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17화 (117/191)

제117화

챕터 17.

“재앙?”

급작스럽게 재앙이라니. 마나 이상 사태 이후, 온갖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테스였다.

‘어쩌면…… 승천자가 나타날 때면 이리 난리가 나는 걸지도 모르지. 초대 황제가 혼란 속에 제국을 세웠듯이 말이야.’

정령은 곧바로 답해 줬다.

-그래. 재앙. 정확히 물이 범람할 거다.

“범람이라면…… 그래, 홍수군. 그게 대체 왜 일어나는 건데?”

-본래부터 일어났던 일이다. 주기적으로. 다만 그게 지난번 일로 빨라졌다.

“지난번의 일? 아, 설마…….”

테스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가설이 스쳐 지나갔다.

“물의 정화를 얻으려고 정령들이 튀어나오려고 했던 그때. 설마, 그게 문제였던 거냐?”

물의 정령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하나 더해 준다면, 네가 진법석이라 칭한 거도 문제겠지.

“……이런.”

거기에 더해지는 말. 테스는 골이 아파짐을 느꼈다.

‘하, 인과가 이렇게 이어져 버리다니.’

타락한 정령으로부터 얻은 물의 정화. 그를 이용해 영약의 개념을 확장하고 배는 강화시켰었다.

수천 년을 산 정령이라 할지라도 욕심을 부릴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그 정화의 영약을 얻고자 수많은 정령들이 움직였다.

소환자도 없이 스스로 힘을 써 영지에 침투하려 했던 정령들.

테스는 그들에게 변덕을 부렸다. 진법에 있는 막대한 기운을 소모하여 그들의 침공을 막아냈다.

그 결과가 홍수라니. 어처구니가 없지 않은가.

-본래부터 자주 부리던 변덕이다. 마나 이상 현상과 지난 사태로 몇 년 더 빨라졌을 뿐이지.

“문제군.”

자연의 힘을 가진 것들이 의지를 가진 게 정령. 그런 의지를 가진 녀석들이 변덕을 부려 만들어지는 홍수라니.

‘이러니 이 세계가 막장이지!’

테스로선 새삼 이 세계의 규칙들이 엉망으로 느껴졌다.

그가 이마를 찌푸림에도, 정령은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물의 범람에 대한 경고. 이게 내 첫 번째 선물이다.

“……좋은 선물이 됐어. 고맙다.”

지금. 힘의 탐색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물의 범람. 홍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봐야 할 시간이었다.

* * *

테스는 곧바로 행정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홍수에 관한 사실을 빠짐없이 찾아.

제 일을 각자 진행하고 있던 행정관들. 테스가 헛된 말을 할리 없기에 명을 받은 그들도 덩달아 심각해졌고.

테스가 명한 대로 물의 범람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다.

단 몇 시간 만에, 정리된 기록들을 테스는 받을 수 있었다.

“이게 진짜인가?”

“예. 찾아보니 정말로 몇십 년 주기로 홍수가 크게 일어나곤 합니다. 이 왕국에서만 적어도 강 서너 개는 범람하더군요.”

“하…… 미쳤군.”

강 서너 개의 범람이라. 왕국에 있는 강줄기가 총 7개다. 그중 반은 범람한다는 이야기.

‘나라가 망하고도 남을 정도군.’

땅이 휩쓸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홍수가 작게만 벌어져도 일 년 농사가 망하게 된다. 안 그래도 식량이 모자란 영지가 넘치는데, 농사가 망한다라. 그 뒤는?

수많은 아사자가 속출한다.

발악하는 자도 있을 거다. 굶어죽는 게 싫어 도적질을 하려는 자도 늘 거다. 혹은 영주 창고의 곡식을 노리는 영지민도 생기겠지.

결국, 도적과 폭도가 끓어 넘치게 된다.

순식간에 영지 몇이 넘어지는 건 일도 아닐 터. 그러다 보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닌 이야기가 된다.

테스나 제리코 모두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은 어떻게 될 거 같나?”

“저희가 대범람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을 정도로 지난 대범람은 규모가 작았습죠. 한 번이 작으면 이다음은…….”

“미치도록 크다는 소리군.”

부정적인 기운이 집무실을 가득 채운다. 테스, 제리코. 그 뒤에 자리한 행정관들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넋 놓고만 있을 순 없었다.

‘미리 안 게 다행이지. 움직여야 한다.’

테스는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우리 쪽 피해 예상 규모는?”

“아시다시피 저희도 레피강 지류를 끼고 있습니다. 어센션 영지는 몰라도, 새로 받아들인 영지는 피해를 받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가장 방비가 안 된 곳들이기도 하죠.”

새 영지. 테스는 장원을 열 정도 개척시켰고. 도시만 해도 셋을 새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새 영지들은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어센션 영지에 비해 부족했다. 설치해 놓은 진법도 적을 뿐더러, 제대로 된 연동도 안 돼 있었다.

“그곳이 다 망가질 수도 있다는 건가?”

“최악의 상황에는요.”

“하…….”

한숨이 푹 비어져 나온다.

그때, 가만 테스 옆을 지키고 있던 하나가 끼어들었다.

-네가 가진 영역들은 걱정하지 말도록.

“무슨 말이지?”

물의 정령이었다.

궁금해 하는 그에게 정령이 말을 이었다.

-경고가 내 첫 번째 선물. 두 번째 선물로 너희들이 레피강이라 불리는 곳의 지류 정도는 내가 잠재워 줄 수 있다.

“가능한 일인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물에 있어선 가능한 일이다.

‘고대에는 정령이 신으로 추앙받았다더니, 그럴 만하잖아.’

안 그래도 정령은 테스를 위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제리코도 정령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의미.

