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챕터 23.
테스의 기감은 진득한 마나의 파동을 놓치지 않았다.
‘심각한데.’
그는 즉시 행동을 멈췄다.
그의 영지 건설을 돕던 인부들이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괘념치 않았고. 영지에 만들어진 비상 통신망에 메시지를 보냈다.
[영지군 전투 준비.]
단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테론을 비롯한 영지군 전부가 분주해졌다.
테스는 제 몸을 서쪽을 향해 움직이며, 재차 명령을 내렸다.
영지군 집합지는 서쪽, 준비 장비는 대괴수 처리용으로………….
쏟아지는 그의 명령에 영지군은 반응했고. 금세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그도 예상하지 못한 자들이 몇 있었다.
‘제자들이 알아서 움직여 줄 줄은 몰랐는데.’
제자와 속가 제자 몇이 같이 서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제자는 에나가 중심이고. 속가 제자는 다론 피터가 중심이었다.
고작해야 몇 분.
테스가 만족할 정도의 숫자가 서쪽 문에 모여들었다.
영지군은 급작스러운 상황이었으나, 다들 무장은 충실히 갖추고 있었다. 그간의 훈련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의미였다.
제자들의 무장은 반대로 단출했으나 상관없었다. 이들은 영지군과 다른 형태를 띤 특수 전력이라 봐도 무방했으니까.
‘저 정도라면, 충분해.’
모든 전력을 확인한 테스. 그가 명을 내렸다.
“왔나. 바로 전진하지.”
“명!”
출진의 시간이다.
* * *
테스를 위시한 모두는 서쪽으로 급속 이동을 감행했다.
“민첩, 재생력 강화. 가속부여. 다중.”
스스스스-
이동력 강화를 위해, 테스의 마법이 여럿 들어간 건 당연했다.
배는 민첩이 강화되고, 지치지 않을 체력을 위해 재생력이 강화됐다. 4클래스의 마법 가속부여도 사용됐다.
[방출], [강화], [속도], [마나], [작용], [역전].
몸의 에너지를 활성화하고, 속도를 끌어 올리는 건 기본. 바로 땅을 찰 때마다, 강화된 반발력이 올라와 속도를 더해 주는 게 가속부여의 핵심이었다.
마탑으로부터 얻은 마법에 테스의 개량까지 더해진 최상의 마법.
효과는 확실했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속도가 다섯 배는 더 빨라졌으니까. 가히, 급속이동이라고 하기에 모자람 없는 이동 속도.
정예고 반 병사고 가릴 거 없이 병사들은 금방 수 킬로미터를 주파했다.
그 선두에 테스가 있었다.
그를 따르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테스는 기감을 돋워 급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존재들을 느꼈다.
점차 가까워질수록, 기운으로만 느껴졌던 존재들이 점차 세밀하게 느껴졌다.
수백 미터쯤 거리를 남겼을 때는 바로 앞에 있는 듯 그 형상이 그려졌다.
머리 위로 난 수백여 개의 뿔, 붉은 피부, 네 개의 팔에 든 제각기 다른 무기, 5미터는 되는 덩치…….
약샤(Yaksha). 이 세계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낸 아차원의 존재.
-키이익.
-킥.
거대한 약샤 바로 아래에 그보다 작은 수백여 마리의 약샤들.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영지군을 비웃듯 괴악한 미소를 지속 있었다.
“약샤…… 저것들이 어떻게 소환된 걸까요?”
“모르지. 울픈 산맥에 무슨 문제가 발생했거나…… 미친 혈법사 새끼들이 실험을 벌였을 수도.”
“어느 쪽이나 최악이군요.”
타차원의 존재인 약샤.
이들은 이 세계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타차원에 거주하는 약샤는 몇 개의 조건이 맞아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첫째, 소환이었다.
타차원이라 하나 약샤의 세계는 이 세계에 겹쳐있는 터. 정령계와 같이 가까운 곳이었기에 소환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 대가가 소환자의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게 문제.
둘, 마나의 이상 기류.
