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화
챕터 3.
바깥에 나서는 법 없이 집무를 보고 있던 아르펠 공작.
공작 부인의 성격. 정확히 그들 가문의 성격을 알기에 공작은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날이 내일일 거라 여겼는데.
“공작 전하!”
“벌써 시작됐는가?”
“당장 가 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테스에겐 시종이라 알린 기사 오스번. 그가 다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일이 벌어지자마자 달려 온 게 분명하다. 부하 기사들을 움직이게 했겠지만, 보통 상황은 아니겠지.
공작은 몸을 일으켰다. 잠들어 있던 그의 오러가 올올이 그의 몸을 채웠다.
‘……그래. 결단을 낼 때가 온 게지.’
어쩌면 그도 이 순간을 기다렸을지도 몰랐다.
공작가 내부의 해묵은 내분의 씨앗. 이제는 완전히 발아해 버린 그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자 하였으니까.
후대를 이어받을 적장자를 향한 암살 행위.
그 하나면 모두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데 충분한 명분이 되고도 남았다.
내분을 잠재우는 건 가주로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니 좋고도 남은 일이었다.
‘하…… 서글프군.’
한편으로는, 제 자식의 목숨을 걸고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우스웠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에게 다른 도리가 없었다.
“먼저 가겠네!”
그나마 아비로서 할 수 있을 일이라면 하나.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 나가는 일이었으니!
공작은 제 애검을 들고서 기사 오스번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그의 뒤를 수많은 기사들이 따라붙었다.
* * *
오늘따라 집무실에서 아들의 방까지 거리가 너무 길었다.
자랑스럽기만 하던 저택의 크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어서!’
온 힘을 다해 달리는 그. 숨겨 놓았던 혈맥의 기운까지 끌어 올리며 달리는 그는 몸놀림은 매서웠다.
그의 시야에 아들의 방이 들어왔다. 곧이다.
‘이런 벌써!!’
대체 어찌된 거란 말인가.
방어를 위한 경비대는 어디로 가고. 수족처럼 두었던 기사들은 심장이 꿰뚫려 있었다. 바닥에 진득한 핏물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 환하게 열려 있는 방문.
‘내가 늦었는가!’
그는 최악을 생각했다. 눈을 질끈 감고서 달려가는 게 그로선 최대의 의지를 발휘하는 거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방에 몸을 들이밀었을 때.
그는 생각지도 못한 장면을 보았다.
사방이 난리인 가운데 검을 쥐고 선 건 단 하나.
테스뿐이었다.
“늦으셨군요.”
“허…….”
그가 마검사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지만.
‘레드문…… 그들을 상대했단 말인가.’
부인의 가문이 불러들였을 레드문의 암살자를 쓰러트릴 줄이야.
쉽게 움직이지 않는 레드문을 불러들인 수완도 대단하나. 그를 상대하는 테스의 실력도 놀라웠다.
오죽하면 당장 많은 걸 처리해야 하는 이 와중에서도 감탄부터 일어날까.
그가 오기도 전에 모든 상황을 매듭지었다.
“치료 중에 암살자라. 꽤 진귀한 경험이었습니다.”
“대가는 충분히 지불할 걸세.”
놀람과 속내를 감추고 답하는 게 공작으로선 최선.
“그래야 할 겁니다. 의원을 치료가 아닌 다른 곳에 쓰는 건 꽤 요금이 비싼 법이거든요.”
“……이미 눈치챘군.”
“걸맞지 않게 퍽이나 많은 경험을 했던지라. 대비를 했을 뿐이죠.”
“허허…….”
다른 곳에 쓰인 대가라.
테스의 말은 많은 걸 내포하고 있었다.
‘이미 예측을 하고 있었던가.’
그는 이 상황 자체를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바깥에서 치료를 하고자 온 그 잠깐의 순간에 말이다.
어쩌면 공작의 의도까지도 읽은 듯했다. 그러니 대가를 바라는 거겠지.
하기는 예상하지 못했다면 미리 괴상한 마법진을 설치하지도 않았을 거다. 테스. 그는 한 달도 더 전부터 이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있던 셈이다.
‘……놀랍군.’
대단한 자다. 예상을 벗어난 자고.
본디 이런 자가 제국에 있었다면, 그 씨앗부터 밟아버렸을 터. 하지만 공작은 질시보다 다른 감정들이 떠올랐다.
그에 대한 감탄. 그리고 갖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하…… 이 순간도 이런 생각을…….’
하지만 공작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인재도 좋고 감탄도 좋다. 그보다 중요한 다른 하나가 남아 있었다.
