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챕터 16.
그녀가 보내온 건 마법서가 아니었다. 그녀는 테스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걸 보냈다.
“마도구들이군요. 휘유. 새겨진 거 보십쇼. 4-5클래스가 구동되는 것들입니다.”
“이런 걸 보낼 줄이야.”
냉기 촉수를 뽑아내는 채찍, 환영마를 소환해 내는 말굽, 방어 결계의 장막…….
마탑 측에서 보내온 건 귀한 것들이었다. 데브론이 감탄하는 게 당연할 정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다.
“정작 중요한 마법서는 하나도 없군.”
“아무리 베빈 님이라도 마법서를 보내는 건 무리였나 봅니다.”
마법서. 테스가 귀한 재물을 사용해가며 요청한 그것들이 없었다. 단 한 자락조차도.
‘이해는 한다만…….’
마탑에서 공개한 비의는 5클래스까지. 그나마도 비전 마법은 제외됐다. 6클래스부터는 마탑의 마법사가 아니곤 금지됐다.
제 아무리 베빈이라도 이 규칙을 깨부수지는 못한다는 거겠지. 아니, 갇혀 있는 그녀기에 더더욱 규율을 어기지 못할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도 마탑에 들어가야 할까요?”
“아니. 이제와 속해 봐야, 해결될 문제가 아냐. 들어간다 해도 온갖 견제가 있을 거고, 그 와중에 정치질도 있겠지. 거기서 소모될 시간이 얼마겠어.”
“그도 그렇겠군요. 그렇다 해도 이리 없을 줄이야. 이럴 거면 재물이라도 돌려줬다면…….”
“잠시만.”
아쉬움을 삼키는 데브론. 그런 그를 두고 테스는 물품들을 살폈다. 그러다, 작은 마나의 흔적을 하나 찾았다.
마나는 베빈의 향을 풍겼다.
‘역시. 베빈이 그냥 보내줄 리가 없지.’
테스는 마나 향이 풍겨져 나오는 말굽을 들었다. 쇠로 만들어진 말굽에 남겨져 있는 약한 잔향. 느껴지는 법칙.
우우웅-
테스가 그녀의 마나의 법칙에 공명하자 말굽이 번쩍였다.
그리고 드러나는 작은 글씨.
[해석해.]
단 세 글자. 그걸 본 테스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핫. 규칙을 깰 수 없으니 제대로 편법을 부렸는데?”
“해석하다 보면 얻는 바가 있다는 거겠군요.”
“그런 거지. 이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고.”
규칙을 깰 수도. 그렇다고 테스를 돕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런 베빈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규칙 내에서 테스를 돕는 편법. 그녀는 마법서가 아닌 마법 물품을 해석함으로써 테스가 마법적 지식을 얻도록 유도했다.
“호오…… 가만 보니, 마도구 안에 보안 마법이 옅습니다.”
“그녀답네.”
얕은 보안이 있다만, 그 정도야 쉽게 해결이 가능했다. 데브론, 레이즈, 테스 모두 마법진 해석이 뛰어나니까.
그 작은 보안을 뚫어내면 남는 건 마도구를 새기기 위한 비전!
통상적으로 마도구를 만들기 위해선 상위 마법사가 필요한 법. 4클래스 마도구엔 5-6클래스가, 5클래스엔 6-7클래스를 필요로 하는 게 상식.
눈앞에 있는 마도구들은 4-5클래스의 것들이니. 고로 이 안에 새겨져 있는 비전은 5-7클래스의 비전들이라 봐도 무방했다.
베빈의 앙큼한 장난에 테스는 빙긋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장난인데 받아 줘야 하지 않겠어?”
“날을 새워서라도 풀어 줘야죠. 우선 보안 마법부터 뚫어 보겠습니다.”
“이 다음, 해석은 제가 해 보죠.”
“좋아. 한번 시작해 보자고.”
“옙!”
