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챕터 4.
침식을 일으키는 데몬 던전.
마계에서 만들어진 던전의 목적은 하나였다. 지속적 침식을 통해 마계와 통로를 만들어 내는 것. 흔히 게이트다.
마계 게이트가 만들어지는 순간 진짜 재앙은 시작된다.
연약한 인간과 달리, 마족이 지닌 힘은 강대하니까.
작위를 지녔다는 귀족급 마족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마계에서 최하급이라 불리는 마족이 지닌 강력함은 최소가 오러 유저급이었다.
그러한 강력한 개체들이 쉽게 태어나는 게 마계였다.
데몬족은 포자에서 태어나고, 환몽의 일족은 환상 속에 피어난다. 색마 일족은 잠깐의 쾌락으로 수십 마리가 나타날 정도다.
결국 인간이 이겨낼 수 없는 것들이 마족.
그들의 차원을 가까이 두고도 인간이 아직 살아남은 직접적 이유는 단 하나.
“예상보다는 침식도가 낮아요. 40퍼센트 정도. 그래도 곧 속도가 오르겠네요. 당신이 자극했으니까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수치야.”
“방심은 말아요. 침식이 진행되는 만큼, 적들도 강해질 거니까.”
바로 차원 페널티였다.
마계는 마족의 영역이라면, 흔히 중간계로도 불리는 이 세계는 전혀 다른 영역. 그러기에 마족은 이 세계에 존재를 드러내면 제 힘을 온전히 쓸 수 없었다.
그러기에 인간은 강대한 마족을 상대로도 이 세계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뭐, 가끔가다 천족이란 족속이 모습을 드러내 도와주기도 한다는데…… 그건 옛일인 거고.’
상황이 이러기에 마족은 침식으로 던전이 만들어졌을 때, 꾀를 썼다. 침식이 진행 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흠…… 시작부터 스무 갈래인가. 복잡하긴 한데.”
“이게 기본이에요.”
“재밌네.”
둘의 앞을 막고 있는 수없이 많은 길처럼, 던전 구조를 복잡하게 만든 건 기본이었다.
던전 핵이 바로 드러나지 않게, 요사스런 마법을 부리기도 했다.
단지 구조적으로 보호하기만 한 게 아니다. 던전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같은 마족을 이용해 지키도록 했다.
그들로선 온갖 수단을 이용하여, 던전을 보호하는 거다.
침식이 완성만 된다면 언제고 이 차원을 침공할 수 있으니까!
-키이이익!
당장만 해도 하급 데몬들이 날뛰며 그들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콰앙! 쾅!
테스는 그런 하급 데몬들을 향해 쉼 없이 마법을 날렸다.
화염구, 화염확산, 화염광선, 정화된 빛, 영역화…….
불이 뿜고 찢어지고 널리 퍼져가며 데몬들을 녹여갔다.
리페라 해서 가만 지켜만 보고 있진 않았다. 테스가 마법을 활용하면, 그녀는 그 마법에 힘을 실어 줬다.
‘일종의 마법 보조인가. 재밌군.’
그녀가 힘을 실어주면 마법은 증폭됐다.
그그그그긍-
그때마다 두 배, 세 배로 강력해진 마법이 주변을 때렸고. 다수의 하급 데몬족들이 녹아들어 갔다.
겉으로 봐선 완벽한 둘의 압도였다. 고작 하급 데몬 수준으로 그들을 막는 건 무리다.
하나, 잘 살피면 그도 아니었다.
적들은 시간만 끌면 되었으니까.
침식이 마무리되면 제 아무리 테스라도 마계의 공세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니 리페가 재촉하는 거도 무리가 아니다.
“이제 어서 전진해야 해요. 이곳들을 다 살필 시간이 없다고요.”
“후음…….”
“어서요.”
그녀의 상식대로라면, 이럴 때가 아니었다.
스무 갈래의 모든 길을 탐색해야 했고. 던전핵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진들을 부숴야 했다. 그리해서 드러나는 던전핵을 파괴해야 했다.
그 세 과정만으로도 대모험이나 다름없다. 시간이 촉박했다.
그녀의 재촉에도 테스는 달려드는 하급 데몬들을 상대하며, 멈춰 있을 뿐이었다.
“있어 봐.”
그는 몸을 움직여 탐색하는 대신 다른 수단을 썼다.
