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챕터 17.
그가 이번에 얻은 영감과 힘.
그것들은 허공에 뚝 떨어진 것들이 아니었다.
‘나조차도 얻은 게 있었지.’
지난 12번의 비무. 이름만 높은 허접한 자들도 있었으나, 테스는 그 비무에서 얻은 바가 적지 않았다.
“요튼. 그 녀석이 특히 힌트가 됐다.”
그들의 비전을 훔쳐 보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귀족 가문의 비기들. 불완전한 그 힘들은 보는 거만으로 그에게 큰 영감을 가져다 뒀다.
“거신이 아니라 오우거의 피를 이어받은 걸지라도, 그 힘은 진짜배기긴 했으니까.”
힌트가 되는 건 많았다.
그들의 몸짓. 마력의 움직임. 혈류. 감정의 변화…….
테스는 그곳에서 받은 영감들을 제 것으로 삼고자 했다.
비전의 마력 움직임을 흉내 내 보고.
때로 그들 방식을 자신만의 걸로 응용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파사삭-
“이런. 또 실패인가.”
단지 보는 거만으로, 흉내 내기엔 그들이 가진 깊이도 상당했으니까. 그 개인은 약할지라도, 그들 가문은 진짜배기들이기에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테스는 몰두했다.
‘다프트 가문의 것은 힘의 유동성이 괴팍해. 그 파장을 그쪽 가문은 육체로 때우는 거 같은데, 이건 나도 가능한 일이지.’
그들로부터 받은 영감을 풀어헤치고.
실제로 적용하고. 그의 것으로 삼아갔다.
“됐다!”
그러다 결국 성공했다.
스스스스-
마력으로 그들의 비전을 흉내 내, 마법을 빚었다. 개량하고 강화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형태의 마법. 마탑에서도 비전이라 칭할 만한 것들을 만들어 냈다.
“강화된 힘이여, 깃들어라.”
그를 제 몸에 적용했다. 그 순간.
“어디, 위력을 볼까.”
콰아아앙-! 콰드득-
그가 지닌 힘은 수배로 강화되었다.
“미쳤군…….”
요튼 다프트의 힘을 마법으로 흉내 내는 거만으로 수련용 허수아비를 무너트렸다.
단 한 점의 내력을 쓰지도 않고 얻은 성과!
이미 환골탈태를 이룬 몸이라지만, 본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버프 마법류인 [힘 강화] 마법을 사용해도 눈앞의 걸 부수는 건 불가능했다. 힘 강화 마법을 사용했다면 금이 가는 게 고작이었을 거다.
벽을 부쉈다는 건,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한 힘이 부여됐단 의미.
성공이다!
“비전마법 수준. 어쩌면 그 이상.”
테스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끝이 아니니까.
새로운 비전에 내력만 섞어도 힘은 다시 몇 배로 증가한다.
힘의 사용만 능숙해진다면 오우거의 힘 따위가 아닌, 진짜 거인의 힘도 흉내 낼 수 있게 될 거였다.
그뿐이랴.
환상검의 비전을 흉내 내면, 이전에 존재하던 환상을 더 실체화할 수 있을 거였다.
로그의 힘을 이용하면 경공은 더 빨라질 것이고.
‘다론. 그 녀석이 특히 진짜배기였지.’
여섯 번째 소드 마스터로 이름을 날리는 다론 피터.
그에게 더 높은 가르침을 청한다고 영지에 틀어박힌 그의 비전을 흉내 낼 수 있다면 그의 검술은 한층 깊어질 터였다.
“햐. 미쳤군. 미쳤어. 하기는 이 정도 비전이 있지 않고서야 연약한 인간이 이 세계에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승천자의 길을 걷던 그로서도 놀라울 만한 힘!
피와 가문. 이종족의 힘. 마력. 마법. 흑마법과 혈 마법. 정종의 마법.………….
이 세계에 수많은 힘이 존재했고. 이는 그에게 곧 가능성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러기에 테스는 순간적으로 느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탐욕이 솟아났다.
가지고 싶다.
저 많은 비전, 힘, 피에서 이어지는 축복. 그 모든 것들을 탐욕적이고 게걸스럽게 자신의 걸로 삼고 싶었다.
그리하여 더 강해지고.
