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챕터 8.
스아악-
테스의 몸이 아래로 쏘아졌다.
“우선 하나.”
그의 몸이 염탐꾼들과 가까워져갔다. 단순 염탐꾼이라고 하기엔 느껴지는 마나가 상당한 자들. 테스는 상관치 않고 손을 뻗었다.
콰아앙-!
“커윽…….”
수백여 미터를 쏘아져나간 그의 육신은 그 자체로 무기였다.
가속력을 받은 그의 손이 염탐꾼의 복부를 꿰뚫는다.
염탐꾼의 복부가 짓눌리고. 터져나간다.
“다음, 둘.”
테스는 복부를 치고 얻은 반동을 이용하여 곧바로 방향을 틀었다.
얼굴을 돌리자 보이는 복면인. 두 눈에 당황이 어려 있는 그를 향해 테스는 재차 연타를 날렸다.
의형지권, 이 초식 연(連).
끊임없는 공격으로 상대의 혼을 빼어 놓는 초식이 펼쳐진다.
타아앙! 탕!
극적으로 펼쳐지는 쾌속이 염탐꾼의 온몸을 두드린다.
아래로 처박힐 새도 없었다. 극한의 역타는 그의 육신이 떨어져 내리는 거조차 허락지 않았다.
“히엑…….”
숨 쉴 새도 없이 맞는 염탐꾼. 그는 고통의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눈을 까뒤집을 수밖에.
결국 기절이다.
‘하나는 사망. 다른 하나는 제압.’
그제야 그는 테스의 손길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사이, 하나 남은 복면인이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동료를 버린 거다. 망설임조차 없어 보였다.
‘하나 정도는 더 남겨 볼까?’
마침 남은 하나가 있지 않은가.
파아앙-!
테스가 몸을 띄웠다.
그의 발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수 미터가 줄어들었다. 순식간에 둘의 거리가 줄어든다. 그 순간.
“꺼져 버려!”
쯔즈즈즉-
상대가 단검 세례를 날렸다. 잔뜩 살기가 어린 단검이 수십 날아든다.
매서운 속도!
그러나 테스의 기감은 그 모든 단검을 놓치지 않았다.
‘총 마흔 개. 빠른데?’
단검의 모든 경로를 순식간에 파악. 그에 맞춰 그의 손에서 기운이 일어나 뻗어나갔다. 뻗어나간 기운은 지법이 되어 단검을 향해 쏘아졌다.
퉁- 투아앙-
오차 하나 없었다. 지법은 단검 모두를 터트리고서야 사라졌다.
쏟아진 단검 세례조차도 그의 속도를 늦추지 못했다.
“네가 마지막이다. 잠시 쉬라고.”
“그게 어디 될…… 커윽!”
콰아앙-!
테스의 손길이 그의 뒤를 덮었다.
* * *
테스는 손을 탁탁 털어 냈다.
“후…… 이걸로 우선 둘 정도 확보인가.”
그의 영지를 향해 쳐들어 온 염탐꾼의 수가 거의 백.
대다수의 염탐꾼은 마법을 이용해 처리했지만 문제는 이 아래 쓰러져 있는 둘이다.
‘보통내기들이 아냐.’
이 세계에서 마법의 위력은 절대적.
대다수의 인간들은 감히 대응도 할 생각을 못 하는 게 마법이다.
설사 훈련을 받았다 해도 상관없다. 테스처럼 여러 마법을 응용해 대는 자를 상대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니까.
한데 아래 쓰러진 이자들은 대응을 해냄은 물론, 도주를 시도했다.
어쭙잖은 녀석들은 아니란 소리.
‘어디서 보낸 자들일까.’
꽤 걸출한 세력이 보낸 자들인 게 분명했다. 그러기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터.
살아남은 둘을 마법사의 손으로 띄워 움직이면서도, 그는 계속해 고심했다.
‘정보 길드에 물어봐? 후음…… 아니지. 그 자체로도 정보가 될 수 있잖아? 그렇담 어쩐다.’
경공을 펼친 그. 영지가 순식간에 가까워져 간다.
영지에 가까이 다가가자 가신들이 여럿 보였다.
“영주님!”
“괜찮으신 겁니까?”
“영지군을 준비해 놨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쇼!”
