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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75화 (75/191)

제75화

챕터 25.

그곳에 도달하자, 전에 없던 마나 흐름이 느껴졌다.

‘마법진이다.’

마법을 이용하려는 건가.

마나의 흐름은 장원 안으로 들어설수록 짙어졌다.

이쯤 되면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안에 이동을 위한 마법진이 깔려 있다. 그를 통해서 단숨에 아르펠 공작령으로 날아갈 생각이겠지.

즉, 텔레포트 마법진이다.

‘잘도 설치를 했네?’

단, 일회성이라도 텔레포트 마법진의 설치는 어려운 일이었다.

텔레포트 마법진의 설치 난이도가 문제가 아녔다.

문제는 텔레포트가 지닌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단숨에 몸을 이동시켜주는 게 텔레포트. 이러한 텔레포트를 적진 한복판에 사용하여, 핵심 전력을 던질 수 있다면?

‘초토화되는 거겠지.’

그대로 적진은 무너진다.

과장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전의 전투에서 보았듯, 이 세계 전투에서 일반 병사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개중 용병이야 밥값을 한다지만, 제대로 된 초인 앞에선 무너진다.

결국 전투의 행방은 초월적 강자들이 결정한다.

그러기에 전략전술이 주먹구구식이고. 중원 기준에서 우습지도 않은 식으로 전투가 이뤄지는 거였다.

‘대규모 화전이 아니고야 전략 전술을 부릴 필요도 없고. 부리더라도 강자한테 쉽게 깨져버리니까…….’

상황이 이러기에 텔레포트의 가치는 그만큼 더 높았다.

때문에, 많은 자들이 제 영지에 역장 하나 정도는 설치해 놨다. 텔레포트를 막기 위한 역장이었다.

역장. 일종의 마나 교란 장치.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때문에 제 영지마다 역장 하나 정도는 다들 설치를 해 두는 게 방위의 기본이었다.

그런데 아르펠 공작은 잘도 이런 곳에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했다.

‘내가 본 데프 백작이 머저리는 아니었으니…… 모종의 거래가 있었겠는데? 그게 또 뭐려나.’

데프 백작. 그리고 아르펠 공작.

텔레포트 설치를 대가로 둘 사이에, 테스가 모르는 거래가 오고갔을 게 분명하다.

백작이 수완이 좋으니, 아르펠로선 꽤 많은 걸 내줬겠지.

그만큼 아르펠이 제 자식의 병을 신경 쓴단 의미기도 하고.

또 다른 의미로는 그를 이끌고 있는 비스론 남작의 수완이 뛰어나단 의미다.

새삼 안내하는 비스론이 남달라 보였다.

“내리시죠. 금방이니까요.”

“잘도 이런 걸 준비했군요.”

“제가 가진 알량한 재주 하나죠.”

“허 참…… 그게 알량한 재주면, 다른 자는 다 죽어야죠.”

“크큭.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불어서.

테스를 맞이하는 레므나 장원주. 그도 많은 걸 챙겼을 게 분명하다.

“남작님!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네. 자네는 여전하구만? 잘도 이런 걸 장원에 설치하게 뒀어.”

오랜만에 보는 그의 얼굴엔 꽃이 피어있었다.

“흐흐. 제가 힘이 뭐가 있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지요.”

“대가로 얼마나 챙겼나?”

“적당히 챙겼습니다. 너무 챙기다가는 탈납니다요. 제 주제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텔레포트 마법진을 설치하는 대가 일부. 그걸 레므나 장원주가 챙겼을 게 분명하다.

‘하여간에 이 자도 수완도 좋단 말이지.’

레므나 장원주와 테스의 영지는 가까웠다.

그 가까움이 텔레포트 마법진의 설치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거였다.

넉살을 부리느라 다소 경박해 보이는 장원주의 수완도 들어가 있겠지.

‘안 봐도 뻔해.’

레므나 장원주와 비스론 남작.

두 수완가들의 얼굴을 흘끗 보며 테스는 마차에서 내렸다.

‘하여간에 진귀한 경험이야.’

마차에 내리면서도 그는 제가 가진 기감을 넓게 펼쳤다.

스스스스-

텔레포트 마법진을 통해 흐르는 마력의 흐름. 쉽게 느낄 수 없는 마법이니, 그 흐름을 느끼고자 하는 거였다.

흐름을 느끼며 얼마나 걸었을까.