벽을 뚫고, 더 거대한 힘을 손에만 넣는다면. 그때는.
“……그리하여 승천자가 된다.”
자신을 막을 자가 없어질 터.
설사 자신의 승천을 막고자 성국이 나서더라도 상관없다. 비전을 흡수하여 강력해진 그는 그들조차도 무너트릴 테니까.
그럼으로써 승천자가 된다면.
인간이란 격을 초월하여 새로운 곳에 발을 내딛을 수 있을 터!
기존에 지니고 있던 길보다 더 빠른 길이 보이는데, 탐욕이 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테스는 물씬 피어오르는 자신의 탐욕을 애써 부정치 않았다.
긍정적 감정도 제 것이라면, 부정적이라 일컬어지는 탐욕 또한 그로부터 피어오르는 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탐욕에 잡아먹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탐욕을 하나의 원동력으로 삼을 뿐이었다.
더 강력한, 더 초월적인 힘을 얻는 연료로써!
“결국 비전을 모으는 게, 내가 가는 길의 답 중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럼 비전을 모으자면 어떻게 한다?”
탐욕이 자리 잡은 테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환골탈태와 깨달음. 이미 초인의 반열에 오른 그의 머리가 목표를 향한 최선의 방식을 찾아갔다.
성국의 견제. 영지의 상황. 문파. 비전. 제자…….
이 상황에 자신이 갖은 다른 요소들까지 전부 고려하여 결론을 도출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아…… 그 방법이 있었구나!”
테스는 자신만의 방법을 생각해 냈다.
* * *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의선문.
테스의 침묵으로 호기심이 더욱 커진 가운데. 정문 바로 옆에 글이 하나 써 붙어 있었다.
“이게 뭐래?”
“……속가 제자 모집? 속가 제자가 무슨 말이야?”
“어디 보자. 한번 읽어봐야지 않겠나.”
간단하게 이뤄진 비무첩이 그러했듯, 쓰인 글도 단조로웠다.
[속가제자모집]
으로 시작한 글 안에는 속가 제자에 대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의선문의 문파원이 될 수 있는 기회. 그 대가로 돈이나 그에 상응하는 이권을 가져와야 했다.
정식 제자와 달리 속가 제자에게는 비전 전부를 전수할 수는 없었다.
정식 제자가 지닌 비전의 수준에 비하면 족히 세 단계는 떨어지는 비전을 전수받게 돼 있었다.
수준 떨어지는 비전.
얼핏 보면 그 매력이 적어 보이나, 아래 한 문장이 얘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보니까, 한두 푼 하는 거도 아닌 거 같은데…… 떨어지는 비전이면 누가 와서 배울라고?”
“어허이. 지금 수준이 문젠가. 최소 익스퍼트는 보장한다고 하잖아.”
“뭣?”
“하급이라도 보장이라고 써뒀다고! 이게 말이 되냔 말이지.”
“오우. 미친!”
[하급 오러 익스퍼트급 보장]
떡하니 쓰여져 있는 단 한 문장이 글을 보는 사람들을 소름돋게 했다.
본래라면 그조차도 의심이 가야 맞았다.
오러 익스퍼트를 누가 그리 쉽게 만들겠는가.
“익스퍼트가…… 어디 개, 소 이름도 아니고, 이걸 어떻게?”
“이 녀석 보게? 지난 대련 때 여섯 번째 오러 마스터를 누가 만들었는데!”
그러나 이미 많은 자들이 오러 마스터 탄생을 지켜봤었다.
그조차도 의심을 하는 자가 더러 있기야 했다.
다론 피터가 천재여서일 뿐이지, 테스의 가르침이 뛰어난 건 아니라는 의심!
남의 업적을 깎아내리는 건, 사람이 지닌 본질 중 하나.
상황이 이런지라 [오러 익스퍼트 보장]이라는 말에도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반은 의심, 반은 기대로.
“그, 그건 다론이란 분이 천재여서 그런 게 아닐까? 자네도 그렇게 생각했잖아?”
“그야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오러 마스터 만드는 거보다는 익스퍼트가 좀 쉽지 않나?”
“언제 그런 게 쉬웠다…… 어억.”
“실례하지.”
그러다, 의심하던 자들의 목소리도 한 사람의 등장에 의해서 깨졌다.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 익숙한 얼굴 하나가 끼어들었다.
