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101화 (101/191)

제101화

챕터 1.

“왕도 카르디아의 적법한 지배자시자, 브루니언 제국의 배란트의 적법한…….”

왕과의 만남이 허락된 테스. 주문과도 같이 긴 인사를 올리고서야 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왕을 따르는 길디긴 호칭은 그를 이 왕국의 적법한 지배자라는 표시 중 하나.

그 긴말을 즐기듯 눈을 감고 있던 왕.

왕세자 시절 검사로 이름을 높이던 왕의 육체는 강건해 보였다. 온몸을 둘러싼 마도구를 뚫고 새어 나오는 오러가 심상치 않았다. 강자다.

그는 테스의 말이 끝나고 한참 뒤에서야 눈을 떴다.

겉으로 여유로운 척하는 듯 보이나.

‘심장 뛰는 게 다 느껴진다고. 여우 같으니.’

그 속은 결코 침착하지 못하단 걸 테스로선 이미 잘 느끼고 있었다.

그를 감싸고 있는 그 어떤 마법 도구도 그의 기감을 막진 못하였으니까.

“자네가, 그 어센션의 테스인가.”

“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센션. 테스가 자작이 되며 받은 성이었다.

성보다는 이름으로 자주 불리었던 그였기에, 성이 당장 와 닿지는 않았다.

한참 테스를 직시하던 왕.

그의 몸에 있던 오러가 잠시 움직였다. 그만의 방식으로 테스를 탐색한 게 분명한 듯했다.

‘재밌는 장난질이네.’

테스는 자신이 지닌 오러의 일부만 보여줌을 허락해 줬다.

그 일부만으로도 왕은 전부를 읽었다고 여기 듯했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과연, 그 소문에 어울리는 자로군.”

“무슨 소문을 들으신 건지 제가 다 궁금하군요.”

“철혈의 지배자, 울픈의 새로운 개척자이며 동시에 검사이자 마법사. 또 누군가는 사기꾼이라고도 하더군.”

“재밌는 소문이로군요.”

“자네만큼이나 상반된 별명들을 받은 자는 또 없기는 할 게야.”

왕은 웃어 보였다. 하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자자. 길어질 이야기에 이런 자리는 너무도 불편하겠지. 이리로 와 보게. 꽤 이야기가 길어질 듯싶으니.”

“명대로.”

왕이 가리키는 자리에 간 테스가 안착했다.

그러자 왕은 기다렸다는 듯 던전 탐험에 대한 조건을 읊기 시작했다.

* * *

영주가 아닌 용병으로서.

테스에게 의뢰를 건네는 왕은 성공 시 세 가지 보상을 약속했다.

첫째, 백작위로의 승작.

둘째, 왕국을 위한 세금의 삼 년 면제.

셋째, 왕궁에서 보관하고 있는 4클래스까지의 마도서.

총 셋의 조건을 들은 테스로서는 가소로울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겉으로만 후한 척이로구만.’

백작위로의 승작.

좋은 조건이다. 자작이 된 지 몇 년도 되지 않아 백작으로 승격하는 일은 전시가 아니고서야 드문 일이니까.

백작위를 임명하는 건 왕이라도 큰 출혈이 예상되는 일.

그럼에도 임명하는 건 꽤나 거창한 일이긴 하다만.

‘별로 마음에 들 것도 없는데.’

이미 독립 영주로 있는 테스였다. 작위에 목을 맬 이유가 없었다. 승작을 한다 해서 당장 얻어지는 이득도 없었으니까.

두 번째인 세금도 마찬가지.

독립 영주기에 그가 왕국에 내는 세금은 적었다. 그야말로 국경 방위비 정도. 그나마도 얼마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별다른 득이 되지 않았다.

그나마 구미가 당기는 건 하나다.

‘왕궁에 있는 마법서라면 뭔가 다를지도 모르지.’

바로 마법서. 마탑에나 있는 비전 마법서가 하나라도 끼어 있다면, 그 자체로 횡재였다.

테스에게 꽤 많은 영감을 줄 테니까. 새로 얻은 영감은 그에게 더 많은 힘들을 가져다주겠지.

새로운 힘, 강력함. 그 자체도 매력적이긴 하나.