스스스스-
영역화를 펼쳐 주변을 장악했다. 거친 마기를 조종하여 제 것으로 삼았다. 주변 영역을 완벽히 장악하자마자 그는 마나를 퍼트렸다.
그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온 곳곳을 그의 마력이 휘저었다.
100, 200, 400, 1000m…… 1km, 2km.
기감과 마력이 조화되어 던전 안을 살폈다.
미로처럼 꼬아져 있는 던전 안을 살피는 게 쉬울 리 없다. 머리 그득 정보가 차오른다. 그 틈을 노려 마기가 섞여 올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지형 지물, 함정, 던전 몬스터…….
정보의 필요 유무를 구분하고, 분석해야 했다.
“크하. 지독하게 꼬아놨네.”
결국 해냈다!
테스는 가슴 깊이 느껴지는 만족감을 만끽하며, 동시에 받아들인 정보를 정리해 냈고. 던전 공략을 위한 최단 거리를 짰다.
“이쪽으로.”
“가장 처음부터가 아니고요?”
“거긴 죽을 곳이야. 망하면 내가 책임질 테니, 잠자코 따라오라고.”
오른쪽에서 세 번째 통로. 그는 망설임 없이 몸을 들이밀었다.
* * *
‘역시 탐색대로.’
둘이 몸을 들이밀자마자 달려드는 건, 거대한 육체를 지닌 중급 데몬이었다.
데몬족 자체가 강한 육체가 특징.
-크흐흐.
-인간이다!
쿠웅. 쿵.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안이 울렸고. 그 여파로 길이 부서져 나갔다. 그런 중급 데몬이 수십여 마리.
“들이밀자마자 이 정도 데몬이라니, 역시 함정 아니었을까요?”
“걱정 말래도.”
테스는 리페를 두고 몸을 날렸다.
‘부숴 볼까.’
거대한 육체미를 양껏 드러낸 중급 데몬들. 그들만큼이나 테스의 육체를 시험하는 데 제격인 존재들이 또 있을까.
파아앙-!
테스는 곧 바로 몸을 부딪쳤다.
-감히 인간 따위가!
인간이 데몬을 상대로 맨몸으로 달려들 줄이야. 그에 자존심이 상한 듯, 선두에 있던 중급 데몬은 양팔을 들어 내리찍기를 시도했다.
그게 데몬의 마지막 시도였다.
-케엑!
파스슷-
양팔을 들어 올린 그대로, 몸에 구멍이 났다.
-캬아아악.
환골탈태로 강화된 육체에 기를 두른 테스다. 마기 침범을 막기 위해 강화됐던 기운을 한 번 더 강화시키는 순간, 기운은 강기가 됐다.
철도 자르는 강기다.
그걸 온몸에 두른 채 달려들면, 몸 자체가 흉악한 무기였다.
그 무기가 중급 데몬의 몸을 꿰뚫었다.
그제야 데몬들은 상황 파악을 했다.
-미친 인간이다!
-막아!
허둥지둥 움직였다.
테스에 맞춰 그들도 온몸에 마기를 둘렀다. 데몬의 두터운 거죽이 강화된다.
‘외공과 비슷하구나! 어디까지 버티나 볼까?’
그제야 테스는 흥이 올랐다.
처음의 데몬은 실망이었는데, 강화된 육체는 아주 단단하지 않은가.
강기를 이용할 맛이 있었다.
“이거나 먹어.”
-네놈이나!
파아아앙-!
테스와 데몬의 주먹이 부딪친다. 피격음 대신 강력한 기파가 터져 나갔고. 강기 조각들이 흩어져 나간다.
“으읏…….”
리페가 실드를 쳐 겨우 막아야 할 정도의 강기 조각들!
그 강기를 바로 앞에서 맞으면 데몬이라도 감히 버틸 수 있을까. 강기를 맞은 데몬의 마기막이 옅어진다.
-크흐…….
“이거 재밌네.”
반대로 테스가 두른 강기막은 더 진해졌다.
강기가 부딪치는 짧은 사이. 흩어져나간 강기 조각을 전부 흡수해 내는 데 성공한 덕분!
흡수하는 손길을 수천, 수만 회 이용한 그만이 할 수 있는 묘기였다.
오로지 테스만이 펼칠 수 있고, 그만이 해낼 수 있는 방식!
‘손길을 줬던 데이븐이 이걸 알면 깜짝 놀라겠지.’
