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챕터 7.
이 전쟁은 정말 기묘한 것이었다.
중앙. 우익. 좌익. 가릴 거 없이 정면으로 서로의 군대가 충돌했다.
그나마 아군 모두 말을 탄 기사만 살짝 물러나 있는 상태.
병사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그와 레므나 장원주는 좌익의 중심부에 있기에 그 전투로부터 한참이나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기감으로 느껴지는 바.
‘이야. 예상한 거보다 더 심한데?’
눈에 그리듯 적과 아군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느끼는 그가 보기에, 전투는 최악이었다.
기감으로 전황을 훤히 보는 그와 달리 다른 이들은 좌충우돌,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부딪침이 시작되자마자 그나마 있던 오와 열도 망가졌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푹푹 찔러대며 목숨을 걸고 싸우지만, 그 안에 전략이라고 할 것은 없었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개판이다, 진짜.’
앞 열만 부닥칠 뿐, 전반적인 충돌은 전혀 없었기에.
중앙에 서 있는 테스로선 여기가 전장인지 아닌지 헛갈릴 정도였다.
“흐흐. 한가하죠?”
“원래 이런가?”
“백병전은 으레 이렇죠. 어차피 전열의 싸움도 한 시간 정도는 걸립니다. 우리처럼 중앙이나 후방부에 있으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싸우지 않을 때도 많습죠.”
“구경나온 거나 다름없다는 건가.”
“흐흐. 언제 목숨을 걸어야 할지 모를 구경입죠. 본래 이런 식입니다.”
“그럼 승패는?”
“그건 알기 쉽죠. 전투에서 병력 3할 정도 잃으면 패했다고 봐야 합니다. 뭐…… 상대도 똑같이 3할을 잃었다면야 비긴 거라서 다음 날 다시 싸우겠지만요.”
3할과 3할의 싸움이란 건가.
‘이거 진짜 개판이로구만?’
레므나 장원주의 말에 뜨악해져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전국시대의 모사꾼들과 같은 전투는 바라지도 않는다.
전략 전술, 모략, 음모, 배신, 협잡…….
그 수준까지는 가지 못하여도, 적어도 무인들 수준 정도는 되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귀족이 가진 영지보다도 적은 영역을 지닌 무인도 이리 싸우지는 않았다.
막장이다.
전장에서 지휘관이 하는 역할이 뭔가 싶을 정도.
‘결국 통제력 문제인 거야.’
하기야 그 중원도 제대로 된 전략 전술이 생기기까지,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가 있었다.
이들은 덜떨어진 게 아니라 아직 경험이 부족한 것일 테다.
그럼에도 각각의 강자들은 강력한 것을 보면.
‘몬스터가 있다 보니 강자에만 치우쳐 있어. 그러니 전쟁 방식이 기괴하게 발달한 걸지도…….’
무공은 없고. 오러와 마법이 있는 이 세계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덕분에 이런 모습이 보인 거겠지.
그렇지 않고는.
‘이 상황이 설명이 안 돼.’
불과 백 미터 앞쪽에선 적군과 아군이 서로 죽여대고 이쪽은 이렇게 한가한 것이 해석이 되지 않는다.
물론 저 앞쪽은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 따로 없겠지.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으니 이 모양 이 꼴이었다.
“오늘 내로 검이나 휘두를 수 있을까요?”
“기다려 봐야겠지. 그래도 적당한 긴장감은 유지하라고 명하도록 해, 에나.”
“옙. 가능할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요.”
테스 그가 이끄는 병사들도 슬슬 긴장감이 떨어질 때쯤.
콰쾅!
그때다. 우익군 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저쪽 마법사가 폭발계 마법을 쓴 모양이군요. 우익군 쪽 마법사가 방어를 제대로 못 했나 봅니다.”
레므나 장원주가 저 멀리 연기를 보며 말했다.
“과연, 마법인가…….”
“한 수, 한 수 두는 셈이죠. 저쪽이 쓰면 이쪽은 막고. 무효화한다. 쉽지 않습니까?”
“그런 셈이네.”
다시 그때.
휘오오오오-
우익군의 상공에 불덩어리가 세 개 생겨났고. 무서운 속도로 적군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불덩어리를 따라 빛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한 개를 격추시켜 공중에서 폭발시켰고. 남은 두 발이 적군으로 향하더니 폭발을 일으켰다.
콰쾅-!
으아아아악!
