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챕터 14.
“영지에 쓰일 인재.”
“정확해.”
“모으는 이유까지 말씀드려 볼까요?”
“가능하면.”
정답이었다.
레빈은 제 의견에 타당성을 더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영주님의 태생은 고아. 사람을 믿을 수 없는 환경을 겪은 덕에, 제 손에 확실히 둘 만한 자들을 찾죠. 그게 노예. 하나, 이 정도면 노예가 아니라도 신분으로 누를 수 있으니 이젠 굳이 노예가 아니더라도 괜찮으실 거고요. 정답이 되었나요?”
“맞아. 제대로 조사했는데?”
“정보 길드로서는 기본이죠.”
“기본이라…….”
테스에 대한 조사.
그도 모자라 그 성향까지 읽어냈다.
다른 자가 했더라면 기분이 상할 이야기다.
그러나 저들은 정보 길드로서 제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아닌 제3자가 비추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 테스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줬다.
‘주의해야겠어. 되레 역이용할 건 해야겠지.’
저들은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신을 파악하고 읽을 거다.
때에 그 정보에 발을 맞출 필요도. 또 때로는 그 정보를 역이용하여 혼란을 주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터였다.
후에 있을 일을 지금 생각할 필요는 없으니.
테스는 자신의 내심을 숨기곤 말을 이었다.
“미리 파악을 했으니, 그에 따른 정보도 가지고 왔겠지?”
“물론이죠.”
* * *
고작해야 도시 지넬의 지부장 후보라는 레빈.
그녀는 이미 몇 사람을 수소문해 놓았다. 그도 모자라 이쪽으로 올 수 있도록 조치도 취해 놨다.
‘제대로인데. 고작해야 지부장도 못 된 수준이 저 정도란 말이지.’
그녀가 대단한 사람일지. 그녀를 부리는 정보 길드가 대단한 곳일지 아직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일 처리가 확실하다는 거뿐이다.
“이쪽으로 올 자들은 총 다섯이에요.”
“적네.”
“예. 적은 데다가, 지금 당장 오는 자들은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도 않아요. 딱 중간 정도 수준이죠.”
그녀는 객관적으로 자기 일을 파악하고 있었다.
평가는 꽤 박한 편이었다.
그녀가 건네준 리스트를 보면 오는 자들 모두 행정 아카데미서 성적이 우수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들을 아주 낮게 봤다.
“그들을 그리 보는 이유는?”
“제대로 능력을 가진 자들이라면, 애당초 그런 식으로 빚쟁이가 되지도 않았을 거니까요.”
“재밌군. 이해도 가고 말이야.”
“그들을 부리려면, 그들의 성격에 맞춰 잘 죄어야 할 거예요. 아니면 이용을 하시거나요. 그게 부리는 자의 기본이니까요.”
“후음…… 부리는 자의 기본이라.”
정확한 판단에 이어, 사람을 부리는 법도 알았다.
‘거, 탐나네.’
레빈. 꽤 괜찮은 자이지 않은가.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그녀.
테스는 보면 볼수록 탐이 났다.
그러기에 얼핏 스카웃 제의를 건네어 보지만.
“내가 직접 부리는 거보다는, 그대가 나를 대신해 주면 더 일이 편해지겠는데?”
“후후. 아직 제가 대신 부려드리기에는 이 영지는 너무 작지 않을까요.”
“아직 작다라.”
그녀는 자신감 있게 웃어 보이며 간접적으로 거절을 표해 왔다.
‘아직이라면, 가능성이 없진 않네.’
그렇다 해도 완전히 다리를 끊은 건 아니었다.
그녀도 그를 보면서 가능성을 재고 있는 듯 보였으니까.
‘하긴…… 완벽히 지부장도 아니고, 후보 중 하나라 했으니. 지부장에서 떨어지면 다음 자리가 위태롭긴 하겠어.’
지금까지 정보를 종합하여 보면. 그녀로선 일종의 보험을 드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
나쁘지 않다.
“뭐 좋지. 옆에서 잘 지켜보라고.”
“물론이죠. 말씀하지 않으셔도, 아주 이 안을 속속들이 파헤쳐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그녀는 자신이 속한 정보 길드에 충실한 정보원이 될 속셈인 듯 보였다.
