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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20화 (120/191)

제120화

챕터 20.

테스가 꺼내 든 그것. 흉악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지팡이였다.

그 크기만 하더라도 2.5미터 가량. 중간 지점부터 양 갈래로 갈라진 지팡이엔, 그에 어울리는 거대한 마석들이 박혀 있었다.

그 수만 하더라도 최소 천여 개였다.

손가락만 한 중급 마석이 알알이 박혀 있고. 그 사이 빈틈을 손톱만 한 하급 마석들이 가득 메꾸고 있었다.

진짜는 갈라진 양 끝에 있었는데, 구하기도 힘든 최상급 마석이 박혀 있었다. 드워프인 텍트도 알기 힘들 기이한 문양도 박혀 있었다.

겉으로 봐선 무식하게 많은 마석을 박아 넣은 지팡이.

그러나 장인인 텍트기에 그 가치와 제작 난이도를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게 그들이 가진 권한이었으니까.

“요즘 들어 마석 공급이 잠시 뜸하나 했더니! 그게 네놈 때문이었냐!”

“…….”

그런 텍트가 보기에 저 지팡이에 쓰인 마석은 족히 수천여 개!

문양을 새기다 날려 먹었을 마석과 만드는 과정에 소모될 마석을 생각하면, 그 수는 더 늘 수도 있었다.

“흉악한지고!”

뭐든 과하다 싶은 드워프가 보기에도 기함을 토할 만한 거대지팡이.

파아아앗-

그 거대 지팡이는 몰아한 테스가 마력을 흩뿌릴 때마다, 빛으로 반응했다.

거대한 빛이 넘실거리고. 그에 어울리는 기운들이 사방에서 흡수돼 들어갔다. 지팡이를 통해 모이는 기운의 양은 순식간에 일개 인간이 사용할 양을 넘어섰다.

“으어어…… 저, 미친놈이!”

“으악. 대체 이게 뭐야!”

“텍트, 이놈아! 누굴 데려 온 거야!”

순간. 테스 주변으로부터 마나 진공 상태가 일어났다.

급작스런 마나 진공 상태에 드워프가 오른 헬 카터가 주저앉고. 보구에 어린 빛이 연해진다.

파스스슥-

마나를 통해 몸체를 구성하던 타락 정령의 몸이 부서져 내린다.

10. 20. 30…… 50미터!

거대한 공동 일대를 그의 지팡이가 완전히 잡아먹은 그 순간.

‘계산은 끝났다.’

몰아에 상태에 들었던 테스의 눈이 뜨여졌다.

그 짧은 시간 사이.

그는 공동 전체에 기감을 돌렸고, 스며든 타락한 물의 정령들을 찾아냈다. 그들의 구조, 빙의한 몸체, 형식을 파악하는 데 들인 시간이 단 몇 초.

그들 전체를 파괴시킬 방안을 마련하는데 걸린 시간이 다시 일 분이었다.

그렇게 눈을 뜬 테스는 순식간에 세 개의 마법을 시전했다.

“재밌는 구경이 될 거야.”

“미친? 무슨 짓을 벌이는 건데!?”

설명은 따로 필요 없었다.

고오오-

대답 대신 지팡이를 뻗어 나간 마법이 공동 전체로 다시 뻗어 나갔으니까!

* * *

[속도] [약화] [시간] [실체화] [확산] [부여]…….

츠츠츠-

처음 룬어가 조합돼 확산된 마법은 강화된 포박이었다. 거대한 영역 자체를 둘러싸고도 남는 포박이었으며.

-그륵!?

-그르륵!?

동시에 실체를 지니지 못한, 정령이란 개체까지도 묶어 버리는 기이한 마법이었다.

포박은 물리적 실체가 아닌, 영적인 정령 자체를 묶어 냈다.

-그롸락!

정령이 빙의된 몸을 버리려 해도 할 수 없었다. 이미 굳은 상태였으니까.

봉인지 안에서도 자유로이 떠돌던 유체는 상태가 더 좋지 못했다.

-아그극!

거대한 압력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말이 포박. 조여 오는 거만으로도 정령에게 느껴지는 고통은 상당했다.

거칠게 반항하려 하지만, 포박은 계속해 조여 올 뿐이었다.

그 상태로 연이어 두 개의 마법이 펼쳐졌다.

[혼돈] [파장] [확장] [증폭] [변질] [땅] [구체화]…….

이 세계와 엮인 수없이 많은 아차원. 그 가운데 땅의 기운을 머금고 살아가는 생명체가 머무는 차원을 파장으로 찾아내고. 그 파장을 확장, 증폭시켜 실체를 드러내게끔 하는 순간.