테스는 기감을 통해, 바로 옆에 있는 거처럼 상황을 느꼈다.
‘불덩어리로 100은 죽었다. 과연 마법. 무시무시해.’
멀리서 비명이 들린다. 이번엔 적군이 피해를 봤다.
보이지 않음에도 눈치라도 챈 건지, 레므나 장원주는 이죽이며 말했다.
“보셨죠? 잘난 것들은 잘난 것들끼리 싸우는 것입죠. 균형이 깨지는 순간 저렇게 되어 버리는 겁니다.”
“내 상식이 부정 당하는 기분이 드는데…….”
과연 병사들은 체스말의 폰일 뿐이고. 결국엔 잘났다 싶은 기사나 마법사의 수 싸움으로 전쟁이 결정 난다는 건가.
“하하하. 어디서 전쟁의 상식을 배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려!”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야.”
“흐흐흐. 거 나중에 꼭 알고 싶습니다요.”
“때로 모르는 게 약인 법이지. 그나저나, 전투가 이런 식으로 돌아간다면 나도 꼭 이러고 있을 필요는 없는 거로군.”
약자는 수를 채울 뿐이고. 강자가 승패를 결정하는 싸움이라.
오랜 기다림으로, 이 세계 전투가 돌아가는 방식을 깨달은 테스.
‘그렇다면 내가 낄 여지가 있긴 해. 이쪽이 맞춰 줄 수밖에.’
마음에 드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움직일 필요는 있었다.
테스는 한숨을 푹 내쉬며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이리되면 나도 밥값을 좀 하는 게 낫겠지. 이왕이면 이 전쟁에서 이겨야 우리도 남는 게 있지 않겠나?”
“어찌 하실려고…….”
레므나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마법의 영창에 들어갔다.
다섯의 룬어가 순식간에 조합된다.
마나. 불. 변형. 확산. 강화.
선천진기를 그득 먹은 룬어가 마법으로 변하여 발동되었다.
“다중 폭염구.”
휘오오오오!
회전하는 폭염의 구체가 하늘로 세 개가 떠오른다. 주변의 병사들이 경악한 얼굴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레므나 장원주의 얼굴에는 감탄이 서려 있었다.
폭염구!
전쟁에서 가장 잘 쓰이는 광역 학살 마법. 하나가 폭발하면 밀집한 병사 서른 정도는 쉽사리 잡아먹는다.
선천진기가 주입된 지금이라면 그 배도 가능할 터.
그런 폭염구가 무려 세 개.
마법은 같은 마법사가 마법으로 대응하거나 마법을 막아내는 강력한 마법 무구가 있어야 했다.
당연하게도 잡졸만 모은 아군의 좌익과 그 상대인 적 우익-아군의 반대편이므로-은 잡졸일 수밖에 없었다.
이 마법에 대응할 존재가 없단 의미.
‘어디 보자…… 적군도 맨 앞 전열이 아닌 뒤쪽은 멍 때리고 있구만. 그렇다면 저 한가운데에 떨궈 주지.’
테스는 기감으로 적의 가장 취약점을 찾았고.
바로 의지를 움직였다.
‘자. 모두 뒈져라!’
그리고 마법이 투사되었다.
기감으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지 않은, 그의 마법이 적을 향해 움직인다.
적국 2,000명이 밀집된 중심부를 향해서.
* * *
병사는 하늘에서부터 날아오는 불꽃의 덩어리를 보며 입을 벌렸다.
“어…… 저건…….”
그러나. 병사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
그것은 재빠르게 병사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그 뒤의 누군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병사가 고개를 돌렸을 때 본 것은 무섭게 부풀어 오르는 불꽃의 덩어리였다.
폭염구 세 개.
그것들이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폭발이란 결국 팽창.
마법으로 이뤄진 압축된 불이 사방으로 부풀어 오른다. 팽창된 힘이 강력한 물리력으로 주변을 두드리며 밀어냈다.
그 위력. 일반적인 폭염구 그 이상의 위력을 냈다.
급작스럽고 강력하다. 거기에 뜨거운 열기를 동반됐다.
“으아아아악!”
“크아아악!”
뼈가 부러진다. 사지가 조각이 났다. 살이 타서 검게 변하기도 했다.
폭염구 한 개당 무려 약 사십여 명이 폭발에 휘말려 즉사하고. 여파로 스무 명 정도가 중경상을 입고서 쓰러져 버렸다.
