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05화 (105/191)

제105화

챕터 5.

‘이 초식, 패도.’

압도적인 힘. 우악스런 힘으로 상대를 부스러트리는 패의 묘리를 지닌 그의 검. 그 검이 데몬을 향했다.

차아앙-!

마주 달려오는 데몬은 육체로 부딪치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았다.

데몬은 대신 핏빛 채찍을 뽑아냈다. 그간 그가 죽인 데몬족의 피를 뭉쳐 만든 채찍이었다. 귀족급이라도 탐내는 그 채찍을 테스를 상대로 휘저었다.

타아앙-!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고가며, 부딪친다.

테스는 강렬한 기운으로 상대를 짓누르고자 했고. 반대로 데몬은 기교를 부려 그의 패도를 피하며 테스의 틈을 노렸다.

상대를 짓이기려는 인간, 그를 피해 틈을 노리는 마족!

상식이 무너지는 광경이 그려지고 있지만, 이를 이상케 여기는 자는 없었다.

다만 더 집중을 해 나갈 뿐이었다.

그 가운데 선, 테스.

그는 검을 나눠 데몬을 상대하면서도, 한 가지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데몬이 지닌 힘.

그 힘의 방식이 그에게 익숙했다.

무공은 아니었다. 강대한 육체를 타고난 데몬족은 심법 따위를 익히지 않았다. 그러나 마기를 이용해 제 육신을 강화했다.

스스스스-

마기가 움직일 때마다, 데몬의 육신이 더 빨라지고 단단해졌다.

저만의 방식으로 몸이 강화되는 권능이다.

지금껏 상대한 상급의 데몬도 가지지 못한 힘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육신을 강화하는 자들을 테스는 이미 여럿 봤었다.

‘귀족들.’

혈통마다 힘을 타고났다는 귀족. 그들도 앞에 있는 최상급 데몬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곤 했다. 인간이기에 그 힘의 격은 낮긴 하지만, 중요한 건 비슷하다는 거다.

‘마족을 따라했거나, 인간 중에 마족의 피를 이어받은 자들이 다수 있을 지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은 아니다. 대다수가 알고도 숨겼겠지. 그게 인간이 지닌 속성 중 하나니까.

어쨌거나 인간이 이런 힘들을 따라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에게 한 가지 힌트를 던져다 주었다.

‘보인다.’

바로 눈앞의 데몬이 가진 힘에 대한 분석이었다. 놈이 가진 힘의 틈이 보였다. 전이라면 보이지 않아야 할 곳.

“심장 쪽이구나.”

패도가 실렸던 테스의 검이 변화한다.

패에서 쾌로. 빨라진 검이 데몬의 심장 부근을 관통한다.

촤악-

4미터에 육박하는 데몬에게 있어 작은 생채기가 만들어진다.

상처는 작으나 그 결과는 거대했다.

쩌저저적-

만들어진 생채기가 점차 벌어졌다. 그러더니 수십 개의 선으로 조각조각 나뉘고 길어졌다.

-어…… 떻게…….

“보였어.”

흡사 유리가 깨어지듯, 조각 조각나 부서져 내려가는 최상급 데몬의 육신.

작위급 마족을 노리는 경지 치고는 너무나도 허무한 최후다.

쩌정-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데몬의 몸이 완전히 깨져 나갔다. 그가 지키던 마계의 마법진도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서로 연동 돼 있었던 거군.’

지금까지 그가 파괴한 마법진은 총 다섯. 수 없이 많은 데몬을 잘라내고서야 만들어낸 성과였다.

눈앞의 여섯 번째 것이 마지막이었다.

사라지고 남은 마법진. 그 위에 있던 공간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쯔즈즉-

이윽고, 공간 안에서 마족들이 숨기려했던 던전의 핵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형. 50센티 정도의 크기. 그 안에 담긴 마기가 쉼 없이 맥동하며 주변을 침식하고 있었다.

두근- 두근-

마치 심장이 뛰는 듯했다.

그때마다 옆을 지키던 리페는 신음했다.

“읏…….”

마탑의 비전으로 몸을 보호하는 리페로서도 버티기 힘든 마기의 침식이었다.

하기는 그녀라 해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칠 만하긴 했지.’

테스가 날뛰는 사이. 그녀도 그를 보조하며 함께 움직였다.

테스가 몸에 두른 버프 마법을 강화시켜 주기도 하고, 그 주변을 노리는 데몬들을 함께 견제했다.

그가 주된 활약을 했을 뿐, 그녀도 제 몫을 다했다.

