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챕터 21.
삭풍이 불어오는 겨울.
테스는 저택으로 들어와 행정관장 제리코의 보고를 들었다.
“말씀해 주셨던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풍년입니다.”
“수확량은?”
“전년도 수확량을 세 배는 더 뛰어넘었습니다. 풍년에 농경지도 늘어난 덕이죠.”
“좋군.”
“예. 좋을 수밖에요. 덕분에 저희 행정관들도 꽤 즐겼습니다.”
지난 가을.
영지민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풍년제를 스스로 열었다. 전보다 많은 곡식과 가축들을 풀어 준비했다.
테스는 이들에 맞춰 미리 준비한 과실주를 더해 줬다. 영지의 새로운 특산물을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구입한 과실주들이었다.
일종의 실험용이랄까.
덕분에 애써 과실주를 준비했던 농업관장 바이트가 머리를 쥐어뜯었다만.
‘다들 재밌어했지. 이번은 전보다 더 풍족했어.’
일 년 사이 배는 더 넘게 늘어난 인구 모두. 행복에 취할 수 있었다.
바이트 하나의 불행. 모두의 행복. 꽤 남는 축제였지 않은가.
제리코도 그때를 생각했는지 인상이 푸근해졌다.
“행정관 사이에선, 공식적으로 매년 수확제를 개최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예. 단 한 명이 반대합니다만은…… 후후. 어쩌겠습니까.”
한 명의 반대. 누가 반대할지는 뻔히 보였다만, 테스나 제리코 모두 웃어넘겼다.
“나쁠 거 없지.”
“그렇죠. 좋은 축제가 될 겁니다. 후에 영지서 만든 과실주가 풀리면 홍보 효과도 뛰어날 거고요.”
“홍보 효과라. 그건 생각 못 했군. 잘 한번 추진해 봐.”
“옙! 기대하셔도 될 겁니다.”
지금의 때는 겨울. 내년에 있을 가을 축제를 이야기함에도 제리코는 흥분해 있었다.
준비하는 기쁨을 즐길 줄 아는 거다. 그만큼 그가 여유롭다는 반증이었다.
‘제 아들이 치료됐으니, 당연한 이야기인가.’
테스는 그런 제리코의 얼굴을 가만 바라보며, 뒤 이어지는 보고를 들었다.
“큼큼. 이어서 말씀드리자면 영지 병사들 수는 전보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총 300이 더 넘었습죠.”
“유지비는?”
“노예병이 다수긴 하지만, 그래도 꽤 들어갑니다. 달에 3천 골드가 넘고 있습니다. 조정할까요?”
“아니, 그쯤은 충분히 대응 가능하지 않나.”
“영주님 덕분이죠. 연단로가 완성되었으니까요. 그게 아니었더라면, 적자가 났을 겁니다.”
“덕분에 나도 바빠지긴 했지.”
“새 특산품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고생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그쯤이야 충분히 할 수 있네. 걱정 말게.”
영지의 규모 자체가 늘었다.
땅의 확장은 아직 멀게 느껴지지만, 해자 안은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영지민의 수는 늘어났고 그만큼 그들을 지키기 위한 영지병도 양성해야 했다.
영지병 대다수가 노예병으로 채워졌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민도 다수가 노예 출신. 자유민보다 노예가 더 많지만 특수한 일은 아녔다.
‘애당초 장원민들도 농노나 다름없었으니까.’
친화력을 지닌 게일이 나선 덕에, 새 영지민들은 곧 잘 적응을 해 냈다.
“도시 계획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알스가 고생을 했죠.”
“잘 하더군. 톡톡히 보상을 해 주도록 해. 아, 재무의 에일런이나, 바이트도 해 주도록 하고.”
“특히 바이트 녀석이 기뻐하겠군요.”
“새로 과실주를 구해야 할 텐데, 그쯤은 해줘야겠지.”
“바로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늘어나는 병사. 영지민. 영지의 살림.
그 앞에 있는 제리코. 그를 따라온 여러 행정가들이 없었더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물론 그 근본은 테스가 만들어내는 파워 홀스에 있었다.
새로이 만든 두 개의 연단로.