“할 수 있다면, 해 봐.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이라. 그 말도 꼭 기억하죠.”
기관진식. 병사. 그들을 뚫고 과연 이 안을 살피는 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를 향해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는 그녀.
눈빛을 피하지 않으며, 테스는 물었다.
“자아, 장난은 이쯤으로 해 두고. 지금 오는 자들이 급한 불을 끄는 용도라면, 진짜 행정가는 어디서 구할 수 있지?”
진짜배기를 내놓으라는 그의 압박.
이도 레빈은 미리 준비해 왔다.
“그들은 직접 움직여주셔야 할 거예요. 그들이 묶인 걸 손수 풀어주셔야 할 테니까요.”
“직접 풀어줘야 한다라, 그도 재밌겠네. 어서 줘 봐.”
그녀는 그조차도 미리 준비를 해 왔다.
대신 대가를 요구했다. 그의 시간이라는 대가를.
* * *
인재를 얻기 위한 약간의 발품.
테스는 그를 위한 여정을 바로 받아들였다.
‘인재 영입. 오랜만이야.’
이러한 여정. 전생에도 이미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제대로 된 인재가 제 발로 찾아오는 일은 드문 터.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고서야, 그들을 끌어들이는 건 언제나 이러한 여정을 필요로 했다.
찾아가는 거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능력을 가진 자들이 지닌 저마다의 사정. 그걸 해결해 줘야만 능력자를 얻을 수 있음이다.
능력이 있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일들의 난이도는 언제나 상당한 편.
그 대가로 사람을 얻는다는 건 꽤나 매력적인 일이긴 하다만. 분명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테스는 이 여정을 즐겼다.
조용한 여정 길을 즐기며, 그는 에나와 함께 마차를 몰았다.
“오랜만에 가는 지넬이네요?”
“우선 그곳에 제대로 된 자가 셋은 있다고 들었으니까.”
“정보 길드에서 달에 최소 다섯씩은 더 구해 올 수 있다고 했는데, 이리 속도를 올릴 필요가 있을까요?”
“나중 가서 구하는 게 더 힘든 일이란다. 거기다 그 정도 수로는 부족해.”
“그게 부족하다고요?”
“곧 그렇게 될 거다. 행정관이 아주 많이 필요로 하게 될 거야.”
“……원하시는 영지 규모를 전에 비해 또 늘리신 거군요.”
“그런 거지. 이제 남작이 됐으니까.”
에나가 눈치를 챘듯, 테스가 행정관을 필요로 하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남작이 된 상황에 그가 목표로 하는 인구는 최소 1만 5천 이상으로 발돋움했다.
“휘유. 소도시 이후를 벌써 바라보신다라.”
“격이 그리 됐으니까.”
“그 뒤에서 저는 대체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모르겠다니까요.”
“전에도 말했지만, 힘들면 안 해도 된다.”
“이익. 초치지 마세요. 꼭 해낼 거라고요.”
“아무렴. 잘할 거라 믿는다고.”
“네네. 열심히 쫓아갈 테니, 아니 따라잡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작위를 얻은 만큼 테스의 꿈이 커졌다는 의미.
전생의 기억에 의거하면, 1만 명 이상의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서 필요로 한 행정 인원은 최소 50명이었다.
‘극악하리만큼 최소의 수지.’
이는 테스만의 기준이었다.
다른 영지야 10명에서 20명의 행정관으로 잘만 도시를 굴렸다.
지넬만 봐도 그 수가 40명이 채 안 된다. 자유 도시인데도 그 정도 수준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엔 기실 50명도 적었다.
‘고작해야 그들이 기초나 쌓아 줄 수 있으려나…… 세부적으로 가려면 그 배가 되도 모자라다.’
그는 단순 도시 행정만 정리하길 원하지 않았다.
앞으로 있을 그의 도시에 의선문과 같은 체계를 쌓길 원했다.
그건 일종의 영역 배분이었다.
“그나저나 전에 말씀하신 건 아직 유효하죠?”
“일곱 중 네가 무력을 맡을 거란 이야기 말이더냐?”
“네.”
“네가 테론을 이길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 되겠지.”
