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화
챕터 23.
지난 겨울.
수없이 많은 자들이 영지를 찾아왔다.
그들 다수가 유랑민들이었다. 그 수만 하더라도 물경 천이 넘었다.
테스 영지 주변이 소란스런 덕분이었다.
영지전의 전후 처리는 이권 분쟁으로 길어지고 있었다.
그에 더해 굶주린 몬스터는 산맥 지류를 돌아 흩어지는 상황.
무너져 내리는 장원, 영지들은 넘쳐났다. 그들 사이에서 유민들이 만들어져 찾아오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테스는 소문을 지켰다. 찾아오는 모두를 받아들였다.
겨울이 지나 봄인 춘궁기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사람이 찾아들고 있었다.
‘좋구만.’
영지의 규모가 순식간에 커져가고 있었다.
매달 들어오는 유랑민과 노예. 그 수가 더해지면서 그의 영지민 수가 5천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몇 년은 더 걸릴 거라 여겼던 영지 성장이 가속도가 붙은 지 오래였다.
수많은 곳이 개척되기 시작했다.
포화 상태다.
장원을 넘어 그 바깥을 개척하자는 이야기가 슬그머니 나오고 있었다.
상시 시장도 만들어졌다. 그레놀은 지부를 내버렸고, 정보 길드의 레빈은 은근슬쩍 자리를 붙였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병사들도 더 뽑았다.
그 수가 400을 넘기기 시작했다.
인구 5,000에 병사 400. 기형적인 비율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당연하다 싶은 비율이었다.
훈련 수준도 상당했다.
초기에 받아들인 자들은 전부가 삼류 무사 이상의 수준이 됐다.
내력은 4년 이상.
양가 창술은 다들 사 성을 넘어섰다. 특히 지휘관 테론의 성장은 도드라졌다. 육 성을 이미 넘어선 지 오래였다.
대다수 실전까지 겪은 터. 병사 수준은 훌쩍 넘는 자들이 속속들이 만들어졌다.
걱정되는 건 신입 병사들 수준.
그러나 그들도 선임 병사들이 지옥 수련으로 이끌어주니, 금방 강병이 될 터였다.
단단한 강병들이었다.
그들이 피부로 와 닿는 치안을 챙겼다.
저 멀리서는 제리코를 필두로 행정관들이 안 살림을 챙겨나갔다. 재무관 에일런, 농업관 바이트, 도시 계획에 알스가 기둥이 돼 줬다.
기둥이 된 그들은 새 인재들도 여념 없이 받아들이고. 이용했다.
저 멀리 인재를 끌어오기도 하고. 유랑민을 이끌어 온 자 중 됨됨이가 된 자들을 각 구획의 촌장으로 만들어 뿌리를 만들었다.
작은 장원이었던 테스의 영지가 크게 발돋움했다.
장원에서도 최상위급!
남작령으로선 최소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영지와 달리 내실이 튼튼한 걸 생각하면, 이미 어지간한 남작령은 눈 아래 둬도 무방한 상황.
다른 자들이 움츠러드는 겨울 사이 낸 성과였다.
‘좋은 느낌이다.’
영지 전체를 꿰뚫어 바라보고 있는 테스. 그로선 이 거대한 성장을 느낄 때마다, 저 스스로 전율을 할 정도의 속도였다.
진법을 통해서 영지 전체를 읽어 들일 때마다 이 영지를 자신이 일궈간다는 자부심이 생겨났다. 전체를 아우르는 전능감도 함께였다.
역동성 있는 성장. 거대한 움직임. 강력해짐.
그 모두가 이 영지를 만들어가는 테스의 좋은 동력원이 됐다.
움직이는 영지민들 하나, 하나의 삶들을 바라봄에 그에게 얻어지는 것도 많았다.
영감이 샘솟았다.
샘솟은 영감을 제 수련에 적용시키고. 때로 연구에 사용하기도 하며 나아가는 게 그의 하루 일과.