“……이계 접촉. 실로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 결과를 알고 있는 거냐?”

“이계의 것들을 끌어들이게 되는 거지.”

이 세계와 타차원의 거리는 줄어든다.

단 하나의 주문, 그 하나로 일개 인간이 차원과 차원 사이를 좁히는 기적!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케 하는 게 마법이라 하나, 차원을 조율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 6클래스의 마법사라도 쉬이 펼치기 힘들 마법을 테스는 펼쳐냈다.

그런 짓을 잘도 해 놓고.

“잘도 버텨내는구나. 정신이 오염될 거다. 차라리 멈추지?”

“먹힐 거면 펼치지도 않았어.”

테스는 지치기는커녕, 당당히 허리를 곧게 펴고 서 있는 상태였다.

“오, 온다……!”

“드디어 받아들인 건가.”

츠츠츠츠츠-

츠츠츠츠-

기이한 소리가 들리며,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될 것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흡사 무언가의 날갯짓 같은 기이한 소리가 공동 전체를 울린다.

“으으…….”

“뭔 짓을 하려는 거야!?”

화기. 수기. 금기. 목기. 토기.

접촉이 진행될수록, 흔히 오행이라 말하는 기운의 균형이 깨어져 나간다.

토기.

땅의 기운이라 일컬어지는 기운이 순식간에 치솟는다.

“……대지의 어머니라도 부르려는 거냐?”

“그럴 리가. 그자는 불러도 움직이는 자가 아니잖아.”

“그렇다면, 그 하위?”

“크큭. 잘도 알고 있구만. 드워프의 지식도 꽤나 쓸모가 있는 본데. 바로 그거야.”

즈즈즈즈즉-

가까워지다 못해, 연결돼 버린 차원. 순식간에 일어난 접촉에 차원과 차원 사이가 찢어진다.

순식간에 일어나 버린 이계 접촉!

-그라라락!

-크엑.

치솟아 올라버린 땅의 기운에 포박당해 있던 타락한 물의 정령들이 비명을 지른다.

목(木)의 기운이 수기를 북돋운다면, 땅의 기운은 되레 수기를 흡수해 잡아먹으니 당연한 일.

“물의 정령 자체를 약화시키는 거라면, 이 정도면 됐잖냐. 멈춰!”

“아니, 이제 시작인데?”

본디 마법사라면, 타차원을 접촉하는 걸로 만족할 터.

기운 자체의 균형을 깨, 타락한 물의 정령들이 스스로 물러나게끔 하는 거만으로도 만족했을 터다.

그러나 테스는 한 걸음 더 나가고자 했다. 그를 위해 준비된 마지막 마법.

“곤충 소환.”

“이 미친 녀석이! 그건 그냥 하위 존재들이 아니잖아!”

드드드드득-

접촉한 차원의 문이 찢어진다. 찢어져 버린 차원 사이에서 거대한 곤충이 소환돼 나온다. 아니, 저걸 곤충이라 할 수 있을까.

쿠우웅. 쿵.

그 몸뚱어리의 크기만 10여 미터. 압도적으로 드넓은 공동이라 해도, 버거워할 만한 거대한 곤충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풍뎅이를 크게 늘려 놓은 모양.

그들의 몸체를 형성한 건 젤라틴 따위가 아니었다. 대지, 땅을 이루고 있는 흙이 그들 몸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지의 자식. 젠장할.”

츠츠츠츠츠-

차원 접촉에서부터 기이한 날갯짓을 하던 존재들. 대지의 자식이라 명명돼 있는 거대한 그것들은 거체를 몸에 띄웠고.

드드드득-

한 방향을 향해 쏜살같이 날기 시작했다.

-그라라라락!

-그륵…….

포박돼 있는 타락한 물의 정령들을 향해서였다. 대지로 태어난 그들의 먹이는 물의 기운이었으니.

츠츠츠측- 츠츠츠츠-

저들은 물의 기운을 머금어 성장하고. 물의 기운을 파괴함으로 그들을 낳은 대지의 어머니에게 경배를 표하는 자들이었다.

물의 기운을 머금은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제 존재를 파괴해서라도 잡아먹는 그것들.

그런 저들에게 타락한 물의 정령은 먹잇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콰아아앙!

거친 날갯짓과 함께 시작된 거대한 충돌!

드드득- 드득-

-그륵…….

귀가 아닌 영에 울리는 기이한 울림이 만들어질 때마다, 타락한 물의 정령의 몸체가 스러지기 시작했다.

* * *

대지의 자식들은 기어이 출현한 모든 타락한 물의 정령을 잡아먹었다.

