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챕터 9.
몸을 날린 테스. 그는 적이 가까워지자마자 손을 쐐기처럼 내뻗었다.
콰즈즈즉-
선천진기가 담긴 그의 손이 적 기병대에 닿는다.
손에 닿자마자 기병대의 갑옷이 우그러지며 찢어진다. 찢어져 버린 갑옷 사이로 드러낸 속살. 테스는 망설임 없이 손날을 우겨 넣었다.
콰즉-
“크아아악!”
손에 몸이 꿰뚫린다. 그 고통에 기병대 하나가 고통스레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이 배경음이 되는 게 전장이라지만 몸이 찢어진 비명은 그 수준을 달리했다.
“으읏.”
잔뼈가 굵은 기병대도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그 순간 테스는 검을 빼어들더니, 고통스레 비명을 지르던 병사의 멱을 땄다.
투욱-
잘려져 버린 병사의 머리가 훅 위로 치솟더니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모두가 그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던 지금.
“으아아아!”
목이 떨어져 내려가는 그 광경에 기병대 몇이 놀란다.
기세는 이미 테스에게로 왔다.
테스는 그 기세를 몰고자 파죽지세로 적을 몰아붙였다.
적을 제압한다는 선택지 자체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가 이끄는 병사가 그러했듯, 그는 손에 적이 닿는 족족 죽음을 선사하여 주었다.
“켁…….”
왼손에 닿는 목 줄기를 찢어내고. 몸이 닿는 족족 사혈을 찍어 눌러 혈행의 흐름을 방해하였다.
금나술로 적의 기병도를 빼앗아 들어 다시 주인에게 돌려줬다. 심장으로.
남은 오른손으로는 검을 휘둘렀다.
한 번에 둘 셋을 베어들어 갔다. 때로 적의 갑옷 이음새에 검을 박아 넣어 육체를 곤죽 냈다.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기량!
그는 단순히 기술과 기량만 키운 검사가 아니었다.
‘할 때는 제대로 보여야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검에 야트막한 빛이 스쳐 지나간다.
“오, 오러다!”
“마, 마법사가 아니었나!”
오러. 이 세계 기사들의 전유물. 그러한 오러가 그의 손에 치솟아 올라왔다.
‘제대로 된 검기도 아닌데 놀라기는.’
그로선 전력을 다한 기운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비완성의 수기. 내공을 가늘게 뽑아 두른 수준이었다.
일 갑자가 넘어 넘쳐 흘러들어 가는 내력을 이용하면 이 정도 수준은 쉽게 유지할 수 있었다.
그로선 기세를 돋우고자 드러낸 실력이지만.
“도, 도망쳐야 해…….”
“어디에!”
적 기병대 입장에서는 재앙 같은 상황이 됐다.
사방이 막히고. 마법과 오러를 한 번에 다루는 마검사가 다가온다. 닿는 족족 멱을 찢어발기는 테스는 그들에게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크아아악!”
“기사급이 대체 왜 여기에!”
다시 기수를 틀려 해도 테스의 병사가 막고 있는 지금. 저들이 다시 속도를 내 도망칠 방법은 없었다.
애써 기병도를 다시 꼬나 쥐고 반항을 해 보지만.
“이야아아악!”
“허튼 짓이야.”
테스의 검이 사정없이 적의 목 줄기를 꿰뚫었다.
순식간에 하나의 진형을 망가트린다.
다시 옆의 진형으로 그가 다가가기 시작했다.
아직 거리가 멀었음에도, 그를 본 기병대원들은 이전의 징집병들보다 더 혼비백산했다.
“히이이익!”
“사, 사신이야…… 오, 온다.”
아군이었던 30명의 기병대가 어찌 녹아 버렸는지 보았기 때문.
온 힘을 다해 했던 훈련도, 같은 전장을 돌며 쌓아 온 전우애도 이 순간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몸을 덜덜 떨면서 놀라는 게 그들로서는 최선.
방금 전까지 좌익군 멱을 따던 모습이라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덜덜 떠는 그들을 보면서도 테스는 동정 따위는 던지지도 않았다.
‘망설일 거 없다. 죽여야 해.’
어차피 서로가 죽이고자 모인 게 전장이다.
테스가 약했더라면 저들이 그를 죽였을 것이고. 저들이 약하기에 테스는 그들을 죽일 뿐이었다.
테스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빨라져 갔다.
“지치질 않아!”
“대체 저게 뭐냐고!”
내력, 마력, 선천진기 따위 덕분이 아니었다.
“……흡수하는 손길.”