가주이기에 이 일을 예건하고도 두었지만, 동시에 한 명의 아버지이기에 해야 할 급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 아들은 어떻게 됐는가…….”
“예정대로, 마지막 단계만 남았습니다.”
“마지막이라…….”
정녕, 그 천형을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전이라면 한 가닥 의심이 남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그런 의심조차도 완전히 사라진 공작이다.
“그럼 내일 치료가 끝이로군.”
“본래라면 내일 해야 할 테지만…… 상황을 보니 무리해서라도 끝내는 게 좋아 보이는 군요.”
“무리는 하지 않는 게…….”
“판단은 제가 합니다. 같이 보시겠습니까?”
무리라. 그리 말하면서도 자신만만하다.
이제와 의심을 더해서 뭐 할까.
“알겠네.”
“그럼 이리로.”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바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몸의 긴장이 사라지고. 그제야 아들이 눈에 들어 왔다. 일 년 전부터 눈도 뜨지 못하던 아들의 눈은 이미 뜨여져 있었다.
영특한 아이다.
그 아이라면 이미 모든 걸 다 알고도 남았을 터.
“아버지.”
“……보았느냐?”
“저는 이해합니다.”
“미안하구나.”
이해라. 이 아이는 제 목숨을 갖고 일을 꾸민 아비를 이해한다 말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 외에 더 무슨 말을 하랴.
공작 자신이 아들의 긴장을 풀어줘야 할 터인데.
“일어나면, 그땐 같이 여행이라도 가는 건 어때요?”
“그래. 가자구나.”
아들이 먼저 여행이란 단어를 꺼냈다.
‘여행이라…….’
진심으로 원하는 게 아니다. 긴장을 풀라는 거겠지.
그제야 공작은 몸에 남아 있던 모든 힘을 풀었다. 급작스레 어마어마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그는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아들의 옆을 지켰다.
“자, 끝을 냅시다.”
테스가 마지막 치료를 시작했다.
* * *
수 시간이 흘렀다.
공작은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테스의 치료를 바라봤다.
그의 치료는 흡입력이 있었다.
침을 꽂을 때마다 마나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흐름은 자연스레 아들의 몸을 타고 돌았다.
타고 돌면서도 마나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안착되어 갔다.
그러며 동시에 아들의 몸에 균형을 찾아갔다.
이걸 단순히 인간이 해내는 치료라 말할 수 있을까.
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이적을 자신은 무어라 말해야 할까.
‘허. 대체…… 승천자도 아닐진데, 어떻게.’
온갖 고위 신관들이 해내는 신성력의 기적을 보아왔던 그로서도 생경한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이 안에 자리한 모두가 바라봤다.
경호를 위한 기사, 시종, 마법사.
“…….”
“…….”
공작이 있기에 누구 하나 감히 입을 열지 못하였다. 하지만 자신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음은 확실히 직감하였다.
경이로웠던 치료.
“후우…… 끝입니다.”
그 치료도 테스의 선언과 함께 끝이 났다.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 기간 누워 있던 라프러트가 제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일으킨 몸을 힘겹게 이끌어 아들이 안은 건 공작이었다.
“아버지!”
“오오!”
공작은 가까이로 다가가 아들을 안았다.
오랜 기간 치료로 메말랐어야 할 아들의 몸은 뜨거웠고 강건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공작의 몸에 닿은 아들의 기운은 정순하되 강력하였으니까.
치료를 넘어 기운까지 주입하는 데 성공하였음을 공작은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금안이 아들의 상태를 저절로 읽게 해 줬다.
‘허허…… 대체 무슨 수를 쓴 것인가.’
하기야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랴.
아들이 치료가 되었는데!
공작은 이 순간만큼은 한 사람의 아버지가 되어 진심으로 라프러트를 안았다.
“으윽…… 너무 세게는 아프다고요!”
“크흐흐. 그래, 그래. 우리 아들. 알았다. 알았어.”
“큽…… 조금만 더 힘 빼 줘요!”
“그래. 잘 버텨 내었다. 잘 버텨 냈어…… 정말로…….”
두 부자의 재회.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 바라보지 못한 둘이 만났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뒤에선 테스. 그는 두 부자의 재회를 한참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 맛에 치료를 하는 거지.’
둘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주제는 가벼웠으나, 그 안에는 진한 부정(父情)과 사랑이 녹아 있었다.
그러다 먼저 정신을 차리는 건 공작이었다.
그가 테스를 바라봤다.
“본래라면 미리 준비한 걸로 대가를 줄 수 있었겠지만, 이제 그거만으론 안 되겠군.”