“여깁니다.”

“대단한 걸 두기엔 다소 허름해 보이긴 하는군.”

일종의 창고 같아 보이는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장 전술이죠.”

“전술이라…… 거, 오랜만에 듣는 단어군요. 어쨌거나 들어갑시다.”

츠츠츠츠-

안으로 들어서자, 기감으로만 느껴지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과연 대단한데.’

기기묘묘한 룬어가 수십 개 새겨져 있고. 그 옆으로 수십 개의 마나석이 박혀 있었다. 그 가운덴 상급이 분명한 마나석이 중심을 잡았다.

거대한 마나의 흐름.

‘내력으로 치면 최소 이 갑자 이상. 마력으로 치면 오 클래스 이상의 마력인가.’

진법을 통해 이미 거대한 마력을 다루는 테스. 그가 보기에도 꽤 대단한 마력의 흐름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룬어. 흐름. 비의.

마법사인 테스에게 어느 하나 버릴 게 없는 것들이었다.

얼마나 지켜보고 있었을까.

테스의 집중을 깨는 자가 있었다.

“……그러다 뚫어지겠소. 비의를 너무 쉽게 알려고 하지 마시오.”

“이런, 내가 실례했군요.”

창고 안에서 미리 자리 잡아 있던 마법사였다.

‘최소 6클래스…….’

수염을 곱게 기른 마법사.

그는 마차 호위를 위해 왔던 이름 모를 마법사보다도 경지가 높아 보였다.

손에 쥔 지팡이는 그보다 더 대단하였다.

‘상급 마나석을 두 개나 박아 넣었네? 미쳤군.’

거대한 마나석 위에 정교한 마법진이 새겨진 지팡이였다. 마탑의 마법사라도 탐낼 만한 귀물을 쥐고 있었다.

느껴지는 클래스를 떠나, 그는 제법 강자일 게 분명했다.

상대 마법사는 테스를 직시하고 있었다.

“이해는 하오. 마법의 비의를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특히나 그대 같은 자는 더 심했겠지.”

“정통인지 아닌지 같은 걸 따지고 싶은 거요?”

“그럴 리가. 이미 일가를 이룬 듯 보이는 자인데, 쓸데없는 짓이지.”

“흠…….”

그는 전에 본 데브론처럼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도 강자인 만큼, 테스의 힘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으니 하는 태도.

그는 나쁘지 않은 제안까지 해왔다.

“나는 클레릭이라 하오. 이번 일이 끝난다면, 언제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기회만 된다면, 얼마든지.”

“후후. 좋소. 내 꼭 그 말 기억하리다.”

테스의 대답에 클레릭은 만족스레 웃었다.

쿠웅.

그러며 그는 지팡이를 마법진을 향해 튕기었다. 지팡이의 마력이 흘러내려가며, 텔레포트 마법진의 흐름을 강화시켰다.

‘햐…….’

정교한 마나의 흐름. 규칙적인 룬어. 그를 다루는 섬세한 마력…….

어느 하나 버릴 거 없는 진귀한 광경 가운데, 마법진이 완전히 활성화됐다. 거대한 빛이 흘렀다.

“자, 그럼 마나의 평안이 있기를.”

“그대에게도 평안이 있기를 기원하죠.”

클레릭의 마중을 받으며. 테스는 마법진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스스스스-

공간과 육체가 뒤틀리는 기이한 감각. 처음 느끼는 알 수 없는 감각을 느끼며, 테스는 제 몸이 이동됨을 여실히 느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테스는 다른 공간 안에 있음을 느꼈다.

화려한 조각이 수놓아진 벽, 두터운 기둥, 도배된 보안 마법…….

어느 하나 놓칠 게 없는 광경이었다. 그 가운데 테스는 제 감각을 간질이는 자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저자다.’

그곳에 아르펠 공작이 있었다.

금색의 머리카락에, 그보다 또렷한 금안. 넓게 펴진 어깨와 같은 위엄을 지닌 그가 테스를 바라봤다.

테스는 그를 향해 예를 올렸다.

“자네가 소문의 테스 남작인가.”

“아르펠의 지배자를 뵙습니다.”

이어지는 예법을 지키면서도, 테스는 그의 힘을 느끼었다.

‘미쳤네. 과연…… 이 정도 강자는 돼야 제후라 이건가.’

기감을 돋움에도 아르펠의 끝을 알 수 없었다.

