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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13화 (113/191)

제113화

챕터 13.

“저희 부족이 유목을 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네게 들어서 알고 있지.”

아직도 일부 야만인들은 유목 민족을 자처했다. 농업을 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가진 전통 때문이다.

전사의 순례라 불리는 길.

그 길을 돌며 움직이며 일생을 보내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길 사이, 사이에 있는 그들만의 유적지에서 시험을 받고 힘을 얻는다던가.

비욘은 자신이 시험을 합격하였고. 그에 따라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며 몇 번이고 이야기를 했었다.

‘꽤 자랑스러워했지. 그럴 만한 일이기도 하고.’

용병으로 의뢰를 수행하며 여러 곳을 떠돌고, 새로운 전사의 순례 길을 찾는 게 그녀가 가진 바 임무.

그런 그녀가 구함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 아니, 어지간한 문제가 생겼다 해도 너희 부족 정도면 처리가 가능할건데.”

“평소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문제는 새로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테스가 기억하기로 그녀가 소속된 부족은 대형 부족 중 하나였다. 그런 자들이 문제가 될 정도면 어지간한 전력으로 해결도 불가능했다.

“일이라?”

“예. 지난번 던전 사태가 저희 유적지들에도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거기다 그 주변도 몬스터가 들끓게 되었고요.”

“……으음.”

“아시다시피 저희 부족이 카르소니아와 마스키지언 사이를 움직이다보니,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더군요.”

던전 사태라.

그 단어를 다시 듣자 테스는 작게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법석 하나가 벌인 일 치고 여러모로 곤란하게 하는데.’

어지간해선 일에 끼지 않으려 했던 테스. 하지만 관련이 돼 있다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부족 영역 곳곳에 문제가 발생했고. 그 처리를 도와 달라? 야만인들은 어지간해선 도움을 요청하지 않지 않나?”

“예. 다른 자들이라면 몰라도 테스 님, 그리고 정확히 의선문이라 불리는 전사 집단은 저희 일을 도울 격이 있으니까요.”

“격이라…… 이거 재밌군.”

야만인인 비욘이 보기엔 의선문도 그와 비슷하단 건가.

‘하기는, 힘을 기르자고 떠도는 부족이란 거 자체가 신기한 집단이긴 하지.’

적어도 비욘 눈에는 그리 보이는 게 분명하다.

이 세계 전사 집단으로 취급받는 야만인. 그들에게 인정받는 건 테스에게도 꽤 신선한 느낌이다.

그러나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그와 관련이 있다 해도 일방적으로 도와주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도와주는 건 좋아. 그렇다면 그 반대급부는 없나? 이쪽도 이젠 쉽게 움직일 처지는 아니니까.”

“……으음. 그래서 미리 생각은 해 왔습니다.”

미리 준비라. 순수 야만인이던 비욘이 많이 변했군.

테스는 그리 생각했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만 해도, 머릿속엔 오롯 강함만이 새겨져 있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미리 준비를 해 올 줄이야.

테스는 놀람을 삼키며 물었다.

“뭐지?”

“의선문의 전사들은 유적지를 돌며 강함을 얻을 것이고. 더불어 이번에 제가 발견한 유적지도 탐색할 권한을 드리려고 합니다.”

유적지 탐사 권한인가. 거기에 새로 찾은 유적지라.

‘강해진 이유가 이거였구나.’

몇 년 사이 그녀가 강해진 이유를 알 만했다. 오러 유저에 겨우 턱걸이하던 그녀를 익스퍼트로 만들어 준 유적이라.

‘이 정도라면…….’

테스는 구미가 당기는 걸 느꼈다.

“내가 어디부터 해결해 주면 되겠나?”

허락의 의미. 그의 말에 비욘이 화색을 띠었다.

* * *

검이 갈대가 춤을 추듯 휘날린다.

연검이 아니고서야 강철로 만들어진 검이 낭창낭창 휠 리가 없다. 검의 주인이 그리 보이도록 만들 뿐이었다.

-키륵!

검이 휘며 트롤의 목을 도륙한다.

재생력만큼이나 두터운 게 트롤의 목. 제 목이 달아나면 특유의 재생력이 쓸모없는 걸 알기에 트롤은 제 목을 두툼히 보호했다.

