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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100화 (100/191)

제100화

챕터 25.

새로 영지를 찾아 온 방문자. 그는 국왕이 보낸 사자였다.

왕명을 갖고 온 그지만, 테스를 향해 거만을 떠는 짓은 하지 않았다.

당장 테스의 위명이 널리 알려졌을 뿐더러, 사자 하나쯤 담궈 버리는 건 쉬운 일인 걸 아는 터다.

사자는 테스와 함께 하는 자리가 부담스러운 듯, 금방 용건을 끝내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하나.

“어떻게 됐습니까?”

“이번 사태의 원인이 던전이라는군.”

“예?”

던전 출몰.

때로 고대 유적지가 던전이 되기도 하고. 마나 이상 현상으로 겹친 차원이 던전이 되기도 했다.

출몰 원인도 다양. 형태는 그보다 더 다양했다.

이번에 출몰한 던전은 데몬족이 등장하는 데몬 던전. 마족 중 하나이자, 전투 생명체라 불리는 데몬족의 무력은 알아주는 바였다.

이 던전이 생겨나면서 급격한 마나 유동이 있었단다. 그게 테스의 영지에 급작스런 이상 개체 출몰의 이유였다.

던전 출몰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 멀리 마스키지언 연합 국경 사이에 생겨난 던전이라나.”

“하필이면 국경이요? 허…….”

“덕분에 일이 재밌게 됐어.”

던전 출몰로 인한 이상 마나 유동. 그 일로 인해 일이 벌어진 건 테스 영지뿐만이 아니었다.

‘왕국 전역이 난리라 했지. 대체 던전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 거지.’

저 남쪽에서부터 북쪽인 테스의 영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마나의 이상 현상이 일어났단다.

심한 경우 그의 영지처럼 아차원 몬스터나 데몬족이 출현하기도 했다. 일부 소규모 영지는 이 출몰로 인하여 궤멸했을 정도.

대다수는 마나 유동에 의해 놀란 일부 몬스터 출몰 정도로 끝나긴 했다지만.

‘피해를 주긴 했다지. 하긴 몬스터 출몰 자체가 문제긴 하니.’

그마저 제대로 대비되지 못한 영지는 피해가 크기야 했다. 던전 출몰만으로 곳곳에 피해가 누적 되었다.

사정을 들은 제리코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 말대로라면…… 저희는 또 준비해야겠군요. 유민들이 또 몰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 그거도 그럴지도.”

“이거 원. 알스를 또 불러들여야겠습니다. 도시 두 개를 한 번에 만들지도 모를 텐데. 영주님의 도움도 없을 것이니. 꽤 고된 시련이 되겠군요.”

행정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감이 늘어날 걸 예상한 덕분이다.

피해는 그가 있는 카르소니아 왕국에만 미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남쪽 마스키지언 연합도 피해를 봤단다.

‘피해가 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지.’

던전 유동으로 인한 피해를 그들은 카르소니아 왕국에 돌리고 있단다.

때문에 날이 갈수록 국경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

원인인 던전을 두고 그리 움직이는 게 어리석어 보이긴 하다만.

“예부터 일이 발생하면, 외적으로 돌리는 게 잘 먹히긴 하죠.”

“제법 머리를 굴린다는 거겠지. 듣기로 연합 자체가 아슬아슬하게 뭉쳐 있는 상황이니까. 이번 기회에 결속을 높이려는 시도일지도.”

“햐. 이거 복잡하게 된 거군요.”

마스키지언 연합 지도자들로선 옳은 선택이다.

이 상황에 골이 아파진건 테스가 속한 왕국의 국왕이었다.

당장 국경 분쟁에 쏟을 전력이 국왕으로선 부족했다. 서부의 국경 분쟁도 있을 뿐더러, 저 북부 오시아 왕국도 문제니까.

그뿐이랴.

국왕과 귀족간 쌍무 계약이 되어있긴 하다만, 현재 그조차도 유명무실했다.

대다수의 유력 귀족들의 세가 강한 상황이다.

이 상황에 억지로 군대를 일으키도록 명했다가, 반발이라도 한다면? 적국을 향할 칼날이 국왕을 향해 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황명 하나에 죽고 살고 하는 거랑은 상황이 워낙 다르단 말이지.’

