터 소식을 들은 주변의 귀족, 상단의 그레놀, 갇힌 베빈. 각기 서로 다른 입장을 한 자들이 대범람에 대한 방비를 시작한 것도 그쯤이었다.

그렇게 생각보다 많은 시일이 지났을 때.

“드디어 성공이다!”

-정말로 해냈구나. 하, 다시는 못 할 일이었다.

테스의 재봉인이 마무리 작업에 들어서고 있었다.

* * *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처음, 테스가 벌이던 봉인 작업은 순조롭기만 했다. 그러다 웬걸. 물의 기원이 지닌 기운을 반 정도 흡수할 때쯤 일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기원이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거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데.”

-본래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수만 년 동안 존재하며 영이 생성된 걸지도 모르지.

“영이 생성됐다라…… 일종의 도깨비 같은 건가.”

-그게 뭐지?

“있다. 그런 게.”

도깨비. 오랜 물건에 영이 생성돼 만들어지거나, 신령스런 기운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는 존재였다.

그 기원도 태어나는 방식도 다양한 게 도깨비였다.

‘설명할 방법도, 할 이유도 없지. 그러고 보면 정령이나 도깨비나 비슷하긴 한데…… 공교롭게 이 세계와 중원이 비슷한 게 꽤 된단 말이지.’

테스가 슬쩍 넘길 기색을 보이자, 입을 연 건 물의 정령이었다.

-어쨌건, 그 의지가 타락을 유도한 걸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반항하는 것도, 타락 정령이 생겨나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니까.

“이쪽으로선 된통 걸린 셈이지. 덕분에 수습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으니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군.

어쨌거나, 물의 기원의 폭주에는 테스도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다.

반 남은 기운을 잔뜩 뿜어대며, 타락한 정령을 지원하기도 했고. 당시로선 발동 방식을 알기도 어려웠던 결계를 만들어 자기를 보호했으니까.

“그래도 얻은 게 있어 다행이긴 해.”

-마찬가지다.

손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시일이 걸리는 대신 생각지 못한 경험을 한 테스지 않은가.

물의 정령이 타락한 정령들을 상대하며 강해진 건 당연한 이야기. 되레 예상치 못한 성장을 얻은 건 테스였다.

그는 물의 기원이 열어낸 결계에 주목했다.

‘나도 모르는 방식이었지. 정확히는 야만신이 쓰던 방식과 비슷했고.’

진법도 마법진도 아닌 무엇. 정령계의 힘을 사용해 만들어진 결계는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짙은 호기심을 테스가 넘어갈 리 만무할 터.

그는 바로 옆에서 타락 정령과의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서도, 결계를 분석했다. 그러곤 그대로 성공.

결계를 어떻게 더 촘촘히 짤 수 있을지. 만들어낸 결계를 어떻게 강화할지를 알아냈다.

그뿐이랴.

결계를 분석하다 보니 진법과 마법진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했다.

‘이제 진법석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어.’

그 지식들을 이용하면, 이번 사태들을 일으킨 진법석의 위력을 상승시킬 수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다 전보다 더 세심히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전처럼 사건이 벌어지지 않게 쓸 수 있을지도.’

테스로서는 계륵 같아진 진법석을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된 상황!

이를 이용해 무슨 짓을 벌일지는 그만이 알 터. 그러나 그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머금고 있는 걸 보면 이 뒤의 일은 꽤 기대해 볼 법했다.

그가 얻은 이득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바로 옆.

얼마 전까지 있던 봉인지 옆에 잔뜩 쌓여 있는 무구들도 그의 새로운 성과였다.

-정말 저것들 모두 네가 활용할 것이냐?

“당연하지.”

스스스스-

드워프가 ‘실패작’이라 명명한 것들. 지금에 이르러선 물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보물이 돼 있었다.

-아깝구나. 가지고만 있어도 추후에 활용이 가능할 텐데 말이다.