포박된 상태의 정령은 그들에게 있어 맛있는 먹잇감이었을 따름이고. 도중 기어이 포박을 풀고 나간 정령은 재밌는 장난감일 뿐이었다.

아득. 아드득.

기이한 소리가 날 때마다 스러진 물의 정령들.

그들은 다시 빙의할 생각도, 몸체를 형성할 생각도 못한 채로 도망쳤다.

처음 정령이 튀어나왔던 봉인지를 향해서였다.

제 아무리 대지의 자식들이라도 봉인지를 침범하는 건 되지 않는 터였다.

봉인은 안에서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는 도구임과 동시에 바깥에서 안을 침범치 못하게 하는 기능도 있었으니까.

아쉬운 듯 한참 봉인지를 기웃거리던 대지의 자식들.

그들은 테스가 보내주던 막대한 마력이 끊어지고 나서야, 그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보여지는 광경.

“휘유. 한결 깔끔해 보이지 않나?”

“깔끔은 무슨……! 그래도 오랜만에 시원하긴 하군. 저 망할 것들이, 더는 발을 못 디디고 있으니까 말이야.”

더는 물의 정령이 보이지 않았다.

곳곳에 그들이 빙의된 몸체의 잔해들이 남아있지만, 그쯤은 드워프들이 금방 치울 양이었다. 되레 잔해가 많을수록 드워프들은 좋아했을 터였다.

잔해조차도 그들에겐 좋은 재료였으니까.

“남는 잔해 중 내 몫은 확실히 떼 주도록 해. 정확히 봐 놨으니, 떼어먹을 생각은 말고.”

“흘. 걱정 말라고. 감히 네 걸 노리는 녀석들은 없을 거니까. 그리고 잊었나? 우린 드워프야. 되레 더 주면 줬지 떼먹진 않아.”

“그렇긴 하지.”

테스는 그에 따른 자기 몫을 요구할 뿐이었다.

잔해의 배분을 궁금해 하는 테스와 달리, 드워프 텍트는 다른 게 더 궁금한 듯 보였다.

그의 시선은 테스가 들고 있는 흉악한 지팡이에 가 있었다.

“그나저나 그 괴악한 물건은 대체 뭐냐?”

“보다시피, 마법사가 쓰는 지팡이다만?”

“……미친놈. 어쭙잖은 마법사가 그리 큰 지팡이를 들 수 있을 리 없잖냐! 거기다, 그 마력은 대체 뭐고.”

“있다, 그런 게.”

그가 만들어낸 지팡이. 두 갈래로 갈라진 양 끝은, 각기 두 가지 힘을 내포하고 있었다.

패(霸)와 중(重).

지난 시간 테스가 접했던 두 개의 신의 힘. 그 둘을 연구하던 끝에 나온 결과물이 바로 이 지팡이었다.

두 개의 힘을 결합함으로 지팡이는 각기 마력과 파괴력 증폭을 가능케 했다.

덕분에 테스가 공동의 거대한 마력을 쓸 수 있었고, 증폭된 힘으로 타 차원에 간섭이 가능해졌다.

일개 5클래스 마법사가 쓸 수 있을 힘이라고 하기엔 괴랄하기 그지없는 지팡이.

그럼에도 정작 만들어낸 테스는 아쉬움을 표했다.

‘아직 균형이 잡히지 않은 녀석이야. 몇 개의 힘만 더 부여할 수 있었어도 더 강력했을 건데 말이지.’

패와 중. 이 두 개의 힘을 제외하고 또 다른 힘을 부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

시도를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직 승천자에 들지 못한 테스로선 이 외의 힘들을 부여하는 게 힘에 부쳤었을 뿐이다.

또 다른 힘의 부여.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가능은 했을 텐데.’

대범람이 문제일 뿐이었다. 당장 들이닥칠 대범람을 막아야했고, 그 때문에 이 지팡이를 더 연구하는 데 할애할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뒤에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몇 개는 더 부여하는 게 가능했다. 그때 가선, 마법사이자 무인으로서도 힘의 이해가 더 강력해질 터.

언제고 시간을 내기 위해서라도 그가 할 일은 결국 하나였다.

“그렇게 은근슬쩍 넘기지 말고, 좀 보여줘 봐. 아니, 차라리 파는 게 어때? 보구를 주지, 응? 어떠냐고?”

“글쎄다. 당장은 그거보단 다른 게 더 중한 거 같은데?”

“……젠장!”

바로 재봉인이었다.

지팡이에 몸이 달아올라 쫓아 온 텍트. 그의 바로 옆으로, 기이한 물의 기운을 뿌리는 봉인지가 자리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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