당장 독립 영주인 테스조차도 징발령을 명하면 나서지도 않을 터이니.

이도 저도 못하는 국왕이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는 결국 적었다.

그 와중에 국왕은 머리를 썼다.

“큼…… 저도 왕궁 행정관 출신이니 이런 말 하긴 뭣하긴 합니다만은. 왕궁이 영 힘을 못 쓰기는 하죠.”

“그래서 나를 부른 거겠지.”

“영주님이라고해서 쉽게 움직여 줄 거라 생각한 걸까요? 저희도 군대 지원은 무리인데요.”

“아니. 이번 초대는 영주로서가 아니라, 나 개인을 향한 초대던데.”

“예?”

“알잖나, 내 출신. 용병 마법사인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긴 했는데, 결국 한마디로 말하면 의뢰야.”

“햐…… 의뢰 형식이라. 국왕이 재미난 생각을 했군요.”

그가 낸 수단은 바로 테스를 이용하는 것.

흥미로워 하는 제리코. 그가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떻게 하긴. 이쪽도 원인을 해결하려면 가긴 가야지. 그래도 이왕 가는 김에 크게 한탕 털어먹어야 하지 않겠어?”

“흐흐. 왕궁 재정이 거덜이 나겠군요.”

제리코의 표정이 음흉해진다.

그는 자신과 다른 행정가들이 왕궁 행정가 출신이라고 강조하곤 꾀를 냈고. 왕실에 있는 온갖 보물들에 대한 리스트까지 만들어 준다 호언을 날렸다.

‘왕궁에서 시달린 게 많았나보구만.’

적으로 두기 가장 껄끄러운 자가 내부자라더니. 능력 좋은 제리코는 그 능력을 잔뜩 발휘할 생각인 듯했다.

그러나, 테스라고 그에 부족하진 않았다.

“그거뿐이겠어. 쓰고 사라지는 재물보다도 더 귀한 것들을 잔뜩 가져와야지.”

“오오.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 견적을 한번 내보겠습니다.”

“부탁하지.”

“흐흐흐. 맡겨만 주십쇼.”

잔뜩 뜯어낼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군주 테스. 그에 딱 어울리는 수하 제리코였다.

* * *

제리코는 말만으로 끝내지 않았다.

왕궁의 여유 자금, 받을 수 있을 권리, 숨은 보물……. 온갖 분야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테스에게 가지고 왔다.

생각보다 자세한 서류. 단 며칠 만에 이뤄질 거라곤 생각지 못할 자세함까지.

서류를 받아들면서도 테스는 소름이 돋았다.

‘……이거, 나도 조심해야겠는데.’

저들이 리스트를 만든 이유는 하나. 그만큼 왕궁에 많은 원한이 쌓였다는 거 아니겠는가.

그가 알기로 행정가가 원한을 쌓는 건 딱 하나 때문이었다.

바로 일!

쏟아지는 일거리. 그에 걸맞게 주어지지도 않는 대가. 그러다 보면 원한이 쌓이는 거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테스도 저들에게 일을 잔뜩 뿌려주고 있지 않은가.

‘월급을 좀 올려줘야 하려나.’

매달 큰 대가를 지불하고야 있다만. 과연 그걸로 만족할지는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다 뜯어낼 수 있을 겁니다!”

“……큼. 고맙네.”

“근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뭔가 불편하신 건 아니죠?”

“하핫. 그럴 리가. 내, 이번에 왕도에 가면 어떻게 행정가들을 더 꼬셔 와야 하나 고민하느라 그러지.”

“오오! 과연! 영주님입니다. 그거도 리스트를 보내 드릴 테니 꼭 데려 오십쇼!”

보라. 새로 행정가들을 더 데려온단 말에 안색이 밝아지는 제리코와 그 일당들의 표정을.

‘……어디선가 원한이 사라졌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 기분인데.’

기뻐하는 저들을 보며 테스는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를 기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당황해하는 사이, 떠나기 위한 채비는 완전히 끝마쳐졌다.

떠날 채비를 관리하고 있던 왕의 사자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테스 자작님. 움직여 주셔야 할 시간입니다.”