‘이걸론 내가 밑지는 거야.’

하지만 테스는 고작 하나의 조건으로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왕이 이리 급하니, 챙겨야 할 건 챙겨야 했으니까.

그러기에 테스는 제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말했고.

“몇 가지 조건을 수정해야겠습니다.”

“허, 이것들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인가?”

“예.”

왕의 비위를 맞추고자 아양을 떨지도 않았다.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급한 왕이 아니라 테스 자신이었으니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바로 이야기했다.

“우선 백작위부터 말해 보죠. 허울만 좋은 작위에 만족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에 따른 급부를 주셔야지요.”

“그대도 알겠지만, 그쪽에 남는 영지가 없네.”

왕의 말대로 빈 땅은 없다.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보물들을 줄 수 있네.”

“그는 당연히 주셔야 할 것들이죠.”

제리코가 건네준 보물 리스트가 있었다. 톡톡히 받아낼 생각이다. 문제는, 그로 끝이 아니라는 거겠지만.

“여기에 더해, 하나를 더해 주셔야겠습니다.”

“뭔가?”

“울픈 산맥의 지배권의 확고한 인정.”

“으음…….”

왕이 침음성을 삼킨다.

무주지나 다름없는 울픈 산맥. 제국이라 해도 쉽게 개척할 수 없는 그곳.

개척 권한 정도를 받은 자는 많다. 하지만 지배자를 자처한 자는 아직 없었다.

겉으로 봐선 그 어떤 이득도 없는 듯 보이니까.

하나, 왕이 지배권을 인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카르소니아 왕이 지배권을 인정한다면? 그를 빌미로 다른 왕국에서 외교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 문제는 권리를 인정해 준 왕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될 터.

왕으로선 셈이 꽤 복잡해지는 것도 당연했다.

테스의 조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자네는 힘든 문제를 말하는군.”

“이걸로 끝낼 생각도 없습니다. 세금의 경우 최소 오 년간 무상으로. 마법서의 경우 한 클래스를 더 높여주시죠.”

“허…… 허허허…….”

한 클래스 더. 5클래스를 말함이다.

4클래스보다 5클래스 마법서를 구하는 게 더 어려운 건 당연한 이야기. 그 가치의 격도 달랐다.

테스는 그러한 조건들을 건 것이다.

왕이 헛웃음을 지을 만했다.

한참을 두고 왕이 침묵했다. 테스는 그런 왕을 마주한 채로, 제 앞에 주어진 차를 머금고 즐길 뿐이었다.

‘보아하니, 외교 문제가 될까 봐 기사단도 못 보내는 상황이잖아? 이 정도는 돼야 던전을 가 주지.’

테스로선 당당하기만 했다.

침묵은 얼마 가지 않아 깨졌다.

“……내 자네가 셈이 남다르단 소문을 듣긴 했으나, 예상 이상이야.”

“그런 칭찬을 자주 듣기는 합니다.”

“허. 이게 칭찬이라…… 재밌군. 뭐, 좋네.”

왕이 한숨을 푹 쉬곤 말을 이었다.

외통수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 조건들. 전부 받아들이지. 지배권 인정은 시간이 걸릴 것이나…… 확약서는 먼저 내주겠네. 어떤가?”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테스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왕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됐다!’

* * *

왕은 끝까지 능구렁이였다.

테스가 조건을 상향한 대신에 그도 조건 하나를 걸었다.

던전행을 위한 준비는 테스가 전부 해내는 것.

그게 새로 내건 조건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테스가 던전 정복을 홀로 해내라는 이야기.

‘계산이 뻔히 보이는구만. 나 혼자 하기는 버거울 테니, 도움을 요청하면 그때 조건을 후려치겠다는 거겠지.’

테스는 그 이야기를 듣고 되레 반색했다.

그는 처음부터 손도 맞지 않는 자들과 손을 맞출 생각이 없었다.

이제 와 손을 맞춘다 해도 시간이 걸리거니와 그들이 제대로 전력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딱 한 가지만 들으면 충분했다.

“데몬 던전. 그에 대한 정보만 주시면 됩니다.”

