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챕터 12.
제자들에게 잘못이 있는 건 아녔다.
그들이 타고난 재능이 그가 가르칠 수 있는 것과 달랐을 뿐이니까.
셋은 마법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
본래부터 타고난 재능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미 테스가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만변환이 재능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줬지.’
기감을 일깨우기 위해 먹인 만변환.
그 만변환이 만들어낸 효용이었다.
기운을 이리저리 꼬고 회전시키면서 자극을 하다가 아이들의 기감을 예상 이상으로 일깨워 버렸다.
기를 감지하는 단순 기감 수준을 넘어, 기를 조종하는 의기를 알아버렸다.
“나로서도 우연찮게 깨운 재능이긴 한데, 책임은 지어줘야 한단 건 안다. 문제는 마법을 어찌 가르치냐다.”
“스승님이 가르치는 건 안 되는 건가요?”
“당장이야 가능은 하겠다만…… 후. 완벽할 거란 자신은 없다.”
문제는 이들을 가르치는 게 골칫거리라는 거다.
테스 자신도 마법사기는 했다. 마법과 무공을 조화시키고자,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정도였다. 이론을 만들어가고 실제 수련에 적용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완성된 공부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자칫 기초를 잘못 가르쳤다가는, 사달이 날 텐데.’
그의 현재 마법에 대한 자신만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상황.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중이지, 완료한 게 아니었다.
마법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했다.
‘어쩐다.’
자기 자신이야 마법을 연구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시행착오를 겪어 가는 게 기꺼운 일이긴 하다만.
과연 제자들에게도 그러한 길을 걷게 하는 게 옳은 일일까.
‘바른 길을 걷게 하겠다고 해 놓고, 죽게 만들 수도 있단 말이지.’
테스 자신이 처음 각성한 이후 심법을 돌리자마자 주화입마에 걸릴 위험에 처했듯이.
잘못된 가르침을 하다가는 그의 제자들도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덕분에 테스의 고민은 한참 깊어져 가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최대한 조심스레 가르쳐 보자구나. 금방 방안을 찾아내야겠지.”
마법사. 제대로 된 기초를 세워 줄 마법사가 필요했다.
‘제자는 당연하고, 나조차도 많은 이론을 배울 수 있으면 도움이 꽤 되겠지.’
오랜만에 부족함을 느끼는 테스였다.
* * *
테스의 부족함은 뜻밖의 방문으로 채워졌다.
그의 집무실, 예상치 못한 자, 둘이서 그를 찾아왔다.
“오랜만이군. 데브론.”
“흘흘. 오랜만에 뵙습니다, 테스 님.”
“오랜만입니다!”
몇 년 만에 본 두 방문자. 데브론과 그의 제자 하이런.
수염을 길게 기르기 시작한 데브론의 눈에는 매서움이 아닌 여유가 담겨 있었고. 옆에선 하이런은 그런 스승을 닮은 건지 느긋함이 엿보였다.
“그 사이에 경지가 또 오른 건가?”
“테스 님에 뒤이어 기연이 또 있었습죠.”
“허. 운도 좋네.”
테스의 치료 행위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던 데브론이다.
‘깨달음 한 번에 사람이 변했었지.’
그 뒤에 또 다른 기연이라.
재밌는 건.
“테스 님과도 관련이 있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테스 님이 아니었더라면 선택을 받지 못하였을 테니까요.”
“음? 그게 무슨 말인가?”
테스도 모르는 사이 그 깨달음에 연관이 있단 거였다.
“테스 님과 진행했던 의뢰가 끝이 나고 말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잠시 마탑에 들렀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어지는 데브론의 말은 꽤나 흥미로웠다.
테스와 의뢰를 수행하던 시절 깨달음을 얻어 3클래스에 이른 그.
그가 기사 이반의 가문인 테스론과 맺은 계약 기간은 10년이었다.
그 당시 남은 기간이 무려 7년.
별다른 일이 없다면 계약을 갱신해가며 테스론의 가신 노릇을 해 나갈 그였다. 제자인 하이런은 자연스레 대를 잇는 가신이 됐을 거다.