“그렇단 말씀은…….”
“내게 며칠의 말미를 더 줄 수 있겠는가? 준비를 할 시간 말일세.”
대가를 위한 준비라. 테스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입니다.”
“후후. 기대해도 될 걸세.”
* * *
공작이 줄 대가가 대체 무엇일까.
‘그 귀한 재료들을 구하는데도 일주일이면 되는데, 보상에도 며칠이라. 거 되게 궁금한데.’
모든 치료를 끝마치고. 한 달간의 치료로 쌓인 피로를 풀면서도 테스는 기대감을 느꼈다.
순식간에 일주일이 흘렀다.
그제야 공작은 자신의 집무실에 테스를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안으로 들어선 테스를 바라보는 공작의 눈엔 짙은 호감이 어려 있었다.
“기다려 주느라 고생했네.”
“저를 위한 준비를 기다리는데 고생이겠습니까.”
“후후. 말을 돌리는 법이 없군. 자, 이것들부터 받게나.”
무얼 준비한 걸까.
공작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테스에게 몇 가지의 서류를 건네었다.
“이건…….”
“약속한 대로네. 자네의 작위를 단승이 아닌 계승으로 바꿨지. 그리고 하나를 더 더했네. 독립 귀족으로서의 권한이야. 자네도 그 권한에 대해서는 알고 있겠지?”
“크흠…… 물론입니다.”
독립 귀족이라. 사실 이에 대해선 테스도 자세히는 몰랐다.
분위기로 봐선, 당장 모른다 답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공작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거도 우스운 일.
‘나중에 제리코에게 물어야겠군.’
테스는 알아들은 척 공작의 말을 넘겼다.
“작위식은…… 시간이 좀 걸릴 걸세. 데프 백작과 조율을 해야 할 듯하거든.”
“데프 백작과 말입니까?”
“어쨌거나 자네 귀족 작위의 시작은 그이지 않은가. 그때의 작위식을 하지 않은 덕에 꼬인 게지.”
“허어…… 참.”
그때 계승식을 어떻게든 해냈어야 했나.
‘뭔 이런…….’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불만스런 테스의 표정을 공작이 읽었다.
“예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세. 그래도 자네의 권리는 이미 인정받았으니 걱정하지 말게나. 혹여 누군가 따지고 든다면, 아르펠의 검이 함께할 걸세.”
“공작 각하의 힘인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기야 작위식은 요식 행위. 제후의 힘을 지닌 공작이 인정했는데 누가 무어라 할까.
테스는 다시 흡족해하며 작위서를 챙겼다.
공작의 선물은 작위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것들도 받도록 하고. 내 옆으로 영지를 주고 싶으나, 그는 자네가 거부할 거 같으니 따로 챙겼네.”
“예?”
“자네 주변의 장원들을 사들였단 이야기지.”
“허어…….”
주변의 땅까지 그에게로 넘겼다. 장원 여럿의 목록이 그가 넘긴 종이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걸 일주일 만에 했다고?’
단 일주일 만에 작위를 조종하고. 귀족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영지까지 정리를 해 올 줄이야.
긴 일주일이 아니라, 고작해야 일주일 만에 해낸 일이다.
‘이게 제후의 힘…….’
테스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라야 할 건 따로 있었다.
놀라는 테스의 얼굴을 감상하던 공작. 그는 제 책상 한편에 올라와 있는 검은 상자를 꺼내어 테스 쪽으로 밀었다.
기다란 상자가 테스 앞에 도달했다.
“열어보게.”
“……이건!”
안을 열자 기다란 검이 보였다.
‘이런 검이 여기서 왜?’
검의 형태. 놀랍도록 테스에게는 익숙한 형태였다. 중원에서 그가 다루었던 애검과 비슷한 형태의 검이었으니까.
여기서 급작스레 중원의 형태를 띤 검이 나올 거라곤 그도 생각지 못했다.
그조차도 놀라웠는데.
“대체 이걸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후후. 글쎄. 내가 자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데, 그 검이 가장 오래 걸린 이유라는 거만 알아두게나.”
“대체…….”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짐에 테스는 혼란스러움이 커져갔다. 여기에 공작은 혼란을 더 더했다.
“역시. 그 검이라면 자네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거 같았지.”
“……대체 누가 이런 검을 만든 겁니까?”
“정확히 만든 게 아니라 쓴 자만 기록될 뿐이야. 그리고 그 자는, 승천자였네.”
“……예?”
“허허. 아직 몰랐던 건가.”
승천자.
그에 관한 비사가 공작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