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챕터 20.
‘재밌네! 마치 주화입마 입은 무인 같잖아?’
과격한 힘의 유동을 보며 테스는 되레 비웃었다.
제 몸이 가진 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자는 그가 보기에 허접한 쓰레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싱겁게 됐는데?’
이런 자를 부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 틈을 노릴 것도 없었다.
그가 지닌 선천진기와 내력!
이 갑자가 넘는 내력에 선천진기를 융합하는 순간. 아프가 휘두르는 이 힘 따위는 감히 덤비지도 못할 만큼 거대해진다.
흡사 어른과 아이의 차이만큼 힘의 차이가 벌어지겠지.
테스로선 그 힘의 차이를 이용해 쪼개 누르면 될 뿐이었다.
오우거가 인간의 몸을 짓이기듯.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 아프를 짜부라트릴 수 있었다.
테스는 그러질 않았다.
“옳지. 더 해 봐라.”
“감히 이교도가! 날 가지고 놀아!”
콰아앙-! 콰앙!
피하지 않았다. 육체와 육신을 마주 부딪쳤다.
저 거센 아프의 힘을 상대로 손을 마주했다. 힘 대 힘. 강 대 강의 구도를 계속해 유도했다.
지극히 무식해 보이는 상대 방식이었으나 그런 가운데 테스는 얻는 바가 있었다.
‘과연…… 이런 거였나?’
아프의 신성력을 맞이하고. 가까이 신성력을 상대하고 받아들이며, 그 힘의 유동 방식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프 사도르.
그의 성에 사도르가 붙었단 의미. 그가 전사의 신을 모신다는 의미이며, 그의 힘을 신성력으로 다루고 있단 뜻.
‘이 세계 전사의 신은 꽤나 패도적이구만.’
그 패도적인 힘을 맞상대하는 가운데, 느끼는 바가 있었다.
아프 사도르가 격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그가 흩뿌리고 있는 신성력.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힘의 방식을 테스가 읽어 들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읽어 들임은.
“고맙게 됐다.”
“뭣!?”
고오오오-
언제고 새로운 경지를 꿈꾸던 테스에게 또 다른 조각이 됐다. 더 높은 경지로 향할 수 있는 조각이!
급작스런 대결에 순간적으로 들어 온 이질적 감각.
그 감각이 주는 새로운 깨달음에 대한 조각을 테스는 성공적으로 부여잡았고. 이는 그가 새로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콰앙! 쾅!
순간. 테스의 몸이 지닌 내력의 파괴력이 배로 증가했다.
그의 손이 아프의 몸을 때렸다.
“커윽…….”
같은 내력을 사용하는데도 파괴력은 몇 배 증가했다. 강화된 파괴력에 아프는 테스의 손을 맞상대할 수 없었다.
광신에 물든 아프의 눈이 흔들린다.
“어찌…… 네가…….”
다른 자들은 몰라도 테스를 맞상대하는 아프는 알 수 있었다.
지금 그의 신성 갑옷을 쪼개 오는 이 힘!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신성력과 거의 흡사한 힘이었다. 성기사가 아니고선 다룰 수 없는 힘일진데, 그게 테스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프의 눈이 두려움으로 떨린다.
관측자가 아님에도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자…… 이자가 예비 승천자였나?’
지금, 성국이 울픈 산맥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진짜 예비 승천자는 이곳에 있었다.
그는 단순히 강력한 마검사가 아니라, 어쩌면 성국의 모든 힘을 흡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자였다.
말해야 했다.
이 잘못된 상황을. 어서 끝내야 한다 말을 해야 했으나.
“모, 모두 이 자가…… 커어어억!”
“이제 끝내자.”
아프의 말은 더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타아아앙-!
테스의 손. 그의 손에 내재된 거대한 기운들이 아프 사도르의 육신을 두드렸다.
* * *
쩌정-
신성갑옷이 쪼개지고. 그 안에 있던 속살이 드러난다.
신성력이 급격히 뭉치며 재차 갑옷을 형성하려 한다. 하지만, 테스에게는 그 작은 틈이면 기운을 쏟아 붓기에 충분했다.
전사의 신의 방식을 닮은 그의 기운이, 아프의 온몸을 헤집었다.
