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21화 (121/191)

제121화

챕터 21.

샤아아아-

봉인지의 마나는 안과 밖이 달랐다.

밖은 보통의 마나와 같았다. 봉인지 안은 오로지 물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정확히, 썩고 오염된 물의 기운이었다.

‘내 영지에서 나왔던 물의 정령과 비슷하네. 아니, 그 이상인가.’

스스스스-

매 순간마다 봉인지 안의 기운은 넘실거리며 바깥을 넘봤다.

그 안에 존재한 타락한 물의 정령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대지의 자식에게 많은 수가 잡아 먹혔음에도 아직 더 많이 남아 있었고. 틈날 때마다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지의 자식들을 불러냈던 테스가 이곳에 없었더라면, 틈을 노린 타락 정령들은 언제고 몸을 들이밀 기세.

“이야. 천 년 이상은 묵은 건가.”

“우리가 추측하기에도 그 정도 기간은 된 봉인지다. 그것도 최소지. 보아하니, 여기에 물의 기원도 하나 있을 거고.”

“물의 기원?”

대답을 하는 건 텍트가 아닌 물의 정령이었다.

-정령의 탄생을 돕는 신물 중 하나다.

“그게 있으면 물의 정령이 태어나는 거야?”

-조건만 맞는다면. 우리는 대자연의 의지를 받들어 태어나는 자이고, 그것은 단지 돕는 거다. 조금 더 빠르도록.

정령을 탄생시키는 도구라. 호기심이 불쑥 튀어나오는 테스였다.

“그런 게 여기에 빠져 있다라는 거네. 왜 빠져 있는지는 아나?”

-알아도 가르쳐 줄 순 없다. 그게 우리에게 걸린 제약이니까.

“그건 좀 아쉬운데. 그래도 상황이 어떤지 파악은 됐어.”

“헹. 아주 둘이서 죽이 잘 맞는구나. 들은 그대로다.”

아쉽게도 호기심을 해결할 순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파악된 테스였다.

‘일종의 물의 정령을 탄생시키는 생산소가 이곳에 있는 거였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그게 천 년도 더 전에 봉인이 된 거고. 봉인된 상태에서도 계속해 물의 정령이 탄생했다.

하필이면 타락한 정령이 가득하니 태어나자마자 타락했겠지.

결국 이곳을 봉인하기 위해선 두 가지를 해내야 했다.

첫째는 타락한 기운의 정화요.

둘째는 물의 기원이 지닌 힘의 흡수다.

그리한다면 깨끗하게 변한 이곳을 다시 재봉인 시키는 건 쉬워진다.

‘대충 각은 나오는데?’

마음 같아서는 물의 기원조차 뽑아내고, 봉인지 자체를 부수고 싶은 테스였다. 하지만.

“그래서 어찌할 수 있겠나?”

드워프 텍트가 허락해 줄 리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욕심을 채우자고 봉인지를 날려먹었다가, 정말 이 공동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일.

그러기에 그가 할 수 있는 답은 결국 하나였다.

테스가 피식 웃으며 답했고.

“시간과 예산만 충분하다면?”

“망할 놈. 지금에 와서도 놀리기는! 그 말은 우리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지 않느냐. 그래도 가능은 하다는 거구나. 그럼 좋다. 뭐든 가져다 줄 테니, 한번 해 보라고!”

유쾌한 난쟁이 친구는 그를 받아들였다.

* * *

이 지역 자체가 타락한 걸 정화하는 일은 테스가 해내야 했다.

그에게 있어 정화를 위한 계산은 차라리 쉬웠다.

‘정화 마법을 기본으로 하고. 그와 관련된 진법을 설치하면 되겠지.’

마법과 진법의 조화. 그 둘을 통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으니까.

약간의 부족함은 주술을 더하면 되었다. 이러한 봉인 같은 경우는 유독 주술이 강력한 편이었으니까.

관련한 부적들도 이미 꽤 많이 가지고 있었다. 당장 그가 지닌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게 수백여 장이었다.

‘연구하려고 만들어 둔 거를 이렇게 쓸 줄은 몰랐네.’

