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챕터 8.
뒤편에서 움직이는 적의 속도는 매서웠다.
그 속도. 징집군이 낼 속도가 아니었다. 흡사 말을 타고 움직이는 속도와 비슷했다. 테스가 뭔가 의문을 느낄 무렵이었다.
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기병이었구나!’
곡도를 기본으로 한 기병도를 들고. 한쪽에 렌스를 거치해 놓은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테스의 바로 옆에서 전공을 올리던 레므나.
그 수완만큼 경험이 풍부했는지, 그는 곧바로 모습을 드러낸 적을 알아봤다.
“저 깃발! 저, 저것들은 페너탄 기병대입니다!”
“페너탄? 저들이 그들이라고?”
“페넌에서 이끄는 기병대입니다. 말이 용병이지, 저건 영지군이나 다름없는 놈들이란 말입니다!”
“아아…….”
페넌이라. 앙스의 서북부에 있는 그곳이 테스의 머리에 떠올랐다.
몬스터 출몰이 잦아서 언제나 전시에 가까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던가. 몬스터 사체로부터 나오는 부산물이 특산품일 정도의 괴랄한 곳이었다.
‘영지가 용병대 몇을 직접 운용한다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었나.’
페너탄 용병대는 그런 용병대 중에도 수위에 속하는 자들이었다.
오러도 익히지 못한 300의 기병대가 가진 전투력을 극상까지 끌어 올린 자들이 저들이었으니까.
그들은 아군인 우익이 무너져 내림에도 시종일관 기세를 키웠다.
그대로 테스가 있는 좌익을 향해 가까워지더니. 거치됐던 렌스를 아래로 내려 기병 돌진을 시도했다.
“돌진!”
“으깨 버려!”
망설임 없이 그대로 충돌!
콰아앙!
급작스런 기병대 출현에 이도 저도 못하던 테스 쪽 좌익군 병사들이 희생양이 됐다.
사기가 치솟아 적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기에 피할 곳도 없었다.
“크아아악.”
“컥…….”
기병을 상대로 미처 반응도 못 한 창병의 말로는 처참했다.
거치된 랜스에 복부가 꿰뚫린다. 복부를 꿰뚫고도 힘이 남은 랜스는 뒤에 있던 병사도 같이 꿰뚫어 버린다.
순식간에 꼬치 신세로 전락했다.
300의 기병대는 쐐기 진형을 유지하여 좌익군을 돌파했다.
드드드드득-
압도적이라 할 수 있는 그들의 위력 앞에서 여태껏 적을 향해 살기를 내비치던 아군의 사기가 무너져 내리고.
“으아아아!”
“살려 줘!”
방금 전까지 폭염구에 혼비백산했던 적군처럼 혼란에 빠져 버린다.
다시 상황이 반전됐다.
‘과연 기마병인가.’
일개 병사 유지비의 수배는 뛰어넘는 게 기마병. 마구를 떠나 제대로 된 기마병 하나를 훈련하는 데도 들어가는 돈이 수십 골드다.
돈 잡아먹는 괴물.
그러한 괴물을 특수 병과로 두고 키우는 효과가 전장에 바로 드러났다.
한 번의 마법으로 기울어 있던 전장의 사기가 다시 적측으로 한 방에 돌아가 버렸으니까.
‘징집병이기에 효과는 더 크구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병사는 전장 한가운데 있으며 쉽게 무너지고 쉽게 사기를 얻는 법이었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건 테스와 레므나군이었다.
“테스 님의 병사 곁으로 붙어!”
“다들 방진을 넓혀 줘라!”
“명!”
동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테스가 그들 중심이 되어 줬다. 선봉에서 우뚝 서 있는 테스를 보고 병사들은 방진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적들도 그런 테스군을 읽은 걸까.
“저기다! 저기로 쳐!”
“저들이 중심이 되고 있다! 돌진!”
300의 기마대 중 다수가 테스군을 향해서 기병도를 세웠다.
30씩 총 90명의 기마대가 각기 진형을 갖추고 테스군을 향해서 달려오기 시작했다.
* * *
선두에 있던 아군이다. 적이 눈으로 포착됐다.
“적 다수! 이쪽으로 옵니다!”
“내가 마법을 날린 걸 기억하고 있는 거군.”
한순간에 아군을 돌파하고 지나가겠다는 기세가 여실히 느껴졌다.
히이이잉!
투레질하는 말이 달려들고. 그 위에 자리한 기병이 기병도를 하늘로 치켜들고 달려든다.