“그 7년이 지나, 깨달음의 빚을 갚겠다고 찾아오려 했지요.”
“아직 7년이 안 되지 않았나?”
“거기서 마탑의 베빈 님이 힘을 써줬습니다.”
이 계약 기간을 줄여 준 게 마탑의 베빈이었단다.
이반이 공물을 바치자고 데프 백작을 만나는 사이. 잠시의 여유를 얻은 데브론은 마탑에 여러 차례 들렀었단다.
그러다 만난 게 베빈.
그녀는 데브론을 보고는 흥미롭다는 듯 한참을 살폈단다.
-그 녀석의 손길이 닿았구나. 후음…… 꽤 재밌게 되었어.
-예?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살핌이었다.
‘나한테도 하던 짓을, 데브론한테도 한 거구만.’
샅샅이 데브론을 살피던 베빈.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손뼉을 치며 말했단다.
-새로운 변수는 언제나 환영이지. 너 또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 어디 보자.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아직. 아직은 네게 설명해도 잘 모를 것이야. 몇 년 뒤의 테스 정도면 알지도 모르지. 자자, 네가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게 아냐. 내 선택이 중요한 것이지.
-예?
-이거나 우선 받아 들이거라.
-……커윽.
화아아악-
무슨 영문인지 설명도 하지 않고, 데브론을 이끌었단다.
그가 머물고 있던 마탑에서도 알려주지 않던 마나의 유동, 마법 주문의 비법, 그녀만의 노하우…….
그로선 생각지 못한 것들을 머리에 박아 넣었단다.
그걸 소화하기까지가 삼 년.
이후엔 베빈이 부여해 준 마탑의 퀘스트를 여럿 해치웠다.
‘나한테 가야 할 퀘스트를 대신한 게 데브론이었네. 어쩐지, 요즘 들어 편지로도 퀘스트 이야기를 하지 않긴 했지.’
바쁜 나날이었단다.
쉬는 날엔 깨달음을 녹여야 했고. 한참 퀘스트도 수행해 내야 했으니까.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이 나더랬다.
테스론 가문의 계약!
마법사에게 계약은 신성한 것. 그를 해결치 못하면,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터였는데.
-그러고 보니 테스론 가문에선 아무 말이 없었습니까? 제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 있을 텐데요.
-아, 그거? 적당히 합의하여 해결했지.
-네?
-계약이 끝났단 의미란다, 아가야.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베빈이 뚝딱 해치워 버렸다.
“그때,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다 끝내 놓았으니까요. 그걸 몇 년 뒤에나 깨달은 저도 문제고요.”
“베빈 옆에 있다 보면, 그녀만의 리듬 때문에 본질을 잊는 경우가 있긴 하지.”
“그렇습죠. 그래서 대단한 분이기도 하고요.”
“남 홀리는 데 재주가 있는 거뿐이야.”
“흘흘…… 베빈 님을 그리 이야기하는 건 테스 님뿐일 겁니다.”
어쨌거나, 계약이 완료 된 걸 안 데브론. 홀가분해진 그는 더 수행에 박차를 가했단다.
수행, 또 수행.
베빈이 지겨워할 정도의 수련을 반복한 끝에 그는 결국 네 번째 서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때가 한 달 전입니다.”
“호오. 대단한데.”
“베빈님이 이끌어주신 덕분이었습죠. 그리고 그때가 돼서 허락받을 수 있었습니다. 테스 님에게 가는 걸요.”
“허, 참…….”
“제가 꼭 필요할 거라던데, 맞습니까?”
“맞지. 분명 그건 맞는데…… 후우. 이거 참.”
허락을 받자마자 한달음에 테스에게로 달려왔단다.
테스로선 깨달음의 빚을 갚겠다고 하던 데브론의 방문은 기꺼웠다. 마탑 출신에, 베빈으로부터 배움을 받은 그의 마법 실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대체 베빈. 뭘 하자는 거냐…….’
