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90화 (90/191)

제90화

챕터 15.

-대체 누구야?

다시금 시작된 대련행.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지만, 최고조에 이른 관심은 테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게 만들었다.

소문은 이리저리 퍼져나갔고. 제각기 테스의 대련 상대에 대한 물음으로 가득했다.

-그자가 비무첩을 어디에 보냈었지?

-온갖 곳에 보냈잖아? 어딘지 종잡을 수가 없다고. 대련을 안 받아들인 자도 있을 거 아니야?

-하. 그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귀족이나 검객들이? 받는다, 이건 받는다고!

-한 수 배울 생각으로 할 놈도 분명 있겠지!

-아니면 이참에 그 명성을 잡아먹거나!

-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그가 비무첩을 보낸 자들이 너무도 많았다. 대체 어디로 튀어나갈지 모를 비무행이었기에, 온갖 소문들이 퍼졌다.

-이번 대결 상대 다론 피터라던데?!

-그 검술 천재? 그자랑 나선다고?

다프트 가문의 요튼과 달리 제 실력으로 명성을 드높인 피터 가문의 다론.

-아냐. 검객 리바트란 이야기도 있다고.

-그 뱀 새끼를 잡아?

환각이 섞인 검을 환상검을 다룬다고 알려진 리바트.

-마법사란 소문도 있던데.

-어떤 미친 마법사가 검사, 아니 마검사랑 붙어?

-할트. 피 머금은 할트가 있잖나?

-아, 그 미친 새끼! 그놈이면 이해가 가지.

피를 다루는 혈마법. 대륙에서 금지당한 흑마법의 한 계열이라는 소문을 지닌, 그 혈마법을 다룬다는 할트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대체 누구지?

-누구야?

누가 그의 다음 상대가 될까. 수많은 시선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테스의 다음 대련 상대가 정해졌다.

-이 미친?

-다 붙겠다고?

-허…… 허허. 진짜 미친놈은 할트가 아니라 테스 저 자였잖아?

아니 정확히는 대련 상대들이!

테스는 자신의 비무첩에 응한 대련 상대들을 단번에 불러들였다.

피 머금은 할트, 검객 리바트, 다론 피터, 사베르, 로그 메니…….

왕국 북부에서 이름 드높은 자들이 그가 마련해 놓은 비무대 위에 섰다. 그들이 가진 성품도 계열도 제각각이었다.

혈마법사, 환술사, 도둑, 검사, 기사…….

각각의 직업을 지닌 자들. 동시에 각자의 자리에서 왕국 북부에서 강력한 강자로 소문이 난 자들이었다.

그들을 한데 모은 테스.

그는 제대로 미친 짓을 시작해 버렸다.

“대련을 시작하지.”

“우리 전부를 상대로 한 번에 대련을 해내겠다고?”

“한 번에 하나인데 못 할 게 뭐있나. 자, 누구부터 시작하겠어?”

시간 무제한, 상대 무제한이라 불려진 비무의 시작이었다.

그가 날린 비무첩에 응한 자는 총 열하나. 하지만 이들 모두가 강자였다.

그를 맞서야 할 테스는 긴장은커녕, 오롯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대련장 위에 섰다.

“할트요. 특기는 보다시피 마법이고.”

“그런 놈이 도끼를 가지고 다니나?”

그의 첫 상대는 피 머금은 할트.

“이게 쪼갤 때 피 맛이 좋거든.”

“미친놈이군.”

광인(狂人)으로 소문난 자답게,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죽이며 보이는 혀 위는 작은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고. 테스의 시선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 문신. 소문대로 혈마법을 익힌 게 분명하구만…… 느껴지기로는 일종의 혈기가 느껴지는데?’

혈기!

중원의 혈교가 익혔던 미친 기운 중 하나. 인간의 광기를 연료 삼아 만들어지는 혈기는 마교의 마기만큼이나 지독했다.

마기가 순수 악에 가까웠다면, 혈기는 광기가 응축하여 만들어졌다.

‘저 미친 기운을 여기서 또 볼 줄이야. 지난번 암살자도 그렇고, 혈기가 은근 많단 말이지.’

테스가 알기로 혈기를 지닌 자를 상대할 때 가질 규칙은 하나였다.

“그럼 어디 놀아보자!”

“아니, 오늘부로 그 놀이를 끝내 줘야겠다.”

바로 죽음.

혈기를 지닌 자는 곧바로 처절한 죽음을 안겨줘야 했다. 쓸모없는 자비로 살려주어 봐야 그 뒤 만들어질 혈겁이 너무도 거대하였으니까.