던전 코어 노출에 힘겨울 만도 했다.

반대로 테스는 그사이 힘을 완전히 회복하고 던전 코어를 향해 다가갔다.

“이게 던전 코어인가. 과연…….”

“닿으면 안 돼요!”

손을 뻗으려는 테스를 향해 소리치는 리페. 하나, 테스의 손길이 더 빨랐다.

그의 손이 코어에 닿는 순간이었다.

‘……어?’

몇 가지 지식들이 그를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마기에 대한 이해, 마족의 지식 일부, 그들이 이 세계를 노리고 다음 침공을 준비하는 모습까지…….

단 몇 초지만 순식간에 쏟아진 정보의 양은 방대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하나.

‘이 던전이 끝이 아닐 수도 있겠네. 이거, 주의를 해야겠는데.’

마계의 침식 시도가 이로 끝이 아니라는 것.

얼핏 스쳐가는 마계의 움직임으로 봐선, 이들은 본격적으로 이곳을 노리고 있었다. 이유? 알 수 없다. 거기까지는 전달이 되지 않았으니까.

다만, 수천 년 동안 이곳을 침공해 오는 걸로 봐선 마족에게 중요한 뭔가가 이 세계에 있다는 거다.

‘대침공이 보통 200년 주기였나…… 이번엔 좀 빨라진 거군.’

마계 침공이라. 승천을 준비해야 하는 테스로선 그리 좋지 못한 사실.

마계가 움직이면, 그들과 대적하는 천계 또한 움직일 터. 그 사이에서 승천을 노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거였다.

테스로선 그리 좋지 못한 사실이다.

그나마 위안 삼을 게 있다면, 그도 얻은 게 있단 사실.

마족이 마기를 다루는 방식. 그 방식의 일부를 훔쳐볼 수 있었다.

그만으로도, 꽤 큰 성과를 얻었다 할 수 있었다. 그를 응용하면 그도 강해질 테니까.

덕분에 테스로선 꽤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반대로 그를 바라보는 리페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베빈이라도 된 거처럼 걱정했다.

“정말로 괜찮은 거죠?”

“몇 번이나 말했잖나. 오염이 되는 일도, 침식을 당하는 일도 없다고.”

“던전 코어를 만지고 살아남은 거 자체가 기적이라고요. 내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말을 해 줬을 거예요. 베빈은 당신이 위험해지는 걸 원치 않으니까요.”

“꼭 애를 돌보는 거 같이 말하는구만.”

“그녀에게는 그리 보일지도요. 당신이 희망이기도 할 테니까요. 뭐, 어쨌건 더 무슨 일이 없다면 됐어요.”

몇 번이고 테스를 확인한 리페.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던전 코어 앞에 섰다.

“흡수 시작할게요?”

“그래. 그게 약속이었으니까. 다만, 반은 꼭 돌려줘야 할 거야.”

“물론이에요.”

스스스-

그녀는 가져온 공간 주머니 중 하나를 활짝 열었다. 열린 주머니 사이로 드러난 무(無)의 공간. 그 안에 던전 코어가 담겼다.

‘아공간을 저리 사용할 수도 있구나.’

단순한 담음이 아니었다.

던전 코어를 담기 위한 마법적 처리가 여럿 담겨 있었다. 4클래스인 테스로서도 아직 알기 힘든 비전들이 담겨있었다.

‘과연, 마법도 무공 못지않게 깊다니까.’

꽤 많은 개안을 했다할 수 있을 테스로도 아직 알기 힘들 비전이라.

일종의 벽처럼 느껴지는 아득한 수준 차이였다.

그럼에도 그는 격차에 무너지기 보단, 되레 더 기대를 키웠다. 그 격차만큼이나 그가 성장할 여지가 있단 소리였으니까.

‘마법…… 무공도 발전을 꽤 이룩했으니, 더 집중할 때도 됐지.’

테스가 살피는 사이.

던전 코어는 공간 주머니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그그그긍-

주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던전을 구성하게 하는 코어가 사라지니 일어난 붕괴다.

붕괴 이후, 던전 정복자를 위한 게이트와 같은 편의가 제공될 리 없었다.

“뛰자!”

“네!”

빠르게 던전을 빠져나갈 시간이다.

* * *

그들이 벗어나자마자, 던전의 입구는 굉음을 내며 무너졌다.

게이트 형태를 뗬던 입구가 무너지자, 그 사이에서 온갖 마석과 부산물들이 떨어져 내렸다.

