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챕터 16.
아이가 가진 저주. 저주가 아니었다. 병이다.
‘이걸, 여기서 만날 줄이야.’
창백한 얼굴. 희게 변한 머리카락. 몸에서 끓어오르는 양의 진기.
구음절맥이다.
테스로선 전생에 세 번의 치료 경험이 있던 게 구음절맥이었다.
흔히 양기와 음기의 균형이 깨어져서 만들어진 병.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의 음양 조화가 부족하기에 나타난 불균형적인 천형이었다.
처음 병에 걸린 자가 여인이었기에 구음절맥이라 붙여졌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남성이 걸려도 같은 이름을 짓고는 했다.
그걸 저주라고 칭할 줄이야.
“저, 정말로 낫게 해 주실 수 있는 겁니까.”
“안 되면 말도 안 했겠지.”
“어, 어찌…… 신관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던 저주입니다.”
누가 저주라 칭하는가 했더니 신관이다.
‘하여간에 신관 나부랭이들이란…… 쯧.’
전생에 신의로 살아간 그다.
기억을 전승하고 몇 번의 치료 경험을 하며 의료 행위에 대한 진득한 재미가 들렸다.
그러기에 그는 자연스레 신관들에 대해서 알아봤다.
신관이 어찌 치료하는지를.
그리고 그 결과. 신관을 비웃게 됐다.
‘우습지도 않아.’
이 세계 신관들의 방식이 정교하기는커녕, 우악스러운 방식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힘을 고르게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할 줄도 몰랐다.
신을 믿음으로써 신의 신성력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신성력을 환자에게 들이부을 뿐이다.
신성력이 재생과 정화의 속성을 지녔기에 외상에는 탁월하다만 그뿐.
‘신법이랍시고 있는 거도 발전이 영 더뎠지.’
나름의 치료 방식이랍시고 신법이 있기는 했지만 수준도 낮았다.
퇴마 의식에 관해선 강력했다만, 치료 방식은 발전은커녕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우습게 느낄 수밖에.
태생부터 타고 나는 게 구음절맥이니 그걸 저주라고 하면 저주겠다만.
확실히 병이라는 걸 아는 테스기에 더더욱 상황이 우습게 느껴진 걸지도. 본의 아니게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 웃음의 의미.
명석한 제리코는 의미를 금방 느꼈다.
“저주가 아니라면…… 그럼 병이라는 겁니까?”
“그래. 병이야.”
테스의 확언. 제리코의 입이 크게 벌려진다.
* * *
제리코가 태세를 전환했다.
그가 계산적인 자세를 버렸고.
주저 없이 무릎을 꿇고 구걸하듯 말했다.
“치료만 가능하다면! 그리 된다면 저는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아예, 무급으로 일을 하라 해도 하겠습니다!”
“……으음.”
그 모습을 앞에서 본 테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머저리 같은 신관들의 판단에 웃음 짓던 그. 이내 웃음을 지웠다.
다른 자라면 쉽게 무릎 꿇을 제리코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만.
아니었다. 저건, 피 끓는 부정이었으니까.
전생에도 몇 번이나 봐왔던 부정이지만 그걸 비웃을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테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일어나. 그리 꿇지 않아도 조건으로 해 준다 했잖나.”
“……저, 정말로 해 주시는 겁니까? 제가 달리 드릴 수 있는 게 없는데도요.”
“없긴 왜 없나. 자네가 일을 해 줄 것이고. 그리고…….”
테스는 제리코의 몸을 일으키면서 슬쩍 그의 아들을 바라봤다.
‘예로부터 구음절맥에 걸린 녀석들은 죄다 천재였지.’
아픈 와중에도 바른 정신을 유지하는 아들이다. 착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이야기. 그런 아이가 은혜를 입혀 놓으면 어찌 될까.
“바라는 게 저로군요.”
“맞아. 너를 원해.”
천재가 자연스레 그의 품으로 들어오게 된다.
테스는 그걸 원했다.
“치료만 성공하신다면…… 아버지도 저리 힘들게 사실 필요가 없겠죠?”
“명백하지.”
다행이라 해야 할까.