재료도 계산도 끝. 그러니 정화 작업은 거칠 게 없었다.

문제는 물의 정령을 탄생시키는 물의 기원.

애써 재봉인을 한다고 해도, 물의 기원이 가진 힘은 언제나 큰 변수였다. 겨우 봉인을 시킨 봉인지의 기운을 기원이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를 맡아 줄 건 테스가 아니었다.

“어때? 기원이 가진 기운을 흡수하는 게 가능하겠어?”

-아쉽게도 당장은 절반 정도. 최근에 네가 준 것도 다 소화하지 못 했거든.

“이런, 당장 네가 지닌 그릇이 거기까지라는 건가.”

-나라 해서 무한히 물의 기운을 흡수할 수는 없다. 시간은 어떤 존재에게나 필요하니까.

이는 물의 정령이 해결해 줘야 할 일이었다. 아쉽게도 물의 정령은 확답을 해주지 못 했다.

“그럼 시간만 충분하면 된다는 소리네? 얼마나 걸리지?”

-십 년 정도.

“……그때 가선 곧 있을 대범람 때 여기도 같이 터질 거 같은데. 하, 남은 절반을 흡수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건가.”

시간을 단축시킬 방안이 필요했다.

* * *

시간을 단축시킬 방안.

그에 대한 답을 위해 테스는 머리를 굴렸다. 마법, 주술, 진법, 무공.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온갖 능력과 응용법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아, 그거면 될 지도!”

그러다 금방 방안을 마련해 냈다. 재밌게도, 새로 마련한 방법은 그가 지닌 능력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었다.

-뭐지?

“그게 뭐냐?”

답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물어 오는 텍트와 정령을 보다, 테스는 답을 해 줬다.

“보구가 답이었어.”

“뭐?”

“보아하니, 드워프 보구는 신의 힘이 담기는 그릇이거든. 맞지 않아?”

“그, 그거야 맞다만…… 설마?”

“그 설마가 맞을 거다. 그릇에 꼭 드워프 신의 힘만 담을 필요가 있겠어?”

“아이, 망할 놈아. 보구가 어디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지 아나. 그래도…… 가능은 하다.”

“역시!”

답은 바로 보구였다. 신의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보구. 신의 힘도 담아낼 수 있다면 물의 기원이 지닌 기운이야 충분히 받을 능력이 있었다.

문제는 있었다.

“아직 그릇을 채우지 못한 보구가 몇 개 있지?”

“세 개 정도.”

“고작?”

“말했잖느냐. 그게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라고.”

드워프가 지니고 있는 보구 수가 너무 적었다.

통상적으로 드워프 신이 그들에게 보구를 넘겨주는 건 백, 이백 년에 한 번 꼴.

드워프로서도 역작이라 할 수 있는 거에나 겨우 내려주는 까다로운 신이었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변명하듯 말하는 텍트의 말에 답이 있었다.

“백 년에 하나 정도가 나오는 게 보구다. 수없는 도전 끝에 겨우 나온단 말이다.”

“그럼 반대로 이야기하면 수많은 실패작들이 아직 남아 있단 거잖아. 꼭 많이씩 담을 필요 있겠어? 적당히 나눠 담자고.”

꼭 가득가득 담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수많은 실패작 가운데 조금씩만 담아도 괜찮다.

역작이 10을 담으면 실패작이 1을 담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만든 실패작은 그보다 더 많을 테니까.

문제는 그를 받아들이는 텍트의 태도.

천상 장인인 그로선 실패작이라도 그리 쓰이는 걸 반길 리 없었다. 발작하듯 테스의 말에 반박을 해 본다.

“이, 이 망할 인간 놈. 실패작이라도 얼마나 많은 손길이 들어가는지 아느냐. 그런 걸 고작 기운의 그릇으로 쓰려 하다니.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해 보는 게…….”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다, 정령들이 다시 튀어나올 거 같은데. 그래서 안 할 건가?”

“……젠장. 장로들과 바로 이야기해 보마.”

하지만, 결국 항복 선언을 하는 텍트였다.