뜻을 알아들은 데브론과 레이즈 모두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 * *
셋은 보안 마법 술식을 순식간에 뚫어냈다.
‘마탑의 방식도 재밌는데.’
술식을 뚫어내면서 테스는 룬어 [유지]에 관하여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비전을 낱낱이 드러낸 마도구들로부터 더 많은 룬어를 읽어 들였다.
마도구에 마법을 불어넣기 위해 마련 된 [부여].
박혀 있는 마정석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한 [증폭].
각 속성 마법마다 새겨져 있는 속성 룬어의 해석 방식. 방어막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역장], 회복 마법의 중심이 된 [생명].
유지. 부여. 증폭. 역장. 생명. 강화. 혼돈. 불. 물…….
본래라면 접하기 힘들 고위급 마도사들의 룬어. 그에 따른 해석과 사용하는 방식들. 테스는 이를 해석하고 익히고자 했다.
‘불의 룬어는 내가 아는 부분이 얕았어.’
‘아. 제대로 된 부여는 이런 식인가. 전에 마방구 연구가 실패한 이유가 이거였구나.’
‘유지 룬어를 변형하는 방식이라.’
해석은 수많은 궁금증을 낳았고. 동시에 그간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해결하는 계기가 됐다.
수많은 영감을 주는 마도사의 방식들이 그를 이끌었다.
용병 마법사로 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그. 그에게 있어 눈앞의 것들은 그를 이끌어주는 스승이었다.
부족하기만 한 그의 기초가 채워져 갔다.
알아가고 배워간다. 그러며 일정 이상의 수준에 오른 테스는 그제야 하나를 깨달았다.
‘교묘하기도 하지. 이번에도 제대로 빚진 거 같은데.’
그 앞에 쌓여 있는 마도구.
구동 방식엔 베빈의 안배가 있었다. 기초가 없는 테스가 기초를 쌓을 수 있도록. 기초를 넘어 상승의 경지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그 안배를 깨닫는 순간 테스는 두 가지를 동시에 느꼈다.
‘대단해.’
하나는 순수한 감탄이었다.
마도구 하나를 전수하고 그를 안배함에 느껴지는 베빈이 가진 경지의 깊이. 그에 대한 감탄이었다.
둘째는 도전 의식이었다.
그녀가 마련해 준 안배. 그 이상의 성과를 얻고 싶었다. 욕심이라 해도 좋았다. 본디 마법사란, 마법 앞에서 탐욕스러운 법이었으니까!
탐식하고, 탐닉했다.
갖고자 하는 욕망을 마음껏 표출했다.
테스만이 그러한 게 아니었다. 그 옆에 자리한 둘. 데브론과 레이즈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깨우침을 얻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제 알겠다. 무공이 묘리로써 풀어간다면 결국 마법은 룬어의 이해. 그 이해의 깊이를 결정짓는 것은……!”
머리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룬어에 대한 이해. 마력의 사용 방식. 주문. 마법진…….
그간 그가 쌓아 온 마법에 관한 흐름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깨달음!’
일생일대의 기회!
그는 스쳐가는 감각을 놓치지 않고 부여잡았다. 놓치지 않고자 마력을 구동했고. 떠오르는 심상을 확장하고자 의념을 집중했다.
“으음…….”
그가 떠오른 심상 아래로 침잠하는 건 순간이었다.
때 아닌 깨달음에 그의 주변 마나가 요동쳤다. 그 흐름을 읽어 들인 둘.
“헛! 문주님이…….”
“조용하게.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니까. 바로 지키도록 하세.”
둘 모두 마법사에게 지닌 깨달음의 무게를 아는 터. 둘은 놀람을 거두고 테스를 위한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
“…….”
연구실 가득 차 있는 건 셋의 작은 숨소리뿐이었다.
* * *
“아……!”
테스는 옅은 신음을 내며, 침잠된 의식에서 깨어났다. 깨어나고도 한참. 그는 자신이 얻은 힘을 갈무리하고자 했다.
