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챕터 8.
“많군.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삼 일 전부터입니다. 한두 마리씩 늘더니 어제부터는 십여 마리 단위로 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배고?”
“네. 위험한 상태라 보고 영주님부터 찾았습니다.”
“잘했다.”
하얀 막에 의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성벽 위.
몬스터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성벽. 그 위에서 테스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키이이익.
-케엑!
고블린, 오크, 코볼트. 이 세계서 많은 수를 차지하는 몬스터들. 하얀 막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응하고자, 병사들이 나섰다.
“영주님께서 보고 계신다. 모두 준비.”
“준비!”
처어억. 척.
양가창법이 수위에 오른 병사들. 창을 꼬나쥔 그들의 기세는 강렬했다. 진형이 형성되자마자, 병사들은 달려 나갔다.
“전진!”
-키에엑!
발을 구르며 몬스터를 향한다.
피에 굶주린 몬스터가 병사들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콰아앙-!
그대로 부딪치는 양측. 심장과 폐가 꿰뚫린다. 일방적으로 뚫리는 쪽은 몬스터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테스로부터 훈련받은 병사들이 고작 하급 몬스터에 당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홀로 둘, 셋도 상대가 가능한데 숫자까지 엇비슷하다.
이길 수밖에.
-켁.
심장을 꿰뚫리면 그대로 절멸. 폐가 뚫린 채, 비명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몬스터에겐 뒷열의 이 차 타격이 가해진다.
투우웅-!
대가리를 터트려 버린다.
몬스터의 목숨을 노리는 병사들은 집요했다. 한 수에 치명적 일격만 담고자 했다.
그 전투 방식이 테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과연…….’
절도 있는 병사들. 쓸려나가는 몬스터.
치열해져 가는 전투를 바라보던 테스. 그의 귀에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가 훈련한 녀석들입니다. 저들이 삼 차로 받아들인 병사들이죠. 어떻습니까?”
“투자한 값을 제대로 해 주는데. 잘했다.”
“감사합니다!”
지휘관, 에언트. 테론과 같이 들어왔던 자 중 하나. 지금은 백부장이 된 그의 얼굴엔 자부심이 실려 있었다.
그의 얼굴이 환희로 물든다. 테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에 대한 환희겠지.
테스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곤, 다시 아래를 살폈다.
그 짧은 사이, 전투는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끼웨에엑!
마지막 몬스터 코볼트가 죽어 버린다.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시체들을 한 대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능숙한 움직임으로 필요한 부위들을 떼어낸다. 쓸모없는 나머지는 수레에 실었다. 소각장에 가져가 태울 게 분명했다.
병사들이 처리한 몬스터만 하더라도 50여 마리.
한 마리당 2실버의 가치만 매겨도, 순식간에 1골드의 수익은 올린 셈이다. 병사들의 운용비는 고정비로 나가고 있으니 이만으로 상당한 이득이 될 터.
새로운 수익에 목마른 귀족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만한 사냥이었다.
당장 저 위에 있는 영지 페넌만 해도 그리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몬스터 부산물을 특산물처럼 판매하고 있었다.
다만 이미 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테스로선 별달리 흥분되는 일은 아녔다.
되레 이걸 문제로 느꼈다.
“하루에도 이런 전투가 최소 십 회는 벌어집니다.”
“열 번이나 말인가?”
“예. 교대로 움직이곤 있지만, 아시다시피 다른 곳의 치안도 맡아야 하는 게 병사들 처지이지 않습니까.”
“흐음…… 한계가 곧 오겠군.”
“일방적 전투라도, 피로도는 상당하니까요.”
병사도 결국 사람이었다. 계속된 전투에 시달리면 정신이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심한 경우 미쳐버릴 수밖에 없었다.
테스는 그런 자들을 상당히 많이 봤다.
‘괜히 용병들이 제정신이 아닌 게 아니지…….’
용병이다.
밥값을 한다 하는 용병들 중 다수는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 있었다. 전투가 주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니까.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이대로 계속해 전투에 내몰다가는 망가질 터였다.
문제는 저 진법 안의 산맥 상황.
‘내가 던전에 다녀오는 사이, 꽤 많은 몬스터들이 모였을 거란 말이지.’