다들 걱정스런 기색으로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방금 전 일어난 전투는 전투랄 것도 없었다. 테스가 해낸 일방적인 학살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가신들은 이를 모르기에, 전투 병력까지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 씀씀이가 나쁘지 않은 터.
테스는 놀라하는 가신들에게 염탐꾼들에 대한 설명을 해 주며 안심을 시켰다. 이제 다 제압하였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테론에게만 당분간은 방비를 철저히 하라 주의만 줬을 뿐이다.
“다들 가 봐도 돼. 끝났으니까.”
“옙.”
“명대로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하고 이만 여기까지 온 가신들을 돌려보내려던 찰나.
‘잠깐. 이참에 저 녀석에게 조사를 시키면 되겠는데?’
떠나가는 가신들 중 하나를 바라보던 테스의 눈이 번뜩였다.
“레므나! 자네는 잠시 나랑 이야기 하지.”
“예, 예에? 저를 말입니까?”
“그래.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겼어.”
* * *
테스가 레므나를 불러들인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영지 통합 때도 크게 이득을 가져다준 그의 수완과 정보력을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많이 바라지도 않았다.
테스가 제압해 온 이들에 대한 정보. 그 정보의 수준을 어디까지 뽑아 오느냐를 실험해 보고 싶었다.
후에 만들어질 정보관을 레므나에게 맡기려면, 그의 수준을 잘 아는 게 필요하였으니까.
고문을 하든 무슨 수를 쓰든 간에 알아만 오라 명령을 내려놨다.
그리고 며칠 후.
레므나는 피로한 기색을 하고 테스의 집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꽤 만족스런 소식을 갖고 있었다.
“페넌에서 의뢰를 넣어 온 자들입니다.”
“페넌이? 거기는 데프 백작한테 거의 초토화 당하지 않았던가?”
“무슨 수를 썼는지 멸문을 피하긴 했습죠. 그 뒤로 두문불출하는가 했는데, 수작을 준비하고 있나 봅니다.”
“흐음…….”
정보를 가져옴을 모자라 그는 분석도 해냈다.
“아마, 페넌 혼자만의 수작질은 아닐 겁니다.”
“그럼?”
“누군가 페넌 영지에게 충동질을 했겠지요. 적당히 대가도 주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페넌이 걸리게 되면, 그때는 꼬리를 자르고?”
“네. 그게 귀족들이 돌아가는 방식이니까요.”
“흠…… 대체 왜?”
“영주님의 성장이 거세지 않습니까. 견제든 염탐이든, 뭐든 해내야겠다 싶었겠죠. 오랜만에 독립 영주 탄생이기도 하고요.”
“견제라…….”
“누구든 후보에 넣긴 하셔야 할 겁니다. 설사 데프 백작이나 테스론이라도 후보에 넣어야 할 겁니다.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을 하는 게 귀족이니까요.”
데프와 테스론도 포함이라. 특별한 인연으로 두 영지와 제법 사이가 좋다 여겼다.
하지만, 레므나는 그리 보이지 않는 듯했다.
‘하기야 어제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기도 하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쯧. 제대로 시작한 건 하나 없는데 벌써부터 이러는 거네.”
“이제 시작입지요. 어찌 할까요? 아직 제가 움직일 수 있는 자는 워낙에 적으니…… 정보 길드에 의뢰라도 넣어볼까요?”
“넣어서 어찌하려고?”
“저희도 나름의 견제를 하는 거지요. 영지에 수작을 부린다던가. 공용 시설을 부순다거나 하는 거 말입니다. 직접하면 좋겠지만, 아직 사람이 부족하니까요.”
일종의 첩보 작전을 말하는 건가.
문파 대 문파의 다툼을 주로 하였던 전생의 테스.
‘이런 곳에도 남의 손을 빌리는 건가. 재밌긴 해.’
그로서는 레므나가 말하는 방식들이 꽤나 신선했다.
하지만.
“꽤 재밌는 방식들이긴 한데, 하지만 역시 몇 가지가 걸려.”
“저희가 페넌과 시비가 붙는 사이 다른 자들이 치고 올 수도 있으니 말입니까?”
“그거도 있지.”
의뢰를 하는 방식이 테스는 썩 당기지 않았다.
