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챕터 19.
실행을 결정한 그는 곧바로 수련실을 나섰다.
전과 다른 시야.
바깥으로 나서 보이는 풍경들의 깊이가 달랐다. 더 또렷하며 세밀히 보였다. 저 멀리까지도. 그러며 동시에 흐름이 느껴졌다. 기운이다.
‘전생에 했던 환골탈태 이상이야. 서클 덕분이겠지.’
하단전, 서클이 흐르는 중단전이 만들어낸 시야다.
이번 환골탈태로 상단전을 일부 여는 데 성공하였으니, 이후에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될 지도.
달라진 시야를 확인하며 걷기를 한참.
테스는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하였음을 깨달았다.
저택 안, 한창 검을 휘두르던 에나와 프로스가 놀라 그를 바라본다.
“엇? 스승님?”
“오늘 치료는 끝나지 않았어요?”
그는 둘에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전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에나. 갑작스런 테스의 방문에 골똘히 생각하는 프로스.
각자의 방식으로 맞이하는 둘이다.
그들의 맞이함을 받아들이며 테스는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 프로스의 집이며, 동시에 행정관장의 제리코의 것이었다. 둘의 성격답게 안은 단출했다.
치료를 위해 방문 경험이 있던 테스. 그는 익숙한 걸음걸이로 저택 안, 방을 향했다.
치료실이었다.
자연스레, 두 제자가 뒤를 따랐다.
테스의 방문 목적을 먼저 알아챈 건 에나였다.
“아까 치료가 끝나셨을 텐데…… 설마?”
“아. 드디어 준비가 된 거예요?”
뒤이어 프로스가 알아챘다.
“맞다. 계획보다 빠르게 됐구나. 당장, 치료를 할 수 있을 듯 해.”
테스가 확답하자. 둘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와아!”
“축하해, 프로스!”
어느새 친해진 것인가. 에나는 프로스를 향해 진심으로 축하했다.
‘보기 좋네.’
그런 둘의 모습을 테스는 노인네처럼 흐뭇하게 바라봤다.
진짜 축하는 모든 치료가 이뤄지고 난 이후에 해도 충분했다.
테스는 에나에게 보조를 해 달라 말하며 프로스를 아래로 눕혔다.
“이 치료. 꽤 힘든 과정이 될 거야.”
“그 정도는 버텨낼 수 있어요. 정말로 치료가 되는 거죠?”
“약속하지. 이번 치료가 끝났을 때, 넌 완전히 새로운 몸을 갖고 있을 거야.”
“……그럼 부탁드릴게요.”
치료할 시간이다.
구음절맥의 치료.
그건 약 따위로 할 치료가 아니었다.
그 어떤 병보다 기운을 세밀히 조종해야 할 병이 구음절맥. 때문에 잘못된 약을 사용하다가는 더 위험하다. 흐름을 이겨내지 못하고 혈류가 터져나간다.
해서, 테스는 구음절맥의 치료에 자신의 기운을 이용하려 했다.
자신의 기운만큼이나 세밀하게 조종할 수 있는 건 없었으니까.
‘꽤 오랜 준비가 필요할 듯 보였는데…….’
치료에 소모되는 내력이 많기에 치료는 일 년 뒤로 잡았었다.
이젠 아니었다.
환골탈태를 통해 내력과 서클 모두 강력해졌으니까. 일 년이란 계획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계산은 확실해.’
테스는 앞으로 있을 치료를 가늠하며, 프로스가 누운 침상에 작업을 시작했다.
그가 신호를 일으키자.
우우웅-!
미리 설치해 놓은 마법진과 진법이 구동됐다.
마법진이 저택을 감싸 안았다.
주변에 유동되고 있던 마나의 흐름이 일순간 끊어졌다. 이 차로 진법이 작동되며, 치료실 내부의 잔잔한 흐름마저 잡아먹었다.
인위적 마나 진공 상태가 만들어졌다.
‘일 차 성공.’
이는 치료를 위한 밑바탕. 구음절맥을 치료하는 도중, 만들어지는 흐름으로 치료가 실패하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이 밑바탕을 까는 데만 족히 이천 골드가 들어갔다.
그럼에도 테스는 아까움을 몰랐다.
“흐으…… 느낌이 서늘해요.”
“역시, 마나를 느끼는가 보구나?”
“이게 마나가 가진 느낌이었어요?”