그 목이 순식간에 달아난다.

쿠우웅.

목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 그걸 보고 놀라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특히 트롤이 나오면 내빼기부터 해야 하는 용병들로선 그 놀람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위언 용병단의 단장, 위언은 그 놀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보통 오러 익스퍼트가 되면 저 정도는 다 하는 건가?”

“되겠냐? 너도 오러 유저는 되잖아. 너가 익스퍼트 된다고 저게 될 거 같냐?”

위언의 놀람을 시어린이 받아 준다. 테스의 옛 동료였던 그녀도 얼굴엔 놀람이 가득했다.

“아니.”

“그럼 답을 알겠네. 저건, 저 의선문의 문파원들이나 배우는 비전인거야.”

“햐…… 나보다 나이는 한참 어린 거 같은데. 벌써 오러 익스퍼트에 저 정도 비전이라…… 시어린. 너도 예전엔 같이 다녔다면서? 뭐 배운 거 없냐?”

“있으면 내가 네 용병단에서 이러고 있겠냐? 내가 단장을 해 먹지.”

위언의 말에 시어린이 인상을 찡그린다.

정식 몽크가 됐다 해도, 괄괄한 성격은 어디로 가지 않은 그녀다.

사실 그녀가 가장 궁금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랑 같은 처지였는데. 대체 뭐냐고. 그리고 그분은 대체 왜…….’

같은 처지였던 테스의 변화. 몽크가 되며 들었던 몇 가지 주의 사항.

여러 가지가 떠오르며 그녀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져 간다.

혼란스러움을 잠재운 건, 새로운 목소리였다.

트롤의 목을 베고 바닥에 안착한 마이틀. 경공을 특기로 하는 의선문의 제자인 그가 위언에게 소리쳤다.

“트롤 처리했으니, 남은 것들 마무리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경지답지 않게 정중한 어조. 누구든 공정히 대하라는 테스의 가르침에 딱 맞는 태도였다.

어디 오러 익스퍼트가 용병에게 저리 정중할까.

보인 실력과 인품을 본 용병단원들로선 없던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이죠!”

“저희가 다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트롤 피도 한 방울도 안 남기고 처리할 테니, 마이틀 님은 쉬시죠.”

자연 용병들의 태도가 사근사근했다.

“으음…… 님이라뇨. 제가 한참 어린데.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아직 이 부분은 배우질 못해서요.”

“어이쿠야. 부탁이랄 게 있습니까. 자자, 가서 쉬시죠.”

“그럼 잠시 기운을 갈무리 좀 하겠습니다.”

“하핫. 오래 쉬셔도 됩니다. 자자, 다들 뭐 해. 어서 처리하자고. 마이틀 님이 맘 편이 쉬시게!”

“병은 내가 챙기지! 가자!”

의선문의 제자 마이틀. 그는 트롤을 처리하는 용병단을 지켜보다, 제 자리로 가 심법으로 기운을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트롤을 마무리하면서도 용병들은 그 모습을 흘끔흘끔 바라봤다.

강자를 동경하는 그들로선 자연스레 마이틀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단 말이지. 어떻게 저 나이에 저 경지에 이른 건지.”

“진짜 대단한 사람은 따로 있지. 저 사람을 키운 사람이 누구야?”

그러다 그들의 주의는 마이틀의 스승에게로 향했다.

“……한 사람이지. 어센션 자작.”

“그래. 그 테스, 아니 테스 님이라고. 그 분이 진짜 대단한 거 아니겠어?”

테스 어센션.

어센션 영지의 주인이자 강자. 마검사이며 오러 마스터 경지에 이른 그. 단순 강자에 머물지 않고, 강자를 키워내는 게 그였다.

그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몇 번이고 감탄을 할 수밖에.

감탄은 상당히 오래 이어졌다.

이번에 위언 용병단에서 장원을 개척하면, 그때 몇 명 정도는 제자로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욕심을 내는 자도 있었다.

서로 말도 안 된다고 하지만 기대감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제자들에게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햐. 대체 무슨 수를 쓴 건지. 듣기로 다른 제자들도 다 지금 활약하고 있다며?”

“미쳤다더라.”

테스가 의선문 제자를 파견한 곳은 위언 용병단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 요청이 들어 온 곳곳에 제자들을 파견했다. 명목은 실전 수련을 위한 외유였다.

