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챕터 15.
바로 소문.
테스는 자신 영지 주변에 큰 소문을 내길 원했다.
내용은 그의 영지에서 유랑민들을 받아들인다는 거였다.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받아들인다는 그 소문.
한편으론 새로 들어오는 유랑민들을 통제할 힘이 있단 반증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귀족이 됐는데 소문을 이용할 줄 안다니…… 확실히 의외야.’
그가 대중을 조종할 줄 안다는 의미.
귀족 중에서 소문을 이용하는 자는 많았다. 다만, 그 내용이 테스가 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그들이 주로 소문을 이용하는 경우는 제 자식들 때문.
-추문을 없애 주시게.
-이전에 있던 과거를 지울 수 있도록 했음 하는데…….
-이번에 세운 공이 꽤 있네. 그걸 거창하게 좀 소문을 내 주면…….
자식의 역량. 과거. 흑역사…….
그러한 것을 지우거나 부풀리는 데 주로 사용했다.
자식을 사랑해서? 그럴 리가.
‘다 팔아 먹으려고 하는 거지.’
귀족에게 자식이란 건 귀한 거래 수단이었다. 아들이고 딸이고를 가리지 않았다.
그저 혼맥!
서로의 가문을 연결하기에 적정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때문에 귀족들은 수없이 많은 자식들을 낳는 편이었고. 후대에 가서, 남은 자식들이 서로 다투는 데 제 힘을 할애했다.
후계자 자리 때문.
그때마다 그녀가 속한 정보 길드는 후계 싸움에 끼어들었다. 그들 사이에서 정보를 팔면서 쏠쏠한 수익을 올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은 종류가 전혀 달랐다.
‘영지민들을 끌어들이자고, 그 큰돈을 쓰는 자는 없단 말이지…….’
테스 같은 경우는 드물다.
아니 없다 봐도 무방하다.
한참 골몰히 생각하던 그녀는, 자신을 따라온 정보원 하나를 불렀다.
“지나. 일 좀 해 줘야겠어.”
“또 뭔데요? 안 그래도 이곳 보안 뚫는다고 골치가 아픈데, 무슨 일을요?”
정보원 지나.
얼마 전까지 레빈의 경쟁자였으며. 현재에 이르러선 충실한 부하가 된 그녀.
한창 마력을 조율하고 있었다.
테스가 제 저택에 설치한 보안 장치를 뚫기 위함이었다.
아쉽게도 시도는 계속해서 실패였다.
덕분에 잔뜩 신경질이 난 지나지만 레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엔 쉬운 거야.”
“오오! 그런 거라면야, 얼마든지!”
지나의 표정이 환해진다.
‘하여간 단순하기는.’
쉬운 일을 던져주면, 저리 표정이 변할 걸 알고 있기에 신경 쓰지 않은 거였다.
“상부에 보고를 가 줘야겠어.”
“으으. 거길 또요?”
“너 아니면 조용히 통과가 안 될 거 같으니까.”
“내용은 뭔데요?”
“테스. 그에 대한 판단을 상향해야 할 거 같아.”
“네?”
상향이라니.
레빈이 그를 잘못 판단했다는 의미지 않은가.
지나의 표정이 놀람으로 변한다.
“……벌써요? 그리고 왜요?”
“내 예상보다 더 대단한 자니까.”
자신이 틀렸음을 말함에도 레빈은 흔들림이 없었다.
겉으론 평온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 그녀와 경쟁하던 지나다. 저 특유의 무표정일 때가, 그녀가 분노하는 때임을 알았다. 자신이 틀렸음을 알기에 잔뜩 열이 오른 거다.
‘지금, 건드리면 안 돼.’
지나는 슬그머니 마력을 잠재웠다. 그리고.
“다녀올게요.”
“따로 나다니지 말고. 빠르게.”
“네, 넵!”
그녀의 명을 따라 바로 본부를 향해 움직였다.
지나가 바로 떠나가고 얼마 뒤.
레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우…… 갇힌 자에, 그 후계가 움직이고 있고. 거기다 상부까지 생각하면…… 대체 여긴 어떻게 되어 먹은 곳인 거야?”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머리는 복잡해져 가고 있었다.
이 복잡함을 지우기 위해서 그녀가 할 건 하나.
“나도 움직여 볼까.”
제 할 일을 하는 거뿐이다.
제 몸의 마력을 돋우며, 피로를 씻어낸 그녀. 다시 테스의 영지 내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움직임을 가만 바라보는 자가 있었으니.
그자. 바로 테스였다.
“후음…… 재밌네. 저런 식으로 움직인다 이거지.”
“또 훔쳐보는 거예요?”
“어허. 훔쳐보다니. 정보 길드가 날 관찰하는 걸 알았으니, 염탐하는 거다. 이른바 정보 확보지.”
“핏. 그게 그거인 거 같은데요.”