알스가 초빙해 온 연금술사가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 연금술사 꽤 재밌는 녀석이었지.’
중원의 연단로와는 비슷하면서 다른 연단로. 그것은 테스에게 꽤 많은 영감을 제공해줬다.
연금술사도 테스의 걸 보고 영감이 생겼는지, 영지에 자리 잡기를 원해 왔다. 테스는 적절한 거래를 통해 자리를 잡도록 허락해 줬었다.
그는 파워 홀스를 만드는 데도 꽤 도움이 됐다.
덕분에 한 달 500환 아래로 만들어지던 파워 홀스의 양은 800환에 가깝게 치솟았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생산량의 확보였다.
이도 전력을 다해 만든 건 아니었다.
연단로는 파워 홀스 외에 다른 용도로도 돌아갔다.
새로 얻은 병사들을 위해 만든 영약. 제자들을 위한 것들. 그리고 테스의 마법 실험…….
수많은 용도로 사용됐다.
전력을 다했더라면 그 생산량은 1500환을 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언제고 양을 늘리긴 해야겠지.’
생산을 하는 만큼 족족 팔리는 게 파워 홀스이니. 테스도 언제고 주저하고 있지만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연금술사 녀석을 새로 만들 약당에 꾀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마침 적당한 인재도 보이고 있었으니까.
영지의 모든 게 여물어 가고 있었다.
“……해서 4,000의 인구. 300의 병사. 지출을 빼고도 달 3,000골드는 넘게 남고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흠. 만족스러워.”
인구 1만 이상의 소도시쯤이야 얼마 가지 않아 완성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목표를 더 크게 잡아도 될 거 같은데.’
남작이 되고 만들었던 새로운 목표. 1만 5천 이상의 소도시.
이 속도라면 더 큰 소도시에서 나아가, 도시 수준을 몇 년 내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만큼 가파른 성장 속도였다.
‘내겐 좋은 속도지.’
그가 흡족해하며 결산을 마무리하려는 찰나였다.
그의 기감을 간질이는 존재들이 다수 느껴졌다. 영지 바깥, 수없이 많은 자들이 영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으음?”
“왜 그러십니까?”
“잠시…….”
테스는 손을 들며, 제리코의 말을 막았다.
‘어디 보자.’
그러곤 기감을 영지에 설치된 진법과 연동시켰다.
스스스스-
연동되며 강화된 그의 기감. 새로운 출연자들의 정보를 가져다 줬다. 흡사 바로 눈앞에서 보듯 그들이 보였다.
그들의 움직임. 속도. 상황…….
‘불안해하는군.’
불안이 깃들어 있는 감정까지.
그의 영지 내에서 그는 흡사 신처럼 사람들을 살펴낼 수 있었다.
그들의 정보를 살핀 테스. 그는 앞에서 불안한 눈초리를 보내는 제리코에게 말했다.
“지난 시간 준비한 걸 슬슬 수확할 수 있겠는데?”
“수확이라 하심은…… 아, 설마! 드디어 온 겁니까?”
“그래. 드디어 유민들이 찾아온 거 같군.”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지난 시간, 기다리던 자들이 찾아왔다.
* * *
영지 바깥에서, 유민이 찾아왔다.
제리코는 제 일이라도 되는 듯, 열을 올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왔구나!’
테스의 저택을 나서자마자 병사들을 모았다.
“몇 명이나 모았는가?”
“병사 서른입니다.”
“그쯤이면 충분하겠지.”
“드디어 시작되는 거군요. 계획이요.”
“그런 게지.”
십 부장에서 백부장이 된 이사르가 그 옆을 지키며 따랐다. 다가오는 유민들을 맞이하기 위한 병사들이었다.
그가 병사들을 이끌어, 테스가 말한 북문으로 향한다.
그러며 그는 기꺼운 유민 출현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이제야 대량 유민의 출현이라…….’
테스가 말한 대로면 이번에 출현한 유민의 수는 총 60명이었다. 남녀노소가 한데 뒤섞여 찾아든다 했었다.
그가 느끼기에 유민의 출연 자체가 느렸다.