고작해야 일 클래스 마법이었던 흡수하는 손길이 시일이 지날수록 강력한 무기가 되어가고 있는 셈.
테스는 잔뜩 차오른 힘을 받아들이며, 동시에 방출했다.
콰드드드득-
-캬아악!
재차 오는 강기의 공격을 어찌 버티랴.
공격을 받아내는 데몬의 몸이 쪼개진다.
후두둑 쏟아지는 육체의 파편들. 제 아무리 전투를 즐기는 데몬족이라 할지라도 주춤거릴 만한 광경이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건 무슨 방식인가!
그들이 즐기는 건 피 끓는 전투지, 이런 일방적인 폭력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은 언제나 폭력을 행사하는 쪽이지 당하는 쪽이 아니었다. 평소와 반대편의 입장이 되자, 데몬들의 기세가 팍 줄어들었다.
되레 테스는 흥이 더 올랐다.
고오오오-
살아 숨 쉬는 데몬들은 그가 지닌 육체의 전투력을 보는 데 딱이었다.
‘살아있는 전투력 측정기랄까.’
거기다 죽이면 부산물이 나오고 마석과 핵은 또 덤이다. 그에게 이들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요, 좋은 측정기였다.
그가 흥이 오르자, 반대로 중급 데몬들은 주눅이 들었다.
-으으으.
피식자와 포식자가 뒤바뀌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테스가 한계 없이 날뛰었다.
* * *
그런 테스를 바라보는 리페로선 놀람이 가실 새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테스가 마검사인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검은 오러 마스터급, 마법사론 사 클래스의 기이한 경지에 오른 자.
당장, 마법보다 검이 더 강력하다고 알려진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정보를 들어 테스를 잘 안다 자부하던 리페로서도 저런 정보는 듣지 못하였다.
“……저, 저 미친!”
“어허. 말은 바로 하라고.”
데몬과 인간이 부딪치는데, 부서지는 건 언제나 데몬이었다.
중급이고 상급이고 가리지도 않았다. 그의 기파가 강렬해지면, 무너지는 건 데몬이다.
특기라는 검은 들지도 않았다.
육체.
두 손과 두 발. 그 자신이 흉악한 무기가 되었다.
단순 파괴만 일삼는다면, 놀라지도 않았을 거다. 육신을 무기로 하는 전사가 이 세계에 아주 없는 건 아니었으니까.
문제는 이 다음이다.
‘힘이 사라지질 않아. 오히려 강해지고 있잖아.’
전투가 진행될수록 테스가 지닌 육체의 힘은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있었다.
데몬과 부딪치고, 또 부딪칠수록 그 정도가 더 강해졌다. 마치 단단한 철이 망치로 담금질을 받을 때마다, 더 단단해지는 거처럼!
그는 전투가 지속될수록 강해졌다.
테스는 단순 육신만이 강해지는 게 아니었다.
데몬이 터져 나고 남은 자리. 그 위에 아직 남아 있는 마기를 그는 흡수했고, 제 힘으로 삼았다.
흡수한 마기에 본래라면 영혼이 오염되어야 할 터.
그는 그런 오염도 없었다.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그의 몸에 흡수된 마기는 감쪽같이 다른 속성으로 변화해 그에게 흡수됐다.
‘……저런 게 되는 거였어?’
베빈으로부터 만들어지고. 그녀로부터 세상의 비의를 온갖 알게 된 리페로서도 이해하기 힘든 기이한 일이었다.
아니라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이미 수차례 그녀 자신의 눈으로 저 기행을 보고 있었으니까.
육체로 부딪쳐 오는 중급 데몬도. 육체에 혈 마법을 타고나 그를 부리는 상급 데몬도 그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저 그의 먹잇감으로 전락했을 뿐이었다.
흉악한 던전행을 감행하는 테스.
그가 전투 방식에 변화를 준 건, 던전 핵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마법진 앞에 섰을 때였다.
-인간, 감히 네놈 같은 존재가 날뛸 곳이 아니다.
“오. 너는 좀 특이한데?”
최상급 데몬.
타고난 육체뿐만이 아닌, 권능을 갖기 시작한 최상급.
하나의 벽을 넘으면 작위를 지닐 수 있는 마족.
비록 차원 페널티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강함은 일개 인간이 상대하기 힘들 존재였다.
본래라면 제아무리 리페라도 후퇴를 결정해야 할 존재. 그런 최상급이 나오자, 그제야 테스는 검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