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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의선, 황제되신다-62화 (62/191)

제62화

챕터 12.

하위 귀족과 가신단의 동의도 없이, 시원스레 작위를 넘겨버린 백작.

그는 바로 다음 날 이어지는 영지전을 위한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 참여한 자들 중, 테스도 끼어 있었다.

급작스러운 테스의 끼어듦.

그가 귀족위를 급히 받았다는 걸 뒤늦게 들어서일까. 덕분인지, 그를 옆에서 바라보는 하위 귀족들의 시선들은 그리 곱지 못했다.

“커흠…….”

“허…… 북부 귀족계가 어찌 돌아갈는지. 쯧.”

대다수의 눈빛에 온갖 질시가 섞여 있었다.

‘눈빛만 보면 아주 잡아 먹겠구만.’

저들은 가진바 능력이 있든 없든 대를 이어 힘을 이어받은 자들.

개인의 힘은 테스보다 약할지라도 누구나 비장의 무기쯤은 하나둘 쯤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다만, 스스로를 위하여 이런 영지전에 꺼내 들지 않았을 뿐이다.

저들마다 저력이 있다.

그걸 알기에 테스는 저들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면서도. 동시에 더 큰 도발을 하지는 않았다.

“쯧…….”

어쨌거나 그들도 테스에게 더 큰 시비를 걸 생각은 없는 듯했다.

작은 소요가 지나갔다.

그제야 데프 백작이 나섰다.

“허허. 분위기가 좋군.”

“…….”

고요한 분위기. 데프 백작은 그런 분위기가 뭐가 좋은지, 그다운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체 왜 이런 분위기가 좋다는 것인가.

“자, 밤사이 추격대들이 올린 전과는 잘 들었네. 아주 좋더군.”

“백작님 덕분이옵니다!”

“후후. 그리 칭해 주니 고맙네.”

“큼큼…….”

데프에게 잘 보이고자 공을 올려치는 귀족의 아부를 그는 잘도 받아들였다.

‘뻔뻔하구만. 하기는, 저쯤 뻔뻔해야 하위 귀족들을 다룰 수 있을려나?’

어제 막사에서 보이던 면과 전혀 다른 면이었다.

“문제는 이 뒤네. 추격전이 끝이 아니란 거지.”

“저들도 슬슬 항복을 해오지 않겠습니까?”

“앙스라면 모르겠지만 휘슬은 아닐 걸세.”

“페너탄 때문이군요. 정확히는 페너탄을 보낸 페넌의 문제겠지요.”

“그래. 페넌이 이번 일로 얻은 손해는 막심할 터. 그걸 메꾸고자 움직일 가능성은 충분하지.”

“더 급히 움직여야 한단 소리로군요.”

“우리는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지. 다들 방안들이 있는가?”

“…….”

방안을 말하라는 소리에 다들 침묵을 지켰다.

잘못 의견을 냈다가 볼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리라. 혹은 제 전력을 드러내기 싫은 것일 수도 있고.

그런 모습들을 보고도 데프 백작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왜 웃는 거지? 다들 저리 비협조적이어서야, 일이 힘들어질 터인데.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가?’

귀족을 꾈 데프 백작의 꿍꿍이.

금방 드러났다.

“내 이번 공을 세운 테스 남작에게 공을 줬듯, 다른 자도 공을 세운다면 능히 대우를 해 줄 생각이네만.”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테스를 회의장에 앉혀 놓은 게 아니었다.

그들 눈에 있어서 테스는 공적을 가로챈 듯 보이는 눈에 가시며 동시에 하룻밤에 대박을 맞은 자였다.

그런 테스를 바로 옆에 앉혀 놓고. 공을 대우해 주겠다는 데프 백작의 이야기는 꽤 그럴싸한 발언이 됐다.

제 힘을 스스로 꺼내 놓는 법이 없는 귀족들의 눈이 돌아갔다.

“저희 영지가 자랑하는 방패병에게 밤새 달려오도록 시켰습니다!”

“허어이. 당장 시급을 요하는데, 방패병으로 뭘 하려고. 저희는 기마대를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도 소수라도 기마대를!”

“호오! 기마대를!”

데프가 적당히 추임새를 넣는다. 그때마다 열기는 더 끓어올랐다.

“저희 남부는 성금을 마련 중입니다. 당장 쓸 수 있을 용병들을 고용할 겁니다!”

“오오. 용병이라고!?”

“쓸 만한 자들을 이미 수배해 놓고 있었습니다.”

“좋군. 좋아.”