그 수가 백이 넘는 의선문이었다.

그곳에서 각각의 제자들이 나와 벌인 활약은 온 곳곳으로 퍼졌다.

-에나라는 자가 최상급 경지일지도 모른다고?

첫 번째 직전 제자로 알려진 에나. 그녀는 비욘을 데리고 국경 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그녀가 가장 먼저 해낸 일은 비욘 부족의 구출.

사방에서 쏟아지는 리자드 맨과 변종을 상대로 큰 활약을 선보였다.

그 옆을 지키는 건 프로스였다.

-옆에 있던 프로스라는 제자는 정령사라던데?

-……그 귀한 정령사? 그럼 테스란 자는 정령사도 키우는 건가.

-프로스란 아이가 타고났겠지. 그런데, 그 기술이 워낙 신기하긴 하다더군.

-왜?

-일반 정령사의 기술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건 스승인 테스가 개발시켜 준 건가.

-그럴지도 모르지.

따로 배운 오행신공이 절정에 이른 프로스였다.

계약한 불의 정령을 이용해서, 불의 검을 사용하는 건 그가 가진 기술 중 일부.

실제 그가 가진 힘은 오행 신공을 통한 자연 친화력의 상승에 있었다.

불의 정령은 물론이고 타속성 정령들과 교류를 시작한 지 오래였다. 그중 바람의 정령은 몰래 계약까지 성공했을 정도.

그가 가진 힘의 전체를 드러내기만 해도 그 힘은 지금보다 몇 배는 될 터였다.

그걸 모르기에 그저 감탄만으로 끝날 뿐이었다.

제자들의 활약은 야만인 부족을 구하는 데서 끝나지만은 않았다.

테스는 모든 야만족 유적지의 정화를 원하였다.

곳곳마다 제자들이 파견됐다.

-마법사들도 경지에 이르렀다던데.

-걔들은 확실히 의외였지.

하이런을 위시한 마법사 제자들. 그들은 마나 홍수가 일어나는 곳의 정화를 맡았고.

-그 다론도 로그 메니랑 같이 던전 하나를 부쉈다지.

-유적이 아니라? 그 야만인들 거 말이야.

-그게 던전이 됐다더군.

속자 제자의 대표격을 맡은 다론 피터. 여섯 번째 오러 마스터인 그는 던전을 깨부쉈다.

야만인 부족의 순례 길.

그 곳곳에서 테스가 보낸 제자들의 활약이 발견됐다.

그뿐이랴. 테스로부터 교육받은 제자들은 단순 제 임무에만 시간을 할애 하지 않았다.

임무를 끝낸 제자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

“스승님이 아픈 자는 없도록 해야 한다고 했지.”

“이번에 우리가 도와줘 보자고. 스승님이 우리를 도와 주셨듯이 말이야.”

“좋지.”

몬스터로 고통 받는 작은 마을을 도왔다. 의술을 익힌 자는 지병으로 고통 받는 자를 치료했고. 도적단 무리에 쫓기는 상인을 구출했다.

제자 몇이 따로 모여 주변 마을을 괴롭히는 몬스터 부락을 파괴하기도 했다.

선행.

삭막하기만 한 이 세계에서 일어나기 힘든 기적이었다. 성국의 성직자들도 하지 않는 기적.

피부에 와 닿는 기적은 그 파급 효과가 클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의 명성이 치솟아 올랐고.

자연스레 제자들을 파견한 테스에 대한 명성도 치솟았다. 동시에, 그들이 살고 있는 어센션 영지를 찾는 유민들의 발걸음이 많아졌다.

수많은 방문자들 중엔 유민이 아닌 자들도 있었다.

-개척을 허락해 줬다면, 우리도 기회가 있지 않겠나.

-새로 제자를 받아들이실지도.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되는 법이지.

개척자, 방랑 기사, 제자 후보, 상인…….

각계각층의 존재들이 어센션에 모여들고 있었다. 이는, 테스의 영지가 한 차원 더 높이 발돋움 할 수 있는 자원이 돼 줄 터.

한데, 정작 그들을 받아주고 있어야 할 테스는 영지를 떠나 있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 새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대체 이 힘은…….”

전에 없던 새로운 힘을 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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