테스는 부산물들을 염동력 마법을 이용해 챙겨 넣었다.

리페는 그가 부산물들을 챙기는 걸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끝이네요?”

“완전히. 적어도 이 던전은 끝이 맞으니까.”

“그렇죠. 이전에 한 약속은 지켜질 거예요.”

약속이라. 계약 조건인 마탑의 비호를 명확히 하겠다는 의미다.

‘왕이 꽤 곤란해지겠군.’

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탑이다. 그들이 힘을 쓴다면, 제아무리 여우 같은 왕이라도 힘을 행세하긴 어려워질 터.

왕이 힘들어지는 만큼, 테스가 지닌 힘은 강대해지리라.

“기대하고 있지.”

“예. 다음에 볼 때는 남은 반을 가지고 올게요.”

“그래. 그 또한 정확히 나눠야 할 거야.”

“마탑은 약속을 지켜요.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이해했어. 그럼 가 봐.”

“그럼…….”

인사를 한 리페의 몸은 연기처럼 흩어져간다.

마치 신기루와 같이 사라지는데도 주변 마나는 고요했다. 그녀가 제 몸에 있는 마력을 이용해 사라지고 있단 의미.

무슨 마법인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제야 테스는 긴박했던 던전행이 끝났음을 실감했다.

“자, 우선은 왕도로 가 볼까.”

* * *

던전행을 나설 때와 반대로 테스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자유 도시와 영지 몇 개를 지나가는 그. 그런 그의 움직임을 읽고자 분주히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왕이 보냈을 게 분명한 염탐꾼들이었다.

테스가 제대로 던전을 파괴했을지. 던전을 파괴한 테스가 영혼의 침식에 얼마큼 당했을지를 알고 싶은 거겠지.

‘쓸데없이 바쁘게 움직이는구만.’

테스는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왕이 알았으면 해서다.

던전을 파괴했음에도 여전히 테스가 건재하다는 걸 말이다.

근위 기사단 전체는 동원해야 처리했을 데몬 던전. 그러한 던전을 처리하고도 여전히 건재한 테스. 그런 소식을 왕이 들으면 얼마나 섬뜩할까.

그걸 알기에 테스는 그대로 두었다.

염탐꾼은 왕이 보낸 자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러 세력이 움직였다.

그들 중엔 소문을 만드는 자도 있었다.

-남부의 던전을 테스 자작이 처리했다!

-그 홀로 던전을 처리했다고?

-아니, 다른 동행자도 하나 있다곤 하던데…… 확실하진 않아.

-혼자라던데?

같이 동행했던 리페에 대한 정보는 교묘히 사라졌다.

대신, 테스가 세운 공로에 대해서만 계속해 소문이 부풀려져 갔다.

리피의 정체는 은폐하고, 테스의 공은 점차 커져가는 상황. 테스는 이를 어디서 소문냈을지 눈치챘다.

‘이런 식으로도 도와주겠다는 건가. 과연 마탑이야.’

마탑이다.

비호를 해 주겠다고 하더니, 이런 식으로도 움직여 줄 줄이야.

소문이 도니, 테스에 대한 칭송은 치솟아 올라갔다.

-덕분에 살았어!

-하,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다행이야.

-징병이라도 당하는 줄 알았는데, 젠장할. 믿고 있었다고!

전쟁을 치러야 할 남부 귀족이고 시민이고 가릴 게 없었다. 그들로선 당장 던전의 위협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는 곧 생존과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그 일이 손도 대지 않았는데 해결됐다.

테스에 대한 호감이 치솟아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곳곳에서 환대를 했다.

남부 몇몇 영지는 그를 맞이하자고 영주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작은 마을에선 귀한 가축을 잡아 대접해 왔다.

소문과 칭송의 효과였다.

‘북부에서는 아직도 날 보면 이를 가는 귀족들이 넘칠 텐데. 남부는 이렇게 될 줄이야. 모순적이야. 역시 세상은 살고 볼 일이라니까.’

테스는 이를 즐기며, 차분히 북쪽으로 향했고. 얼마 안 가 그의 발길은 왕도 카르디아에 닿았다.

왕도에 이른 테스.

그가 왕을 접견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부의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는 테스를 오래 기다리게 하는 건 왕에게도 압박이 있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게 된 왕.

“왔는가?”

테스를 맞이하는 그는 던전 사태 때보다도 더 초췌해져 있었다. 마탑이 제대로 움직여 주고 있단 의미.

테스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왕을 향해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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