“핏. 테론, 그자 괴물이라고요. 그렇다고 해도 못 이길 건 아니지만요.”
“내 보기엔 둘 다 비슷하게 괴물이다만.”
“테스 님!”
“자자, 너무 열 올리지 말고 마차 위로 가서 수련이라도 더 하렴. 그래야 대련에서 이기지 않겠니?”
“……씁. 두고 보시라고요.”
“오냐.”
재무. 행정. 약재. 무력. 침구. 의약. 추나.
테스는 전생에서 의선문을 총 일곱의 계열로 나눴었다. 각기 당이라는 이름을 붙여 재무당, 행정당, 약재당……과 같은 식으로 불렀다.
무력당은 이미 마련됐다.
‘예정대로 에나에게 넘겨주고, 영지군은 테론이 책임지면서 투 톱 체제로 가면 되겠지. 나중엔 더 세분화되겠다만…….’
이미 있는 인원들로 처리가 가능했다.
의약당. 침구당. 추나당.
이 셋은 의술 관련이니 당장은 제외해야 했다. 그 말고 다른 제자들을 키워내지 않는 한 이 곳을 맡기는 건 힘든 일이었다.
넷을 당장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세 개가 남는다.
돈을 관리하는 재무.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행정.
약재의 수급을 맡아 줄 약재.
테스는 우선 이 셋의 기반을 이번에 얻을 행정가들로 채울 생각이었다.
그들이 본래 하던 재무나 행정을 맡기면 둘은 어찌 기반은 쌓을 수 있을 거였다.
문제는 약재.
과거 의선문의 약재 수급을 도맡았던 약재당.
그들은 필요한 약재를 거래하고. 약초꾼도 키워야 했다.
그뿐이랴. 특수 약재를 위해서 농사도 하던 게 약재당이었다.
상재는 기본이고, 이문도 남길 줄 알아야 하며. 그에 더해서 농사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50명으로도 모자라단 말이지.’
때문에 테스는 부족함을 느꼈다.
전생 기억에 일을 해내려면 족히 100명이 있어도 겨우겨우 돌아갈까 싶을 정도다.
그가 나서 체계를 만들어 주고. 지식 전수까지 상당히 해 줘야만 돌아갈 터.
귀찮은 일이 되겠지만, 나중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나저나 당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중원식이니 관이라고 해 주는 게 맞겠구만. 재무관, 행정관, 이런 식으로다가 해야겠어.’
당장 이름을 정해 주는 거부터가 일이 될 정도.
꽤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테스는 귀찮아하기보다는 되레 이 일을 흥미로워했다.
“후음…… 이번엔 또 어떤 괜찮은 자들을 얻을 수 있으려나.”
마을 수준을 넘어 소도시. 어쩌면 그 이상.
영지를 한 단계, 한 단계 만들어가며. 영향력을 키워가는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능력이 상당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리되면 게일도 편해지겠죠. 기대되네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테스는 도시 지넬을 향한 발길에 속도를 올렸다.
* * *
그가 도시 지넬에 거의 다다를 때.
테스의 장원에 남아 있던 정보 길드의 레빈도 가만 몸을 놀리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홀로 도전 의식을 태우고 있었다.
‘해낼 수 있으면 얼마든 해내라 이 말이지. 과연, 해내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두고 보겠어.’
테스가 남긴 말 덕분이었다.
염탐을 해 볼 테면 해 보라니.
정보 길드원에게 이만한 도발이 또 어디 있을까.
‘여기서 대충 시간이나 때우면 될 거라 여겼는데 말이야.’
덕분에 베빈의 몸은 둘이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빠졌다.
그의 영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고.
“이곳은 출입 금지입니다.”
“……후. 알겠어요.”
그녀의 움직임을 읽고 막으려 하는 영지군의 시선을 피해야 했다.
어디 그뿐이랴. 할 일은 하나 더 있었다.
‘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한 거지?’
테스는 행정관을 구하러 떠나면서도, 그녀도 생각지 못한 의뢰를 하나 더 던지고 갔다.
그 의뢰. 행정관을 추가로 구해 달라는 그런 단순한 의뢰가 아니었다.
그 의뢰의 종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