그런 가운데, 날로 초췌해져가는 자도 분명 있었다.
“영주님! 영주님 나와 보십쇼!”
“이크…… 또 온 건가.”
* * *
테스의 집무실로 찾아든 건 제리코였다.
곱게 길렀던 수염도 다듬지 못한 제리코. 초췌해져 버린 제리코가 매일같이 찾아와 하소연을 해댔다.
“흐으…… 아시죠? 한계입니다. 한계.”
“자네가? 에이, 자네 정도 능력자가 한계라니. 그 틀을 깨라고.”
“단순 행정 일뿐이라면 가능했을 겁니다만은…… 영주님은 그 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가?”
“그런가하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다 다 죽습니다!”
일이 넘쳐나긴 했다.
새로 받은 유민들은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개척을 하고. 공용 시설을 지어야 했고. 치안을 지키도록 치안병도 추가로 뽑아야 했다. 움직이는 족족 일거리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테스는 더 일을 더했다.
늘어나는 인구만큼 연단로를 짓게 만들었다.
새로 개척된 농지의 용도를 약초밭으로 바꿨다. 받아들인 약초꾼과 농업관을 통해 연구를 시켰다.
슬쩍 의약품을 만들어내도록, 약당의 기틀도 잡게 만들었다.
영지가 살찌는 만큼, 행정관들이 빠질 만했다.
‘으음…… 시켜 놓고 보니, 힘들긴 했겠는데?’
제아무리 수완가인 제리코라도 쉽지 않은 일들이다.
“회복. 재생력 증가. 좀 낫지 않아?”
“크흐…… 이번에도 마법으로 때우려고만 하지 마시고! 슬슬 새로운 인재들도 들여 주셔야 합니다.”
슬쩍 마법을 들여 그의 회복을 도모해 본다. 제리코 얼굴에 쓰인 피로감이 일부 가신다.
보통 이 정도면 슬쩍 물러나는 제리코였다.
오늘은 아닌 듯했다. 잔뜩 결심을 한 기세다.
“정보 길드를 통해 계속해 유입시키곤 있잖나.”
“그로도 부족하니 문제지요. 아예, 새로 키워야 하나 생각도 할 정돕니다.”
“후음…… 키운다라. 학교라도 세우잔 건가?”
“오오! 학교라. 그것도 좋죠.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또 제가 일을 해야 하고요.”
나중에 학교도 세우긴 해야겠군.
‘엄살은 부려도, 일이야 알아서 잘 하겠지.’
제리코가 알면 놀랄 생각을 잠시 숨겨두고. 테스는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자고?”
“돈! 더 많은 돈을 좀 주십쇼!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최곱니다.”
“그럼? 월급을 늘려준다고 될 수준이 아닌 거 같은데.”
“흐흐. 그걸 미끼로 이 지옥에 새로운 놈들을 제가 끌어와 보겠습니다. 대신 몸값은 높지만요.”
“호오…… 남은 인맥이 더 있었나?”
테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인맥이 남아 있었나. 대단한데?’
지난번 스카우트로 제리코의 인맥들을 다 끌어왔다 여겼다. 아니었다. 저 눈빛을 보자니, 그가 끌어올 만한 인맥은 아직 남은 듯했다.
‘수완 하나는 정말 타고났다니까.’
정말 돈만 주면 데려올 기세다.
“좀 비싼 놈들이지만, 뭐 어떻습니까. 영주님이 조금만 더 애써 주시면 자금이야 충분한데요!”
“큼큼…… 홀스 파워도 무작정 양만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잖나.”
“에이. 앓는 소리 마십쇼. 전에 만드신 바르는 포션! 그거를 내잔 말입니다!”
바르는 포션. 중원의 이름으로 금창약.
외상에 탁월한 효능이 있었다. 재생력을 강화시켜 금방 상처 회복을 도왔다.
포션만은 못하지만, 상관없다.
‘단가가 더럽게 싸니까.’
테스가 조금 애를 써주면 금창약은 금세 만들어졌다.
