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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10화 (110/191)

제110화

챕터 10.

테스가 도달한 곳. 한 가지 원소로만 이뤄졌다는 정령계와 비슷한 형태였다.

곳곳이 물이었다. 물 외에 다른 모든 걸 배척하는 듯했다.

‘오행의 균형도 깨져있군.’

기운조차도 그러했다. 수기가 유독 강력했다.

그와 같이 왔던 물의 정령도 그 크기가 불어나 있었다. 수기를 머금은 거다.

-이런, 완전히 타락해 버렸나.

“누가? 정령이 타락이라도 하는 거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분명 타락해. 영겁을 이겨내지 못한 자들은 탐욕에 무너지는 법이거든.

영겁과 탐욕이라.

“쉽게 말해서 성장이 더디니까 욕심내다가 저 꼴이 된다는 거냐?”

-맞아.

테스가 찌르는 건 핵심이었다.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물의 거인이 서 있었다. 거인은 그와 계약한 물의 정령과는 다르게 그 형태조차 단순했다.

그러나 머금고 있는 힘은 결코 단순치 않았다.

“이곳의 수기를 전부 머금은 거 같은데.”

-네가 설치한 마법진, 아니 진법의 특성이 가두는 것이지 않더냐. 그에 갇힌 물의 기운을 탐하다 저리 된 거지.

“훔쳐 먹으려다가 배탈 났단 소리군.”

적나라한 테스의 표현에 물의 정령이 움찔했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가 머금게 만든 기운을 주인도 아닌 정령이 탐한 것이니까. 그리고 그 대가가 타락이다.

정령의 체계가 어찌 되어먹었는지는 몰라도, 테스로선 그 꼴이 퍽 우습게 느껴졌다.

-그으…… 네놈이…… 이곳의 주인인가.

“그래. 도둑으로 낙인찍힌 소감은 어떠하냐?”

-잘도 타락을 유도한 주제에 그런 소리를…….

“유도? 그게 뭔 개소리지?”

설명을 더해 주는 건 그와 계약한 물의 정령이었다.

-타락해서 정신 상태가 온치 못하다. 헛소리는 무시하도록.

‘그게 아닌 거 같은데. 정령도 뭔가 있다는 건가?’

테스는 물의 정령이 무언가 진실을 숨겼음을 느꼈다. 하나, 그녀가 말해 주지 않는 한 그 진실을 알아낼 방도는 없었다.

‘나중에 정령계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군.’

타락한 정령에게서 무언가 묻는 것도 무리였다.

-그르륵.

물의 정령 주제에, 억지로 물을 마시는 듯 힘겨워하는 타락한 정령이 이미 그에게 공세를 가하고 있었으니까.

차아아악-!

거대한 물의 거인이 몸을 움직이자, 그를 따라 물의 군세가 일어났다.

“우선 끝내고 이야기 좀 하자고.”

-기꺼이.

지금은 대화가 아닌 몸을 움직여야 할 때. 테스는 속도를 끌어 올리며, 동시에 군세를 향해 부딪침을 시도했다.

* * *

마무리돼 가고 있는 전쟁터 안. 몬스터 사체들을 수습하고 있던 데브론. 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제자 하이런이 놀라 물었다.

“스승님, 왜 그러세요?”

“저 유동이 느껴지지 않느냐?”

“예?”

“아직 저기까지는 닿지 않는 거로군.”

제자인 하이런의 경지는 2클래스 마스터. 데브론 자신은 4클래스였다. 그것도 5클래스를 바라보고 있는 마스터 경지에 가까웠다.

‘역시 아직 느끼지 못하는 건가.’

마력을 느끼는 수준 차가 있는 게 당연했다.

그렇다 해도 이 미칠 듯한 마나 유동을 느끼지 못한다니!

거칠게 맥동하는 이 유동이 어찌 안 느껴진단 말인가. 가만 느끼는 거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듯한데.

데브론으로선 몸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먼저 가 보마.”

“예!?”

데브론은 더 설명치 않고, 바로 몸을 날렸다. 테스가 날아간 산의 방향이었다.

고오오오-

그가 가까워질수록, 기운의 맥동은 커졌다.