적의 멱을 따면서도 그는 착실히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했다. 적의 독기와 모든 기운을 빨아들이는 흡수하는 손길.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가 소모한 힘들이 전부 채워졌다. 때로 그 이상 기운이 들어오며 그의 내력이 되어갔다.
계속해 그는 적을 상대하면 할수록 더 강대해져 갔다.
지치기는커녕 강대한 기운들이 그를 채워 줬으니까!
결국 전장에서 그를 상대할 방법은 오롯이 하나뿐이었다.
‘압도적인 강자가 있지 않고서야, 날 상대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그를 한 번에 제압할 수 있을 압도적 강자!
몇 수는 더 위에 있는 자가 그를 상대해야만 거침없는 그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흡수하는 손길을 사용할 새도 없이, 마검사로서 마법을 응용할 시간 따위도 없게 만들어야만 그를 죽일 수 있을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전장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괴물이 된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없군.’
그가 아무리 사방에 기감을 돋워 날려대도 그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일 만한 강자는 이곳에 없었다.
적어도 이 좌익군 안에서는 그는 패왕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계속해 손짓을 날렸다.
콰드드드득-
두 개. 세 개. 순식간에 그를 향해 돌진하였던 적들의 진형 셋이 모두 무너졌다.
‘승패를 논하는 게 삼 할이라 했던가.’
진형 세 개가 무너지자 적들도 이변을 눈치챘다.
“대체 저자는 뭐야!”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테스가 보여줬던 무위. 그 위력. 학살에 가까운 손짓을 보고도 대응을 하겠답시고 나서는 간 큰 자는 없었다.
페너탄 기병대장.
‘어찌 저런 자가…….’
적 사령관은 이 전투가 자신들을 위한 전투가 아님을 잘 알았다. 단지 대가를 받고 지원을 나왔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죽임을 당해서야 개죽음밖에 되지 않는 터.
“후퇴하라! 후퇴! 여기서 다 희생될 순 없다!”
“후퇴하랍신다!”
후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수를 내었다.
각 진형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하고. 기수의 방향을 틀고자 말의 머리를 다른 방향으로 비틀었다.
테스는 그들이 도망가도록 허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 죽이러 왔으면, 자신이 죽을 줄도 알아야지.’
피 맛을 본 그. 전장에서 끊임없이 공급되는 힘에 취해 있는 그는 여기서 멈출 이유가 없었다.
“캬아악!”
그는 마지막으로 상대하던 기병대의 복부를 찼다.
발경이 실린 발길질에 기병의 몸이 아래로 푹 꺼진다.
내장이 터질 걸 확인할 겨를도 없이 테스는 그가 잡고 있던 고삐를 대신 잡았다.
-히이이잉!
말은 영리하다. 제 주인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보고 투레질을 해 보지만.
“저항하지 마라.”
살기를 돋운 테스의 명령에 금방 수그러들었다.
말이라 할지라도 그의 명을 듣지 않으면 그대로 멱을 딸 것을 본능으로 느낀 것이다.
“이럇!”
처음 말을 타 보는 테스. 허나 그는 전생의 경험을 살릴 줄 알았다. 말 등을 치고 동시에 균형을 잡았다.
그의 성화를 못 이겨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말.
“민첩성 강화. 활력 강화.”
그 말에 마법이 부여되고. 이어지는 그의 내력에 없던 힘까지 생겨났다.
속도는 흡사 경공을 펼치는 거만큼이나 빨라졌다.
적을 향해 그의 몸이 가까워져 간다.
“옵니다!”
“어서 달려!”
적 기병대도 테스의 움직임을 보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선 어서 도망쳐야 함을 그들도 깨닫고 있었다.
그걸 가만 볼 지켜볼 테스랴.
한편으로 마력을 돋워 대지를 조종했다.
이전과 같은 대규모 대지 조종은 말 위에서 불가. 하지만 적이 속도를 더 끌어 올리지 않게 막는 건 여전히 가능했다.
그러며 그는 한수를 더 더했으니.
“어어억!”
“그 창. 잠깐 빌리지.”
그는 창을 꼬나 쥐고 서 있던 병사들의 창을 금나술로 잡아챘다.
잡아챈 창을 들고 어깨 위로 들었던 팔을 그대로 앞으로 내던졌다.
‘양가창법이 지닌 투(投)의 묘리로.’
전장에서 이름을 날리던 양가. 그들이 지닌 창법 중 적을 추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이 세계에 구현된다.
투창이다!
그것도 그의 단전에서부터 치솟아 오른 내력을 잔뜩 머금은 투창!
쒜에엑-!
빠른 속도. 공기를 가르고 들어간 투창이 적이 타고 있는 말들의 다리를 스친다.
달리기 위해 만들어진 생물체, 말. 앞으로 달리기 위해 설계된 말이란 생물의 근육은 한계까지 압축돼 있었다.