프로스는 제 상황을 잘 알았다. 자신이 아니라면 왕국 행정가로 편히 살았을 자기 아버지의 운명까지도.
“그렇다면 저는…….”
“프로스! 이, 이건 네 책임이 아니다. 너를 그리 낳은 내 책임이야. 그러니, 너는 그리하지 않아도…… 내 어찌 방법을…….”
제 아들의 선택.
테스에게 운명을 의탁한다는 건, 잘못하면 제 아들의 삶이 뒤바뀔 만한 큰 일.
그걸 알기에 제리코가 와서 막아보려 한다만.
‘그럴수록 프로스는 더 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겠지. 크흐, 이거 좋은 일을 해 주는데도 왠지 악역이 된 느낌인데.’
그 피 끓는 부정의 무게를 아는 프로스가 할 선택은 결국 하나였다.
“제가 치료됨으로써 아버지가 사슬을 끊을 수 있다면 그럼 저는 만족합니다. 치료해 주실 수 있을까요?”
“좋아. 시간은 꽤 걸리겠지만 제대로 치료해 주지.”
“……감사합니다.”
멍하니 아들을 바라보는 제리코.
그런 아비를 두고 프로스는 힘겹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테스는 그런 그 둘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내가 널 데려가겠다는 건 노예로 쓰겠다는 게 아니라 제자로 들이겠다는 거다.”
“테스 님! 어떻게, 저를 빼고요?!”
“……둘째로.”
두 부자의 입이 더 벌어졌다.
* * *
테스는 프로스를 들어 침상에 눕혔다.
“우선 바로 치료될 몸부터 만들어 보자.”
“몸부터요?”
“네 병은 그런 식으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거든.”
음양의 조화가 깨진 병이 구음절맥.
이러한 절맥을 치료하기 위해선 몸의 균형을 갖출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이 필요했다.
문제는 체질을 개선하자고 기운을 건드리면, 몸이 망가진다는 데 있었다.
약해진 몸이 치료를 버티질 못한다.
그러니 결국 몸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몸을 만들게 움직이게 만들면 또 몸 안 기운이 폭주한다.
‘하여간 괴랄한 병이야.’
의선으로 경험을 지닌 테스가 봐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괴랄한 병이다.
이 설명을 프로스는 잘도 알아들었다.
“대체 어떻게 몸도 안 움직이고 몸부터 만들어줄 수 있는 거죠? 기운이 날뛰지 않게 하는 건 어떻게 하고요.”
“그걸 바로 이게 해결해 줄 거다.”
침상에 눕힌 테스는 에나를 시켜 봇짐에서 침통을 받았다.
뚜껑을 열어 침을 하나 꺼내 들며 그가 말했다.
“아아. 이것은…….”
“침이로군요! 히야. 그런 침으로 대체 어떻게 하는 거죠?”
선수를 치고 끊을 줄이야.
‘하여간 절맥 걸린 애들이 상황 파악도 빠르다니까.’
다른 자라면, 기다란 침 자체를 치료 기구라 인식을 잘 못했을 건데.
프로스는 침을 의료를 위한 걸로 인식하고. 더 나아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궁금증까지 가졌다.
침상에만 있느라 기본적인 교육도 배우지 못했을 텐데도. 파악이 빠른 아이다.
괜히 심통이 난 테스는 짧게 답해줬다.
“잘하면 돼.”
“그 잘이 어떻게 되는데요? 제자가 되면, 그거부터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아무래도 말 많은 제자를 얻어 버린 건가.
벌써부터 열의를 불태우는 프로스였다.
‘얘는 의술을 배우는 게 딱 맞겠어.’
그에 맞는 교육법을 생각하며 테스는 조잘대는 프로스의 수혈을 짚었다.
“으읏…… 이건…… 또 무슨…….”
“잠시 잠들었다 깨면,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거다.”
스르르 눈을 감는 프로스. 그의 숨결이 고르게 변하자마자 테스는 선천진기를 일으켰고.
“……후우.”
조심스레 침을 꽂으며, 치료의 시작을 알렸다.
* * *
구음절맥 치료가 결코 쉬울 리 없다.