많은 몬스터가 진법 안에 존재할 거다.
그뿐이랴, 강력한 개체가 몇 마리 있을지도 몰랐다. 무려 울픈 산맥에서 내려온 몬스터들이니 확실하다.
“울픈 산맥 몬스터를 완전히 절멸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저 안에 갇힌 것들은 한 번 쓸어주셔야 합니다.”
“후음…… 장기전보단 단기전으로 가잔 거군.”
“네. 한 번에 끝내 버리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습니다.”
백부장의 제안은 제법 타당했다.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테스였다. 그는 턱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당장, 영지군 중 여유 전력이 얼마나 되지?”
“총원 2500명. 이 중 영지를 순회하며 치안에 힘쓰는 자가 800명. 훈련받는 자가 500명입니다. 여기서 잠시 쉬어야 하는 교대인원 200을 빼야 합니다.”
당장 쓸 수 있는 영지군은 1000명이란 건가.
‘이건 안 좋은데.’
현재 그의 영지 인구는 2만 명을 넘은 지 오래. 그중 10% 이상을 영지군으로 뽑아 버린 상황이다.
불균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 세계서 이 정도 병사 비율은 당연한 수준. 몬스터와 주변 영지 위협을 생각하면 이도 모자라다 할 정도다.
상당히 많은 자를 부리고 있는데, 아직도 부족하다.
완벽한 승리. 피해가 없을 승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전력이 필요했다.
압도적 전력으로 한 번에 몰아붙이는 게 최상의 결과를 낳는 법이었으니까.
“안에 있을 몬스터를 생각하면 당장 용병이라도 불러들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남부로 빠져있지 않은가.”
“그래도 몸값을 올려주면 꽤 오기는 할 겁니다.”
“문젠, 그렇게 데려와도 제대로 된 활약을 해줄 수 있느냐는 거겠지.”
“그도 그렇군요. 하면, 훈련병들을 데리고 올까요?”
“당연하다. 완벽하진 않아도 돼. 실전을 겪다 보면 그들도 강병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저희도 오래전에 그리 실전을 겪고 강해지긴 했죠. 이해했습니다.”
훈련병을 끌어 와도 수는 당장 가용 병사는 1500 정도다. 쓸 만한 용병대 둘, 셋을 고용해도 여유 전력은 1800 정도나 될까.
‘이걸로도 부족해.’
일개 영지가 가질 전력은 확실히 뛰어넘는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는 테스였다.
‘이번 전투도 내가 끼기야 하겠다만…… 나 외에도 특수 전력들이 더 필요하겠는데.’
정규군. 그 위에서 더 활약해 줄 전력이 추가로 필요했다. 이를테면 페넌의 기마대 같은 것들이나 기사단과 같은 것들.
인간보다 강력한 개체를 상대할 땐, 그런 강력한 존재가 필요했다.
‘……가만? 없는 게 아니었잖아. 마침 실전 훈련도 필요하던 터인데, 잘 됐어.’
테스의 머리에 번뜩 떠오르는 전력들이 있었다.
“어쩌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예?”
방법이 떠올랐으니 당장 움직이는 게 당연한 터.
“금방 알게 될 테니. 토벌을 준비하게나.”
“명!”
테스는 곧바로 토벌 준비를 명령했다.
* * *
전투 준비 속도는 빨랐다.
영지 곳곳에 퍼져 있던 영지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영지 주변에서 활동하던 용병단 셋이 그의 부름에 답해 찾아왔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을 한 자도 있었다.
“시어린. 네가 웬일이냐?”
“테, 테스!? 소문이 진짜였다고?!”
“무엄하다. 어딜 감히, 영주님에게 그런 말버릇을…….”
“테론, 괜찮다. 옛 인연 중 하나니까.”
“명!”
아이언 랭크 시절에 그를 봤던 시어린. 길드 본부 앞을 지키고 있던 그녀가 용병단에 속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몽크가 된 건가.’
지난 몇 년 사이 그녀도 성장을 한 듯, 느껴지는 기세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정식 몽크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는 분명 신성력을 다룰 줄 알았다.
테스 또한 오랜만에 보았으니 반가운 바. 하지만 경계를 늦추진 않았다.
‘성국에서 보낸 끄나풀일 수 있으니, 주의를 해야겠어.’
