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챕터 19.
“이것을 위해 찾아왔습니다.”
테스의 태도에도 상대편에 있는 성기사는 예의바름을 겉으로 보였다.
그러며, 동시에 품에서 있던 물건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하, 이걸 이리도 당당히 가져온다고?’
테스는 그가 꺼내 온 걸 받아들며, 헛웃음이 나오는 걸 느꼈다.
상대가 그에게 건넨 건 비무첩.
그가 비무행을 벌이던 당시 여러곳에 뿌렸던 비무첩 중에 하나다. 그가 보냈던 비무첩은 맞았다. 그만이 알 수 있는 천리향이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 내용.
비무첩을 받아야 할 진짜 이름은 어디로 가고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프 사도르]
테스가 비무첩을 보낸 적 없는 이름이다.
‘조작됐군.’
그가 보낸 비무첩을 가지고 잘도 조작을 해냈다는 의미.
겉으론 여전히 예의바름을 가장하고 있다만. 역시 속은 제대로 썩어 있는 성국의 것이다.
“아프 사도르. 그래, 이런 식으로 비무첩을 가져오면 비무를 해 줄 거라 생각한 건가?”
“뻔뻔한 것은 압니다. 다만, 확인할 것이 있는지라 실례를 범했습니다.”
“확인이라…….”
상대는 제 수작질이 걸렸는데도 여전히 평온한 상태였다.
츠츠츠츠-
“고작해야 실례 정도가 아닌데 말이야.”
“……으음.”
테스가 기운을 끌어 올려 주변을 장악하고 나서야, 몸을 움찔거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눈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광신도 자식들이란…….’
죽음이 다가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눈.
저러한 눈을 테스도 전생에 겪은 바가 있었다. 중원의 혈교와 마교. 종교가 섞인 문파에 들어가 있는 문파원들 다수가 저러한 눈을 했다.
광신자의 눈이다.
설사 죽음을 당하더라도 괘념치 않으며. 죽을 걸 알더라도 끝끝내 일을 수행하고야 말 자들.
자기들끼리는 숭고한 희생이라고 말한다만.
글쎄.
‘내가 보기엔 그저 미쳐있는 거뿐인데 말야.’
광신자가 아닌 그게 보기엔 쓸데없는 희생이요, 말도 안 되는 비틀림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찾아온 이유는…… 그래, 물어볼 필요도 없겠구만.”
“……어디까지나 친선을 위한 비무로.”
“친선을 위한 비무라면 이런 짓을 벌이지도 않겠지. 쯧”
이런 비틀린 자가 그를 찾아온 이유야 뻔했다.
‘나를 탐색하고자 온 거야. 베빈이 한 수작질이 반만 먹힌 건가.’
성국은 그를 탐색하고자 온 거다. 가능하면 그를 죽일 생각도 하고 왔을 거다.
베빈을 이용해서 성국의 눈을 속이려 했다만, 반은 실패였다. 성국은 그가 예비 승천자일 가능성이 티끌이라도 있다고 본 게 분명하다.
티끌이라도 허용치 못하는 게 광신자들이니, 이들은 그 티끌조차 지우러 온 거다.
저들에게는 설사 테스가 예비 승천자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가능성을 지니기만 해도 죽이는 덴 충분한 이유가 될 테니까.
‘이러니 이 세상에 발전이 더 없는 건가.’
아마 저들은 이런 식으로 테스 같은 자들을 노렸을 거다.
급작스럽게 태어난 신예, 송곳같이 등장한 강자. 그런 자들 모두 예비 승천자가 될 수 있기에 그들이 정하는 처우는 오로지 하나.
상대의 죽음이다.
성국은 결국 그런 식으로 승천자를 막아왔던 거다.
예비 승천자라면 무조건 죽여 나가고. 설사 예비도 못 된 자라 할지라도 그 싹을 잘라 버리는 거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역천자라 말하는 승천자가 더는 탄생하지 않을 테니까.
과연, 집요하고 지독하다.
테스로서도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는 광기였다.
그럼에도 테스는 그러한 광기를 앞에 두고 피하지 않았다.
“그 비무. 그래 해 주지.”
되레 더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 * *
급작스럽게 벌어지는 비무였다.
하지만 비무장 주변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문파의 제자와 속가 제자들. 속가 제자가 되고자 찾아온 자들이 대다수를 채웠고.
