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챕터 9.
“스승님! 준비 완료했어요.”
“드디어 함께 전투를 해보는군요.”
그의 제자들이다.
직전 제자의 중심엔 에나. 속가 제자의 중심엔 다론.
이 둘이 양축을 담당하는 진짜배기들이었다.
이들은 비대칭 전력이다. 테스의 지원에 가진 바 재능을 꽃피운 지 오래였으니까.
이들은 같은 비대칭 전력인 상급 몬스터를 상대할 예정이었다. 일종의 특수 병종끼리의 싸움이다.
“근접은 에나가, 마법사와 정령사는 프로스가 맡는다. 속가는 다론이 전부 맡되, 각자의 개성을 살려 주도록.”
“해낼게요!”
“명! 제대로 된 힘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믿어 보지.”
이곳에 있는 제자들 모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제아무리 초인에 가까운 힘을 지녔더라도, 상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한 끗 차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게 현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도, 모두 자신감에 찬 얼굴들이었다.
‘자부심을 가질 만하기는 하지.’
테스가 보기에도 이들이라면 강력한 전력인 터. 애당초 약하였다면 데려오지 않았을 터이니, 충분히 믿을 만했다.
용병단, 영지군, 의선문의 제자들.
처어억. 척.
각 축을 맡고 있는 이들이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고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 있던 영지전.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영지전 수준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렬된 진형!
그 완성의 중심에 선 테스는 마력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개저어언!”
테스가 크게 외치며,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쳤다. 쿵 소리가 나며, 앞에 자리하고 있던 하얀 막이 반응했다.
진법으로 만들어진 하얀 막. 몬스터를 가두는 장막.
스스스스-
그 장막이 스스로 몸을 열어젖혔다. 그 순간.
-크어어어엉!
-끼웨에엑!
진법의 막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내는 몬스터 떼.
그 수만 하더라도 천 단위!
장막 이전. 저 멀리 있을 몬스터의 수까지 감안하면 그보다 더 많을 몬스터들이 살기를 일으켰다.
그 자체로 일반인은 주눅이 들 만큼 강렬한 기세가 몰아친다.
그러나 여기 있는 자들 중 기세가 죽는 자는 없었다. 되레 몬스터의 기세를 물리치고자 기운을 끌어 올릴 뿐이다.
콰아아앙-!
기세와 기세로 부딪치는 것이 시작.
“전진하라!”
“명!”
“우와아악! 가자! 다 죽여보자고!”
테스의 명이 떨어지는 그 순간, 모두가 앞으로 내달렸다.
* * *
일어나는 전투의 그림은 명확했다.
‘이게 전투지! 전의 영지전이 이상했던 거고.’
총원이 대열을 맞춰 전진한다. 좌익의 용병군이 다소 흐트러져도 이를 바로 잡아주는 지휘관들이 있었다.
전진 사이를 기다린 듯 마법 전력이 포격을 시작했다.
화르륵-!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이 머리 위를 스쳐간다. 몸통만 한 화염이 몬스터에 닿는 순간 커다란 굉음이 터진다.
콰아앙!
-끼에에엑!
-켁!
화염구다.
코볼트 같은 하급 몬스터는 그대로 죽임을 당한다.
오크 같은 경우 막아 보려 반응했다. 팔을 들고 도끼를 면으로 바꿔 방어를 시도했다. 무리였다.
후두두둑-
화염구 파편이 터져 나가면서, 도끼 면을 때리며 녹인다.
조악한 도끼가 버틸 리가. 녹아 나간 사이로 터져 나간 열기가 오크의 살을 태워 버린다.
치이이익.
온몸의 살이 타들어간다. 몸에 구멍이 여기저기 났다.
용맹한 오크라도 이 상태로 전투 진행은 무리다.
녹색의 피가 주변으로 흩어지자.
-키에에엑!
-키킥!
코볼트 같은 작은 몬스터가 피 흘리는 오크의 뒤를 쳤다.
특이한 광경은 아니었다. 이들은 몬스터. 작은 틈만 보여도 아군을 잡아먹는 건 이들에게 일상이었다.
인간이란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있어 같이 합류했을 뿐이다.
애당초 서로 제대로 된 편을 먹지도 않았다. 테스가 펼친 진법에 있는 동안, 이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면서 버텨왔으니까!
인간이 맛있다만, 그보다 먹기 쉬운 피 흘리는 오크가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만족이었다.
콰즉- 콰즈즉-
코볼트의 이가 오크의 팔을 물어뜯는다.
뒤에서 지켜보던 트롤은 뼈째로 오크의 머리를 씹어 먹었다. 그러곤 재생력을 발동시켜, 온몸에 난 상처를 치유했다.
다른 몬스터들도 마찬가지.
일단 살아남아 같은 몬스터를 잡아먹는 순간, 상처의 다수가 치유됐다. 중상이 아닌 경상 정도는 포식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었다.