그녀에게 은밀히 표식 마법을 날려두었다.
그 외에도 전에 봤던 많은 인연들이 이번 의뢰에 찾아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길드를 지키는 일은 끝이고?”
도시 지넬의 용병 길드를 지키던 울란. 그를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못해 먹겠더군요. 거기다, 여기도 슬슬 용병 길드가 하나 생겨날 거 같아서 그걸 보고 왔습니다.”
“용병 길드라…… 나쁘진 않지.”
이참에 울란은 그의 영지에 자리 잡을 생각인 듯했다.
그의 영지 규모가 늘어나니, 곧 길드 지부가 생길 터. 그 틈을 노려 간부라도 되려고 하는 거겠지.
‘야만인치고 수완이 좋단 말이지.’
야만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몇 년간 용병으로 굴러먹은 테스에게 옛 동료라 할 자는 많았으니까.
그중 또 다른 야만인도 있었다. 바로 비욘.
전에 영지전에서 테스에게 흥미를 끌었던 자다.
영지전 당시 테스론의 표범 소리를 듣던 비욘이다. 테스론에 자리를 잡을 거라 여겼는데. 웬걸, 방랑 기사가 돼 찾아왔다.
“자리를 잡지 못하는 취미는 여전하구나, 비욘.”
“해야 할 업이 있으니까……요.”
“버릇없는 거도 여전하고.”
“헹. 사람이 바뀌면 죽는다는 말 모르십니까? 이쯤 존대하는 거도 제 최선입니다.”
괄괄하기만 한 비욘. 방랑 기사 자리에 올랐어도, 오랜만에 본 비욘은 테스의 기억대로였다.
“이해하지. 근데, 네가 여긴 웬일이지? 꼭 내 의뢰가 아니어도 갈 곳은 많았을 건데.”
“업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작은 부탁…… 아니 청을 드리려고도 왔습니다.”
“뭔데?”
“의뢰가 끝나면 말씀드릴까 합니다.”
“후음…… 뭐, 좋다. 나쁜 게 아니라면 최대한 들어주지.”
“감사합니다!”
비욘을 제외하고도 몇 명의 옛 동료들이 보였다. 그가 정착해 움직인 지역이 이 근방인 만큼, 많은 동료가 있었다.
“커흠…….”
“흠…… 흠…….”
전에 가깝게 테스를 느끼던 동료들. 이제는 테스를 어렵게 대하고 있었다. 그만큼 저들과 테스의 상황이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게 됐다는 거겠지.
테스는 오랜만에 본 면면들을 살피며 기감을 던졌다.
스스스-
‘생각보다 쓸 만들 하잖아?’
결과는 놀라움이었다.
다들 기대 이상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비욘의 경우 어지간한 오러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
‘좌익은 이들에게 맡겨 줘도 되겠어. 어설프게 전략을 주입해 봐야 알아듣지도 못하겠지. 한쪽이라도 맡게 하면 돼.’
테스는 이들에게 좌익을 맡게 하도록 결정했다.
이전 영지전에서도 겪었듯, 이들에게 전략을 주입하는 건 불가능한 일. 그래도 가진 전력은 상당하니 한 축을 담당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전략의 핵심을 맡을 자들은 따로 있었다.
“총원 1500. 영주님의 명을 받잡고 달려왔습니다.”
“잘했다, 테론.”
충성심으로 눈을 빛내는 테론. 그가 이끄는 영지군. 그들이 바로 이 전투의 주된 전력이었다.
이들은 양가창법을 익혔고. 병진을 짤 줄 알았다.
테론의 지휘 하에 있으면서 움직이면 같은 인원이라도 더 큰 힘을 낼 터였다. 지휘관급들은 어지간한 기사 수준은 되었으니, 든든하기만 하다.
“너희가 중앙과 우익을 맡는다.”
“명! 제대로 된 전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래.”
이들이 남은 두 축을 맡아줄 거였다.
고작 장원 하나로 시작했던 그가 몇 년 만에 갖춘 전력이라고 하기엔 뛰어난 수준. 그런 영지군도 진짜배기는 아니었다.
테스가 이번 토벌전을 할 수 있게끔 한 진짜 전력은 따로 있었다.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