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챕터 3.
“마탑의 비호. 왕 따위가 날 흔들 수 없게 해 줬으면 하는데.”
마탑의 비호.
이는 마탑이 정치적으로 테스를 보호하라는 말이었다. 그럼으로써 테스가 얻는 이득은 막대하다.
‘왕국의 어지간한 귀족은 날 흔들기도 힘들어지겠지.’
정치적으로 테스를 흔들 자들이 적어진다.
설사 제국의 귀족이라 할지라도 그를 흔들기 전에 마탑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할 터다.
공식적으로 마탑은 정치적인 행위를 금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얼마든 힘을 쓰는 자들이니까.
마탑의 비호 그 하나만으로 그가 지닌 힘이 막대해진다는 이야기.
마탑으로서도 쉽게 줄 것들이 아니다.
하지만 테스는 자신 있었다.
“고작 던전의 부산물. 그 일부를 얻자고 마탑이 그렇게까지 나서줄 거라 여기나요?”
“응. 내가 보기엔 아직 나한테도 말 안 한 뭔가가 있거든. 너희는 꼭 거기서 얻을 게 있는 거야. 그렇지?”
“…….”
이 던전. 분명 뭔가가 있다.
‘그 베빈이 움직인 거거든. 눈앞에 호문클루스인지 뭔지 모를 비의까지 가져와서 말이지.’
테스는 그걸 직감하기에 던진 수였다.
스스스스-
순간 테스의 기감에 주변의 마나가 어지러이 움직이는 게 포착됐다.
그녀의 마력 일부가 바깥으로 나갔다.
통신 마법의 마력 형태.
멀리 있는 베빈과 그녀가 상의라도 하는 걸 거다.
답은 얼마가지 않아 왔다. 외부의 마나 일부가 들어오는 걸 느꼈으니까.
“답은 동의예요.”
“좋아. 바로 그거지!”
“그리고 이리 전하라더군요. 역시나 당신은 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푸핫. 그게 내 얼마 안 되는 장점이라고 전해 달라고.”
“……분명히 전하죠. 자아,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동행이 허락됐으니 저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그게 얼마든지.”
던전행. 예기치 못한 동료 하나가 더해졌다.
* * *
단 하루.
그녀가 던전행 준비를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리페라 불러주세요.”
“리페라. 재밌는 이름이네. 나는 테스라 불러주는 걸 허락하지.”
“알겠어요, 테스.”
전에 입던 로브 위에 두 개의 아공간 주머니가 추가됐을 뿐이었다.
‘누가 보면 소풍이라도 나온 줄 알겠는데.’
겉만 평화로워 보일 뿐. 그녀가 차고 있는 아공간 주머니 안에서 느껴지는 마력은 심상치 않았다.
과할 정도로 준비를 했다는 의미.
“그럼 가 볼까?”
“예.”
서로에 관한 이해는 필요도 없었다. 둘은 곧바로 왕도를 벗어났다.
그러한 둘의 움직임을 보려고 숨어들었던 자들. 그들은 각자 흩어져 그들의 주인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 *
왕도로부터 던전까지의 거리는 상당했다.
왕국 중앙에서 최남단을 향해야 했으니까. 텔레포트 마법진을 사용할 수도 있으나 테스는 도보를 고집했다.
‘이래야 움직임이 덜 읽히지.’
도보라 해도 속도가 느린 건 아니었다.
스스스-
온갖 수단을 동원한 빠른 이동은 그의 특기였으니까.
경공에 마법까지 쓰는 그의 속도는 빨랐고. 지쳐서 늦어지는 법도 없었다. 벌써 삼 일을 쉬지 않고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잘도 따라오네.’
그 뒤를 리페가 바짝 쫓아오고 있었다.
로브 사이로 얼핏 보인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초췌한 기색조차 없었다.
삼 일간 내리 마법을 사용함에도 마력이 줄어드는 법이 없었다.
‘보통 존재는 아니라 이거지.’
과연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속도를 더 높이자.”
“그래요.”
그는 속도를 더 끌어 올렸다.
차아악-
선천진기를 아낌없이 뿜어내고. 네 개의 서클이 쉼 없이 휘돌며 그를 보조했다. 극성에 가까워져 가는 경공은 족저혈에 쉼 없이 힘을 불어넣었다.