“그래. 그럼 가지.”

“예. 이리로…….”

사자가 준비한 마차에 테스가 오를 때까지.

가신들은 그를 배웅하고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느끼는 테스. 전이라면 성대한 환영이려니 하겠지만, 어쩐지 어깨가 무거웠다.

‘던전 처리보다도, 행정가 처리가 더 문제일지도.’

테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럇-

마부의 거센 채찍질과 함께, 마차가 출발했다.

* * *

여정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한가했다.

왕의 사자가 이끄는 무리를 노리고 공격하는 도적 따위는 없었다. 무슨 수단인지 모를 마도구를 펼친 덕에 몬스터도 몰려오지 않았다.

그나마 테스의 흥미를 끄는 건 그 마도구였다.

“대체 그건 뭔 마도구인가?”

“이번에 마탑에서 풀어 놓은 몬스터 기피제입니다.”

“호오.”

“일종의 마나 파장을 불러일으켜 쫓아낸다더군요. 강력한 개체는 힘들지만,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무리는 쉽게 쫓아낼 수 있답니다. 오크에게도 어느 정도 먹히고요.”

몬스터 기피제라니.

풍겨 오는 마나 파장이 거슬리지만, 생각보다 쓸 만하지 않은가. 이 도구로 인한 파장을 생각하면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한데? 그 정도라면 용병들의 일감이 떨어지겠어.”

“아닙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니, 차라리 사람을 쓰는 게 나은 판이죠.”

도구보다 사람 가격이 더 싸게 먹힌다는 건가. 서글프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도 덕분에 재밌는 구경을 했군.”

“필요하시다면 하나쯤 드리겠습니다. 국왕께서도 가능한 한 편의를 봐주라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런가? 내 그럼 사양 않고 받지.”

“예, 여기 있습니다.”

테스가 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라 한 것일까.

왕의 사자는 망설임도 없이, 품에서 기피제 하나를 꺼내 건네줬다. 기피제엔 30센티 되는 기다란 막대에 복잡한 룬어가 새겨져 있었다.

‘꽤 복잡한데? 해석하다 보면 시간이 잘도 가겠어.’

마차 안. 테스는 기피제를 들고 한참을 해석에 몰두해 갔다. 그렇게 움직인 지가 여러 날. 마차는 도시 지넬을 지나 디븐에 도착했다.

도시 디븐엔 오래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를 위한 마법진이 준비돼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텔레포트인가.”

“예?”

“아니야. 바로 들어가지.”

파아앗-

제 영지에도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해야 할까. 라고 테스가 생각하는 사이, 구동된 마법진은 테스를 멀리 수도로 이동시켰다.

순식간의 이동.

테스는 눈을 뜨자마자 주변을 보고 감탄했다.

“햐. 마법으로 도배가 됐는데?”

“말씀 드렸듯, 보안 때문에 텔레포트가 외곽에 설치됐다지만 왕궁의 재산이기는 하니 말입니다.”

“이해는 가네.”

여정 사이, 테스가 편안해진 건지 왕의 사자는 바로 설명을 해 주었다.

‘하기는, 여기가 뚫리면 왕궁까지 직행이지. 그러니 보안 마법이 도배가 된 건가. 여러 마법진을 겹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을 건데. 그런데 잘도 마법진을 설치했군.’

테스는 그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설치된 마법진들을 한참 살폈다.

그 사이 왕의 사자는 물러나고.

고급스런 시종 복장을 한 시종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궁의 시종. 시종이라지만 작위를 지니고 있을 자가 분명해 보였다.

곱게 수염을 기른 그가 테스 가까이 다가왔다.

“테스 자작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왕께 안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음? 바로 말인가?”

“예. 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안내라니. 이 부분엔 테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온갖 절차를 무시하는 건가.’

왕을 만나는 게 결코 쉬울 리 없었다. 작은 영지의 귀족 하나 만나는 데도 필요한 절차가 수두룩했다.

그런데 바로 만남이라. 이는 한 가지를 의미했다.

절차를 무시할 정도로 그만큼 급하다는 것.

의미를 바로 이해한 테스. 그는 한껏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제대로 뜯어 먹을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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