이 세계에서 때때로 마나의 흐름이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이상 기류가 만들어질 때면 재앙이 불어 닥치곤 했다.
불의 비가 내리기도 하고. 땅의 물이 역류하여 마른땅에 홍수가 일어나는 건 예삿일. 이 중 타차원 존재의 소환은 가장 빈번한 일이었다.
문제는 단 한 번의 소환이 아니었다.
“이상 현상으로 저쪽 차원과 이쪽이 겹치게 된 건 아니겠죠?”
“……그건 최악이지.”
“대체 이게 뭔 일인지. 후…….”
마나 이상 현상으로 차원과 차원이 겹치고. 겹쳐지며 가까워진 차원 사이에 통로가 만들어지면 그땐 최악이었다.
단발성이 아닌 몇 차례의 소환이 이뤄질 수도 있는 일.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이 영지는 진법을 설치해 놔서 마나가 안정돼 있는데. 설마…… 얼마 전 그거 때문은 아니겠지?’
테스는 제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 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하나. 성국의 눈을 돌리겠다고, 진법석을 온 곳곳에 흩뿌린 일. 그러나 그건.
‘그걸로 일이 발생할 확률이 지극히 낮을 텐데. 하, 참.’
그가 생각하기에 아닌 일이었다.
그는 애써 떠오른 가설들을 지우며, 휘하의 병사들에게 버프를 재차 부여했다.
근력, 체력, 민첩성, 생명력, 재생력 강화…….
온몸을 초인처럼 강화시키고. 이도 모자라 마력 갑옷과 각종 내성 강화를 시키고서야 그는 만족했다.
버프 마법에 온몸이 은은한 빛으로 둘러싸인 영지군. 흡사 신의 군대와 같은 형태를 띤 그들의 사기는 드높았다.
그들을 향해 내린 테스의 명령.
“정예군은 하급의 약샤를 맡는다. 중급의 약샤는 에나를 포함한 제자들이 맡고. 테론과 같은 지휘관급이 그를 돕는다.”
“이해했습니다!”
즉석해서 짜낸 작전이 병사들 머리에 새겨지고.
“좋아, 그럼 전진!”
“명!”
-키이이익!
명을 받은 병사들이 약샤들과 부딪쳤다.
* * *
콰아아앙-!
약샤와 병사들의 부딪침. 태어날 때부터 괴물인 약샤와 초인이 된 병사들의 부딪침은 강렬했다.
육신과 육신이 부딪침에 쇳소리가 났다.
-키익?
하급 약샤는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조악한 인간의 신체. 한줌 주먹거리도 안 되는 인간의 육체를 부딪침에 타격이 들어왔다.
반대로 인간은 기세등등해 보였다.
“괴물 새끼가!”
-키에엑!
행동은 인간이 더 빨랐다.
한 번의 부딪침으로 서로의 육체는 비등비등함을 깨달은 백부장, 아사르.
그는 창을 휘둘러 약샤의 목을 향했다.
-키에엑!
약샤가 바로 반응한다. 약샤의 육신과 아사르의 창이 부딪친다.
타아앙-!
‘역시 강해.’
타차원의 존재.
오러나 마력이 부여된 힘이 아니고서야 타격을 먹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극한의 물리력이 들어가더라도 생채기를 내는 게 전부.
일반 병사가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하나, 아사르는 자신만만했다.
“고적 너 따위 것에 당하자고 한 훈련이 아니란 말이다!”
후우웅-! 후웅-!
그는 처음부터 단번에 약샤의 멱을 딸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수십, 수백 번이라도 휘두를 요량이었다.
양가 창법을 극성에 가깝게 익히고 있는 아사르. 그의 손에서 양가창법의 극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란나찰. 찌르고, 돌리고, 제압한다.
창의 시작이며 극의가 그의 만들어진다.
스스스스-
천급의 재능을 지닌 그가 지난 수년간 익혀낸 창법. 테스의 지원으로 인해 초인으로 단단해진 그의 육신이 최상의 무공을 펼쳐내었다.
‘먹힌다!’