후웅- 후웅-
그가 발을 박찰 때마다, 수 미터가 벌어졌다.
거의 날 듯 움직이는 그. 그런 그의 뒤를 그녀가 바짝 뒤쫓았다.
그제야 그녀의 마력에 변화가 왔다.
줄어드는 법이 없던 마나의 총량이 미묘하게 줄었다. 테스의 강력한 기감이 없다면 느끼지 못할 변화다.
‘이거 봐라? 그조차도 금방 회복되잖아?’
그 총량은 얼마가지 않아 금방 채워졌다. 마치 어딘가에서 마력을 전달받는 듯한 속도였다. 그가 모르는 어떤 수법으로 마나를 전달받는 게 분명했다.
테스도 모를 방식이란 게 대체 뭘까.
‘확실히 뭔가 있어. 과연, 마탑이 가진 비전이란 게 마법서뿐만이 아니란 거네.’
저 리페. 리페를 만들어 냈을 베빈. 그녀가 속한 마탑.
그들에 대한 짙은 호기심이 생겨난다.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그녀를 탐색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테스는 쉼 없이 그녀를 탐색했고. 그러며 전진을 계속해 나아갔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서.
“벌써 시작인가.”
“침식이 더 짙어졌네요.”
목표로 했던 데몬 던전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그를 증명하듯, 마나의 기류가 바뀌었다.
츠으으-
섬뜩하고, 기이한 마나의 흐름이 둘을 감쌌다. 음습했다.
‘마기보다 더 더럽군. 원초적이야.’
이전에도 느꼈던 기운이다.
마혈지!
마교의 무인들이 마기를 익히고자 들어가는 그곳. 그들만의 성지가 딱 이러한 느낌을 갖고 있었다.
이곳은 그런 마혈지보다 족히 세배는 더 마기가 짙었다.
‘여기 있으면, 미쳐 버리는 것도 당연하잖아?’
우우웅-
테스는 곧바로 내기를 온몸에 둘렀다. 그를 향해 바짝 다가오던 마기들이 멈칫한다.
“침식을 그런 식으로 막을 수도 있었군요.”
“나만의 수법이지.”
“당신처럼 정교하게 기운을 다루지 못하면 절대 못 할 일이네요. 그렇다 해도 일부는 흘러들어 갈 거예요.”
스스스-
그녀의 말대로다. 내력막을 만들어 외부의 마기를 차단했다 해도, 일부는 계속해 그에게 침식을 시도했다.
‘이건 당연한 거지. 마기란 게 본래 지독하니까.’
하나, 그조차도 그가 상단전의 영기를 움직이는 순간.
츠윽-
곧바로 힘을 잃었다. 다른 자는 몰라도 적어도 그에겐 침식이 침범할 리가 없었다.
그 사이 베빈도 마기의 침식을 막고자 움직였다.
공간 주머니에서 몇 개의 마도구를 꺼냈다.
그 뒤 바로 작동을 시키자 수 미터의 거대한 마나막이 만들어졌다.
막 안으로 마기가 더 침범하지 못했다.
“어때요? 이게 저희 방식인데요.”
“비효율적이야. 나름 기대했는데, 아쉽군.”
마기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식. 나쁘진 않다. 그도 그런 식으로 마기 침범을 막았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효용성이다.
츠츠측-
마도구에 박힌 마석의 소모도가 너무 빠르다. 마석 내부 마력이 물 흐르듯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황금같이 귀한 게 마석. 그러한 마석을 저리 버린다는 건, 그야말로 돈지랄이었다.
‘내가 다 아까울 정도네.’
그 미친 돈지랄을 마탑은 침식을 막기 위한 비전이랍시고 가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그 외에 몇 가지 수단을 더 가진 듯 했으나, 그 수준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좀 아쉽군. 뭐라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테스가 아쉬움을 삼키는 사이. 던전은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키릭?
-키키킥.
침식된 영역 바깥으로 나온 데몬족이 눈앞에 보였다.
* * *
완벽히 마계화된 던전 앞.
그들은 그곳을 제 영역처럼 모여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데몬족의 발이 닿는 곳은 잿빛이 됐고. 마기는 더 짙어져갔다.
그뿐이랴, 얇은 피막으로 만들어진 붉은 날개를 휘저을 때마다 퍼져나간 포자가 주변을 잠식했다.