깊이 느껴지는 힘의 격.

환골탈태를 하고. 초절정의 벽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느껴지는 차이라.

테스는 전율을 느꼈다.

‘언제고, 기회만 된다면.’

동시에 짙은 호승심을 느꼈다.

저자가 지닌 힘이 얼마나 될지. 그 깊이, 방식은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당장 풀 수 있는 호기심은 아니었다. 아르펠 공작 정도 되는 강자와 맞붙기 위해선, 그에 맞는 격을 테스도 갖춰야 할 테니까.

“자네는…… 꽤 기묘하군?”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듣기는 합니다.”

테스가 그를 살피었듯, 아르펠도 그를 살폈다.

그의 뚜렷한 금안은 기묘한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안을 속속들이 살피는 눈이었다.

‘정말 엘프의 피라도 이어받았나?’

하이 엘프가 지녔다는 진실의 눈이 생각나는 듯했다.

“재밌어. 하기는 자네 정도가 되니 치료를 할 엄두라도 내는 거겠지.”

“기회를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지요.”

“후후. 말을 재밌게 하는군.”

자식의 병으로 가슴의 멍이 상당할 텐데. 그럼에도 그는 굳건하게 중심을 잡고 테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한참의 환대를 하며, 움직여갔다.

‘바로 가는 건가.’

아르펠 공작 정도 되는 자가, 테스에게 방을 안내할 리는 없었다. 환자가 있는 곳을 향해서 바로 직행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중원이나 여기나…… 부모의 마음이란 게 다 비슷한 법이지.’

환대를 하면서도, 동시에 환자를 향해 데려가는 건 자주 있는 일인 터.

테스는 익숙한 몸짓으로 공작의 뒤를 따랐다. 그런 둘의 뒤로 수없이 많은 시종과 기사, 마법사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야 테스는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아르펠 공작의 첫째 아들, 라프러트.

그가 누워 있는 침상에 다가가는 순간, 테스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걸, 이렇게 막았다고? 허…… 대단하잖아?’

잠든 듯 누워있는 라프러트.

그를 중심으로 수없이 많은 마법적 처리가 잠든 그를 보조하고 있었다.

‘덕분에 살아 있는 거네.’

회복, 재생, 치유.

룬어들이 박혀 있고. 그 곁으로 정체 모를 마법진들이 박혀 마력을 흘리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지금은 깨어날 수 없네.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고.”

“마법적으로 혼수 상태에 빠트렸군요. 그러며 동시에 시간을…… 멈추었고요. 정확히는 느리게 흐리게 한다 해야 할까요?”

“허…… 벌써 눈치챘는가.”

마도의 시작이랄 수 있는 일 클래스.

이런 일 클래스엔 온갖 종류의 마법들이 있었다.

시간, 육체, 원소, 마력, 방출…….

많은 분야의 기초가 되는 것들. 그 위력이 강화되고 룬어가 더해지면 그보다 상위의 마법들이 되는 게 일 클래스의 주문이었다.

‘오죽하면 일 클래스를 통달하면, 모든 마법을 통달할 수 있다는 소리도 있으니까.’

이 중 일 클래스 시간 지체는 특별했다. 일 클래스임에 시간을 조율하는 마법이었다.

상대의 시간을 잠시 느리게 만들어, 행동을 더디게 하는 게 시간 지체의 핵심.

그 효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잠시 더디게 할 뿐이었다. 일 클래스의 한계였다.

그러한 한계가 눈앞에서 완전히 깨지고 있었다.

시간 지체 마법이 극한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를 이용해, 공작은 제 자식의 시간을 멈춤에 가깝게 만들었다. 덕분에 저 공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더 악화되지도 않고, 치유되지 않은 채로. 멈춰 있었으니까.

‘아르펠 공작가의 힘의 중심은 마법에 있겠어…….’

뛰어난 비술이었다.

“일 클래스 마법을 이런 식으로 조율할 수 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는 자네가 이걸 바로 눈치챈 게 더 신기하네.”

보는 거만으로 시야가 개안 되는 듯했다.

“눈이 좋은 편이죠.”

“허허…… 단지 그리 말할 수준은 넘네만, 뭐 이게 중요한 게 아니겠지.”

비술을 알아본 테스를 공작은 한참 이채를 띠고 바라봤다. 그러다 그가 가장 묻고 싶어 하던 걸 물었다.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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