“그래. 양의 기운인 강한 너에겐 서늘함이 특히 강하게 느껴질 거다.”
“좋은 건 아니네요.”
“그럴지도.”
마나를 느끼는 이 아이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으니까.
테스는 답을 하며 동시에 프로스가 고통을 덜 느끼도록 뜸과 향을 이용해 그를 안정화시켰다.
그럼에도 부족했다.
프로스는 제 몸을 덜덜 떨었다. 느껴지는 서늘함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거다.
“참아라. 네 몸의 마나가 흔들려서 그러는 거야. 급격한 환경 변화 때문이지.”
“……으읏. 으…… 넵!”
갈수록 몸의 떨림이 강해졌다.
안정화를 시켰는데도,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음양의 조화가 깨진 그의 몸이다. 그의 마나 진공 상태는 고통을 안겨다 줄 수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스, 스승님…….”
“잠시만 눈을 감도록 하자.”
테스는 결국 혼혈을 짚었다. 제자의 눈의 스르륵 감긴다.
‘오래가지는 않을 거다.’
기운 자체가 불균형인 구음절맥이다. 혼혈을 짚었다 해도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한다. 허락된 시간이 짧다는 의미.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테스는 에나가 건네어 준 침을 들었다.
‘바로 시작해야 해.’
푸우욱.
제자에게 거대한 장침을 안으로 밀어 넣으며. 본격적인 치료의 시작을 알렸다.
* * *
치료의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애당초 구음절맥의 치료다. 부드러이 이뤄질 치료였다면, 이 세계에서 저주 취급을 받지 못했을 거였다.
‘후우…….’
테스는 숨 한 번 내쉬기도 주의했다.
치료에 전념했다.
프로스의 기운이 튀어 나가지 않도록 막고. 망가져 있는 음양의 조화를 채웠다. 때로 막힌 혈류는 마법을 이용해 뚫어내고 풀었다.
의술과 마법.
두 개의 조화. 그 끝에서 세밀히 치료를 이어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력이 줄어 들어갔다. 휘돌던 서클의 마력도 잠잠해져 갔다.
소모된 기운들이 컸다.
그럼에도 다시 채울 순 없었다.
테스가 다시 기운을 채우려고 하다가는, 겨우 만들어낸 마나 진공 상태가 깨져나갈 테니까. 진공 상태가 깨지면 프로스의 마나도 뒤틀리겠지.
그러기에 기회는 한 번뿐.
‘조금만…… 더. 조금만. 곧 된다.’
분명 끝은 다가오고 있었다.
츠츠츠-
프로스의 기운이 맥동하는 끝에, 흐름이 만들어져갔다. 약하디 약한 흐름이었으나 전에 없던 흐름이기도 했다.
깨졌던 음양의 조화가 점차 채워지며 나오는 현상.
이때 긴장해야 했다.
‘……마지막 고비!’
음양의 조화가 완전히 채워진 게 아니다.
잠시나마 호조를 보이는 이 상황. 그러나 언제든 되돌아가는 게 구음절맥이 가진 무서움이다.
지금만 해도, 혈류가 휘돌 때마다 절로 양의 기운이 샘솟아나고 있었다.
음의 기운은 치솟을 줄을 몰랐다.
양기가 너무 강했다.
그 흐름의 마지막 조종이 남아 있었고.
어느덧 혼혈을 짚었던 프로스는 눈을 뜨고 있었다. 온 몸을 덜덜 떨면서도 간절한 눈으로 테스를 바라보는 프로스.
그는 자신의 떨림이 테스의 치료를 방해할세라, 입술을 질끈 깨물고 버티고 서 있었다.
둘 모두 간절했다.
그 간절함을 외면할 순 없었다. 해내야 했다.
‘어떻게든…… 해낸다.’
마지막 단계.
만들어진 혈류의 흐름을 정상으로 돌릴 차례다.
침을 꿀꺽 삼켜내며 테스는 마음을 다잡았고. 동시에 미리 준비한 백이 넘는 침을 다시, 단숨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 * *
“됐다!”
침술의 기예. 극한에 치달은 그의 침술이 프로스의 온몸을 수놓고. 지워가기를 반복했다.
옆에서 본 에나가 읽어내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손놀림.
신기(神技)며 기예였다.
드디어!
없던 흐름이 만들어졌다.
깨졌던 음양의 조화가 채워졌고. 뿜어져 나오는 양의 기운에 밀릴 세라, 음의 기운들이 생성됐다.
