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화
챕터 14.
요튼 다프트는 자신 있었다.
‘이 힘을 갖고도 이기지 못하면 말이 안 되지.’
거인의 피를 타고났다 알려진 그의 가문에서 전승되는 거력. 대대로 피를 타고 흐르는 마력.
이 둘이 그에게 가져다주는 힘은 막대했다.
‘형님은 이걸 갖고도 수련을 해야 한다 생각하는 거 같다만, 내 보기엔 전혀 아니거든.’
그래서일까. 그는 마련된 대련장 위에 서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테스의 힘에 주의하라는 형의 목소리도. 가문에 누를 끼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도 잊은 지 오래였다.
‘이번이 내가 날아오를 기회다.’
눈 앞. 검을 걸치고 있는 테스가 먹잇감으로 보여질 뿐이었다. 자신의 명성을 극도로 올려줄 제물!
반대편에 위치한 테스는 요튼을 흥미롭단 듯 보고 있었다.
“오. 네놈 재밌는 힘을 갖고 있구나?”
“힘? 하, 우리 가문이 거인의 피를 이은 게 보이기라도 하는 거냐.”
거인의 피. 요튼의 자부심.
그러나 테스는 그 말을 듣고 비웃었다.
“푸핫. 거인은 무슨. 내 보기에 거인이 아니라 다른 종류인데, 이를 테면 오우거?”
“네놈이 감히!”
도발인가. 진실인가.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타앗!
요튼 다프트가 발을 박차고 테스에게로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요튼은 제 손에 쥐어진 대검을 테스에게 휘둘렀다. 후웅-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르는 대검. 그에 맺힌 힘의 크기는 강대했다.
“죽엇!”
“오우거 같기는.”
포악하게 휘둘러지는 그의 검을 받아치려는 테스. 요튼의 대검에 비해 테스의 기다란 검은 조악해 보이기만 했다.
당장 요튼의 대검에 닿기만 해도,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
콰앙-!
둘의 검이 부딪치는 순간, 염려는 사라졌다. 무절제하게 휘둘러지는 요튼의 검을 받아들이는 테스.
그의 검에는 금이 가기는커녕, 그 흔한 쇳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폭격이라도 하는 듯 쏘아지는 요튼의 공격을 테스는 나풀거리는 이파리처럼 가벼이 받아내고 있었다.
‘거력을 이용해서 상대를 압박하는 식인가. 몸놀림에 격은 없으나, 타고난 외력(外力)이 강하니 가능한 기술이네.’
테스는 되레 요튼의 힘을 분석할 여유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 새끼가!”
반대로 요튼은 시간이 갈수록 여유가 사라져갔다.
투우웅- 퉁-
가벼히 흘려내는 테스의 검에 마주할 때마다, 그의 힘이 뭉텅이로 깎이는 느낌이었다.
‘분명 가벼운 검인데, 대체 왜 이리 받기가 힘든 거야?’
분명 공격을 하는 쪽은 그이고.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 것도 그였다. 그럼에도 검이 맞닿을 때마다 손해를 보는 건 요튼이었다.
요튼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상식이 깨어져 나가고 있었다.
휘두른 검을 아래서 받는 테스가 힘들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게 상식이고 물리적인 법칙이었다.
타아앙-!
한데, 검이 부딪칠 때마다 지치는 건 그였다.
“캬아아악!”
“독기 하나는 좋구나.”
“시끄럿!”
여유가 사라진 요튼. 그의 눈이 시뻘게져 갔다.
‘아냐. 이게 아니라고.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힘을 받아내는 테스가 여유로운 것도. 갈수록 그의 힘이 떨어져 나가는 이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갈수록 힘이 빠져나가는데, 그는 갈수록 힘이 넘치는 듯했다.
마치.
“……설마 내 힘을 강탈해가는 거냐?”
“넘치는 힘보다 상상력을 타고났구나. 머저리.”
사술이라도 부리는 듯했다.
‘내가 맞았어!’
테스와 그가 가진 실력과 격의 차이. 그 차이를 요튼은 끝끝내 인정하지 못했다.
그의 머리에 있는 현실, 아니 망상은 테스가 사술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가 훽 돌아가고 있었다.
“역시 맞구나! 하기는 이리 검이 부딪쳐지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짓이지!”
콰아아앙-!
그는 제 생각에 확신을 가졌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그의 가문은 흥분을 할수록, 더 강력한 힘을 내는 게 가능한 터. 확신과 분노가 어린 그의 검은 전보다 더 강력해졌다.
후우웅- 후웅-
풍압이 더 강해지고 속도가 더 더해진다.
스스스스-
요튼의 검에 희미한 빛이 서리기 시작한다. 짙은 붉은 색을 지닌 오러가 그의 검을 채워간다. 기사의 상징 오러였다.
불완전하나, 강력하며 거친 오러!
다프트 가문 특유의 오러가 대련장을 가득 채운다.
“오러다! 과연!”
“역시 다프트 가문의 검법!”
“대단한 힘!”
그 모습을 보고 대련장 가득 구경하던 살롱의 친구들이 환호를 보냈다.
다들 머릿속으로 요튼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겉으로 봐선 요튼이 시종일관 테스를 밀어붙이고 있거니와. 요튼의 검에 실린 검력은 점차 강해지고 있었으니까.
어느 전장에서나 다프트 가문의 검은 언제나 지치지 않고 끝끝내 용력을 보이는 자들인 터.
이 상황에서 테스의 패배를 점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상식이니까.
“부숴 버리라고!”
“죽여! 같잖은 놈이 우리랑 같은 귀족이 된 걸 후회하게 해 주라고!”
“어서!”
그러기에 사람들은 더 환호했다.
요튼의 검이 휘둘러지면 휘둘러질수록!
