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의선, 황제되신다-63화 (63/191)

제63화

챕터 13.

테스가 귀환 길에 오른 그 사이.

데프 백작은 빠르게 북서 방향으로 움직였다.

북서부엔 영지 앙스가 있었다.

그는 회의에 발언한 바대로 앙스를 초토화시킬 요량인 듯했다.

이미 데려간 5000이 넘는 병사들로 앙스의 주성을 포위하고. 주변의 영지들을 약탈하도록 명을 내렸다.

시간이 지나 귀족들이 약속한 기마병들이 추가되고.

그는 제 기사단을 시켜 억지로 성문을 열게 만들더니 곧바로 기마대를 앙스 주성에 집어넣었다.

그 뒤는 말할 것도 없는 학살이 벌어졌다.

앙스가 무너졌다.

연합의 주축이던 앙스가 무너졌는데 남은 휘슬이 버틸 요량은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는 굴욕적인 항복 선언을 했다.

오 년 가까이 이어지던 영지전의 허무한 종결이었다.

종결은 허무하더라도 전후 처리는 쉬운 일이 아닌 터.

기병대를 보냈던 페넌이라는 배후에 광산까지 걸려 있었다. 복잡해지는 게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데프 백작은 손수 손을 써 테스의 영지에 기사를 보내었다.

전에 없던 명성이 생겨서일까.

기사는 전에 없이 공손했다.

“데프 백작님의 명으로 찾아왔습니다.”

“지금 시기에 말인가?”

“예. 전의 전공에 대한 포상을 전달하러 왔습니다.”

“저게 다 포상이란 말인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테스 님의 것입니다.”

공손한 기사의 뒤로 수백의 사람이 있었다.

병사는 아니었다. 무장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까.

대부분 남루한 옷을 걸친 채였다.

“노예 300명입니다. 덧붙여 전에 다하지 못한 포상이라며, 이것도 같이 보내셨습니다.”

“이건…… 허. 많은데.”

300명의 노예.

그도 모자랐나. 건네준 공간 주머니 안에 많은 금화들이 담겨 있다.

“감사히 받는다고 백작님에게 전해 주게나. 요긴하게 쓴다고도 말씀드리고.”

“꼭 전달 드리겠습니다.”

“고맙네.”

테스는 데프가 건네어 준 포상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겼다.

남작이 됐다 해도 제대로 된 구성을 갖추지 못한 상황.

병사야 충분하지만 그 밑을 받쳐 줄 영지민들의 수는 여전히 적었다.

이 상황에 데프 백작이 보내 온 노예들은 꽤 큰 도움이 될 거다.

테스는 그들을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 생각했다.

‘전후 처리로 머리가 복잡할 텐데. 용케도 보냈는데?’

전쟁보다 중한 게 후속 처리.

그런 전후를 처리하면서도 테스에게 포상을 내렸다는 의미는 명백하다. 그만큼 데프가 그를 신경 쓴다는 방증이었다.

포상 자체도 과했다.

재물을 떠나서 노예 300명은 적은 수가 아니었다. 구성을 보면 가구별로 데려온 게 분명하니 더 신경을 써야 했을 터.

데프 백작이 손수 신경을 써 주지 않고는 저런 보상은 불가능하다.

‘전쟁에서 주목을 받아버리긴 한 거네.’

한 번의 전투로 데프가 그를 꽤 주목했다는 뜻.

나쁘진 않았다.

테스론의 주인이 될 기사 이반과 달리 데프는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귀족이었다. 이 장원의 권리를 넘긴 게 그였으니까.

상위 귀족 되는 자인 그의 주목을 이런 좋은 식으로 받는 건 그로서도 환영이다.

흡족할 수밖에.

테스는 숨기지 않고 웃음을 드러냈다.

“게일, 모두 안으로 들여. 전에 이야기했듯, 제대로 가구 조사 하는 것도 잊지 말고.”

“명 받잡겠습니다!”

흡족함이 여실히 느껴졌다.

‘좋네.’

새로운 힘이 영지에 더해졌다.

* * *

갖게 된 힘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테스 남작님! 기대하십쇼. 잔뜩 준비를 해 왔습니다.”

“쉬지도 않고 오는군, 그레놀.”

“가장 반짝이는 곳에 상인이 들르는 법이지요.”

한 달에 한 번 상행을 행하던 그레놀.

그가 상단의 행렬을 늘렸다.

한 달에 한 번이 아닌 이 주에 한 번으로.

이전의 두 배다.

오고가는 시간이 소요되는 걸 생각하면 한 달 내내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봐도 무방했다.

그는 올 때마다 많은 재화와 보부상들을 데리고 왔다.

“반짝이는 곳이라. 듣기는 좋군.”

“파워 홀스에 대한 수요가 넘쳐서 말입니다. 그게 아니어도, 전보다 거래품도 많잖습니까. 이곳 곡물이 맛 좋다고 소문났습니다.”