그 근육을 가리고 있던 피부가 찢어지는 순간.
-히이이잉!
-크륵.
말들은 제 속도를 이겨내지 못 한다. 근육이 바깥으로 쏟아져나가며 제동력을 잃는다. 그 결과, 그들의 몸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버린다.
쿠우웅.
투창 하나에 말 세 마리가 꿰뚫리고. 쓰러지며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크아아아악!”
“피햇!”
주변에서 같이 내달리던 다른 기마들도 그 영향을 피할 수 없었다.
말의 버둥거리는 발에 다른 말이 걸리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 기병을 피하려다가 진형이 흐트러진다. 흩트러지며, 속도는 더 늦어진다.
투창 한 번에 일어난 성과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위력.
그런 일을 해낸 주제에 테스는 곧 바로 다른 병사들의 창을 빼앗아 들었다.
‘이왕 힘을 보인 바 제대로 쓸어버린다.’
그는 새 창을 드는 족족 투의 묘리로 창을 날려대었다.
“크아아악!”
“사, 살려줘…….”
날아든 창이 적의 몸을 꿰뚫을 때마다, 흐느끼는 말 울음이 들리고. 진형이 무너진다.
때로 투창은 등을 보인 기병대의 몸을 그대로 꿰뚫었다.
‘멍청한 것들. 차라리 모여 대응을 했으면 더 어려웠을 건데.’
십 부장이고, 백부장이고 할 거 없이 그에게 등을 드러낸 순간부터 이미 저들의 운명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말이고 병사고 가릴 거 없이 그의 창이 뒤를 꿰뚫었다.
쒜에에엑-!
그가 스무 번째 투창을 연속해 날리었을 때.
“됐나.”
제대로 발을 디디고 서 있는 기병대는 어디도 없었다. 한 사람이 투창으로 해내었다고 상상키 힘든 위력!
그를 본 병사들의 눈에 놀람이 스친다.
아무리 사방을 살피기 힘든 전장이라도 테스가 움직이며 남긴 족적은 굉장히 거대했다.
백에 가까운 기병대를 상대로 몸을 날리고.
그 기병대의 멱을 손수 따버리는 그의 모습은 좌익군 병사들에게는 전신이 강림한 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적 기병대 전부가…….”
“다 쓰러졌다!”
백 명을 몰살시키고 기세를 키우더니 도망치고자 남은 기병대를 상대로 그보다 더 강력한 투창을 날렸다.
날린 투창 한 번에 적 기병대가 수명씩 무너져 내렸다.
손. 검. 창.
그 뭐든 그의 손에 닿는 족족 신병이기처럼 적을 분쇄했다.
수천의 사람 중 고작 하나.
그 하나가 만들어 낸 장면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도 강대한 위력이었다.
흡사 전설 속에 등장하던 영웅들이나 흉내 낼 법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런 그를 주목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좋아!’
전장. 테스는 그러한 위력을 보였음에 온 몸 그득 만족함을 느꼈다. 가슴 아래서부터 차오르는 만족감이 그의 몸을 휘감았다.
수천이 날 뛰는 전장!
그 한가운데서 홀로 적 기병대를 섬멸하는 위력이라니. 그 자신이 해냈음에도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력한 위력은 그에게 확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이 길이 맞다. 옳은 길이었어.’
마법과 무공. 둘의 조합.
전생에도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확신이었다.
한 우물만이 아닌 두 우물을 파고 섞었음에도 강대한 위력을 보였기에 그는 가슴 그득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이 길이 맞다고. 새로이 쌓아가고 있는 그 자신만의 체계가 맞노라고. 옳다고.
감히 외칠 수 있었다.
이전에 알게 모르게 피어나던 불안감 따위 완전히 씻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러니 가슴 그득 만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맞았음에 짙은 고양감을 느꼈다.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이 바른 길이었음에 뿌듯함을 넘어 전능감을 느꼈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는 시선.
날뛴 전장. 쌓인 시체. 위력의 증명.
그 모든 게 그를 만족케 하는 짙은 연료가 됐다.
하지만 고작해야 이런 만족감에 테스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기병대가 무너지고. 적들의 사기는 망가졌고.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아군 좌익군 병사들의 사기는 전에 없이 강화된 상황.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으면 머저리이지 않은가.
느껴지는 만족감을 유지하면서도, 그는 내력을 실어 웅혼한 외침을 던졌다.
“좌익군 전군 전진! 남은 적들을 압살하라! 우리를 죽이려 달려왔던 페너탄을 찢어발겨 버리러 가자!!”
“우오오오오!”
“가즈아아!”
사기가 치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