반대로 용력이 더 강해진 그를 상대하는 테스의 표정은 짜게 식었다.
“쯧.”
“흐하! 이제와 버티기가 힘든 거냐.”
그 모습을 보고, 요튼은 제 힘이 먹혔다 생각했다. 전혀 아니었다.
“아니, 전혀. 네 힘이 더는 재미가 없어졌거든. 허접한 핏줄에, 너절한 힘이야.”
“네놈이 감히!”
테스의 말대로였다.
그로선 요튼의 힘에 흥미가 짜게 식었을 뿐이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오우거의 용력이 더해졌을 뿐이야. 그 위에 주술 같은 거 몇 개를 끼얹은 게 다프트 가문의 비의.’
한 번의 대련으로 그들이 수백 년간 귀족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전을 알게 됐으니까.
“감히 우리 가문의 힘을 비웃어!”
그의 표정을 읽은 요튼.
차아악-!
그가 오러를 실린 검을 휘두르며, 테스를 압박하려 한다. 하지만 테스는 이미 이 시답잖은 힘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부터 대련에 대한 흥이 식어 버렸다.
요튼의 검과 더 어울리지 못할 만큼!
“시시해져 버렸다.”
그는 끝을 내고자 마음을 먹었고. 그 순간, 그의 검에 선명하기만 한 오러가 뻗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검 끝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짙고 거대한 오러!
신성력이라 착각할 정도로 새하얀 오러는 검 전체를 둘러싸고도 남아 길게 뻗어나갔다. 이내 두터운 검의 형태를 이루었다.
요튼의 대검보다도 더 거대한 대검의 형태를!
“저, 저! 저!”
“오러다!”
“마검사가 오러를 완성했다고!? 저, 저 정도면 마스터급 아냐!?”
“생각해 보니 마법도 아직까지 안 썼잖아!”
놀라는 관중들. 요튼을 향해 환호하던 자들은 이제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테스의 완성된 오러에 놀랄 뿐이었다.
테스는 이들의 놀람을 더 길게 이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이쯤이면 됐어. 적당히 보여줬으니까.’
오러가 완성되는 그 순간.
“끝내자.”
테스는 제 검에 거대한 잠력과 중(重)의 묘리를 실었다.
그의 검에 실린 무게가 수십, 수백배로 늘어난다. 그 거대한 힘이 실린 검을 요튼에게로 휘둘렀다.
순간,
거대한 거인이 작고 연약한 어린아이를 짓누르는 형상이 대련장 위 모두의 머리 위로 스쳐지나간다.
콰아앙!
한낱 인간이 거인의 검을 받을 수 있을 리가.
테스의 검을 받아내고자 휘두르던 요튼의 검이 꺾이고. 이내 그의 무릎도 같이 꺾이며 바닥을 쳤다.
몸이 완전히 짓눌리는 듯했다.
“……커어억!”
요튼은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과 위력!
“…….”
“…….”
압도적인 휘두름 앞에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승패를 정해야 할 심판도. 참관인으로 대련장을 찾아왔던 누구도 입을 벌리는 자가 없었다.
영원히 이어질 듯한 침묵은 그 주인공인 테스가 깨부쉈다.
“……결과는?”
“그, 그대의 승리요.”
테스가 심판을 향해 물어오자, 그제야 테스의 심판 선언이 떨어졌다.
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한차례 끄덕이고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대련장 아래를 향했다.
* * *
왕국 카르소니아 북부에서 이뤄진 대련.
대련전만 하더라도 한순간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 여겼다.
-미친 독립 귀족 하나가 나온 거야.
-듣기로 아르델 공작이 미뤄줘서 됐다지? 이자가 우리 왕국을 흔들려고 하는 거 아닌가.
-뭔가 노림수가 있을 게야.
대련에 나서는 테스보다는 되레, 그를 독립 귀족으로 승격시켜 준 아르델 공작가에 더 신경을 쓸 정도였다.
오죽하면 아르델 공작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자 감시원들의 수가 세 배는 불었으니까.
막상 뚜껑을 까 보니 아르델 공작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출현했다!
-마검사가 오러 마스터라니, 전대미문이잖아?
-구경하는 자가 적지 않았어? 잘 확인해 보라고.
-이미 몇 번이나 확인된 바야. 다프트 가문에서 깔끔하게 인정하고 물러났다더군.
-허…….
새로운 오러 마스터의 출현!
왕국 내에서도 넷밖에 없는 오러 마스터다. 십수 년째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출현치 않고 있었다. 이 상황에 새로운 오러 마스터가 생겨났다.
더더군다나 순수 검사도 아닌, 마법을 익힌 마검사!
격렬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음에.
대다수는 그를 반기고 환호하였지만, 일부는 아니었다.
왕국의 권력을 이미 공고히한 자들. 새로운 움직임을 준비하고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자들은 다른 시선을 보냈다.
-진의를 확인해야 하지 않소?
-다프트 가문은 인정했어도, 사술을 부렸을 수도 있다던데.
-직접 검을 부딪친 거는 요튼뿐인데, 그자가 사술일 수 있다고 한 소리가 있으니.
-흐음…… 새로운 강자라.
의심, 불신, 불안, 의혹…….
부정적인 시선들로 주변을 점철시키고. 그도 모자라 의혹에 대한 조사단을 파견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세우는 자도 있었다.
-이참에 조사단을 보내면, 그 안도 살필 수 있겠지.
-꽁꽁 싸인 게 드러나겠구만.
저 멀리 숨어 테스의 속살을 살피기도 전.
요튼 다프트와 대련 이후 한참을 침잠할 거라 여겼던 테스는 금방 다시 나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테스가 다시 대련에 나선다.
-이번 상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