“테스 님! 어, 어서 방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랜스 차징만은 못해도 말의 속도가 실린 기병도의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제아무리 방진을 형성했다 해도 피해는 생성될 수밖에 없는 터.
레므나 장원주 말대로 방진 중심에 가야 했다.
폭풍과 같은 공격에 맞서기보다는 잠시 폭풍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는 게 상식이었으니까!
병사의 다소 많은 피해가 누적되더라도 그게 지휘관이 할 일인 터.
하지만, 테스는 다른 선택을 했다.
“어, 어디를 가십니까.”
“막아야지!”
그는 도리어 더 앞으로 발자국을 내딛고 있었다.
* * *
“헹.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오는구나.”
앞으로 나서는 테스. 그를 본 적들이 속도를 더했다.
그만큼 적의 공격이 매서워지는 가운데서도 테스는 망설임 없이 마력을 돋웠다.
적 진형 셋. 그 셋이 한 점이 되어 그를 찌르고자 달려오는데도 그의 마력에는 흔들림 따위 하나 없었다.
도리어 기감을 돋워 적을 더 느끼고 가늠하고자 할 뿐이었다.
‘움직임만 놓고 보면 과연 정예야. 어지간한 병사들은 상대조차 안 될 놈들이다.’
적의 전력을 가늠하고.
그에 대응해야 할 아군 전력을 가늠한다.
그도 모자라 그 자신이 저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 지를 예상해 본다.
고작 수백 미터도 남지 않은 적을 상대로!
‘이전이었으면 버틴다고 답을 냈을지도 모르겠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그는 피식 웃어 보였다.
가만 생각하니 버틴다는 생각 그 자체가, 너무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자신은 약자였던 이전과 달리 명백한 강자였다.
고작해야 90명의 기마병에게 무너지자고.
미친 듯 애를 쓰고 발악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랴앗!”
달려오는 저들은 그가 건너가야 할 징검다리조차도 되지 못하는 족속들이었다.
그러니 버틴다는 생각 자체는 버렸다.
‘완전히 부숴 줘야지.’
저들 자체를 어떻게 요리하고 망가트려야 할지를 생각할 뿐이었다.
‘우선 속도를 늦춘다.’
벼려 두었던 마나의 방향성이 결정됐다.
마나. 방출. 확장.
“거미줄 생성.”
마나로 만들어진 불을 적들을 향해 던진다. 적의 속도를 늦추기 위한 최상의 수 중에 하나.
그러며 그는 동시에 룬어 다섯을 다시 외웠다.
마나. 불. 변형. 확산. 강화.
“다중 폭염구.”
이전에 외웠던 세 개의 폭염구를 적 진형을 향해서 던졌다.
거미줄로 속도를 늦추고. 늦추어진 적을 향해서 다시 폭염구로 폭사를 유도하는 두 개 마법의 조합!
어지간한 기병대는 감히 이 두 개 마법 조합만으로도 녹아들 게 충분한 위력.
하지만 페너탄 기병대를 상대로는 아니었다.
마법을 본 적 기병대는 바로 반응했다.
“십 부장급! 앞으로!”
“명!”
머리론 테스가 날린 마법의 기류에 덜덜 떨면서도 몸은 훈련받은 그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페너탄 기병대가 되기 위한 그들의 훈련은 지독했고. 그 훈련 중 특출 난 성과를 낸 십 부장은 마법을 상대로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들은 본신의 힘을 통해 마법을 버틸 생각이 없었다.
이 기마병 중 오러 형상화를 감히 흉내 낼 줄 아는 자들은 소수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 대신.
“마법 방어구 발동!”
“어깨를 받쳐라! 충격파에 대비해!”
십 주장급에게 주어지는 마법 방어구를 활용할 줄 알았다.
제 몸에 남아 있는 약간의 오러를 사용하며 마법 방어구에 힘을 싣는다.
스스스-
마법 방어구가 발동되며, 선두에 달려 나가는 십 부장급들의 몸에 허연 막이 생기기 시작한다. 마법 보호막이다.
때마침.
보호막이 생김과 동시에 테스가 날린 거미줄과 폭염구가 그들에게 도달한다.
거미줄이 적의 움직임을 막고. 동시에 폭염구의 연료가 되어 폭발을 더 크게 일어나게 하는 게 테스가 날린 두 마법 조합의 최상의 결과.