그 반대편엔 성기사가 일행으로 데려온 자들을 포함돼 있었다. 저들 눈 하나하나가 테스를 지켜보는 자들이었다.
테스와 아프 사도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무장 가운데를 섰다.
아프 사도르는 하얗게 칠해진 검을 들고 있었다. 반대로 테스는 손에 아무것도 쥐어지지 않아 있는 채였다.
그의 허리춤엔 여전히 검이 자리해 있었다.
“검을 쓰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쪽, 아니 너 따위를 상대로 그럴 필요까진 없을 거 같아서.”
그의 완벽한 무시.
그제야 아프 사도르의 인상이 찡그려진다. 테스는 그런 아프를 보고 더 짙게 비웃음을 맺었다.
“……후회하실 겁니다.”
“시끄럽고. 오기나 해. 당장 곤죽을 내 줄 테니까.”
그가 손짓하는 순간, 아프 사도르의 몸이 테스에게로 날아갔다.
아프 사도르는 목숨이라도 걸고 테스를 죽이고자 온 것일 터. 설사 실패하더라도 부상이라도 입히고자 온 게 분명한 광신자다.
그런 광신자를 상대로 테스는 긴장치 않았다.
환골탈태를 이룬 지 오래. 속가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힘의 사용을 배우고 있는 지금.
‘과연, 이게 성기사의 방식이란 거지?’
그에게 있어 아프 사도르는 그가 모르는 또 다른 힘의 사용법을 지닌 흥미로운 녀석일 따름이다.
후우우웅-!
아프 사도르가 양손의 검을 수십여 차례 휘둘러왔다. 그때마다 맺히는 하얀빛에 일반인은 시야가 타들어갈 정도였다.
“피하기만 하는 겁니까!?”
“…….”
똑바로 바라보기도 힘들 빛이요. 검의 궤적이다.
테스는 그런 검을 꿰뚫어 보고 있었고. 그보다 더 안의 본질을 탐색하고자 하고 있었다.
검을 상대하기 보다는 기감을 돋워 아프 사도르, 그 자체를 탐색했다.
그리고 그의 힘의 발동 방식을 끝끝내 찾아냈다.
‘과연! 신의 힘이라더니, 저 멀리서 보내오는 거구나?’
츠츠츠츠츠-
아프 사도르. 그를 향해서 길게 이어진 선이 있었다. 그 선이 향하는 곳은 저 멀리 하늘.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을 만큼 긴 선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테스가 아니라면 느끼기도 힘들 선이었다.
그 얇은 선이 보내는 힘은 강력했다.
“신실의 검이여!”
콰아아아앙-!
아프가 신성 주문을 외울 때면 주변에 거대한 힘이 방출되었고. 테스에게 쏘아졌다.
검에 맺힌 신성력은 계속해 소모되고도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수백 번 검을 휘둘러 아프가 지쳐갈 때쯤이면, 그가 외는 주문이 그를 처음의 상태로 되돌려줬다.
‘지치지 않는 바퀴벌레 같은데?’
일정의 힘. 그 힘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성기사였다.
츠츠츠-
저 얇은 선이 주는 힘이란 그만큼 막강하였다.
‘과연…… 이러니 성국이 제국에 비견되는 힘을 가진 거겠지.’
믿음만 가진다면 주는 힘이라. 과연 지랄 맞도록 사기적이지 않은가.
타아아앙-!
테스는 검을 마주했다.
“이제 상대할 생각이 든 겁니까.”
“시시해져서.”
그제야 아프의 얼굴에 화색이 맺혔다. 테스가 그를 맞상대해 준다 생각했기 때문.
테스로선 힘의 탐색이 끝났기에, 하는 태도의 변화였다.
‘한 번 제대로 부숴 보자고.’
탐색이 끝난 힘의 공략법을 찾을 차례니까.
* * *
테스는 성기사가 지닌 힘의 계열을 넷으로 나눴다.
철벽. 방출. 확산. 회복.
온몸에 신성력을 둘러 방어력을 얻는 게 철벽.
받은 신성력을 검을 통해 발산하는 게 방출.
뻗어나간 힘을 주문으로 공격하는 게 확산.
마지막으로 그 힘을 저 자신에게 쓰는 게 회복.
이 넷의 힘을 이용해 아프는 제 신성력을 다뤘고. 그 방식이 제법 강력하기는 했다.