마탑의 베빈이다. 그녀의 정체는 어느 정도 유추하는 데 성공한 테스였다.
겨우 알아낸 그녀의 이명(異名)은 ‘갇힌 자’.
마탑의 영역이 아닌 곳에 존재할 수 없으며. 동시에 마탑이 존재하는 한은 존재할 수 있는 자.
그 나이를 짐작키 힘들 정도로 오래 산 자이며, 대마법사. 동시에 마력의 저주를 받은 자.
테스가 짐작하기에 그녀는.
‘승천 실패자.’
승천하지 못한 자였다.
‘어쩌면…… 스스로 실패했을 수도 있는 자야. 아직 그녀에게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고.’
실패했으나, 여러 가능성을 지닌 자가 베빈이었다.
‘우선은 내게 호감은 있어 돕는 듯한데…… 그녀가 원하는 변수가 뭔지를 대체 모르겠단 말이지.’
동시에,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자였다.
답답했다.
테스는 그러한 답답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도무지 그녀를 알 수 없단 말이지.”
“흘…… 몇 년을 옆에 있던 저로서도 알 수 없는 분입지요.”
“그래서 문제지.”
“자신을 알고 싶으면, 이곳 영지에 마탑 지부라도 세우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 얼굴이라도 자주 볼 수 있지 않냐고 말입니다.”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건 나중이야.”
다행인 건 그녀는 뒤에서만 조종을 할 수 있다는 것. 영지에 마탑의 영역을 늘리지 않고서야 그녀가 이곳에 방문하는 건 불가능하다.
‘대체 어떤 식으로 갇혀 있는 건지, 영 원리를 모르겠단 말이지.’
베빈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은 결국, 마탑의 영역을 늘려주지 않는 거다.
“이런, 이런. 방문을 거절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슬퍼하시겠는데요.”
“이미 내가 거절할 걸 알고 있었을걸?”
“흘흘…… 맞습니다.”
“자네도, 능글맞아졌구만.”
“그분과 있다 보면 없던 능글함도 생기는 법이죠. 달리 말하면 여유로움이고요.”
“어쨌거나, 이리 찾아왔으니 나로선 환영해. 자네라면 이 문파의 호법부터 시작하는 것도 나는 허락할 수 있어.”
호법. 문주의 바로 아래에 있으며, 수많은 권한을 지닌 자가 호법이었다.
‘만난 시간이 길지는 못하지만, 이리 찾아왔으니 최소의 자격은 되는 셈이지.’
호법에 대한 설명을 들은 데브론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 믿어 주실 줄이야. 이런 저라도 괜찮다면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아니, 아예 맹세를 해 드립죠. 그편이 믿기 편하실 터이니.”
“으음?”
“나 마법사 데브론은 눈앞의 존재 테스를 진정한 주군으로 삼음을 마나에 두고 맹세한다.”
우우웅-!
그는 망설임 없이 마나의 맹세를 외쳤다.
깨달음의 빚을 갚겠다던 진심을 알고야 있었다만. 이 정도의 깊이를 지녔을 줄이야.
“허…….”
“부담스러워하지는 마십시오. 덕분에 얻은 두 번째 새 삶이나 다름이 없고, 이리 맹세하지 않고서는 저도 언제고 베빈 님께 흔들릴 걸 알아 해 두는 보험입니다.”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가볍지 않은 마나의 맹세였기에 테스로선 놀람이 가시기 어려웠다.
4클래스의 정통 마법사. 테스로선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가신을 얻어 버린 상황이었다. 문파의 빈자리를 완벽히 채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 기회를 얻었음에도 놀라마지 않고 있는 테스. 그런 그에게 데브론은 뒤이어서 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아 참. 베빈께서 다른 말은 안 들어도, 이 말은 들을 거라 하시더군요.”
“또 뭔가?”
“저 위로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뭔지 아느냐 말하시더군요. 필수불가결한 부분이 하나 있다더군요. 자신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였고요.”
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 승천(昇天)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언지 말하는 은유였다.
승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
테스는 바로 물었다.
“그게 대체 뭔데?”
“그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