“풍년 덕이지.”

“후후. 풍년이라. 덕분에 이쪽은 많은 돈을 벌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죠.”

정기적 거래를 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췄단 의미.

파워 홀스를 주기적으로 파는 건 물론. 곡물이라든지 대장장이가 만들어 낸 무구도 좋은 거래 물품이 됐다.

영지 내부가 자체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됐다.

기세를 탔다.

테스는 여기에 기세를 더 끌어 올릴 참이었다.

“이번에도 남는 여유금은 노예 구매에 쓰실 겁니까?”

“유랑민들을 받고는 있지만, 그거만으론 부족하니까. 할 수밖에 없지.”

노예 구매다.

영지의 인구는 곧 힘.

전쟁으로 인해 유랑민이 많아졌다지만 여기까지 닿는 수는 적었다. 영지에 닿기 이전, 다른 영지들이 채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억지로 노예를 받지 않고서야, 인구를 폭발적으로 늘리는 건 힘들었다.

“전후로 노예가 넘치기야 합니다만은…….”

“구하기 힘들어지고 있나?”

“이런 식으로 구매하시다가는, 구매액이 늘 수도 있습니다.”

“가격이 오른다는 거군.”

“예. 슬슬 오르고 있습니다.”

“그쯤이야 이해하고 있네.”

문제는 구매 대금이 오른다는 거다만.

‘아직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야.’

테스는 구매를 지속했다. 돈보다 지금의 기세를 계속해 끌어올리길 원했다.

“뭐 저야 감사한 일입죠.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하니까요.”

“내가 말 한 재료는 전부 가져왔겠지?”

“마탑, 베빈이 할인 하나 해 주지 않았습니다만…… 어쨌건 구해 왔습니다.”

“그쪽이 좀 쪼잔하긴 하지.”

“푸흐흐. 맞습니다. 쪼잔하죠.”

구매 대금 지급을 위해 그는 끝없이 연단로를 돌렸다. 사용되는 돈이 커지고 있는 만큼, 파워 홀스도 같이 팔아 넘겨야 했으니까.

신이 난 건 그레놀이었다. 웃음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진짜 상단주도 아닌 주제에, 진심으로 신났구만.’

그치고도 거래를 하면서 벌어들인 돈이 상당히 쏠쏠한 듯했다.

하기야, 독점 거래다. 꽤 큰돈을 만졌을 거다.

문제는 그 기간이 그리 길게 남지는 않았다는 거다.

“그나저나 슬슬 재계약에 관해선, 답을 말씀해 주실 때지 않습니까?”

“독점이라…… 흠. 오래 남지 않긴 했군.”

“이 개월쯤 남았습죠. 연장만 해 주신다면, 정기 상행을 더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모쪼록, 좋게 봐주시기를.”

테스는 재계약을 사정해 오는 그레놀을 가만 바라봤다.

테스에게 잘 보이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그레놀. 겉으론 상인 그 자체로 보였다.

‘정체를 떠나서…… 거래 상대로 나쁘진 않긴 해.’

진실된 그의 신분은 아직 몰랐다.

신분을 떠나. 그가 지금까지 보여 준 능력은 확실히 뛰어났다.

다른 거래처를 물색해도 이만한 능력자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장담 못 한다.

독점 기간이 얼마 안 남았음에도 그레놀이 자신감이 있는 이유다.

“후음…… 좋게 봐 준다라. 나쁘겐 안 보고 있네만?”

“그렇다면 이번에라도 확답을 주시면…….”

“뭐, 그렇다고 꼭 독점을 줘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하네. 꽤 많은 자들이 여길 다녀갔거든.”

그래도 찾고자만 한다면 괜찮은 상단을 찾을 순 있었다.

‘귀찮을 뿐이지.’

영지를 눈여겨본 자들이 많았다.

이 작은 영지에 많은 상단주들이 발을 디뎠었다. 그중 괜찮아 보이는 자도 있었다.

“남작님! 허어이…… 제가 꽤 많은 투자를 한 걸 잊지 말아 주십쇼.”

“내 알고 있지. 분명 잊지는 않고 있어.”

“그런데도…….”

그레놀도 알기는 하고 있었는지, 몸이 달은 척을 했다.

그가 달아오른 꼴을 보는 것도 꽤 재밌는 구경거리였다.

하지만 길게 이어나갈 놀이는 아니었다.

한참 그레놀과 입씨름을 하던 테스. 그는 툭 던지듯 가볍게 새로운 일을 꺼내 들었다.

“독점 연장도 좋고. 정기 상행도 다 좋아.”

“그렇담 어서 계약을…….”

“하지만 그걸 이어갈 만한 메리트를 자네가 보이는 거도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메리트라. 원하시는 게 뭡니까?”

“내게 소개 하나만 해 주게나.”

“거래처를 직접 뚫겠다는 거만 아니면, 뭐든 가능합니다!”