“시종장이 준비해 줄 걸세. 그럼 이만 가보게나. 자네의 조건을 들어주려면 내 한창 머리를 싸매야 할 거 같으니……!”

“그럼 평안한 시간되시기를…….”

“커흠…….”

그 하나는 바로 정보!

제아무리 테스라도 던전 경험은 많지 않은 바였고. 특히 데몬 던전의 경우는 처음 경험하는 터. 그러기에 정보는 필수였다.

왕궁의 모처에 안내를 받은 테스는 얼마 가지 않아 정보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테스는 잘 정리된 서류를 슬쩍 살폈다.

머리에 박혀드는 정보들.

“후음…… 규모로 상급. 던전의 데몬들도 꽤 강력한 개체네. 쉽지는 않다 이건가. 하긴 이쯤 되니 마나 이상 현상도 일어나는 거겠지.”

그는 정보들의 수준을 가늠했고.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몇 가지 준비를 해야겠어.”

당장, 부족한 걸 채워야 했다.

* * *

만사가불여튼튼이다. 준비를 하는 만큼 성공률은 높아진다는 이야기.

은밀히 왕궁을 나선 그는 수도의 시가지부터 나섰다.

‘우선, 소모한 것들부터 채워 넣어야겠지.’

그가 산맥에 진법을 설치하느라 소모한 마법 재료는 상당했다.

파워 홀스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제외하고. 영지 창고에 쌓아 온 마법 재료 중 상당수를 써야 했을 정도.

애당초 파워 홀스 재료가 별거 아닌 걸 감안하면.

‘싸그리 털린 거나 다름없지. 젠장…… 고작 반년을 벌자고 한 일치고는 거창했단 말이지.’

그 손해액은 상당한 수준이다.

뭐, 상관은 없었다. 그만큼 소모했다고 파산할 테스의 영지도 아니니까.

이번에 왕이 줄 보물들의 가치를 생각하면, 속이 쓰릴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만, 귀찮을 뿐이다. 이곳엔 그의 수족이 없기에, 그가 손수 움직여야 했으니까.

“오오. 전부 매입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90퍼센트 정도는 내 영지로 배달해 주게. 그레놀 상단주에게 건네줘도 되네. 그럼 그들이 알아서 옮겨줄 테니까.”

“그레놀이라고 하시면…… 호오. 소문의 자작님이시군요! 바로 처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수도는 넓었고. 상점만 하더라도 몇 개는 됐다. 상점이 다루는 물품의 분야도 달라 테스로선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 다 돼서야 소모한 것들 다수를 채울 수 있었다.

여기에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포션을 매입해야 했고. 비상시를 위한 몇 가지 도구들도 함께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는 빼먹지 않았다.

‘호오. 역시 수도쯤 되니까 이런 게 다 있군. 새로운 마법 방어구라…….’

온갖 물건이 모이는 수도. 그곳에 있는 새로운 장비들의 구매였다.

오랜만에 열을 올리며 왕국 시가지를 한참을 돌던 테스.

“음?”

그제야 그의 눈에 한 가지 건물이 보였다. 그건 드높은 탑이었다.

이전엔 보이지 않았는데 가까이 와서야 보였다.

‘분명 멀리서는 안 보였는데…… 재밌는 마법을 걸어 놓은 거로구만.’

테스에겐 익숙한 형태였다.

[마법사의 탑 – 카르디아 지부]

바로 마탑이었으니까.

왕국법상, 수도 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왕궁이 될 수밖에 없는 터. 그 눈을 피하여 이런 식으로 환상 마법을 걸어 놓은 듯했다.

‘재밌네. 뭐, 한 번 들러 볼까?’

갇힌 자 베빈. 오랜만에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테스는 마탑 지부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 * *

안으로 들어선 그. 그의 주변을 짙은 마력의 잔향이 스쳐 지나갔다.

테스는 그 잔향을 흠뻑 맡으며 깊숙이 들어갔다. 그 안에 익숙해 보이는 실루엣이 눈에 띄였다.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었나.’

그는 곧 베빈을 만날 거라 생각하며, 몇 걸음 더 앞으로 갔다.

“베빈…… 아니, 베빈이 아니잖아? 넌 뭐지?”

“오셨군요.”

그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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