‘서클이 생겨났다.’
본디 그는 4클래스의 마법사. 막 깨어났을 때, 다른 하나의 서클이 생성돼 있었다.
그가 무의식에 침잠된 사이 만들어진 서클이었다.
스스스스-
다른 네 개의 서클과 교차하는 다섯 번째 서클. 두터운 서클에서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은 요사스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미쳤군. 이게 깨달음의 효과인가.’
강렬함은 남은 네 서클도 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환골탈태로 강화된 서클이 재차 강화돼 있었다.
‘서로 연동하고, 알아서 조율하네.’
다섯 서클이 심장을 타고 돌며 연동되는 힘의 흐름은 강력했다. 그가 따로 조율하지 않으면, 그 힘만으로 주변을 동화시킬 정도였다.
도도하게 느껴지는 마력의 흐름.
그 흐름을 즐기며, 그는 깨달음을 통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것들을 계산하고 채득해 갔다.
위력을 시험하고자 일부러 마법을 쓸 필요도 없었다.
이번 깨달음으로 강화된 건 그의 심상(心想)!
확장된 심상은 그의 머릿속 안에 새로운 세상이 있게 했다. 오롯 그만을 위한 세상이고,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심상이었다.
그러기에 확장된 심상을 활용하면 마법 사용조차 필요 없었다.
그 위력을 심상 속에서 쉽게 가늠케 했다. 새로 떠오른 영감들을 심상 속에 쌓아 바로 활용할 수 있게 도왔다.
‘……이게 고위급 마도사가 가지는 심상이란 거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룬어에 대한 해석, 그 응용. 이 둘을 활용하는 거만으로도 마법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했다.
마법의 생성이라!
‘그 방식이 비록 마탑의 것과 다를지라도, 내 비전이라 생각하면 상관없는 일.’
진정한 마법사의 길에 이제야 올라선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전능감이 그를 전율케 했다.
그는 떠오르는 영감을 심상 한편으로 보내며 눈을 떴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레이즈와 데브론이 외쳤다.
“대성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둘의 눈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사심 한 점 없는 축하였다.
테스는 그를 받아들이며 주변을 살피었다. 새로 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전보다 더 깊게 느껴졌다.
마나의 흐름, 크기, 속성.
이미 전부터 느꼈다 했던 것들이 더 깊이 느껴졌기 때문.
‘기감조차 확장됐군…… 하, 무공과 마법의 결합이 이제 막 제대로 시작된 걸지도.’
단순히 바라봄에도 한 차원 다른 도약임이 확실히 느껴진다. 새로 태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만끽하던 테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다 그는 문득 한가질 잊고 있었던 걸 알았다.
“이 정도면 전에 못한 이해를 할 수 있을 듯 해.”
“오. 그 힘의 이해 말입니까.”
“맞아. 그 신성력인지 뭔지 모를 그 힘 말이지. 전보다 더 깊이 해석하다 보면, 또 얻는 게 있겠지.”
가능하면 전부를 해석하고 싶은 테스였다.
당장은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이 깨달음과 새로 얻은 심상을 활용하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해석이 될 듯 싶었으니까.
그에 성공만 한다면, 힘의 덩어리가 소모된 힘을 보충할 수 있을 터. 그때는 그가 다시 전에 본 신을 만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을 거였다.
테스는 그리 기대하며 품에 잠재웠던 힘의 덩어리를 꺼내고자 할 때.
그를 막는 존재가 있었다.
-뭘 하려든 잠시 미뤄야 할 듯하구나.
“음? 급작스레 무슨 말이지?”
물의 정령이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물의 정령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했다.
-전에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한 가지 나쁜 소식. 적어도 이곳에선 그를 막기 위한 선물을 주고 싶은데.
“어렵게 돌리지 말고 한마디로 해 봐.”
-곧 재앙이 닥친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