여섯 번째 오러 마스터 다론 피터였다.
오러 마스터가 된 이후 테스에게 한참을 가르침을 청하던 그. 제자가 되지 못하면 빚이라도 갚겠다 영지에 남은 그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 거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설마 정말로 제자가 될 참인가?’
‘말로만 하던 게 아니라고?’
‘다론 저자가…… 제자가 되는 거면, 진짜 가르침이 효과가 있다는 거잖아?’
그의 등장에 의심은 기대로 바뀌었다.
사람들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론 피터는 걸려 있는 글을 한참이고 바라봤다. 그러다 이내 한마디를 내뱉고는.
“기회로군. 하늘이 주신 기회야.”
곧바로 의선문의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평소라면 굳게 닫혀 있기만 하는 의선문. 외부인의 방문을 엄격히 제한하는 의선문이었다. 그 앞에서 다론 피터가 말했다.
“속가 제자 신청을 하려고 합니다.”
끼이익-
닫혀 있던 의선문의 문이 열렸다.
* * *
다론 피터가 시작이었다.
테스와 대련을 벌였던 자들 중 셋이 의선문을 찾아왔다.
속검의 사베르, 무공을 배운 적도 없을 텐데 경공을 흉내 내는 메니, 방랑 기사며 제가 모실 군주를 찾던 루네틱.
테스는 이들에게 저마다 다른 대가를 받아내었고.
의선문에 마련된 속가 제자실 한편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는 바깥에서만 속가 제자를 찾진 않았다.
“본래 자네가 가장 먼저 찾아올 줄 알았네.”
“공무를 수행하다 보니 늦어 버렸습니다. 하핫. 그래도 받아주실 거잖습니까?”
“자네도 없던 넉살이 생겼구만.”
“테스 님이 얹어주신 짐이 크다 보니 느는 게 넉살이덥니다.”
“환영하네.”
테스의 영지. 무력관을 책임지고 있는 괴물 테론. 그가 영지의 첫 속가 제자가 됐다.
‘이제 더 노예라고도 할 수 없는 처지지.’
그를 속가 제자로 받아들이며, 테스는 테론의 강등된 신분을 다시 올려줬다. 노예에서 평민으로.
테론은 자신 혼자만을 챙기지 않았다.
“이자는?”
“기억하고 계시겠죠. 이사르입니다. 피나는 노력을 하는 녀석입죠.”
“아아. 기억하고 있지.”
“이 녀석도 받아들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아끼는 부하 하나를 달고 왔다.
속가 제자로 받아들이는 대가도 지불할 수 없으면서도, 뻔뻔하게 데려오는 게 우습기는 했다. 그러나 부하를 챙기는 마음 씀씀이로 놓고 보면 나쁠 것도 없었다.
‘테론도 제 부하를 챙길 자리가 되기는 했지. 이 둘을 시작으로 무력관도 강화가 되기는 해야 해.’
테론과 이사르의 강화는 곧 무력관의 강화.
영주님 테스로서도 나쁠 것이 없었기에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지.”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많은 자들이 영지 내 속가 제자로 발탁되었다.
“자네는 역시 약학을 배우고 싶은 거지?”
“기회만 된다면요!”
“좋아. 한번 해 보자고.”
식객으로 머물던 연금술사 레이즈.
“저도 그럼 테스 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건가요?”
“속가지만 제자는 맞지.”
“와!”
“이 녀석, 제 스승이 있는데 그리 신났느냐?”
“아악! 스승님 그런 게 아니고요!”
호법이 된 데브론의 제자이자, 무술의 가르침을 같이 청한 하이런.
“저, 저도 받아주시는 겁니까?”
“그래. 너는 영지민들에게 상징이 될 거다. 재능만 지녔다면 올라설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상징 말이다.”
“……제가 상징이라. 열심히 하겠습니다!”
테스의 영지가 장원 수준이던 시절. 영지에 마법적 재능을 갖고 있던 셀리움까지.
꽤 많은 자들이 기회를 얻었고. 때로 기대하던 자들이 기회를 잡지 못했음에 안타까워했다.
작은 글 하나로 시작된 속가 제자의 행렬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대륙 곳곳으로 파고드는 덴 얼마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