스스스스-
아쉽게도 마력으로 생성된 거미줄은 막에 닿자마자 물처럼 녹아버렸다. 진득한 마력과 함께 사방에 흩어졌다.
그나마 폭염구는 달랐다.
콰아앙!
저들의 방어막에 닿자마자 폭발을 일으켰다.
화염 확산과 비산이 이어지며 적의 막을 때렸다.
하지만 저들이 준비한 마방구의 수준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하였다.
“크흐으으…….”
“버텨! 버티라고!”
폭발이 때려짐에도 마법 방어막은 버텨내는 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방어막도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남은 폭발의 여파가 방어막 뒤에 있는 기병들의 몸을 물리력으로 때리지만.
적들은 이미 어깨를 맞추고 대비를 하고 있었다.
“밀리지 마라! 뒤에서 밀어!”
“뭉쳐!”
용케도 서로 발을 맞춰, 충격을 분산시키고. 버텨냈다.
일반적인 기병대 수준에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묘기!
저들은 그 대단한 일을 세 개의 진형 모두가 해내는 데 성공했다.
그 모든 결과를 테스는 기감으로 살피고 있었다.
‘한 번에 다 죽일 거라곤, 기대도 않았다.’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도 용병 시절부터 페너탄 기마대의 위력은 이미 여러 차례 들었었으니까.
상대하는 게 처음일 뿐이지, 저들이 지닌 강함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다.’
그는 한 번의 마법 조합으로 저들을 부술 수 있을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저 저들의 속도를 한번 떨궈 내는 것으로 족할 뿐이었다.
기병대의 최고 무기인 기동력. 그 최고의 무기를 마법 조합 한 번으로 무너트렸음에 성과는 이미 얻었다.
그 위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두 번 세 번도 마법을 더 쓸 용의가 있는 그였다.
‘더 줄여야지.’
테스는 연이어 마력을 돋웠다.
마나. 변형. 대지.
대지 조종의 기본에. 확산과 강화의 룬어를 더한다.
룬어를 극한까지 연구하고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극한의 묘기 중 하나.
마법의 변형.
한 끗이라도 삐끗하면 마나 폭발이 일어날 수 있을 마법 변형을 순식간에 이루어낸다.
“강화된 대지 조종. 다중.”
그는 자신의 의지를 주변에 풀었다.
드드득- 드득-
그 주변으로 땅이 솟아난다. 솟아난 땅은 벽이 됐다. 이전의 속도라면, 쉽게 뚫을 만한 벽들이 이번엔 거대한 벽이 되었다.
마법을 흐트러트리는 마법 방어구.
폭발하는 마법은 막을 수 있어도 이미 발동돼 주변 지형을 바꿔 버린 마법엔 대응할 수 없는 게 그 약점이었다.
테스는 그러한 약점을 제대로 찔렀다.
“뚫어!”
“안 됩니다! 두텁습니다! 기수 돌려야 합니다!”
흙이 벽이 되어서 적들의 앞을 막아 버린다.
그의 마법은 단순 벽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화된 대지 조종 마법은 그의 의지를 받들어 집요하게 기병대를 노렸다.
“뒤! 언덕 생성 됩니다!”
“이런 젠장!”
적의 앞길에 낮은 언덕이 만들어진다. 오르막길. 속도를 내야 할 기병대로서는 원하지 않는 지형이었다.
“진흙 밭입니다!”
“여기는 함정입니다! 땅이 갑자기 파였습니다!”
일부는 진창이 되어 적의 발을 묶었다. 그도 모자라 급조된 함정이 되어 말의 발목을 꺾기도 했다.
고르기만 했던 평지가 순식간에 헤집어졌다.
제아무리 마법을 대비한 페너탄 기마대라도 한계가 있었다.
속도를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속도 자체를 낼 수가 없었다.
테스가 마법을 날린 그 순간부터 그들에게 허락된 영역은 고작해야 사방 몇 미터도 되지 못했다.
그가 마법을 날릴 때부터 이 일대는 이미 그의 영역이나 다름없게 되었으니까!
기병대의 속도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들이 지닌 극강의 파괴력은 신기루처럼 사그라들었다.
연속된 이 타.
테스가 노린 건 바로 이 순간 자신이 움직여야 함을 알았다.
‘지금!’
적들이 지닌 속도라는 무기가 약해지고. 적이 가장 취약해질 때!
그는 방진을 형성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명했다.
“급속 전진! 내 뒤를 따라라!”
“명!”
징집병들이 그를 따라오게 만들고, 몸을 튕겨 적들을 향해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