-캬아아악!
쩌저저적-
약샤의 팔이 쪼개진다. 창은 드릴처럼 회전하며 남은 어깻죽지를 꿰뚫었다. 순간, 약샤의 육신으로부터 멀어지나 싶더니 다시 휘둘러지며 머리를 때렸다.
-……켁.
절대 쪼개지지 않아야 할 약샤의 육신. 병사 수준에서 감당키 힘들 재앙과 다름없는 타차원의 존재가 으깨진다.
츠츠츠츠-
온몸이 으깨지고 제 몸을 구성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수백으로 토막 난 약샤의 존재가 흐트러졌다.
제 차원으로 돌아가는 게 이들에게 곧 죽음. 죽어 사라지며 남는 건 부스러기처럼 남은 육신 몇 조각이었다.
콰드득.
아사르는 그 조각을 짓이겨 밟으며 말했다.
“백 인대 전진!”
더 앞으로 나아가자고.
* * *
영지 정예 병사들이 분투를 벌이는 사이.
병사보다 상위 개체를 맡은 의선문 제자들도 제 몫을 다하고 있었다.
“연류검 사 초, 현연(泫連).”
츠츠측-
에나의 손에 끊임없이 만들어진 흐름. 흐름은 끊어지고, 연이어지길 반복하며 주변을 절단했다.
그녀 곁에 자리한 프로스. 그는 계약한 화염의 정령을 검에 덧씌우고. 약샤들을 화염으로 살라 먹었다.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제자들은 한데 모여 힘을 냈다.
테스가 전수하여준 오행진을 위해 각자 다섯이 뭉쳤고. 뭉친 힘을 바탕으로 본래 전력보다 수배의 능력을 냈다.
-캬아아악!
“죽여! 공세를 유지해!”
“이쪽은 방진으로. 우선 한 번 빠지고, 바로 뒤를 친다!”
“알았어!”
혼자론 부족하나, 뭉친 그 순간부터 이들은 영지군 이상의 힘을 냈다.
속가 제자들이라고 해서 부족한 건 아니었다.
왕국의 여섯 번째 소드 마스터 다론. 그를 중심으로 뭉친 나머지 속가 제자들. 그들은 테스가 손봐 준 힘을 바탕으로 전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좌익부터 쓸어버린다!”
“알았다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힘을 사용하나, 오래전부터 손발을 맞춘 지 오래였다. 그 힘을 바탕으로 저들은 중급의 약샤를 상대해갔다.
카드드득- 카득-
그들이 전차처럼 전장을 휩쓸 때마다.
-캬아아악!
-켁.
하급보다 더 큰 덩치를 지닌 중급의 약샤들이 무너져 내린다.
츠츠츠츠-
붉은 육편. 마법사라면 눈이 훽 돌아갈 귀한 재료들만 남기고 사라지는 약샤들.
겉으로 봐선 테스의 군세가 약샤의 군세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약샤들은 테스의 군세에 피해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부상을 당할라치면 몸을 내빼고 회복부터 하고 오는 테스군. 그들에겐 사상자조차 금세 사라졌으니까.
그에 비해 약샤는 수백의 존재가 스러졌으니.
-키이이…….
타차원에서도 존재 자체가 드물다는 약샤로서는 뼈아픈 손해나 다름없었다.
하나, 약샤들에게 최후의 보루는 존재했다.
일반 약샤와는 울림부터 다른 존재.
-그륵…….
‘저걸 죽이지 못하면 끝나지 않아.’
모습을 드러낸 처음부터. 오롯 테스만을 향해 집중하고 있는 상급의 약샤.
저 존재가 이 세계에 발을 디딘 한은 약샤의 재앙은 끝나지 않는다.
저 존재 자체가 타차원과 이 세계를 잇는 통로가 되고. 통로가 존재하는 한은 계속해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때로 마족보다 더 지독한 존재가 저 약샤들이었다.
그러기에 테스가 상대해야 할 자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저 약샤를 처리해야 했다.
‘간다!’
생각과 동시 그의 몸이 쏘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