쩌저적- 쩌적-
그 결과 온몸이 하얗게 물들어 버린 아프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깨진 항아리처럼 금이 간 몸은 신성력으로도 다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온몸을 파고든 신성력은 그 주인을 잡아먹어 버렸다.
콰아앙-!
실금이 간 사이로 잔뜩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그 주인의 몸을 폭사시켜 버렸다. 환한 빛 사이로 조각이 돼 떨어져 내리는 아프 사도르.
테스는 사라져 버린 아프의 육신보다도 이 거대한 폭발을 막아내야만 했다.
‘끝까지 방식이 저열하구만.’
그는 폭발을 피하지 않고, 대신 마력을 끌어 올렸다.
끌어 올린 마력으로 순식간에 주변을 영역화. 안과 밖을 마력의 벽으로 차단시켰다.
그그그그긍-
환한 빛이 그의 벽과 부딪치며 산란했다.
빛 안에 내재되어 있던 거대한 기운은 이리저리 산란하며 파괴를 일으키려 하였으나.
“잘 써먹어 주마. 흡수하는 손길, 다중.”
스스스-
그조차도 테스의 손짓 아래에서 흡수돼 갔다. 본래의 그라면 신성력을 받아들이는 거 자체야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재밌는 깨달음이었어.’
적어도 전사의 신 사도르의 것은 일부 흡수가 가능했다. 그 신성력의 구동 방식 일부를 읽어내는 쾌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끝끝내 흡수되길 거부하는 힘들도 있긴하였으나.
‘흡수하지 못한 건, 버리면 돼.’
그 작은 허접한 힘 정도야, 테스가 지닌 힘으로 사그라트릴 수 있었다.
결국 아프 사도르의 육신도그가 지니고 있던 신성력도 이 비무장 내를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알 수도 없겠지.’
아프를 상대한 테스에 대한 정보는 당장 성국에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
테스의 힘을 읽어 들일 흔적조차도 테스가 샅샅이 파괴하여 버렸으니까.
관측자가 어떤 방식으로 예비 승천자를 찾든 간데, 이리 힘이 사라져서야 못 읽어 들일 게 분명했다.
결국 아프를 죽이는 게 테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였다.
그 대신.
“영주님!”
“오오…….”
“어찌 아프가…… 저렇게 쉽게…….”
앞으로 벌어질 일이 꽤 복잡하게 될 게 분명했다.
* * *
아프 사도르의 죽음.
대련장 주변을 감싸고 있던 자들 모두 그 죽음을 똑똑히 지켜봤다. 시체조차 남지 않는 참혹한 죽음이었다.
아프와 같이 온 자들은 그 장면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았다. 대련장 위에 있는 테스를 집중하고 볼 뿐이었다.
이내 테스가 모든 힘을 걷어내고 대련장 아래로 나서고 나서야 그들도 따라 움직였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은 테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 반대. 그들은 아무 말도 않고 대련장 바깥으로 나섰을 뿐이다.
테스의 기감으로 느끼기에 그 방향은 영지 바깥.
‘성국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그들을 제 볼일을 보면 됐다는 태도였다.
죽어 나가 버린 아프 사도르만 우스울 따름이다. 하지만, 본래 광신도가 지닌 속성이 그러하니 이해 못할 건 아녔다.
되레 유난을 떠는 건 테스의 쪽이었다.
특히 제리코의 경우 안색이 좋지 못했다.
“영주님, 죽이실 거까지는 있었겠습니까? 되레 저들 시선만 끌 텐데요.”
“아니. 이게 맞다.”
“승냥이들이 더 몰려 올 겁니다. 성국은……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앞으로가 걱정되는 거겠지. 그의 말대로 성국의 시선은 더 짙어질 거다. 언제 복수의 칼을 내밀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제가 얻은 힘을 갈무리하고 있는 테스.
그도 이러한 사실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살려줬으면, 더 일이 복잡해졌을 거다.”
“휴우.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저는 제 할 일을 따로 준비해 둬야겠군요.”
테스의 굳건한 태도. 그걸 본 제리코는 결국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 무언가 준비를 하려는 듯, 그도 행정관 몇을 이끌고 대련장을 벗어났다.