‘정보 길드는 이런 공작에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 시간 자체가 누군가의 노림수일 수도 있단 말이지. 뭔가 있어.’
이 일에 연관된 건 페넌뿐만이 아니었다. 정확히 페넌을 포함하여 그 뒤에 다른 자가 있는 듯했다.
당장 근거는 없다.
단지 감이 그리 말해 주고 있었다. 때때로 그의 이런 감들은 정확히 맞아떨어질 때가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저희가 의뢰도 않고 가만있으면 저들이 또 움직이지 않을까요?”
“의뢰가 아닌 다른 방법도 있지 않나.”
“다른 방법이라 하심은…….”
“지켜보게나.”
* * *
의뢰를 넣는 것도. 길게 시간을 끄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그였다.
그러기에 그는 직접 움직이는 걸 택했다.
‘이럴 땐 속전속결이지.’
채비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의 실험실에 있는 몇 가지 도구들을 챙기는 것으로 끝이었으니까.
부적 수십여 장과 그가 특별히 준비한 도구들이 담겼다.
“몸 조심히 다녀오셔야 해요.”
“내가 아니라 그들이 조심해야 할 거다. 아예 박살을 내 줄 참이거든. 다녀올 때까지 수련이나 마저 잘하고 있으려무나.”
“당연한 이야기를요.”
“그럼 다녀오지.”
채비를 마친 테스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스스스스-
경공을 펼친 그의 몸이 앞으로 쏘아진다. 그 속도가 이미 화살에 맞먹을 정도. 그는 거기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속도를 더 올려볼까.’
마음먹은 순간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몸은 더 단단해진다.
속도가 치솟는다.
그는 여기에 마법을 더했다.
민첩 강화. 재생력 강화. 강화된 마법 갑옷.
몸 자체를 재차 강화시키고. 마법 갑옷의 형태를 변화시켜 공기 저항을 최소로 줄였다.
그의 속도가 대번에 배는 더 올라갔다.
콰가가가각-
공기를 가르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압도적인 속도!
-취익?
-키이익!
기척을 숨길 필요도, 조심스레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몬스터들이 그의 기척을 느끼기도 전에 그는 이미 몬스터들을 지나치고 있었으니까.
* * *
단 이틀.
그가 영지 페넌에 도착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내리 달려온 주제에 그는 지친 기색조차 없었다. 환골탈태된 몸에 추가된 재생력이 그를 항시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주었다.
그는 거치는 곳 없이, 한 곳을 향해 움직였다.
‘보자. 가장 북쪽에 있었다고 했지.’
그가 목표로 한 그곳.
페넌의 말 사육장.
데프 백작에게 패배한 페넌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 괴멸당한 페너탄 기마대를 다시 살릴 수 있는 기반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거대하네.’
그건 거대한 규모였다. 단지 사육장이라 칭하기엔 딸려있는 시설들이 많았다.
말 울음소리가 나고. 말들을 불리기 위한 작업들이 한창 이뤄지고 있었다.
곳곳에 기사와 병사들이 움직이며, 사육장을 돌았다. 은밀히 느껴지는 마나는 이곳에 마법 방어 장치가 있음을 말해 줬다.
‘과연…… 데프 백작한테 배상금을 내면서도 끝끝내 지켜내던 곳이라 이거지.’
영지 규모에 걸맞지 않게 거대한 그곳에 발길이 닿자.
‘공중 부양.’
테스는 은밀히 마력을 돋워 몸을 띄워 올렸다.
후우우웅-
그의 몸이 저 위로 올라선다.
그때까지도 말 사육장의 누구도 테스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의 마력이 그만큼 은밀했다.
위로 올라선 테스는 아래로 보이는 말 사육장의 방어 시설을 가늠했다.
“페넌에 고위 마법사가 있기는 한가 보네.”
페너탄 기마대가 마법 방어구를 지니고 있는 것도 그러하고. 이곳에 있는 마법 방어도 심상치 않았다.
5클래스 방어 결계가 중심. 그 아래로 각기 4클래스 방어 마법이 도배돼 있었다. 원소 저항을 위한 방비도 마련 돼 있었다.
과연 페넌 영지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을 이용해서 언제고 재기하는 걸 노렸겠다만…… 날 건드렸으니 대가는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