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6화
챕터 21.
테스가 생각해 낸 꾀는 복잡한 게 아니었다.
힘을 더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지금. 그 능력을 이용하여 성국에 교란을 일으키고자 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더했다.
‘예상이긴 하다만, 내 영역엔 진법이 있어서 아직도 관측이 안 된 거 같단 말이지.’
바로 진법이다.
이 세계에서 오로지 테스만이 가진 재주. 진법을 활용하면 안 그래도 깊어진 그의 능력이 배 이상이 된다.
그는 이걸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보자. 새로운 방식으로 진법을 펼치려면…… 미리 도구들을 준비해야겠지.”
수련실이 아닌 연구실로 향했다.
“문주님, 무슨 일로?”
“오랜만에 도와줄 일이 생겼어. 우선 내가 말한 재료들부터 챙겨와 줘.”
호법이 된 연금술사 레이즈. 그가 도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 테스가 말한 재료들을 금세 찾아왔다.
“여기 있습니다.”
“잘했네.”
라프나, 페설, 프러트, 펙서, 중급 마정석 수십여 개…….
수많은 재료를 준비함에도 빠짐이 하나 없었다.
레이즈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로선 이 재료들을 조합해서 무엇이 나올지 도무지 가늠이 안 되는 듯했다.
“이걸로 대체 무얼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한 번 지켜봐. 레이즈, 자네도 보면서 얻는 게 있을지 모르니까.”
“가, 감사합니다!”
레이즈가 기뻐했다. 테스의 방식은 보는 거만으로 크게 도움이 될 터. 그가 그러는 것도 이해는 됐다.
그런 레이즈의 얼굴을 흘끗 보고는.
사각- 사각-
테스는 손에 쥔 주먹만 한 마정석부터 작은 조각들을 새기기 시작했다.
* * *
‘됐다!’
테스는 마정석 조각에 진법을 새겼갔다.
그걸 새기는 데 꽤 많은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진법을 새기며 소모된 마정석의 마력. 그 마력은 미리 준비한 재료들을 통해서 보충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가지를 잊지 않았다.
츠츠츳-
바로 힘의 부여다.
“직접 힘을 부여하시는군요. 그러다가 마정석이 깨질 수도 있을 텐데요.”
“그게 내 노하우지.”
마력, 선천진기, 내력.
그 세 가지 힘을 그는 단번에 조율하고 있었다. 그 대신으로 걸리는 육체의 과부하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정석에 안에 들어간 힘들이 제각기 따로 놀았다.
꼬아지고 산란하며, 뭉치며 튕기었다.
스스스-
이때가 중요했다. 삐끗하다가는, 마정석 내부에 깃든 마력이 마정석 자체를 파괴할 수 있었다. 모든 게 날아갈 수 있는 순간.
손에 쥔 마정석의 가치가 각각 천 골드가 넘어감을 생각하면, 테스라도 실패는 안 될 일이었다.
“후으.”
그는 호흡을 조절하며, 마지막 단계까지 집중을 지속했다. 그러곤.
우우웅-!
기어이 마정석에 진법을 새겨 넣는 데 성공했다.
“……됐다.”
“와. 이게 정말 되는 거군요!”
기운이 안정화된 마정석.
그의 세밀한 조각이 새겨진 마정석은 내부의 빛이 산란할 때마다 기이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줬다.
단지 아름답기만 한 조각이 아니었다.
‘제대로 새겨졌다.’
빛이 산란할 때마다 안에 새겨진 진법이 맥동했다.
마법 스크롤에 마법을 새겨넣듯, 진법을 새겨 넣는데 성공했다!
이번에 얻은 기운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 할 일이었고.
‘오래전에 얻은 룬 조각도 꽤 도움이 됐지.’
전에 베빈으로부터 얻었던 룬 조각도 분명 그에게 도움이 됐다. 미리 룬어를 새겨 넣어 마법 구동을 빠르게 만들었던 그것 말이다.
“대체 어떻게 쓰일지는 감도 안 잡히지만, 저에게도 영감이 꽤 되는군요.”
“하나쯤 챙기려면 챙겨둬. 문파의 호법인데 그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으니까.”
“오오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건 뭐라고 하는 겁니까?”