속으로 숨겨 놓고 있던 제 패들. 그들이 보상이란 말에 스스로 꺼내 들고 있었다.

‘재밌네. 이 뒤에 뭘 준다고 데프 백작이 확실하게 약속한 건 없는 거 같은데.’

테스에게 작위 하나 내줬을 뿐인데.

그 효과는 테스보다도 데프 백작이 더 크게 받는 듯했다.

과연, 이게 이 세계의 상급 귀족들이 사람을 다스리는 방식이란 말인가.

기사 이반과는 또 다른 방식을 보임에, 테스는 제법 흥미롭게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귀족들이 열을 올리고. 서로의 것을 꺼내드는 가운데, 테스가 더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였다.

꿰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는 테스를 찾는 건 데프였다.

“테스 남작. 자네는 달리 의견이 없는가?”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데프.

‘어제도 들러붙더니 오늘도.’

테스는 그런 그의 기대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만한 병사들이라면 충분히 승리를 점칠 수 있을 듯 보입니다. 아주 든든합니다!”

“허어…… 그래?”

“예. 충분하고도 남는 전력 아닙니까. 대단들하군요. 감히, 저 같은 자가 끼지 못할 만큼이지 않습니까.”

테스는 저 자신을 낮추며, 다른 귀족들을 쳐 올렸다.

그 내심을 알 텐데도. 일부 귀족들은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의 발언을 다들 만족스러워했다.

아쉬워하는 건 오로지 데프 백작뿐이었다.

“자네는 쓸데없이 겸양이 넘치는군.”

“아무래도 이런 자리는 처음인 지라…….”

“허허.”

그로선 테스를 이용해 더 큰 전력을 끌어 올리고 싶은 듯 보이나.

‘내가 받아 줄 이유가 없지.’

남작위를 받은 테스로선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다.

언제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생각이지만, 아직 이만한 힘을 소화하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데프 백작이 영지전을 마무리하는 동안이라면, 그도 충분히 소화를 하고 남을 터.

그러기에 여기서 더 공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게으른 사자라도 바보는 아닌 데프.

그는 이미 테스의 속내를 읽은 지 오래였다.

특유의 뚝심으로 테스를 몇 번이나 더 채근을 할 뿐이었다. 어서 이 판에 끼라는 듯이.

하지만 테스는 겸양을 떨며 계속해 채근을 넘길 뿐이었다.

결국 항복을 하는 쪽은 데프였다.

“허허. 이거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보는가 했더니, 아쉽군.”

“저야말로 아쉽습니다.”

그는 테스의 안건을 넘겼다.

이후. 그를 배제한 채, 앞으로 있을 영지전의 마지막 전투에 대한 안건으로 넘겼다.

“자자, 이걸로 회의를 마무리하지.”

그로부터 몇 시간 뒤. 지루했던 회의가 끝이 났다.

* * *

지난번의 엉망이던 회의 이후. 이번 회의는 제대로 한 이유가 있었다.

무슨 속내인지는 몰라도, 데브 백작은 제가 확실히 다스릴 수 없는 병력들을 남은 전장에서 제외하기 시작했다.

“장원의 병사들은 다시 돌아가도록 하게! 그에 따른 포상은 후에 주어질 터이니!”

“명 받잡겠습니다!”

억지로 징집해 왔던 병사들을 돌려보내었고.

“자네는, 이번 일은 빠지는 게 낫겠더군.”

“아, 아직 할 수 있습니다!”

“아니네. 가서 몸을 더 보존하도록 하게나.”

전력 외라고 할 수 있는, 약한 하위 귀족들. 그들은 보급과 안위를 핑계로 전장의 뒤로 빼두었다.

철저하게 전력이 되며, 자신의 명을 따를 자들.

즉, 정예를 제외하고는 전부다 전장에서 배제시켰다.

“참 허무하게 끝이 나는군요.”

“마지막만 남아 있으니까.”

“회의에서 뭐 들으신 게 있으십니까?”

“슬슬 끝을 보려고 하시는 거 같더군.”

“아아. 본래라면 이번에 끝을 내시려던 걸…… 이다음에라도 끝내려 하시는 거군요?”

“그런 셈이지. 그래서 정예만 따로 추린 것이겠고.”

“시간이 중요할 테니까요. 후흠. 이해는 갑니다.”

테스가 몇 시간의 회의에서 듣기로 정예가 된 저들은 북부로 바로 달려 갈 거다.

앙스와 휘슬을 끝을 내고.

특히 페넌을 끌어들인 게 분명한 앙스는 꽤 무참히 무너트릴 터였다.