물의 정령을 통해서 재생력을 강화시키고 선천진기로 약화도 강화시키면 됐으니까. 싸구려 재료로 만들어도 효과는 탁월했다.
테스로선 약효 강화 실험 중 나온 잔재주일 따름이지만, 제리코는 그 상품성을 높게 봤다.
봐라. 눈에 광기까지 흘리고 있을 정도다.
“이미 홀스 파워가 있으니 신뢰는 확실합니다. 당장 만들어만 주시면 다 팔아오겠습니다! 당장요!”
“워워. 진정 좀 하라고.”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이대로 있다간 행정관 놈들 다 쓰러지게 생겼는데!”
“크흠…….”
테스가 슬쩍 질릴 정도의 진심 어린 광기라.
‘미쳐 가는구만. 하긴 다른 관 놈들도 비슷한 신세긴 한데…….’
그만큼 일을 던져준 건 테스였다. 내심 찔릴 수밖에 없었다.
찔림을 본 제리코는 기세를 끌어올렸다.
“그러니 어서 돈과! 더 많은 돈을 주십쇼! 그러면 다 끌어 올 테니까!”
“알았네. 삼천 골드쯤 쓸까?”
“사천 골드!”
“……바로 결제해 주지.”
“역시 영주님! 저의 바른 주군!”
“입닫고 스카우트나 해오게나. 당장.”
“명 받잡겠습니다!”
결국 테스로선, 더 많은 돈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차피 나도 부족하다 여기긴 했지. 또 일을 슬슬 벌이긴 해야 할 때니까.’
그로서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시킬 일이 많았다. 제리코는 제 일을 줄이고자 사람들을 데려오는 거겠지만, 과연 그게 될까.
‘의약관도 제대로 만들어 버리고. 보자…… 치료사도 몇 들어왔다 했으니, 그들도 교육시켜서 치료관도 아예 만들어 버려?’
그의 인맥 전부를 끌어 와도 안 될 정도의 일들이 테스의 궁리 속에 가득했다.
일이 주는 만큼 더 넘쳐나게 될 거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당장 정보 길드를 통해 연락 넣겠습니다.”
“그러라고.”
“드디어! 이 지옥을 탈출할 수 있겠어!”
“푸흐흐…….”
결제를 받은 제리코. 그는 제가 얻은 업무 지옥 속에 사람들을 끌이고자 했다. 그 뒤에 더 많은 일들이 주어질지 모르고서.
‘많이만 데려오라고. 후후후…….’
어두운 흑막처럼 웃음을 짓는 테스였다.
그 웃음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걸까. 막 떠나려던 제리코가 한마디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영주님. 보아하니 여유가 되시면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손님?”
“예. 은밀히 찾아온 듯한데…… 행동거지로 봐선 귀족이 확실합니다.”
“으음…… 손님이라. 올 자가 없는데. 특히나 귀족은 말이지.”
귀족이라.
테스로서는 아는 귀족이 적었다. 그나마 아는 이반과 데프 전부 북부에 있었다.
‘애당초 그들이 은밀히 찾아올 이유도 없지.’
둘을 제외하면 그가 아는 귀족은 없었다.
혹여나 비욘이 귀족이라도 돼 찾아왔나 싶다. 그렇다면 더더욱 은밀히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그 비욘은 당당하게 올 녀석이니까.
“공식 방문이 아니니 되돌려 보내는 거도 가능은 합니다만은…….”
“도무지 예상이 안 가는데.”
예측이 되지 않는가. 강력한 자였다면, 테스의 진법을 통해 읽어 들였을 터인데 그도 아니다.
‘잘해야 문관 귀족이 조용히 들어왔단 건데. 예상외의 일인가?’
예상외의 일. 그의 육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일엔 무언가 있다.
나쁜 느낌은 아녔다. 그에게 도움이 될 게 분명한 느낌이었으니까.
테스로선 흥미가 돋았다.
그가 미소를 짙게 만들며 말했다.
“한번 자리를 마련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