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챕터 7.
처음 그를 방문한 건 남부의 귀족들이었다. 정확히 그들의 자제들.
“아직 속가 제자를 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말씀하신 기부금은 충분히 챙겨 왔습니다.”
“아, 저희는 돈 대신에 따로 마법 재료들을 챙겨왔습니다.”
그들은 그득하게 준비해 왔다.
바로 테스에게 바치기 위한 교육비였다.
말이 교육비지 일종의 공물과도 다름없는 것들.
타 귀족에게 꿀리지 않겠다는 마음에서일까. 저들은 경쟁하듯 교육비를 챙겨왔고, 그 가치는 상당할 정도였다.
“영주님, 이 정도면 일 년 치 예산이 추가된 셈입니다.”
“이제 시작 아닌가. 매년 저들이 가져오는 게 저만큼은 될 건데.”
가만 셈을 하던 제리코가 놀랄 정도였다.
“허어. 매년 말입니까?”
“그래. 대신 저들도 챙겨주긴 해야 해. 영약을 준다든지 해서 성장을 시키긴 해야 하니까.”
“그래도 남는 장사로군요.”
그의 말대로 남는 장사였고. 제리코는 이 남는 돈들을 전부 영지 발전에 돌렸다.
“이 정도면, 전에 말씀드렸던 학교 설립도 충분히 가능하겠습니다. 문파 수준은 못 되어도, 기초 교육은 다 할 수 있을 정돕니다.”
“아카데미 말인가?”
“네. 기사 아카데미에 마법사도 만들어 볼까 합니다. 어센션 영지민들 중 재능을 개화한 자가 많으니까요.”
“그러도록 해. 제자 중 일부를 선생으로 초빙해도 좋고.”
“아! 그러면 돈이 더 남겠군요. 후후. 제대로 된 곳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새로 제자가 되겠다고 찾아온 자들을 통해 영지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러한 바람을 가져다준 귀족 자제들.
테스는 이들을 순수하게 무에 대한 열망으로 찾아왔다 여기지 않았다.
제 자식도 혼맥을 위해 사고파는 자식들이지 않은가.
‘하여간 귀족들이 계산이 빨라.’
저들이 제자가 되겠다 찾아온 이유? 뻔하다.
계산을 끝낸 거다.
귀족이 서로의 가문을 잇는데 가장 이득 되는 건 결혼.
즉, 혼맥이다.
그러나 혼맥으로 서로를 잇는 건 수가 한정되는 한계가 있었다.
많으면 수십 명의 자식을 가진 게 귀족이지 않은가. 그런 그들이 방법을 찾은 거다.
모두가 테스의 제자가 돼서 사제지간이 되면, 없던 인맥도 만들어지는 법이니까.
‘그러자면 공물처럼 바치는 제물 정도는 별거 아니게 되는 거지.’
없던 제물이야 만들면 될 일이니, 저들 구미에 딱 맞는 방법이다. 당장 제자로 들어온 자들의 면면만 봐도 가문의 후계자는 적었다.
잘해야 둘째, 심할 경우 열 번째 자손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테스로선 저들의 계산이 딱 끝났다 할 수밖에.
‘하여간 재미있어. 중원이나 여기나 명문가라는 것들은 항상 이런 식이니까. 뭐, 그렇다 해도 대충 가르칠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테스는 저들을 설렁설렁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저들도 제자가 되었으니까.
테스는 새로 들어온 제자들을 모았다. 그 수가 총 72명. 대다수 남부의 귀족 자제들로 이뤄져 있었다.
“너는 이미 수련을 했구나. 왼편으로 가라.”
“넵!”
“흠…… 너는 무공이 아니라 마법에 재능이 있는데? 오른편이다. 그리고 너는 중앙으로.”
테스는 이들을 재능에 따라 찢어 나눴다.
각기 무공과 마법에 재능이 있는 자를 나누고. 그 둘에 재능이 있는 자를 또 따로 나눴다. 몇몇은 특별한 혈통을 타고나 있어 그들도 따로 나눴다.
귀족 자제들이라서일까.
‘잘 먹고 잘 자라서 그런가. 기초는 다들 잡혀있네.’
기초적인 수련을 시킬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 중 몇몇은 오러 연공법을 익히고 있기까지 했다.
테스는 제자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러며 머릿속으로 각 제자들을 어찌 가르쳐야 할지를 가늠했다.
계산은 순간이었다. 최적의 수련 방식이 그의 머릿속에서 완벽하게 그려졌다.
계획은 짜여졌으니 실행해야 할 때.
“바로, 내일부터 수련을 시작하도록 하자. 오늘은 정식 제자들이 의선문의 문규와 정신을 가르쳐 줄 테니, 잘 숙지하도록!”