‘끈질긴 성격을 보면, 이번에 확실히 끝내겠지.’

지금까지 보인 데프 백작의 능력과 식견. 그라면 분명히 이 지루한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거였다.

테스가 본 그라면 확실히 그럴 능력이 있었다.

‘어쩌면…… 전투가 이리 길어지는 거도, 그가 원해서 이뤄진 걸 수도 있을 테니.’

귀족답다 여겼던 기사 이반보다도. 몇 수는 더 위에 있는 데프의 능력을 보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만큼 인상 깊은 자였다.

“허허. 그래도 이리 살아서 돌아는 가게 되는군요.”

“다행인 거지.”

한 번의 전투. 거대했던 공적.

그 강렬한 하루를 통해 얻어낸 것도, 주목을 받게 된 것도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자, 갈까?”

“허허. 제가 길을 안내해도 되겠습니까?”

“풉. 안내라니. 필요는 없을 거 같네만, 그래도 기꺼이 받아주지.”

“감사합니다! 자자, 뭣들 하나! 어서 길을 밝히지 않고!”

넉살 좋게 따라붙는 레므나 장원주. 그와 함께 테스는 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의 뒤를, 장원의 병사들이 따라붙었다.

* * *

갇힌 자, 베빈 아너스.

마탑 지부를 지키고 있는 그녀는 생글생글함을 지우고 눈앞에 자리한 자에게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레놀. 이번은 선을 넘었어.”

“……선이라니요? 판을 재밌게 짜 왔을 뿐입니다.”

그녀의 반대편. 테스의 의뢰로 마탑의 물건들을 매입하러 왔을 그레놀.

그는 그녀가 인상을 찌푸림에도 웃음을 유지했다.

그 미소가 베빈으로선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만족스럽지 않았습니까? 그가 보이는 힘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네가 그리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힘을 보였을 거야. 잠깐의 시간차일 뿐이지. 그러니 만족스럽지도, 재밌지도 않아.”

“이런. 그건 아쉽고 죄송스러운데요.”

베빈의 힐난.

그럼에도 그레놀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반대로 그녀는 더 인상을 찌푸렸고.

“그레놀. 이제 장난은 적당히 해.”

“이미 장난은 아니었습니다만은?”

“후웅…… 나중에 그가 알게 되고도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

“그에게 가서 말씀하실 겁니까? 베빈께서 고자질이 취미는 아닌 걸로 아는데요?”

“그럴 필요도 없을걸. 그는 이미 너를 느끼고 있는 거 같으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이미 느끼다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그레놀의 미소가 지워진다.

베빈은 허투루 말을 하지 않는 자. 그녀의 말대로 그가 그레놀의 움직임을 눈치챘다면, 그건 꽤 만족스럽지 못한 현상이다.

‘이건 안 좋은데.’

반대로 그레놀의 미소가 지워지자, 그제야 베빈이 웃어 보였다.

“있어. 그런 게.”

“쯧. 하나도 재미가 없어지는군요.”

“왜? 나야말로 지금이 재미있는데.”

공수가 뒤바뀌었다.

장난이 실패함에 흥이 식어 버린 그레놀.

“됐습니다. 자자, 오늘 구매할 물품이나 어서 넘겨주시죠.”

“원한다면 얼마든지. 할인은 없지만!”

“이익! 정말 이러실 겁니까!?”

“왜? 당연한 거라고. 나는 장난꾸러기는 별로 안 좋아하거든.”

“후. 주기나 하시죠. 이거 이번에 가서 판매하는 건 손해겠군요.”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대금을 꺼내는 그레놀이었다.

어서 거래나 끝마치고. 테스의 장원에 갈 생각이 역력한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까지도, 베빈의 속을 긁었다.

“……다음에 또 보죠. 갇힌 자여.”

“후응. 얼마든지.”

‘갇힌 자.’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을 툭 내뱉어댔다.

그걸 들으면서도 베빈은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떠나가는 그의 뒤로 짙은 잔향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갇힌 자라는 기분 나쁜 말보다도, 그가 남긴 잔향이 베빈에게 가져다주는 흥미가 더 컸다.

‘저런 건 어떻게 만들었을려나? 하여간 재밌다니까.’

정작 스스로 향을 풍기는 그레놀은 잔향을 느끼지도 못한 듯하지만.

마탑에 갇힌 베빈은 진득한 천리향을 이미 느꼈다.

그녀는 코를 움찔거리며 먼 곳을 바라봤다.

‘앞으로 어찌 변할까?’

그녀가 바라보는 방향.

장원에 도달하고 있을 테스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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