그가 가진 신성력은 메마르지 않는 힘이기에 같은 경지를 지닌 적을 상대로는 압승을 거둘 만하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공략법이 없는 건 아니지.’
테스는 이미 상대할 방안을 찾아냈다.
비무장 내에 넓게 펼쳐져 있는 신성력. 영역화된 확산의 힘.
드드득-
그 신성화된 힘을 밀어 젖혔다.
테스의 몸에 내재 된 마력. 네 개의 서클이 휘돌며, 신성력의 영역을 밀어 냈다.
“크읏…… 어찌, 마력이…….”
“이 마력이란 거에도 급이 있는 법이거든.”
영역을 잃는 것으로 확산의 힘은 급격히 쪼그라든다.
그러고 남은 건 방출의 힘.
영역은 줄며 남은 신성력의 힘이 아프의 검에 맺혔다. 그의 검에 맺힌 신성력이 짙어진다.
-저거 오러 아냐?
-오, 오러 마스터급이었어!? 단장급이 아니라?
주변이 웅성거릴 정도로 강력한 힘의 발산.
“크하아앗!”
“어설프게 힘만 담는 다고 강해지는 게 아냐.”
테스가 보기엔 무식하기만 한 힘이었다.
아프의 검은 강한 힘을 다룰 격도 존재치 않았으며, 단지 제 힘에 휘둘리기만 하는 수준이었다.
하수끼리야 막대한 힘을 상대하기 힘들겠다만.
테스의 눈엔 줄기줄기 뻗어나간 힘 사이의 틈이 너무도 크게 보였다.
“빈틈이 이리 많아서야, 낭비만 할 뿐인 거거든.”
쩌어어엉-!
수없이 보이는 틈. 신성력 사이의 균열을 테스의 검이 정확히 때린다.
“어찌!”
트드드드득-
그 순간 신성력의 일부가 찢어져 나간다. 힘의 맥을 끊어 버린 것이다.
‘역시 먹힌다!’
테스는 재차 검을 날렸다.
쾌와 환의 묘리가 실린 그의 검이 수십여 개로 쪼개지고. 신성력 사이 드러난 힘의 틈들을 찢어발긴다.
쩌어엉- 쩌엉-
그의 검이 닿을 때마다, 방출된 그의 신성력이 샅샅이 찢어발겨진다.
맥이 끊어져 버리니 재차 연결되기도 힘들었다.
“커어어억!”
제 신성력의 맥이 끊어지니 타격을 받은 아프.
그는 정신을 차리지도. 방출이 끊겨 버린 검을 다시 잇지도 못하였다.
‘방출은 이것으로 끝이야.’
두 힘의 공략법을 바로 찾아낸 테스.
이제 남은 건 다시 둘이었다.
철벽과 회복.
“이딴…… 이딴 삿된 힘이 절 막을 수 있을 거 같습니까!”
방출과 확산에 소모된 힘이 철벽으로 돌아갔고. 그의 방어력을 강화시켰다.
흰빛이 두터워지며 아프의 온몸이 신성력의 갑옷이 되었고. 남은 힘은 그의 몸 내부로 돌아가 그를 강화시켰다.
맥이 끊어지며 상했던 몸이 재생되고. 힘은 트롤처럼 강화되었으며. 민첩성은 흡사 뱀파이어 같았다.
근육이 울끈불끈 솟아오르며, 온몸이 부풀어 오른 아프.
‘신성력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 이런 괴물이 되는 건가.’
주체할 줄 모를 신성력이 제 몸에만 확산되는 그 순간, 그는 완전히 제 신성력에 물들어 버렸다.
전에 있던 예의 바른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몸이 부푼 채로 외치는 그는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감히! 감히이! 신도 믿지 않는 자가, 이 신성한 힘을!”
“하…….”
그 분노는 테스에게로 향했다.
콰아아앙-!
검도 던져 버린 아프는 온몸이 흉기가 됐다. 그가 점프를 하면 땅이 패였고. 주먹질을 할 때 만들어진 풍압은 주변을 찢어 발겼다.
주변을 초토화시킴에도 그의 몸은 성했다. 두터운 갑옷이 보호하여 주었으니까.
계속된 재생으로 힘이 소모될 리도 없었다.
아프는 한 마리의 괴물이었다.
분노에 차 있었고. 눈앞에 있는 테스를 찢어발길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광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