촤아아악-!

도끼를 휘두르고. 온몸에 피를 두른 할트.

수십여 개의 핏빛 줄기가 뻗어 나와. 촉수처럼 테스를 때리고자 달려들었다.

흉험하기 그지없는 광경!

테스는 물러서기보다는 검을 마주 들어 휘둘렀다.

‘일 초식. 비류. 응용기 섬(閃).’

검에 담긴 내공이 그만의 흐름을 탔다. 무한히 펼쳐지는 비류의 형에 쾌의 묘리가 극단적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일순간 섬전(閃電)처럼 빨라지는 그의 검들이 수십 조각으로 나뉘며.

차아악- 착-

그를 향해 달려드는 수십 줄기의 핏빛을 말 그대로 베어 냈다.

검에 베인 핏빛 줄기.

액체로 이뤄졌기에 다시 붙어야 함이 정상!

하지만 섬전을 포함한 테스의 검에 베인 핏빛 줄기들은 재생되지 못했다. 베일 때마다 땅 아래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

“캬아아아악!”

“역시. 혈기와 연결된 거구나.”

혈기가 스러질 때마다, 할트는 비명을 내질렀다.

‘혈기와 일체화가 되고 있는 놈이야. 역시, 소문대로 혈마법도 보통의 것은 아니네.’

테스는 그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네, 네놈이! 어찌 모은 이 힘을!”

“사람 죽여 모은 거겠지. 백정 같은 놈!”

악귀처럼 인상을 찡그리는 할트. 그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갈 뿐이었다.

“이익! 이이이익!”

“어디. 더 짖어보지 그러냐?”

한 걸음. 한 걸음.

그와 가까워질수록 두려워하는 할트. 핏빛이 베일 때마다 몸을 움츠러드는 할트를 향했다.

그 둘의 거리가 0에 가까워지는 순간!

‘끝내자. 이 초식, 패도. 중의 묘리를 극한으로.’

콰아아앙-!

테스는 선천진기를 잔뜩 머금은 검을 할트를 향해 휘둘렀다.

생명을 뽑아 빚은 혈기. 그와 반대로 생명력 그 자체인 선천진기.

둘의 상성은 극악!

테스의 선천진기가 할트의 혈기를 완전히 베어 삼키고. 온 혈기가 사라지며 순식간에 바싹 늙어 버린 할트의 몸을 일도양단했다.

써걱-

반으로 갈라져 툭 떨어져 내리는 할트의 몸.

“모, 몸이 녹는다?!”

“흔적이 사라지잖아! 정말 혈마법을 익힌 거야? 소문이 아니라, 진짜였어?”

혈기를 익힌 자의 최후가 그러하듯, 할트의 몸도 녹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였을 핏물들이 대련장 위를 적셔갔다.

‘끝까지 더럽기는.’

테스는 그 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대규모 정화.”

테스는 할트의 남은 흔적조차 허락지 않는다는 듯, 마법을 사용하여 모든 흔적을 지워 버렸다.

스스스스-

순식간에 지워져 버린 할트. 그 흔적은 어디도 없었다.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완벽히 깨끗해져 버린 대련장. 그 위에 선 테스는 할트 따위론 아무런 감응도 느끼지 못한 듯 무감각한 표정을 짓곤 말했다.

“자, 다음.”

* * *

“……졌소.”

환상 섞인 검을 사용하는 검객 리바트가 무너져 내렸다.

뱀처럼 쒝쒝대며 움직이는 그의 검도 테스 앞에서는 신기루처럼 무너져 내렸다.

빠른 몸놀림을 특리로 한 로그 메니.

동부 순찰대 소속의 그녀가 속도 싸움에서 패배했다. 빠른 속도로 매섭게 몰아치는 그녀의 공격보다 테스의 공격이 더 다채로우며 빨랐다.

“……말도 안 되는!”

그 속도에 경악을 하다 그녀도 패배했다.

테스는 쉼도 없이 대련을 이어나갔다.

“다음!”

“바로 다음!”

그가 다음이라는 소리를 외칠 때마다 북부의 강자들이 무너져 내렸다.

나이트 엘렉스, 조안, 워록 디클리오, 에쏘트…….

빠름에는 빠름으로.

힘에는 힘으로.

테스는 상대의 강점보다 더한 강함으로 철저히 대련을 진행해 나갔다. 때로 마법사를 상대론 검조차 펼치지 않고 오롯 마법으로 상대를 무너트렸다.