“옙!”
단 하루의 말미를 주는 것으로, 테스는 의선문의 속가 제자 2기를 새로 받아들였다.
* * *
1기의 수련생들과 다르게 2기는 그 규모가 더 커진 터.
테스는 기초적인 수련은 정식 제자와 2기 속가 제자에 맡겨 놓고서, 대신 그는 그만이 해 줄 수 있는 걸 준비해 줬다.
바로 영약이다.
다양한 자들이 들어온 이상 이전처럼 일관된 영약을 줄 순 없었다.
“각 체질에 맞춰서 약을 주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게 되는 겁니까? 저야 여러 경험을 하니 좋습니다만은…… 가능성은 모르겠습니다.”
“충분히 있어.”
이 세계는 보약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아파서가 아닌 몸을 보(補)하고 기력을 보충한다는 개념 자체가 적었다.
그를 돕고자 나선 레이즈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체질이란 게 있지. 이 체질을 넷이니 여덟이니 나눌 필요는 꼭 없네. 그조차도 편의를 위한 거고, 실제는 개인마다 다르거든.”
테스는 이해를 위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자네도 몇 번 보지 않았나. 평상시도 열이 많은 자들이나, 몸이 냉한 자들. 그런 게 체질이야.”
“아아. 그걸 체질이라 한다면, 이해는 갑니다마는…….”
레이즈는 그제야 이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전부를 이해하진 못 했다.
“쉽게 말해 그런 걸 더 자세히 파고들어 가는 게 시작이야. 심법을 이용해서 기운을 읽어 들이고, 그를 약에 적용하는 거지.”
“불의 기운을 타고난 자에게는 불을 더 보태 주거나 하는 식으로 말입니까?”
“그래. 같은 기운을 보태 주는 것도 방법이고. 불이 타오를 수 있도록 나무의 기운을 영약에 심어 주면 효과는 배가 되겠지.”
“하…… 그런 식으론 생각도 못 해 봤습니다!”
레이즈에겐 새로운 세계였다. 그로선 이런 개념을 생각지도 못한 터.
그러더니 그는 잔뜩 흥분을 해 버렸다.
“이를 연금술에 적용을 하면…… 굳이 모든 걸 바꿀 게 아니라. 아아, 이거! 새로 적용할 것들이 넘치잖습니까!? 잠시,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뭔가 떠오르는 영감이 있기라도 한 건가.
영약을 만들겠다고 연단로에 나선 테스를 돕겠다던 그가 휑하니 자리를 떠나 버렸다. 무언가 영감을 받으면, 그에 푹 빠져 버리는 레이즈다웠다.
“허, 참…….”
테스로서는 어이가 없을 지경.
하지만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그가 지닌 속성 중 하나는 마법사였으니까.
그도 연금술사인 레이즈와 비슷하게, 영감이 떠오르면 몇날 며칠이고 푹 빠져 있는 경험이 많지 않은가. 이해치 못하는 게 이상했다.
다만, 일손이 하나 줄어 버린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거, 이리되면 나 혼자 해야겠는데. 할 일이 많아지겠네.”
테스의 예상보다 몇 배는 더 일을 해야 할 듯 보였다.
* * *
체질에 맞는 영약을 만들어 내는 작업.
테스는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일반적인 녀석들은 오행환을 강화시키는 걸로 해야겠다.”
기존에 있던 영약 오행환을 강화시켰다.
이는 쉬웠다. 이전에 얻지 못했던 재료들을 몇 개 첨가하는 걸로 충분히 약효가 강화되었으니까.
‘제자들에게는 이번 강화판을 주고. 이번에 받아들인 녀석들에게 기존 버전을 줘야겠군.’
대다수의 제자들은 이 강화된 오행환을 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약효가 족히 세 배는 강화되었으니, 이를 흡수하는 걸로도 성장 속도는 꽤 올라갈 터.
“슬슬 답보 상태에 있는 녀석들도 벽을 뚫는 데 도움이 되겠지.”
기존 제자들에게는 속도를 더해 줄 게 분명했다. 이번에 받아들인 제자들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겠지.
문제는 이 다음이다.
“특이한 녀석들이 꽤 있단 말야.”
이 세계의 인간들은 순수 인간들이라 보기 힘든 자들이 많았다. 특히 귀족의 경우 타 종족의 피가 옅게 흐르는 녀석들이 꽤 있었다.
일종의 혼혈이다.
‘악마, 드워프, 천족으로 추측되는 녀석도 있고. 몬스터는 생각보다 더 특이해.’