“쉬운 일일 거야. 하나만 해줘.”

테스는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정보 길드. 그들과 선 하나 연결해 줄 수 있겠지?”

“예!?”

정보 길드.

생각지 못한 단어를 들었나. 그레놀 눈에 놀람이 스친다.

정보 길드.

말 그대로 정보를 거래 수단으로 이용하는 자들의 통칭.

전생엔 하오문과 개방이 정보를 맡았다면, 여기는 길드가 그러한 일을 했다.

각 도시, 영지마다 수많은 정보 길드들이 있었다. 그중 일품으로 쳐 주는 길드는 셋.

북서부 브루니언 제국의 제이넌.

북동부 리민왕국을 필두로 한 레어드.

남부 마스키지언 연합의 바스턴.

서로 다른 특색을 지닌 셋은 정보를 매개로 덩치를 키워 왔고.

삼파전을 벌이며 그 영향력을 키우고자 경쟁했다.

“하핫. 고작해야 정보 길드는 도시 지넬만 가셔도 쉽게 연결되실 게 아닙니까?”

“허접한 곳과 연결해 봐야 돈만 버릴 뿐이지.”

도시마다 있는 정보 길드는 셋의 하위 조직이라 봐도 무방했다.

테스는 그보다 위를 원했다.

“지넬의 것들이 들으면 섭섭한 이야기겠습니다.”

“그래서 말을 할 건가?”

“……그럴 리가요. 하핫. 참…… 이거 못 당하겠습니다.”

그레놀은 역시 아직 어렸다.

슬쩍 자존심을 건드리니 분노가 스친다. 하지만 제 할 일을 내팽개치지는 않았다.

“대체 뭘 원하시기에 그러십니까? 어지간한 정보는 저도 마련을…….”

“거기까지 자네가 알 바는 아니지. 다시 묻지, 해 줄 건가?”

직설적으로 압박하는 테스.

상당히 몰려 있는 그레놀이 그에게 해 줄 만한 답은 결국 정해져 있었다.

“해 드려야죠. 대신 일 년은 더 연장해 주셔야 할 겁니다.”

“반년. 그걸로 우선 만족하게.”

“우선은이라…… 기억해 두겠습니다.”

결국 테스가 바라는 대로 해 줄 수밖에.

그레놀이 정체를 밝힌다면 그때 상황이 역전될 수도 있겠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강짜였다.

한숨을 푹 내쉬는 그 앞에서 그제야 테스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그럼 잘 부탁하지.”

“얼마 뒤 뵙겠습니다.”

몇 번이고 계속되는 신경전. 이번은, 완벽한 테스의 승리였다.

* * *

일주일 후.

그가 정보 길드와 접선하는 방법을 가져 올 거라 여겼다.

아니었다.

그레놀은 접선을 할 방법을 대신 사람을 보냈다.

익숙한 그레놀 상단 인원 옆, 새로운 인물이 보였다. 상황 상 저 인물이 어디서 왔을지 명백했다.

‘직접 찾아가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바로 보내 올 줄이야. 그나저나 꽤 성격 있어 보이는데?’

정보 길드원.

붉은색이 레이어드되듯 어깨까지 내려앉은 머리에 그보다 더 붉은 큰 눈을 한 여인.

삼백안을 지니고 있는 그녀.

눈에 어울리는 당돌한 눈빛으로 테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전혀 안 쓸 듯,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붙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재밌는 건 드레스 안으로 느껴지는 그녀의 기세였다.

‘드레스로 가렸다만, 몸을 쓸 줄 아는 자잖아. 얼씨구? 마력도 있긴 하네.’

테스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상단 행렬을 맞이했다.

얼마 가지 않아 상단 행렬은 제 할 일을 하러 움직였다. 그들은 그녀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그 뒤. 남은 건 오로지 테스와 그녀뿐.

“길드서 직접 행차를 해 주다니, 영광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제가 판단하기로 남작님은 그럴 가치가 있으셨으니까요.”

“가치라…… 정보 길드에선 그리 판단한 건가.”

“네. 처음 뵙겠습니다, 레빈이라 불러주시기를.”

“레빈. 내 기억하도록 하지.”

정보 길드의 레빈. 어딘가 익숙한 이름.

테스는 잠자코 예를 받았다.

“저희 길드에 직접 의뢰를 하실 게 있으실까요?”

“내가 뭘 의뢰할 거 같나?”

테스는 시험하듯, 툭 던졌다.

그로선 간단한 시험이었다.

정보 길드라면 그가 무슨 정보를 원할지 한번 맞춰보라는 식의 단순한 시험.

‘이거도 못 맞추면 거래할 가치가 없지.’

이 정도쯤은 하오문 지부장만 되어도 맞출 만한 일이었다.

미리 예상했는지. 그녀는 놀라지 않고 답했고.

“무엇이라. 제 예상대로라면 그 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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