“……어떻게?”

“격의 차이지. 서클 수준의 차이고.”

“허허.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더니…… 그게 딱 당신이구려…… 졌소.”

워록 디클리오.

정통 마법사 출신으로, 전장에 나서 전투 마법사의 극한이 된 자.

전장이 벌어지면 언제고 출현해 살육을 일으키는 그가 무너졌을 때. 모두 기함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혈법사 할트 이후 살인은 더 없었다. 잔혹한 방식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하나둘씩 대련자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대련장엔 환호가 커져갔다.

그리고 이내 마지막.

“다론 피터. 가장 기대했던 자가 이제 나오는군.”

“한 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기꺼이.”

다론 피터.

최상급 오러 익스퍼트. 왕국에 넷밖에 없는 오러 마스터를 제외한 열두 명의 최상급 절대자 중에 하나.

왕국의 기둥이자, 전술 병기 취급을 받는 그가 오랜만에 칩거를 깨고 대련장 위에 섰다.

다론은 누구보다 정중히 테스에게 고개를 숙여왔다.

대련이 아님 가르침을 청한다는 그의 말.

대련장을 가득 둘러싸고 있는 구경꾼들은 그제야 완벽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론 피터가 가르침을 청한다고?”

“허…… 정말 다섯 번째 오러 마스터 탄생인가.”

“마검사 오러 마스터라니!”

다섯 번째 오러 마스터가 탄생했노라고!

아니라 부정하기엔, 다론 피터가 지닌 이름값이 무거웠다.

나이 35살에 최상급 오러 마스터에 이른 다론.

바로 그가 왕국의 다음 다섯 번째 오러 마스터가 될 거라고 언제나 일컬어지는 자였으니까!

왕국 최상위 고수 중 하나며.

울픈 산맥 웨이브 당시, 수천의 몬스터를 베며 전력을 증명한 그의 발언은 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인정 아래에서 이뤄진 대련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저의 완벽한 패배입니다.”

“좋은 움직임이었네. 다만, 그 효율이 아직 낮으니 그를 채워야겠지.”

다론 피터의 완벽한 패배였다.

단순 패배일 뿐만 아니라, 테스는 그에게 한 줄기 가르침까지 던져 주었다.

“효율인 겁니까?”

“그래. 효율. 내가 느낀 자네의 검은 너무도 생각이 많아. 한 번 움직임에 수를 너무 집어넣는다는 거지.”

“고수의 싸움에 수 싸움은 당연 한 거 아니겠습니까?”

“맞아. 그러며 동시에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러야 하는 것도 고수이지.”

그 가르침의 방향은 최상급 오러 마스터에 이르고도 지난 몇 년간 방황하던 다론의 검을 다잡아 주었다.

단순한 힐난이 아닌 정확하고 예리한 테스의 조언.

그의 조언이 갈피를 잡지 못하던 다론 피터가 지닌 검술의 한계를 헤집었고. 동시에 흐트러짐을 정리하여 주었다.

“……본능 말입니까?”

“그래. 본능. 절제 없이 때로 마음 가는 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자유! 그게 부족해.”

“자유, 본능…… 절제. 아아. 그런 거였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

‘이런…… 저질러 버렸네.’

테스를 상대로 무릎 꿇은 다론 피터는 지난 몇 년간 갈피를 잡지 못하던 제 검의 방향을 다잡았다.

자유. 본능. 절제.

하급 귀족의 자제로 태어나 오롯 노력으로 제 가문의 검술을 강화시킨 그. 그런 그도 뚫지 못하던 오러 마스터의 벽이 그와 정반대 방향에 존재하는 요소들.

‘내가 너무 묶여 있었던 거야!’

그 족쇄들을 테스가 꿰뚫어 버리는 그 순간!

묶여 있던 다론의 검은 자유를 찾았고. 깊어만 가던 검술의 절제를 끊어 냈다. 끊어내는 순간 얻어지는 바가 있었으니.

스스스스스스-

정석처럼 펼쳐지던 그의 검에 변칙이라는 요소가 물들어갔다.

비움으로써 부족한 점을 채워 내었으니, 그의 검이 한결 진보함은 당연한 일인 터.

“하. 이런 거였군요. 테스 님이 보는 길의 일부가 보입니다.”

감겨졌던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다론 피터는 이전과 다른 기세를 지닌 제 힘을 갈무리하고 있었다.

“같이 걸어가는 길이기도 하지. 새 경지에 이른 걸 축하하네.”

여섯 번째 오러 마스터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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