“진법석.”
“네?”
“있어. 나중에 가면 얻을 래도 얻을 수 없는 놈이니까, 잘 간수하라고.”
테스는 호들갑을 떠는 레이즈를 두고서, 연구실을 나섰다.
그가 연구실을 들어서고 나설 때까지 걸린 시간이 어느덧 한 달 가량. 대련 이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셈이지만, 당장 움직여야 했다.
‘성국보다 한발 빨라야 해.’
성국의 눈을 가릴 시간이었다.
* * *
품 가득 진법석을 담은 그.
그는 영지가 아닌 바깥으로 나섰다. 오랜만의 외유. 레이즈를 제외한 그의 측근도 모르는 은밀함도 함께였다.
마법에 경공까지 가미하여 움직인 그는 금방 영지를 벗어났다.
그는 계속해 위로 향했다.
테스론 영지를 지나, 초토화되다시피 한 휘슬이 보였다.
‘데프가 제대로 부숴놨네.’
다시 앙스를 지난 그의 발이 디딘 곳은 국경이었다. 왕국 오시아와 카르소니아가 마주보고 있는 곳.
경계 사이에 자리한 테스는 주변을 살폈다.
“보자. 아무도 없는 건 확실하고.”
사소한 분쟁을 제외하곤 별다른 일이 없는 두 나라기에 국경은 한산했다. 테스의 주변으로 300미터 가량 쥐새끼 하나 없었다.
‘그럼 그려 보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테스는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름 5미터. 그 안에 새겨진 룬어는 수십 가지나 되는 마법진이었다. 미리 연습을 해 왔기에 마법진은 금방 완성됐다.
“반쪽짜리다만, 괜찮은 편인데?”
그가 만들어 낸 마법진의 정체는 텔레포트!
그가 이전 아르펠 공작에게 이동할 당시 사용했던 그 마법진이었다.
말했듯 완벽히 완성된 마법진은 아니었다.
‘반대편에 대응해야 할 마법진도 없고. 좌표도 제대로 안 적혀 있지.’
사실, 반쪽짜리라 칭한 거도 꽤 높이 쳐 준 수준이었다.
대응 마법진이 없으니 제대로 텔레포트도 안 될 것이고. 좌표가 안 적혀 있기에 어디로 이동될지 모를 마법진이었다.
이름하야 랜덤 텔레포트 마법진이랄까.
엉망이다 못해, 잘못하면 이동을 하다 차원 미아가 될 수 있는 괴랄한 마법진이었다.
하지만 테스는 그걸 흐뭇한 눈으로 봤다.
“몇 번만 고생해 주려무나. 자, 마력 주입.”
우우웅-
그러곤 마력을 주입해 마법진을 활성화시켰다. 거대한 마력이 마법진을 휘돈다.
‘국경의 마법사가 마법진을 알아채기까지 딱 오 분. 그쯤이면 충분해.’
활성화된 마법진 위. 테스는 미리 준비한 물건을 하나씩 던졌다.
바로 진법석이었다.
어느새 활성화된 진법석은 전보다 짙은 마력을 풍기며 텔레포트 마법진에 들어갔다. 가운데 안착하는 그 순간.
고오오오-
텔레포트 마법진은 테스도 알 수 없을 곳으로 진법석을 텔레포트 시켰다.
* * *
테스가 날린 수십여 개의 진법석.
진법석을 날린 그도 모르는 좌표로 사방팔방 날아간 진법석은 대륙 곳곳에 쏟아졌다. 그러곤, 그가 원하는 대로 작동을 시작했다.
고오오오-!
진법석에 내재된 기운과 바깥에 있는 마나가 공명했다. 진법석은 마나와 공명을 사정없이 부풀렸다.
설사 7클래스 마도사라도 부리기 힘들 거대한 기운이 순식간에 뭉쳤다.
거대한 기운!
뭉친 기운을 진법석은 한계까지 받아들였다. 그러다 이내 제 한계 용량을 초과하는 그 순간.
쩌어엉-
진법석은 힘을 이기지 못하고 폭발했다.
동시에 진법석 내부에 있던 기운이 주변을 때렸다.
그그그긍-
거대한 기운의 폭발이 일어났다.