퍼져나간 포자는 침식된 땅에 박혀들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저게, 하급 데몬의 번식 방식이에요.”
“생식 활동도 없이 저리 퍼져 나간다고?”
“그러니 마족이죠.”
“미친 족속들이네.”
포자 번식.
그게 그들의 번식 활동이었다. 이대로 두면 얼마가지 않아, 주변이 하급 데몬으로 가득 찰 게 훤히 보였다.
시간을 더 끌 필요는 없는 터.
“우선, 이거부터 한방 가지.”
테스는 곧바로 마력을 끌어 올리고, 룬어를 조합했다.
[마나] [발출] [궤적] [집중] [화염] [빛]
총 일곱의 룬어. 그의 의념이 스며들며 한 가지 마법을 만들어냈다.
“화염 광선.”
쯔으윽-
뻗어나간 그의 손으로부터, 거대한 화염의 줄기가 뻗어나간다. 그가 만들어 놓은 궤적에 일직선으로 그어지는 화염의 광선.
-키에에엑!
-켁.
쩌저적-
길게 이어진 광선 앞에서 데몬의 붉은 피부가 갈라지고 녹아 내린다.
그로 끝나지 않았다.
화염에 속성 중 하나는 정화.
남은 광선의 힘이 아래로 퍼져나간 포자들을 녹이고. 침식되어 버린 영역을 완벽히 지워 버렸다.
‘이렇게 끝나면 아쉽지. 그러니 변형이다.’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광선. 그 광선에 테스는 일부 변형을 줬다. 화염 광선을 형성하는 룬어를 수정했다.
[궤적]을 [확산]으로!
본래 완성된 마법을 수정하는 건 미친 짓. 변화하는 마력의 계산과 반발력을 이겨내야만 해낼 수 있는 짓이었다.
그 반발력을 이겨내지 못하면, 변형을 시도하던 마법사의 서클이 폭발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테스가 지닌 서클은 크고 단단했다.
‘이쯤이야, 쉽다.’
두터운 서클이 반발력을 버텨낸다.
반발 속에서 마법의 변형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파아아앗-!
길게 궤적을 만들었던 화염 광선이 양옆으로 길게 뻗어나갔다.
확산이다!
넓게 퍼져나가는 광선은 주변을 녹이기 시작했다.
-케에에엑!
츠츠츠츠-
마기고 데몬이고 가릴 게 없었다. 닿으면 그저 녹아들어 갈 뿐이다. 짙은 파괴의 흔적. 주변의 모든 침식을 지웠다.
그제야 리페의 얼굴에 놀람이 서렸다.
“마법 변형…… 그게 된다고요? 비전도 없이?”
“이쯤이야, 어려울 것도 없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 테스를 보고 리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이래서 변수이고. 예비자인가. 이래서 베빈이 그리 집착을 한 거였어. 그렇다면 나도…….’
마치 베빈을 자신과 전혀 다른 개체인 거처럼 말하는 그녀. 마음속으로 어떤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테스는 전장에 남은 흔적을 전부 수습했다. 광선을 맞고도 남은 마석, 데몬의 핵, 부산물 등을 아낌없이 챙겼다.
그 짧은 사이. 던전이라 해서 가만 지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또 와요!”
“보고 있어.”
하급 데몬의 피해는 상관도 없다는 듯, 또 다른 데몬들을 던전 바깥으로 보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뿜어내는 속도!
‘던전 핵을 처리 않으면, 안 된다 이거지? 미친 것들.’
던전 자체를 끝내버리지 않는 한 저들이 계속 희생양을 보낼 게 뻔히 보였다.
던전이 버티면 버틸수록 침식 현상은 커질 것이다. 일정 이상 커진 침식은 곧 마계를 불러들이는 게이트가 되겠지.
이 세계에 침범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마계의 마족들이기에 할 수 있는 기행!
이 상황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은 결국 던전 진입이었다. 던전 자체를 끝내지 않는 한, 무의미한 전투만 계속될 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화염 광선. 재 확산.”
차아아악-
재차 마법을 날려, 주변을 지워냈다.
끝없이 지워내고 도착한 입구.
4미터가 넘는 거대한 크기. 그 안에서 넘실거리는 마기는 인간의 출입을 거부하는 듯 보였다.
하나, 그에 들어가는 테스에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가자고.”
쑤욱.
그의 몸이 던전 입구를 통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