“오오! 그 정도의 힘이라니!”

“대단합니다!”

“저 말대로면, 저희 영지는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의미를 알아들은 행정관들이 화색을 띠었다.

대범람이 일어난다 해도 그들의 영지는 무사하다. 그 하나만으로도 걱정의 90퍼센트는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 * *

물의 정령은 바로 움직였다.

-길어야 하루쯤이면 될 거다.

정령은 거칠 거 없이 바로 강 지류를 향해 갔다.

그리고 몇 분 되지 않아 시작된 물의 흐름.

‘어마어마하군.’

영지에 머물고 있는 테스로서도 전율할 만큼의 기운이 움직였다. 단순히 수치로 말할 수준을 넘어선 흐름이었다.

정령의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 레피강의 흐름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강줄기의 흐름이 느려지고, 전보다 더 얕아져갔다.

고작해야 하루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가히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일.

그런 대단한 일을 벌여 놓은 주제에, 정령은 별일 아닌 일을 해내고 온 것처럼 다시 그를 찾았다.

-어떻더냐?

“굉장하다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군.”

-네 덕분이다. 물의 정화를, 아니 그 영약을 먹지 못했더라면 힘들었을 일이니까.

“과연. 물의 정화가 그 정도쯤 되니, 다른 정령들도 노렸다 이건가.”

-그런 정령이 타락하는 일도 드물 뿐더러, 그걸 다시 강화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이해했다. 그래도 덕분에 우리 영지는 막아냈구나.”

-그래. 그런데도 표정이 좋지 못하구나. 다 해결하였으니 된 게 아닌가?

“되었지. 우선은 된 게 맞다.”

정령의 말대로였다.

영지의 일이 해결됐음에도, 그의 표정 한편은 어두웠다.

* * *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 고민이 있어서였다.

-네가 지닌 방대한 영역. 그 전부를 막은 일이다. 좋고도 남은 일 아닌가. 전에 네가 벌인 축제를 벌일 정도로 말이다.

“축제라…… 그건 아니지. 내 영역은 막아냈다고 하더라도, 남은 게 있지 않나?”

-남은 거라면, 대범람이 벌어질 영역 전체 말인가?

“그래.”

-거기까지 네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아닌 거 같은데?

“본래라면 그게 맞는 거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마냥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

-옳은 일이 아니다라…….

“그래. 그게 문제다.”

그의 표정이 어두운 것. 달리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한 가지 고민 때문이었다.

재앙이라 할 수 있는 대범람 앞에서 마냥 눈을 감고 있기만 해야 하냐는 것.

그게 그의 고민이었다.

‘하…… 전이라면 고민조차 않았을 일인데.’

테스는 자신을 대단한 인물도, 성자도 아니라 생각했다.

고귀하다 할 수 있는 삶을 살았던 전생에 비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는 일신의 강함 하나였다.

전생보다 더 강해지겠다는 의지. 전생으로 치면 우화등선, 현생에선 승천이라는 강함의 완성을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를 위해서 강해져 왔고 영역을 구축했다.

오롯, 일신의 강함을 추구하고자 여기까지 온 게 그의 목표였다.

그 목표.

‘달라질 리가 없지.’

시간이 지날수록 확고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눈앞에 닥친 대범람 앞에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아는데도 과연 눈을 감고 있는 게 옳느냐 이거다.”

-네가 눈을 감고 있는다고 해서 욕할 자는 없다.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개인이 대범람을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더냐?

“알지. 그런데도 고민이 든단 말이지.”

사실, 눈앞의 이득만 생각하면 눈을 감고 있는 게 나았다.

그의 영지는 대범람을 미리 막아냈고 다른 영지들은 막지 못한 상황이지 않은가.

이 상황을 이용하면 그가 얻을 이득은 막대했다.

단순히, 곡식만 비축하여 팔아도 큰 이득을 얻을 거였고. 상황을 이용하여 주변 영지를 조종하는 건 일도 아닐 거다.

가만 눈만 감으면 얻을 이득들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린다.

그 걸림이 문제다.

“단순 이득만 생각해서 눈을 감는다면, 그건 그저 쓰레기가 되는 거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무리 나라도 네 영역 이상으로 범람을 막는 건 무리다.

“알아. 네가 상당한 힘을 소모한 걸 나도 느꼈으니까.”

-그렇다면, 네가 직접 나설 생각이냐?

“그래. 개입해야겠다.”

개입.

어리석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눈만 감으면 얻어지는 이득이 수많은 가운데, 그 이득들을 다수 버릴 수도 있는 일일 테니까. 또한 개입했다 해서 그가 대범람 전체를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테스는 제 마음속 걸림을 가만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선악을 떠나서, 사람이 다 죽어나가게 생겼는데 눈 감고 있는 것도 웃긴 일이잖아?’

사람으로서 가진 최후의 선.

살아남기 위해서 용병 노릇을 하고. 의뢰랍시고 다른 자를 죽이고. 그럼에도 테스가 자기 자신을 유지할 수 있는 선. 최후의 선.

더러운 일도 마다 않으면서도, 동시에 지켜야 할 선이란 게 테스에게도 있었다.

‘이번에 눈을 감아 버리는 건 그 선을 넘는 게 될 거 같단 말이지.’

그 선을 넘지 않고자 테스는 개입을 결정했다.

‘그래, 이게 맞는 거다.’

고민이 끝났음에, 테스는 제 마음에 있던 어둠이 한결 가심을 느꼈다.

* * *

테스가 가진 마음의 변화.

그로선 자신의 영지만이 아닌, 세계로 눈을 돌리는 계기가 되는 일이었다.

일종의 시야 확장. 당장의 그는 자신의 확장을 느끼지 못한 채로 개입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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