“크흠…….”
영지 전역에 결계는 물론이고. 진법을 잔뜩 설치한 테스였다.
수기진이나 토행진과 같은 건 기본. 수련을 위한 진법 외에도 또 다른 진법들을 설치해 놓았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천리지청진.
천리를 듣고 볼 수 있다는 천리지청술을 진법으로 만들어 낸 게 천리지청진의 묘리였다.
이러한 진법에 테스는 한 가지 수단을 더 더했다.
바로 통신 마법!
덕분에 한 자리를 지켜야만 사용할 수 있을 진법을 이 멀리서도 사용이 가능해졌다.
그럼으로모든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거리가 멀어지는 만큼, 마력을 잔뜩 사용해야 하는 페널티가 있기는 했다만.
‘이 정도야 거뜬하지.’
삼 클래스 마력에 일 갑자가 넘는 내력은 거뜬히 버텨냈다.
설사 기운이 떨어진다 해도 상관도 없었다.
흡수하는 손길로 빨아들일 게 지천에 널려 있었으니까.
그는 그러한 천리지청진을 이용하여 정보 길드원들을 살피는 데 썼다.
평소라면 영지민들의 민심을 살피기 위한 용도를 달리 사용한 게다.
덕분에 레빈은 모르지만 그녀의 움직이는 방식들 전부가 테스에게 속속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그러한 방식을 보았다.
정보 길드가 움직이는 방식. 정보를 다루는 법. 연락책. 정보 수집법 등…….
이 세계에서 그들이 쌓은 방식들이 그 눈에 낱낱이 쌓였다.
‘배울 게 많아. 중원 것과 섞으면 더 뛰어나지겠어.’
정보 길드의 노하우들을 빠짐없이 기억에 담고 배워 갔다.
에나는 훔쳐본다 하지만, 그로선 귀한 배움의 시간인 셈이다.
“커흠. 집중해야 하니, 수련이나 하려무나.”
“아쉽지만 수련은 못 할 거 같은데요?”
하나도 안 아쉬워 보인 에나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진실을 의미했다.
“아아…… 이런 도착해 버렸구만.”
목적지로 했던 곳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도시 지넬의 거주지.
하층민이 사는 판자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낡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그중 가장 낡은 곳에 존재하는 게 그의 목적지였다.
테스는 주택을 보고 의외라 생각했다.
‘왕국 행정관까지 한 자가 이런 곳에 산다라? 제대로 기울어가는군.’
레빈은 이곳에 있는 자가 쓸 만한 자라 말했다.
듣기로 요 몇 년간 상당히 가세가 기울어 간다던가.
그의 아들에게 걸린 저주가 원인이었다.
아들이 이유 모를 저주가 걸린 뒤.
그는 저주를 해결하고자 무리를 했다. 자신의 연줄을 사용하고 가문이 모은 가산을 소모했다. 명백한 무리였다.
그 결과 그가 근무하고 있던 왕국 행정관에 문제가 일어났고.
그 대가로 그는 대를 이어 가져가던 가업인 행정관 자리를 빼앗겼다.
행정관을 준귀족으로 친다고는 하지만 귀족은 아닌 터.
‘죽지 않았다는 거 자체가 그 능력을 증명하지.’
명백히 평민임에도 그는 행정관에 사고를 치고도 살아남았다.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자체만으로 그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거나 마찬가지다.
타고난 수완가다.
테스가 직접 찾아 올 만큼 뛰어난 자란 의미.
‘적어도 이 자는 꼭 데려가야 할 텐데. 방법이 있으려나.’
저주에만 묶였지 않았다면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을 자다.
결국 문제는 저주다.
레빈은 그 저주란 원인을 해결해 주면, 그가 따를 거라 말을 했다.
아무리 테스라도 저주를 푸는 덴 재주가 없다 말했음에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자신이 수집한 테스의 능력이라면 가장 가능성이 있다던가.
‘내 의술까지도 파악한 걸지도. 그도 아니면 도박수를 거는 거거나. 이걸 참 모르겠군.’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정보비를 받지 않겠단 말까지 했을 정도.
하기야 어느 쪽이든 정보 길드는 이득일 거였다.
저주를 풀어낸다면 그의 능력을 파악하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 능력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는 의미니까.
일 처리 방식이 치밀하다고 생각하며 테스는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몇 번 문을 두드리자. 초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뉘십니까?”
* * *
제리코.
그는 처음 테스를 빚쟁이로 착각했다. 정확히, 빚쟁이가 보낸 자라 여겼다.
처음 문을 열지 않으려 했던 그.
테스는 제리코와 몇 번의 실랑이를 한 끝에 테스는 안으로 몸을 들일 수 있었다.
대신 대가는 지불해야 했다.
“대가로 일 골드 분명 주시는 겁니다?”
“물론이야.”