포식과 자가 재생.
몬스터가 강력한 인간의 적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
화염구로 인한 타격을 죄다 복구하기 전에 마법사들이 다시 나섰다.
“어쭙잖은 걸로 막으려고 하기는. 이 타 준비하라!”
데브론과 그의 제자. 그리고 마법에 눈을 뜬 아이들. 잘해야 2클래스. 제대로 된 마법을 날리기 힘든 경지.
하지만 이들은 제 몫을 할 수 있었다. 테스가 미리 준비해 놓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부적을 태우고, 영지와 공명하라!”
“명!”
부족한 룬어는 부족을 태워 메꾸고. 마력 또한 영지에 설치된 진법을 통해서 보충 받는다.
전투 마법사라 하기 부족한 2클래스의 힘이 급격히 상승하고.
이전에 쏘아졌던 화염구보다 더 거대한 불꽃이 피어오른다.
“화염 다음에는, 전류를 준비하라. 기회는 단 한 번이다!”
“명!”
화르륵- 즈즈즈즉-
마법이 준비되고. 재차 저 위로 날려 몬스터들에게 작렬한다.
이들이 해야 할 최우선의 일은 충돌 전, 적의 전력 약화.
콰아앙! 쾅!
-켁
집중된 마법을 통해, 몬스터 전력을 착실히 깎아 먹는다.
“온다아!”
“곧이야! 마법사들은 뭐 하나!”
준비된 마법사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 포격만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부여된 임무 하나. 그것은 대량의 부여 마법이었다.
공격 마법을 날렸던 마법사들이 마력을 추스른다.
“마력 끌어올리고! 쏴라!”
마력을 추스르자마자 그들은 영지군을 향해 마력을 날렸다.
철컥. 철컥.
쇳소리를 내며 전진하는 영지군의 몸에 쏘아진 마력이 안착한다.
“힘 부여. 민첩 상승. 근력 강화. 완료했습니다.”
“좋아! 잘했다.”
영지군에 마련된 장비 중 일부는 마법 물품. 정확히 마법사의 마력이 부여됐을 때, 버프가 작동하도록 하는 반쪽짜리 아티펙트다.
테스에게 영감을 받은 레이즈가 마련한 장비 중에 하나.
지금은 영지의 표준 장비 중 하나가 됐다. 평소에는 작동도 하지 못하는 아티펙트이나, 마법사의 마력이 부여되면 반쪽이 채워진다.
그리고 그 반쪽이 채워지면.
쿠우웅. 쿵.
“저 미친, 것들은 약이라도 먹은 거 아냐?”
옆에서 같이 달리던 용병단들이 놀랄 만한 속도를 선보인다.
어디 속도뿐이랴.
근력, 민첩성, 재생력. 어느 하나 강화되지 않은 게 없었다. 영단을 만들 때 영감을 받았던 연금술사 레이즈. 그가 만들어낸 물품의 힘이었다.
포격 이후 강화.
그 짧은 사이 몬스터를 살라먹고.
“저쪽은 신경 그만 써. 이쪽도 온다!”
“죽여!”
양측은 부딪친다.
개개인의 힘을 믿고 싸우는 용병.
그들과 달리 중앙과 우익을 지키는 병사들의 움직임은 절제돼 있었다.
각 50명이 양가창법에 맞는 진형을 형성. 이들 열이 모여 각 500명이 하나의 군세가 돼 움직였다.
“전열, 개진!”
“명!”
-끼웩!
푸우욱. 푹.
선두의 병사들이 창을 내지른다. 순식간에 십여 번 창을 내질러 눈앞의 몬스터를 사살. 온 힘을 다해 찔러 넣는 창의 기세는 거세기만 하다.
그 대가로 창을 쥔 병사는 순간 지쳐 버린다.
거친 움직임에 순간적으로 호흡이 가팔라지고. 아끼지 않고 쏘아낸 내력 덕에 단전은 허탈함이 느껴질 정도로 비어 버린다.
틈이 만들어진다. 그 틈을 메꿔 버리는 게 바로 진형이 준 힘이었다.
“선두 교대, 후열 앞으로. 나머지 대기!”
테론의 명령에 맞춰 선두의 병사가 뒤로 빠진다.
잘 정련된 기계처럼 후열이 튀어나오며, 재차 창을 내지른다. 튀어나오면 얻은 가속의 힘을 적을 찌르는 데 사용했다.
후우웅- 후웅-
거칠며 빠른 속도.
-키익!?
지쳐 버린 선두의 틈을 본능적으로 노리고 오던 몬스터들. 그들의 몸이 재차 날아드는 창에 꿰뚫려 버린다.
살이 찢어지고 다리가 으스러진다.
우우웅-
진형의 중앙을 지키는 지휘관급은 아예 오러를 일으켜 버렸다. 잠시라도 틈을 노리고 달려들 몬스터를 베어 버리기 위함.