‘영주님이 정보 길드를 통해 소문을 풀었는데도…… 제값을 못해 줬단 말이지.’
조건 없이 유민을 받아들인다는 소문. 그 소문이 풀린 거 치고는 유민 자체가 늦게 도착했다.
간간이 둘, 셋 정도의 가구 단위가 들어오기는 했다만. 그조차도 소수였다.
‘분명 다른 자들이 채갔을 거다.’
정보 길드의 문제는 아녔다. 소문은 확실히 냈을 테니까.
다만 이곳에 와야 할 유민들이 노리는 자가 많은 게 문제였다.
“도적들 처리는 슬슬 끝이 나고 있는 겐가?”
“처리라 함은…… 아, 낚시는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쓸어 버려야 하네. 그래야 지금처럼 유민이 들어오지 않겠는가.”
“여부가 있겠습니까.”
새로운 터전을 찾아 움직이는 유민.
그들을 노리는 도적은 흔한 이야기다. 이 외에 겨울을 노리고 노예 상인들이 출몰하기도 한다. 새 노예를 만들기 위해서.
때로 다른 장원도 문제다. 이 세계서 인구는 곧 생산력. 그러기에 새로운 유민은 장원으로 끌어들이는 건 예삿일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우선 받아들이고 보는 거다.
제리코로서는 그런 자들이 우스웠다.
‘책임도 못 질 주제에 말이지.’
작금 그가 모시는 영주 테스.
그와 다르게 다른 장원들의 사정은 그가 보기에 뻔했다.
높지도 않은 생산량. 제대로 지킬 수도 없는 자경대. 그런 주제 탐욕은 귀족보다 더 드높은 장원주가 많았다.
그들은 제 욕심껏 영지를 받아들였을 거다.
테스 영지의 소문을 듣고 오는 자들도 죄다 챙기고 보았겠지. 우선 잡고 나서 들여, 장원민으로 흡수하면 될 일이니까.
문제는 식량이다.
‘……상단주 그레놀의 말대로면, 올해는 흉작이었다. 전쟁에 다수가 나갔었으니까.’
올해도 어김없이 풍년인 테스의 영지와 다른 영지의 사정은 달랐다.
식량이 부족하다.
있는 장원민도 식량이 떨어지면 아사하는 게 현실이다. 새로 정착한 유민들에게 식량이 돌아 올 리가 없었다.
아마, 테스의 영지와 달리 이미 받아들인 유민도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심을 하고 있을 거였다.
그들에게는 위기일 게 분명하다.
반대로 제리코가 보기에 이건 기회였다.
영지를 확장할 기회!
식량이 부족한 장원. 장원민. 유민.
꽤 많은 자들이 곤란에 처해 있을 지금. 일 년간 똬리를 틀고 준비하던 테스의 영지가 움직일 적기였다.
‘겨울이 막 시작됐으니, 지금부터가 영주님에겐 중요하다. 가능만 하다면, 그 수라도 동원을 해야겠지.’
제리코. 그는 북문을 향하며 그가 수완을 부릴 수 있을 온갖 수를 생각했다.
왕국 행정관이었더라면 하지 않을 모험. 도박에 가까운 수들을 테스를 위하여 계속해 떠올리고, 다듬었다.
이전이라면 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쯤은 해 드려야지.’
그러나 아들의 목숨을 구함받은 지금에 이르러선 달랐다. 테스가 지닌 영광이 그의 영광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러기에 수완을 부리는 데 주저함 따위 있을 리 없었다.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부릴 요량이었다.
그는 제 마음을 다잡는 사이. 그의 몸은 북문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그래. 연락은 받았겠지?”
“옙!”
북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가 제리코를 맞이했다.
제리코는 바로 본론부터 물었고.
“유민들은 도착을 했고?”
“저기, 저곳에서부터 오고 있습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병사들은 바로 답하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정말 오는구나.’
저 멀리, 영지를 향해 오는 유민들이 보였다. 초췌한 몸을 하고 오는 그들이, 제리코에겐 움직이는 황금 덩어리로 보이고 있었다.
‘저들부터가 시작이야. 영주님 지켜보십쇼. 제가 어떻게 은혜를 갚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