그들이 혼혈이 된 이유가 뭘지는 그도 몰랐다. 관심조차 없었다.
테스가 관심을 가진 건, 이들에 걸맞은 약을 만들어 내는 것!
중원에도 없던 자들. 그들의 체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약을 만들어 내는 건 그에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동시에 큰 흥미를 갖게 하는 새로운 작업이었다. 그는 언제고 도전을 마다 않는 자였으니까.
그는 바로 제작에 착수했다.
각 제자들의 속성을 파악해 냈고.
“에랑트란 놈이 마족 피를 타고났었던가. 그럼 이번에 얻은 핵을 이용해 봐야겠어.”
마족의 피를 타고난 자에겐 그와 관련된 약을 만들어 줬다. 데몬 던전에서 얻은 재료가 충분했기에, 재료 수급도 걱정할 게 없었다.
‘체트, 그 녀석은 드워프의 피를 타고났지. 금의 속성이 강했단 말이야. 피가 진해.’
드워프의 피를 타고난 아이에겐 금의 속성을 첨가했다. 엘프의 피를 타고난 듯 보이는 아이에겐 목 속성이 강화된 영약을 준비했다.
그에 걸맞은 약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전생의 기억도 있는데 이쯤은 아주 쉽지.’
새로 제자들을 받은 지 고작해야 두 달. 제자들이 문파에 적응하여 기초를 완벽히 떼기 시작할 때쯤의 일이었다.
그는 곧바로 약을 대량 제작하여 아이들에게 건네줬다.
영약의 효과는 바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러가 늘고 있어!”
“전에 먹은 트롤 심장보다 훨씬 낫잖아!”
제자로 들어온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순식간에 차올랐다.
‘대체, 저런 애들한테 대체 트롤 심장은 누가 먹인 거냐.’
부족했던 오러가 늘기 시작했다. 그에 걸맞은 육체를 갖게 하기 위해 몸을 강화시키는 영약도 먹이니 육체 자체도 성장했다.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힘은?”
“이야. 이런 식으로 개화시킬 줄은 몰랐는데.”
옅은 피를 가지고 있던 혼혈들. 자신조차도 모르는 조상의 존재. 그와 관련한 능력을 차차 개화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격렬한 변화를 보인 건 둘이었다.
마족의 피를 타고난 에랑트. 엘프의 피를 타고난 크로바.
이 둘은 전에 없던 능력들을 개화했다.
콰아아앙-!
에랑트는 제 몸에 본능적으로 기운을 두를 수 있게 됐다. 자연스레 기운을 두른 거만으로 에랑트의 몸은 몇 배로 강화됐다.
‘외공과는 또 다른데. 마족 중에 데몬 피가 섞인 건가?’
맨 손으로 바위를 부수고. 속도는 표범과 같이 빨라졌다.
효과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족의 피에 걸맞은 재생력을 가져다줬다.
극적인 변화였다.
엘프의 피를 타고난 크로바도 만만치 않은 변화를 얻게 됐다.
심장의 박동수가 느려졌다. 그러면서도 신체 능력은 되레 상승했으며, 자연스레 은밀해졌다.
흡사 엘프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게 된 크로바.
“네 녀석, 기척 자체가 줄어들었구나.”
“……어떻게 절 찾으셨어요?”
“알아서, 잘 찾았다. 그러라고 준 능력이 아니니, 땡땡이는 그만 좀 쳐라.”
“칫. 잠시 쉬는 거라고요. 잠시만 쉴게요. 네?”
다만 성격은 여전했다. 장난기 많고 활발했다. 또한 게을렀다.
매일 느껴지는 성장을 즐기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녀석은 툭하면 수업을 빠지려 애를 썼다.
‘엘프라면 진중하고, 침착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녀석이 이미지를 다 깎아 먹는구만…… 본래 엘프가 가진 성격이 이러려나.’
흡사 장난기 많은 요정과 같은 녀석이었다.
“이미 늦었으니, 어서 들어가기나 해라.”
“……알았어요.”
속가 제자로 받아들였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개성과 재능을 점차 개화하기 시작했다. 받은 만큼은 해 주자는 테스의 보살핌이 있는 덕분이었다.
이들만 성장하는 건 아니었다.
그 사이, 이전부터 받은 진신 제자와 1기 속가 제자는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상태였으니까.
‘다들 수준이 올랐으니, 슬슬 실전을 시켜 볼까.’
이들을 키우는 테스조차도 새로 기운을 키우고 있으니, 문파 자체가 강해지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그런 가운데, 두 번째 방문자가 찾아왔다.
“영주님! 영주님! 난리도 아닙니다!”
첫 번째와 달리, 그리 반갑지만은 아닌 방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