버프. 잘 훈련받은 병사. 정련된 진형.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몬스터 떼를 압살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몬스터는 두세 걸음씩 물러났다.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곧 죽음이 닿으니까.
가히, 일방적 학살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의 전투.
“전진! 쉬지 말고 전진하라!”
병사들은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내딛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처어억. 척.
오롯 전진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사명처럼 움직였다.
콰즈즉- 콰즉-
죽이고. 전진하고. 교대를 하며 적을 잘라 나가던 병사들. 그들의 걸음이 잠시 멈출 때는 이변이 벌어질 때뿐이었다.
-크허어엉!
산의 제왕 오우거. 트롤. 외뿔을 내세운 벨러트…….
상급 몬스터가 나올 때, 병사들의 발걸음은 멈춰 섰다.
상대를 못해서? 그럴 리가. 다소의 희생만 허락된다면 테스군은 상급 몬스터라도 상대할 수 있다.
그들의 주인인 테스가 그런 희생을 허락지 않았기에 멈출 뿐이었다.
상급 몬스터를 상대할 자들은 따로 있었다.
“프로스, 불의 정령으로 지져 버려!”
“알겠어요. 트롤은 내가 상대할 테니, 에나는 오우거를 상대해 줘요.”
“이야. 이거, 오러 마스터나 돼서 밀릴 수는 없잖아? 모두 뒤를 따라 오라고. 우린 저 대가리 많은 트리플 헤드 오우거를 잡는다.”
“알겠습니다!”
바로 의선문의 제자들이다.
처음부터 특수 병종을 자처하고 있는 이들. 이들은 상급 몬스터를 상대함에 물러남 자체가 없었다.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버프도, 지휘관급의 보호도 필요 없었다. 하물며 진형조차도 따로 형성치 않았다.
푸우우욱-
검을 쥔 이들은 홀로 진형과도 같은 검을 펼쳐낼 수 있었다.
정령이나 마법을 다루는 자들도, 제 한 몸은 건사할 수 있는 움직임을 펼칠 수 있었다. 오죽하면 약학을 배우겠다고 나선 이소프조차도 생각지 못한 한 수를 보였다.
치지지직-
그, 한 수. 바로 독.
테스로부터 만독공을 전수받은 그녀의 독은 지독했다.
-크롸라락!
오러가 아니면 녹아드는 법이 없다는 바질리스크의 가죽마저 녹여 버렸다. 그녀가 펼쳐낸 독이 오러 만큼의 능력을 가졌단 의미!
‘과연 스승님이 주신 독이야.’
이소프는 그 독의 힘이 자신의 것이 아닌, 독을 준 테스의 것이라 여기고 있다만.
이는 반만 맞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이런 독을 다룰 능력이 없었더라면, 처음부터 테스는 이 독을 주지도 않았을 터.
그녀의 능력이 되기에 그에 걸맞은 힘인 거였다.
다만 테스는 그런 그녀의 재능을 살려 주고 성장 속도를 끌어 올렸을 뿐이다.
그녀만이 특별한 게 아니었다.
“너는 뭐 하냐?”
“아예, 뜯어 버리려고.”
“와우. 오우거를 힘으로 상대한다고?”
테스로부터 각자가 가진 재능을 개화한 지 오래다.
누군가는 괴랄한 근력을 또 누군가는 검법을 사용한다. 일부는 손을 사용한 권법으로 몬스터를 패대기치기도 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상급 몬스터를 상대로도 이들은 밀리는 법이 없었다. 되레 압박했다.
‘좋구나, 좋아.’
이들을 키워내고. 전투를 진행케 만든 테스로서도 만족스러울 그림이었다.
중구난방이 아닌, 잘 만들어진 한 편의 전장에 그로선 흐뭇했다. 이 막돼먹은 세상에 진짜 전투 방식을 가져왔다 자부해도 될 정도니까.
그는 저 위에서 전투를 바라보고, 즐기었다.
여차하면 나서려던 생각조차 지우려 했다.
하지만, 역시 전쟁이라 하는 건 생각지 못한 변수가 툭툭 튀어나오는 법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될…… 아니네.”
-이런 걸 말이 씨가 된다고 한다지? 저쪽에서 느껴진다. 산 쪽이야.
“너도 느꼈나.”
-정령인 내가 느끼지 못하면 이상한 일이겠지.
전장에 넓게 펼쳐 놓은 그의 기감.
그곳에 예상치 못한 존재가 그의 기감을 간질이고 있었다.
‘고작해야 오우거 따위가 아냐.’
그가 아니고서야 상대키 힘들 몬스터.
단순히 상급으로 나뉘는 수준이 아닌, 그 이상의 존재가 그의 기감에 잡혔다.
전율스런 존재감이 느껴진다.
“가야겠네.”
-이번은 나도 도와주지. 그게 내 의무 중 하나니까.
그곳을 향해 테스는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