“들어오시죠.”
그 대가가 일 골드.
그의 시간을 할애받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가 빚쟁이가 아닌 걸 알자마자 제시한 액수다.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있는 자라면 그 정도 돈은 지불이 가능할 것이고. 그게 안 된다면 딱히 말할 필요가 없다던가.
얼굴이 초췌한 와중에서도 그런 제안을 할 줄이야.
‘제법 셈이 빨라. 마음에 들어.’
다른 자라면 기분 나빠할 테다만. 테스로서는 오히려 만족감을 느꼈다.
제대로 된 행정관을 원하는 그로선, 딱 그가 원하는 자를 찾은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니까.
‘일 차는 합격.’
돈을 밝히는 거와 다르게 안은 더 초라했다.
“제대로 식사는 하고 사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충 사정을 알고 오신 거지 않습니까?”
“사정이라. 알지.”
“역시 그럴 거 같았습니다.”
돈이 돌기 시작하니 굳은 머리가 도는 듯 상황 파악도 빨랐다.
어쩌면, 처음 빚쟁이라 착각을 한 것도 착각한 ‘척’을 한 걸지도 몰랐다. 테스에게 돈을 뜯어낼 수 있을지 없을지를 파악하려고.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데.’
테스의 만족스런 표정을 읽었는가.
그는 곧바로, 제 할 말을 시작했다.
“그럼 길게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저는 저주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알아. 그를 위해 온갖 방법을 찾다보니, 이 모양 이 꼴인 거고.”
“직설적이시군요.”
“타고난 성격이 그래.”
“뭐, 더 좋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돈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저주에 손이라도 대 볼 수 있을 돈이요.”
목적 하나는 확실해서 좋았다. 문제는 그 액수.
‘과연 얼마를 부를까.’
잠시 시간을 할애하는 데 1골드를 부르는 자다.
과연 자신을 고용하는 데는 얼마를 달라고 할까.
행정관의 봉급이라고 해도 표준 10골드가 되지 않는다. 유능한 자라 해도 20골드가 되지 않는다.
때문에 중간에 착복을 하는 자가 넘쳐나는 게 이 세계 방식이다.
제 몫을 챙기려는 건 인간 본성이니까.
테스는 그걸 알기에 30골드까진 쳐 줄 생각이었다. 착복을 않는 대가다.
그런데, 제리코는 그 이상을 불렀다.
“기본급 50골드를 원합니다.”
“호오? 거 되도 않는 금액인데.”
“들어서 제 유능함은 아실 겁니다. 그러니 기본 30골드. 급히 찾아 온 것을 보니 10골드는 더 받아도 되겠지요.”
“그럼 나머지 10골드는?”
“듣기로 돈이 많으신 듯하니, 10골드 더 얹은 겁니다. 매달 적선하는 셈 치시죠.”
“뻔뻔하군.”
“그런 말을 자주 듣긴 합니다. 덕분에 여기까지 어찌 버틴 거고요.”
대놓고 한 달 30골드를 달라니. 보통 가정의 생활비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럼에도 재밌는 자다.
‘내가 누군지를 이미 파악한 거 같은데.’
행정관을 그만둔 지 오래인데도 테스를 안다. 그 의미는 어떤 식으로든 정보를 들을 끈을 마련하고 있단 소리.
자식을 치료하자고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정보통이 있다라.
볼수록 꽤 대단하지 않은가.
“흐음…….”
“그쯤은 돼야 저를 팔지 않겠습니까?”
좋다. 한번 50골드라도 걸어볼까 생각하며, 대답을 할 찰나였다.
테스는 안쪽에서 움직임을 느꼈다.
‘소문의 아들인가?’
방 안에 있던 자가 이리로 나오고 있었다.
처음 테스가 안에 들어올 때부터 슬그머니 문에 기대어 있던 아들이 방문을 힘겹게 열고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아들이 나서자마자, 제리코의 눈빛이 변했다. 셈법에 능한 유능한 자에서, 부정(父情) 가득한 자로.
“……아버지.”
“프로스!”
“저 때문에 억지는 그만…… 해요.”
저주에 받았다는 아이. 힘겹게 몸을 이끌고 나선 아이의 눈만은 또렷했다.
정광(正光)이 빛나는 듯했다.
몸이 아픈 와중에서도 억지를 부리는 아비를 막는 아이의 눈엔 주관이 서려 있었다.
‘아픈 와중에 바른 주관이라.’
나쁘지 않은 심성을 지녔다는 의미다.
테스는 그런 아이의 눈빛보다도.
“호오…… 이거 저주가 아니었잖아.”
그 아이의 몸에 내재 돼 있는 병이 보였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어. 이봐, 월급은 10골드 쳐주지.”
“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대신 다른 조건을 들어주지. 저 아이를 낫게 해 주면 어떻겠나?”
순간, 부자의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