테스는 그런 제리코를 한참 보다가, 남아 있는 모두를 해산시켰다. 그러곤 홀로 남아 그가 해야 할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
“후…… 흡수해 볼까.”
이번 대련으로 얻은 깨달음에 대한 완전한 흡수였다.
* * *
패도(霸道).
무림에서 말하는 묘리 중 으뜸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바로 패도였다.
압도적인 힘과 격.
그 둘로 말미암아 적을 완벽히 압살하는 데 묘를 둔 것이 패도였으니, 그 파괴력만은 가히 최상이었다.
테스는 이러한 패도를 사도르의 신성력에서 보았다.
“패(覇). 그 자체였어.”
제 앞을 막는 건 뭐든 부수겠다는 그 의지.
그러한 관념으로 똘똘 뭉쳐있는 그 힘은 순수하리만치 투명했다. 그 가운데서 그는 그 묘리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우연이 낳은 깨달음이었으나. 그 효용은 말할 게 없었다.
스스스스-
당장 그의 혈도들을 타고 흐르는 내기부터가 흐름이 달라졌다. 패도에 대한 깨달음이 기의 흐름을 뒤바꿨다.
강력했다.
이 흐름을 이용하는 거만으로, 그의 무력은 전에 없이 강해질 터.
같은 무공을 사용하더라도 파괴력이 배는 될 거였다. 본래부터 패도의 묘리를 이용하던 초식들은 그보다 더 강력해지겠지.
“재밌는 수단을 얻었네.”
단 한 번의 대련. 그를 통해 얻은 깨달음치고는 과할 정도의 보상이다.
하나, 보상은 이로 끝이 아니었다.
패도를 깨달았다 해서, 패도에 잡아먹히면 그게 깨달음이겠는가.
‘조절할 줄을 알아야지.’
그는 패도를 다루면서도 그 패도를 조종할 줄 알았다.
스스스스-
그가 기세를 줄이기로 마음먹자마자. 그의 내부를 타고 흐르던 흐름이 다시 본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패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오직 고요한 흐름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결국 그가 이번에 얻은 깨달음은.
“단순히 패도에 관한 깨달음이 아니라, 다른 자의 기운을 훔쳐 배울 수 있단 거겠지.”
기운 그 자체의 조종(操縱)에 있었다.
패. 쾌. 중. 환. 흡. 와. 곡. 충…….
수많은 기운의 묘리들을 한결 더 쉽게 조종할 수 있게 됐다.
이를 검에 펼치면 패도가 패검이 될 것이고. 환의 묘리를 권으로 펼치면 환권의 묘리가 한결 더 깊어질 터.
기운에 관한 깨달음을 얻은 거만으로, 그의 격이 한층 깊어졌다.
‘이걸로, 한 걸음 더 나갔다.’
이는 기반이 될 터였다.
그가 다음 단계인 진정한 현경. 전생처럼 어설프게 만들어진 격 없는 경지가 아니라, 진짜 깨달음이 될 기반이었다.
전생에도 없던 깨달음!
그러한 깨달음이었기에, 그는 대련장 위로 홀로 남아 제가 얻은 경지를 홀로 즐기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후음…….”
떠올랐던 달이 다시 땅에 스며들고. 해가 떠오를 때가 될 때쯤이었다.
경지를 갈무리하던 그는 한 가지 재밌는 꾀가 떠올랐다.
‘가만 보자? 이번에 얻은 이 깨달음을 잘만 이용하면, 성국의 눈을 완전히 돌리는 거도 가능하겠는데?’
퍼뜩 떠오른 꾀치고는 생각할수록 꽤 괜찮았다.
다소 많은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그 정도야 지금의 그에게 식은 죽 먹기인 터. 그가 떠오른 생각대로만 된다면.
‘이득이 꽤 될지도!’
안 그래도 깊어진 성국의 시야를 다른 거로 덮을 수 있을 터였다.
“한번 해 보자.”
그는 이게 웬 떡이냐는 생각으로, 당장 그가 짠 꾀를 실행하려 몸을 일으켰다.
그가 생각해 낸 새로운 수단.
그 수단이 후에 어떠한 일이 일으킬지는 전혀 생각도 못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