* * *

차르르르륵-

텍트는 드워프 병기 헬 카터를 이용해 실패작을 가져왔다.

말이 실패작. 바깥에선 명품 취급될 게 산처럼 쌓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드워프제 물건이라 하는 것도, 들이밀기 힘들 만큼 대단한 작품들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도 신에게 바칠 정도는 못 된단 소리겠지.’

그러한 작품들이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종류도 다양했다. 검, 도, 창과 같은 기본적인 무구부터 시작하여 텍트가 타고 온 헬카터로 보이는 거도 존재했다.

테스 눈에 그 헬카터에 유독 띄었다.

“저거, 작동하는 건가?”

“아아. 구동원에 힘을 받치지 못해서 작동은 안 돼. 뭐, 조금 손보면 가능은 하겠다만, 탐나나?”

“안 난다면 거짓말이겠지. 대범람 때 써먹으면 꽤 대단할 거 같으니까.”

“후음. 공동 바깥에선 본래 우리 신의 힘이 먹히지 못하니 못 쓰이겠지만, 네 말대로 그릇으로 사용한다면 또 모르지. 다만 오래는 못 쓸 거다. 저절로 부서질 테니까.”

“상관없어. 잠시라도 제대로만 써먹을 수 있으면 되니까. 줄 수 있나?”

“저 정도쯤이야. 가능해.”

테스가 욕심을 양껏 드러냄에도 텍트는 호탕했다. 그는 테스가 말하는 조건 이상으로 긍정을 표해 줬다.

“나머지 실패작들도 기운을 다 채우면 가져가려면 가져 가. 대신, 일에 대한 대가가 줄어들긴 하겠지.”

“나머지도라. 좋은데.”

“대신, 제대로 봉인을 해 줘야 할 거야. 다시, 묻지. 가능하겠어?”

테스는 대답 대신 쌓여 있는 무구들을 봤다.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그릇은 테스가 보기에 넉넉해 보였다.

그러기에 답은.

“물론이야.”

긍정이었다.

* * *

테스는 바로 봉인 작업을 시작했다.

봉인지 근처에 진법을 설치하는 한편.

-그락!

-그룩. 그룩.

간간히 튀어나오는 타락한 물의 정령을 상대해야 했다. 전투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리석고 가여운 것들…….

옆을 지키고 있는 물의 정령이 그를 대신하여 상대해 주는 덕분.

차아아악- 차악-!

물의 채찍을 소환하여, 타락한 정령을 상대하고 있는 그녀.

제 아무리 타락한 정령일지라도 꽤 강할 터. 그런데도 정령은 쉽게 정령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하는 속도가 빨라짐에, 테스도 감탄을 할 정도. 예상 이상의 성장 속도였다.

‘타락한 걸 상대하면서 기원의 기운도 흡수하고 있어서겠지.’

그녀의 보조 덕분에 테스는 봉인지 작업을 차분히 진행하는 게 가능했다.

봉인 작업을 금방 끝마쳤고.

바로 이어 물의 기원이 뿜어내는 기운들을 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기원의 기운을 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조심해라. 조금만 조절을 실패해도,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를 힘이다.

“안 그래도 주의하고 있다고.”

물의 기원이 지닌 힘은 방대한 터. 거대한 기운 일부를 뽑아 안착시키는 게 쉬울 리가.

단순히 다루는 거 자체로 상당한 심력이 소모됐고. 실패작이 지닌 기운의 그릇을 파악하여 담는 거도 그만한 노력이 필요했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긴 해도 순조로워.”

-그래도 꽤 빠른 속도다.

“알지. 다만, 마음이 급할 뿐이야.”

테스의 말대로였다. 재봉인 작업 자체는 순조롭게 진행돼 가고 있었다.

물의 기원이 지닌 힘은 물의 정령과 그릇이 흡수해 가고 있었고. 봉인지를 위한 진법과 부적은 막바지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한 달이면 봉인지의 일은 해결하고도 남을 터.

그럼에도 테스가 신경 쓰는 건 하나였다.

‘잘하고 있으려나?’

바로 그가 없는 가운데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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