5클래스, 아니 6클래스의 고위 마법을 부릴 때에야 저런 맥동이 느껴지는 걸까. 아니다. 이 건 그 이상의 맥동이었다.

흡사 마나 이상 현상이 벌어질 때야 비슷한 기운이 날뛰겠지.

그는 빠르게 달렸다.

그리고.

“오오…… 엘렐이시여.”

흡사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전투를 마주했다.

* * *

20미터에 육박하는 거대한 물의 거인.

그를 상대로 부딪치는 테스의 몸은 조막만 하기만 하다.

하지만 몸이 작다 해서 대응치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데브론이 바라보는 테스의 온몸엔 거대한 기운이 둘러져 있었다. 검을 쥔 자라면 하나같이 바라는 오러다.

단순 오러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오러 위에 덧발라진 기운의 정체를 데브론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력! 오러에 마력도 섞어 쓰고 있구나. 마검사여서 저게 가능한가? 아니지, 그럴 리가 없지. 비전이다.’

마력과 오러의 조화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두 조화. 데브론이 아는 상식으로선 절대로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오러를 다루는 것도, 마력을 다루는 것도 한없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

하나도 다루기 힘든데 둘을 다룬다라. 그것도 동시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

그러기에 두 기운을 다루는 마검사는 반쪽짜리 취급을 당하는 거였다.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둘을 다루다 모두 어중간해지니까.

그러나 테스는 그러한 상식 자체를 낱낱이 깨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마력과 오러. 둘을 두르고 거인과 부딪친다.

움직임 하나, 하나에 풍압이 이는 거대한 기운을 맞상대로 물러남이 없었다.

그는 되레 물의 거인을 압도하기까지 했다.

거인의 움직임을 막아냄을 넘어. 그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어디서 남았을지 모를 기운을 검에 실어, 거인의 가장 중요한 것을 느꼈다.

“핵을 깎아내고 있잖아?”

바로 핵이다!

인공 생물 골렘이 핵을 파괴하면 사망하듯, 세상에 현현한 정령도 핵을 부수면 부서지게 돼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핵은 곧 생명.

핵을 파괴하는 순간 그들은 죽음에 이른다.

타락하여 세상에 온몸을 드러낸 정령이라면 그 이상의 결과를 낳는다.

바로 존재의 소멸이다.

그러기에 정령은 핵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해서 보호한다.

거대한 기운으로 단단히 싸매고. 분열시키기도 한다.

그도 모자라 항시 핵을 움직인다. 적이 핵을 감히 공격치 못하게 하기 위한 조치.

‘그런데도 깎아내고 있다.’

그러한 정령의 교묘한 수법을 테스는 낱낱이 파괴하고 있었다.

핵을 싸맨 단단한 기운도 그의 검 앞에선 스러졌다.

핵을 움직여 테스의 공격을 피하려 해보지만.

“허튼짓이야.”

저 멀리 날고 있는 테스는 슬쩍 웃어 보이며, 금방 검로를 틀어 버렸다.

콰즈즈즉-

그러곤 베어 버린다.

-그아아아악!

“허접하긴.”

베여 버린 핵이 분열하며, 곳곳으로 피해본다.

하지만 그조차도 금세 테스의 기감에 포착된 듯했다.

후우웅- 후웅-

그의 검이 수십으로 쪼개지고. 쪼개진 하나하나가 새로 분열한 정령의 핵을 노렸다.

이를 바라보는 데브론으로선 상식이 깨지는 듯했다.

‘대체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인간이라면 저리 핵을 느끼는 게 불가능했다.

말이 핵을 찾음이지, 그게 쉽겠는가.

핵이 아닌 물의 거인 몸 전체에도 물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런 기운들을 뚫고, 투시하듯 찾아내야 하는 게 핵이었다.

단순 찾는 거 자체가 어려웠다.

찾는다 해도 문제다.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핵을 찢어발기는 건 찾는 거 이상으로 어려운 일!

그 일을 실시간으로 해내고 있었다.

데브론이 기염을 토하며, 신화 속 전투를 바라보는 사이.