“아끼다가 망하는 법이야.”

물론,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물은 아니었다.

물의 기원이 지닌 기운은 어디까지나 일회성이었다. 보물들이 머금고 있는 기운을 전부 소모하면 다시 전처럼 실패작으로 돌아간단 의미다.

-그래도 이쪽은 아쉽구나. 내가 흡수하기만 하면 그릇을 키울 수 있을 터인데 말이다.

“에이,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는 너도 타락해 버릴지도 모른다고.”

-……타락이라. 이해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물의 정령에게 이 기운들을 흡수시키는 게 맞는 일이었다. 차분히 시간을 들여 흡수를 시키면 테스가 말한 타락도 벌어질 확률이 적을 테니까.

그러나 테스는 그 모든 것들을 본인이 챙겼다.

오죽하면.

“몇 개는 실험용으로 두고 가는 게 어떤가?”

“이제 와서? 내가 분명 넉넉히 챙겨 준다는 말을 전에 들었던 거 같은데?”

“헹……! 분명 넉넉히 챙겨 주지 않았느냐. 실패작 말고도, 우리가 건네준 것들이 넘쳐나는 걸 다 알고 있거늘!”

“넘쳐나지.”

“그러니 몇 개를 넘겨 달라는 게 아니더냐.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니다. 거래를 하자는 거지.”

은근슬쩍 보물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는 텍트. 그의 거래 요청도 거절을 했을 정도다.

“본래라면 넘겨줬을 거야. 대가도 안 받았을 거고. 장기적으로 이득이었겠지. 네 호감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왜 욕심을 부리느냐? 너는 그런 성향을 지닌 인간이 아닐 것인데.”

“욕심이라……. 저 위를 봐 봐.”

“이런…….”

테스는 이유를 말하는 대신 저 위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거대한 공동 중앙.

드워프가 태양빛을 받고자 만들었다는 작은 틈새 사이로 어둠이 내리깔리고 있었다.

지금의 때는 정오. 해가 한창 떠 있어야 할 지금에, 어둠이 내리깔리고 있는 의미는 하나였다.

“……우기가 시작돼 버렸구나.”

우기의 시작이다.

텍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두워진 하늘은 땅 아래로 거센 빗줄기를 떨구기 시작했다.

토독. 톡.

공동의 천장을 두드리며 내려오는 빗소리. 옅게 들려오던 소리는 순식간에 거세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공동은 크게 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츠츠츠츠-

시작된 우기. 대범람에 때맞춰 증폭된 물의 기운들.

이 가운데 테스가 물의 기운을 머금은 보물들을 어떻게 쓸지 예상하는 건, 텍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텍트는 제 실수를 바로 인정했다.

“욕심이 아니라 다른 걸 위해서 쓰려는 거였군. 욕심을 부린 건 되레 이쪽이었어. 쯧, 인간보다 드워프인 내가 욕심을 더 부리는 날이 올 줄이야.”

“킥. 흔한 구경이 아니긴 하지.”

제 욕심에 대한 인정이었다.

지난 몇 달간 텍트와 오랜 시간을 보낸 테스. 그로선 그런 텍트를 두고 한참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시간이 없다.’

아쉽게도 기회는 없었다. 예정보다 오래 머물게 된 이 공동 아래서 떠날 시간이었으니까.

“다음에 볼 때는 욕심을 좀 줄이고 오라고, 텍트.”

“헹. 헛소리는. 그나저나, 바로 가는 건가?”

“그래. 해야 할 일이 넘치니.”

“모루의 인내가 함께하길 바라지. 내 곧 뒤따라가지.”

“망치의 창대함이 그대를 따르길. 좋은 시간이었다, 텍트. 그럼 나중에 보자.”

짧은 시간으로 해후를 나눈 테스. 그는 곧바로 몸을 띄웠다.

공동을 넘어, 대범람이 시작된 바깥을 향할 때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