하루에 한 번. 네 시간.
선천진기와 내력을 끌어 모으고. 온 심력(心力)을 동원해서 주의 깊게 치료를 해내야 했다.
단순히 같은 방식의 치료도 불가능했다.
‘잘 조절해야 해. 잘못하면 혈맥이 다 터져나간다.’
프로스의 몸에 맞게 침을 꽂아야 했고.
기운이 날뛸라치면 그에 맞는 대응을 바로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끝이다. 그 결과는 두 번째 제자의 죽음이니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아무리 테스라도 여러 번 겪기를 원하지 않는 치료였다.
그래도 갈수록 차도가 좋아졌다.
“자, 오늘은 끝.”
“고생하셨습니다!”
“어떠냐?”
지난 일주일간의 치료만으로도 프로스는 나아졌다.
힘겹게 일어나던 침상을 가볍게 일어나고. 잠깐이지만 집 바깥을 나설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고작해야 오 분이면 다시 돌아와야 했다만, 그걸로도 프로스로선 전에 없던 경험이었다.
“몸이 날 거 같은데요?”
“짜식. 아직 이제 시작이다. 너무 오버하지는 마라. 그러다가 다시 처음부터 치료해야 할지 모르니까.”
“기억하고 있어요. 언제 제 몸에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걸요.”
“오냐. 너라면 당연히 기억할 수 있겠지.”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스는 밝아져 갔다.
“천재니까요?”
“짜식. 제 입으로 그런 말 하면 안 민망하냐?”
“헤헤헤…….”
고작해야 일주일일 뿐임에도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
‘바르고 밝은 본성이로구만.’
제 얼굴에 금칠을 스스로 하는데도 귀여웠다.
얼굴도 타고난 바가 있으니. 이대로 자라면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테스는 그런 프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됐다. 어쨌건 너무 신나 하지 말고 쉬어라. 에나한테도 계속 질문하면서 괴롭히지 말고.”
“넵! 또 가시는 거예요?”
“당연하지. 바빠졌으니까.”
그러곤 그를 다시 침상에 눕혀 줬다.
두 번째 들인 제자가 귀엽긴 하다만, 아직 도시 지넬에서 그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 * *
하루의 치료를 끝내고 테스가 해야 할 일.
도시 지넬의 인재 찾기였다.
정보 길드에서 알려 준 인재를 찾는 일은 아니었다. 제리코를 포함하여 나머지 둘 모두 이미 확보한 지 오래였다.
고로 정보 길드에서 가르쳐 준 자는 전부 확보한 셈.
현재 테스가 새로 구하고 있는 자들은 정보 길드가 아닌 제리코를 통해서였다.
‘가세가 기울어가면서도, 인맥은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라. 재주도 좋지.’
그는 오래전에 왕국 행정가를 그만뒀음에도. 깊은 인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행정관을 하며 얻은 인맥과 아카데미에서 가졌던 인맥들. 그 외에 전대부터 유지했던 인맥들까지…….
그의 인맥 폭은 넓으며 동시에 풍성하기까지 했다.
행정가. 상단 출신. 건축가…….
이 세계에 지식을 지닌 자들의 연줄을 꽉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보물이라 할 수 있을 그러한 인맥을 테스에게 아낌없이 펼쳐 주었다.
‘월척을 건네주는데 챙기지 않으면 멍청한 거지.’
테스는 남는 시간 모두를 이러한 인재들을 잡는 데 사용했다.
그 결과 테스는 스무 명이 넘는 인재들을 품으로 들일 수 있었다.
처음 이곳에 올 때 가진 목표보다 넘치는 성과였다.
* * *
그리고 다시 이 주쯤 더 지났을 때.
“이제 움직일 수는 있겠구나.”
“그럼 다 끝난 건가요?”
“아니. 본격적인 건 아직 남아 있다. 그건 적어도 내 영지에 가서 치료할 수 있을 수준이야. 지금은 안 된단 소리지.”
“아아. 떠날 시간이로군요?”
“내게는 돌아갈 시간이기도 하지.”
한결 안색이 나아진 프로스를 데리고.
테스는 지넬을 떠나 다시 자신의 영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