전장을 수습하고 온 다른 자들. 테스의 제자들과 하이런도 놀란 눈을 하고 눈앞의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놀란 모습들이었다.

“스, 스승님?”

“저게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요.”

모두가 놀란 사이. 전투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밀려나는 물의 정령이 대응 수단을 바꿨다.

거대한 몸으로 테스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걸 느낀 듯, 온몸을 분열시켰다. 동시에 핵을 나눴고 물의 군세를 만들었다.

‘필사적이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몸을 널리 퍼트리고, 영역을 넓힌 거다. 일종의 영역화야. 저 구역 자체가 물의 정령이 지닌 영역이 된 거지.”

물의 정령은 제 영역을 공고히 했다.

구역에 대한 영향력을 늘림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내고. 그를 통해 테스를 압박하려 하는 게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에 대응하는 게 테스란 거였다.

“근데, 왜 공간 자체가 부서지고 있는 건데요? 대체 어떻게요?”

“……나조차도 모르겠구나.”

설명은 다른 이로부터 들려왔다. 에나였다.

“저건 검에 의념을 실은 거예요.”

“뭣?”

“검에 의지를 실은 거라고요. 베겠다는 의지. 단순한 듯 보이지만, 그게 먹히려면 한 가지가 꼭 필요해요.”

“설마…….”

의념. 의지. 그에 대한 지식은 데브론도 충분했다.

마법을 펼치기 위해선 마력에 의지를 싣는 게 그 시작이라 할 수 있으니까.

그게 검에도 될 줄이야. 아니 검에 되는 걸 넘어서, 에나의 말대로 한 가지가 더 필수적이었다.

“데브론 님이 예상하는 게 맞을 걸요. 물의 정령이 지닌 의지보다 테스님의 의념이 더 굳건해야 해요. 그래야 의념이 먹히니까요.”

“……허허.”

일개 인간이, 그 대상인 물의 정령보다 의지가 두터워야 했다.

자신의 의지로 누군가를 짓누르려면 그 이상의 의지를 지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게 말이 되나?’

타락했다 해도 물의 정령이다. 정령 자체가 수천, 수만 년을 살았을지 모를 존재다. 아니 분명 살아왔겠지.

그런 존재를 베어내는 의지라.

한 인간, 한 개체. 고작 수십 년을 살다 죽는 한 존재가 어떻게 그런 의지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를 지켜보는 데브론으로선 그저 묻고 싶을 뿐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살아온 거요?’

어떻게 해야만 그런 초인적인 의지를 지닐 수 있는 것이냐고. 그게 평소 그가 벽을 뛰어넘기 위한 필수적 조건이냐고.

그저 묻고 싶을 뿐이었으나, 그를 답해 줄 테스는 오롯 물의 정령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해 검에 실은 의념을 유지해갔고.

-어찌! 어찌 인간이!

거대한 군세를 유지하고 있던 물의 정령을 베어갔다.

하나며, 여럿. 동시에 수천이 되어 영역을 지배했던 물의 정령. 그 숫자가 수십씩 줄어갔다.

동시에 산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던 물의 영역이 줄어들어갔다.

천…… 백, 열, 하나.

군세는 줄어 결국 하나가 됐다.

거대한 육체를 지니고 있던 정령의 몸도 고작해야 인간만 한 크기가 됐다.

분열됐던 핵이 다시 모여, 몸통만 한 크기를 형성하게 되었으나.

-으아아아아!

물의 정령은 그 힘을 부릴 의지가 없었다. 그간 펼쳐진 테스의 검이 물의 정령이 지닌 의지마저도 베어 버린 결과였다.

손을 휘저으며 겁에 질려 내달리는 물의 정령.

-살려줘! 내 원한다면 네게 충성을…….

타락했다 해도 그 쓸모는 분명 있을 터인데.

“아까부터 말했잖나. 허튼 소리하지 말라고.”

테스의 검은 남은 정령의 본체를 향해 휘둘러졌다. 한 점의 망설임조차 없이.

드드드득-

귀가 아닌 영에 울리는 기괴한 소리가 남과 동시에.

-아아…… 아아아…….

몸을 구성하는 핵이 찢어져 버린 정령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 위, 테스로서 생각지 못한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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