목적성도 없이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치는 기운들!
이런 거대한 기운들이 곳곳에서 터져나갔다.
안 그래도 테스가 진법석마다 각기 다른 속성을 박아 넣은 터. 대륙 곳곳에 전에 없던 생경한 기운들이 수십여 개 폭발했다.
그러자 성국의 관측자들은 난리가 났다.
-예비 승천자인가!?
-아니, 이건 전과 다른데…… 이리 많은 기운들이 대체 왜…….
-설마, 드래곤?
-그들은 멸족하지 않았나. 아니 시켰지. 그런데도 이런 기운들이라니.
대륙 곳곳에 시야를 두고 있는 그들이 기운의 파동을 놓칠 리 없었다. 또한 기운이 관측되는 한 그들은 움직여야만 했다.
이 거대한 힘의 유동을 낳은 자가 언제 승천을 할지 모르니까.
-총 육십육 개의 파동이 있었다.
-연쇄의 파동이었으니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곳도 감안하면…….
-수는 그보다 더 많겠지.
안 그래도 샤이르덕의 울픈 산맥에 추격자 다수가 나가 있는 상황.
이런 상황에 급작스러운 움직임은 그들에게 큰 경각심을 줬다. 이 중 단 하나라도 예비 승천자가 있다면 잡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지난 제국 성립 시기에 그러했듯이.
-예비 승천자가 하나가 아니라 다수일지도.
-계시를 받은 성녀나 성자가 없는가?
-허…… 다수라.
하나가 아닌 여럿의 예비 승천자가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는 승천자를 죄악으로 여기는 성국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황.
-비상이다.
-모두 움직여야 해.
성국에 남아 있던 승천자들. 짧게는 수십 년, 길게 수백 년까지 성국에만 머물던 그들이 모두 몸을 일으켰다.
-나는 핀도르와 움직이지.
-그대가 빛이라면…… 난 아리엔이겠군.
-좋아. 그럼 난 다렐교와 함께하겠네.
그들은 각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단과 손을 잡았고. 순식간에 힘의 궤적을 추격할 자들을 들어 모았다.
한데 뭉쳐있던 성국의 세력들이 온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제대로 먹힌 건가.”
이 모든 소동을 일으킨 테스. 그는 몰래 감시망을 뿌려 성국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이번 소동은 제대로 먹힌 터.
하나를 움직인 베빈에 비해 자신은 수십을 움직여 놨으니, 시간은 충분히 끌고도 남았다 여겼다.
‘막상 찾아 보면 허탈할 거다.’
텔레포트 좌표를 랜덤으로 한 만큼, 진법석이 떨어진 곳은 그도 모를 정도로 다채로웠다.
온갖 괴물과 악귀가 넘치는 게 이 세계이니.
성국의 인물들도 이를 탐험하려면 꽤 고생을 할 수밖에 없을 터.
성국의 시선을 피해 시간을 벌어야 했던 테스로서는 완벽히 목적을 이뤘다고 여길 만했다.
“시간을 벌어 놨으니, 그 사이 나는 우선 미룬 것들을 처리해 볼까.”
그는 만족스러워 하며. 그간 미뤄 놓았던 일들을 처리하고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만, 그도 하나는 알았어야 했다.
쩌어엉- 쩡-!
그가 만들어낸 진법석의 폭발은 오로지 성국만을 자극한 게 아니었다.
힘의 궤적을 읽어 들이며 감시하는 자는 성국만 있는 게 아니었다.
-호오. 이런 힘이 아직 이 대륙에 존재한다고?
저 멀리 감시자를 자처하고 있던 자의 호기심을 끌게 하였으며.
-맛있는 먹잇감이다!
-키키킥. 새로운 힘이로구나.
태초부터 힘을 탐하는 족속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륵?
그중 일부는 지금의 테스라도 감히 감당하기에 힘든 힘을 가진 존재들도 수두룩하였다.
자극을 받은 것들 중에는.
그그그그긍-
문명에서 숨어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던, 무생물들도 있었으니.
성국의 눈을 피하고자 만든 그의 꾀 하나가 꽤 많은 존재들의 주목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터였다.
그런 상황도 모른 채 테스는 미뤄뒀던 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