다른 자들보다 몇 배!
가만 존재함으로써 주변에 기운들이 그를 향했고.
“으으…….”
프로스가 숨을 쉬는 거만으로 주변의 기운들이 그에게 흘러들어갔다.
만들어진 기의 흐름.
파슥-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나 진공 상태가 자연적으로 깨졌다.
테스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이제 마음껏 흡수해라. 그간 못했던 거 이상으로 채워지겠지.’
이대로 두면 프로스는 주변 대기의 자연지기를 잔뜩 흡수할 터였다. 음양의 기운을 맞춤은 물론, 거대한 기운이 그에게 쌓일 거다.
자연적으로 수십 년의 기운이 쌓일 터.
구음절맥으로 인해 잃어버린 시간을 일부 보상해 주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기운이었다.
이제 프로스는 무얼 익혀도 그 끝을 금세 볼 것이고. 시작점부터 다른 자들과 다른 곳에 있게 되었으니까.
테스는 그걸 더 도울 참이었다.
스스스-
그는 주변의 기운을 더 끌어들였다.
“모여드는 기운을 버리지 말고 받아들여.”
“모두 다요?”
“그래. 다 네가 본래부터 가져야 했을 것들이니까.”
인위적으로 주변의 기운을 끌어들였다. 프로스가 더 많은 기운을 머금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어마어마한 기운들이 프로스에게 흘러들었다.
그 모든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던 테스.
그러다 그는 급작스레 일어나는 이변을 뒤늦게 알게 됐다.
‘잘하면 일 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지닐 수…… 응? 이게 뭔…….’
제자의 상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구음절맥을 치료하였으니. 제 몸이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건 당연한 수순.
테스는 그 수순을 돕고자 기운을 끌어당겨 주었다. 그런 끌어당김이 예상치 못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잘해야 반 갑자 좀 넘게 기운이 채워질 거라 여겼는데…….’
무공을 익히기에 차고도 남는 내력을 주는 거 정도. 그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 될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허…… 정령을 불러들였어?”
주변의 뜨거운 기운들이 휘몰아치더니. 이 세계 가까이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저절로 차원의 문 하나가 열린 거다.
짙은 열기와 함께, 차원문을 통해 한 존재가 소환됐다.
화르르륵-
불의 정령이었다.
마나를 느낄 때부터 수상하다곤 생각했다만, 이런 식으로 정령을 불러들일 줄이야.
불의 정령은 이 안에서 가장 많은 기운을 지닌 테스를 쏘아보았다.
-너, 괴기한 자가 날 불렀는가.
“그럴 리가. 옆을 보라고.”
-이 기운. 저 아이였던 건가?
물의 정령보다도 차가운 말투로 테스를 쏘아붙이던 불의 정령.
그는 고개를 돌려 프로스를 바라볼 때, 전에 없던 자애로움이 서려 있었다.
‘태세 전환하고는.’
급격한 테세 전환보다도,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놀라웠다.
중원에서도 구음절맥을 치료한 경험이 세 번이다. 그때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
치료를 했다 해도 남자는 열양진기가 강해지거나 여인 쪽은 한음진기가 강해졌을 뿐이었다. 딱 그 정도였다.
이번은 달랐다.
이 세계엔 정령이 존재하였고.
한 속성의 강력한 친화력은 곧 정령을 불러들이는 데 최상의 재능이 됐다.
‘세계의 정령 존재 유무 차이가 이건가.’
예상치 못하게 만들어진 결론에 테스가 멍하니 둘을 바라보는 사이.
“…….”
-…….
둘은 알 수 없는 교감이라도 나눈 듯했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계약의 표식이 완성되며, 프로스에게 짙은 열양진기가 쏘아져 나갔다.
정령으로부터 쏘아진 열양진기가 프로스에 안착됐다.
애써 만든 음양의 균형. 그것이 깨지진 않았다.
정령이 불어 넣은 뜨거운 기운은 프로스의 균형을 깨고자 주입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제자를 더 도왔다.
불의 정령이 주입한 뜨거운 양의진기만큼, 주변의 자연진기가 들끓었다.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건지 그 기운들이 프로스에게로 빠르게 주입됐다.
순식간에 프로스의 내력이 더 치고 올라갔다.
영약을 먹여가며 키워 온 에나의 내력을 다 넘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 프로스에게 채워졌다.
그 모습을 테스는 멍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괴물을 만들어 버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