사망자 약 백이십 명. 중경상의 부상자 육십 명 이상.
단번에 백팔십 명이 전투 불능에 빠졌다. 그중엔 군대를 움직이는 명령권자도 몇 명 끼어 있었다.
“마…… 마법사다아아아!”
“도…… 도망쳐!”
막을 수 없다. 병사들이 패닉에 빠지는 건 당연한 수순.
단번에 백이십여 명이 구워진 시체로 변하고 부상자가 속출하며 비명이 전장을 가득 채우면 인간의 정신은 쉬이 무너지는 법이다.
게다가 이들은 징집병.
며칠의 전투 훈련과 비루한 나무창으론 패닉을 막을 수 없었다.
혼란에 빠진 병력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지휘관들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병사들의 목을 베며 독려를 해 보지만.
“어서 돌아가!”
“자리를 찾아라!”
혼란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됐다. 제대로 한방 먹였어.’
이 정도라면, 지지부진한 전장의 분위기를 바꾸기에 충분할 터.
테스의 직감대로 폭염구의 효과는 바로 드러났다.
테스쪽 좌익군 병사들이 그의 마법에 고무되어 사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우리 쪽에 마법사가 있다!”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좌익군은 그대로 전진을 시작했고 바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연쇄적인 움직임은 적군의 혼란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 * *
단 한 번의 압도적인 마법의 발휘.
“오합지졸의 말로나 다름없네.”
그 한 번에 상대 진형이 붕괴하고 있음을 테스는 실시간으로 느꼈다.
“폭염구를 세 개나 만드실 수 있으시다니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나저나. 앞이 소란스러운 걸 보니, 마법이 제대로 들어갔나 본데요?”
“당연한 이야기지. 제대로 맞췄으니까.”
“이 거리를 말입니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저런 식으로 앞 열이 흥분하지는 않았을 거야.”
“히야…….”
레므나의 표정이 놀람으로 물들어 있었다.
시야가 제한되고. 전열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게 이 전장의 상식.
그 가운데 테스가 기감으로 모두 읽어 들일 거라 생각을 못 할 터이니, 그가 보기엔 이 한수는 기적이나 다름이 없을 터였다.
그런데 눈치가 귀신같아서 그런 걸까?
“이야. 과연 테스님 말대롭니다. 아군이 밀어붙이나 봅니다. ……이거 테스님 덕분에 진짜 거저먹기 하려나 본데요?”
‘이 인간 진짜 눈치가 귀신같네.’
그는 본능적으로 앞 열의 기세가 변하였음을 느끼고 있었다.
전쟁 능력도, 마법도 없는 자가 어찌 장원주에 올랐는가 했더니, 본능이 꽤 강력하다. 덧붙여 그 수완도.
“이리 되면 저희도 전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대신해 준다.
“좋지. 모두 앞으로!”
테스는 그 말에 동의하며,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 이었다.
바로 지금.
적을 밀어붙여 버릴 때다.
* * *
폭염구의 폭발로 거뭇해져버린 전장.
곳곳에서 신음하는 자들이 있는 가운데, 병사들은 서로를 향해 나아갔다.
병사와 병사가 부딪친다.
적 앞 열의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고. 그 두려움 사이를 아군 좌익군이 파고들었다.
비루한 창이라 할지라도, 살을 꿰뚫는 덴 충분할지니.
“크아아악!”
“……거어억.”
심장을 꿰뚫리고 즉사하는 자는 차라리 나았다.
창날이 폐를 뚫고 지나간 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고통스레 세어나가는 쉭쉭-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쓰러질 뿐이었다.
수백의 적 우익이 갈려 나갔다.
이대로면 천이 되는 수가 스러지는 게 당연하다 느껴질 정도의 수순!
적의 숫자가 매섭게 줄어든다.
테스가 만들어낸 마법 한 방. 그 한 번이 전장의 분위기를 완전히 갈라놓았다.
그가 속한 좌익군에게로!
효과는 뛰어났다.
“무, 물러나야…….”
“으아아!”
사기가 무너져 내린 적들이 더 버틸 요량은 없었다.
레므나 장원주처럼 수완 좋은 장원주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서기 시작한 지금은 더더욱 그러했다.
안 그래도 밀려나가던 적측 병사들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기는커녕 아군 병사들을 밀고 도망치려 하는 상황.
슬슬 적도 새로운 수단을 강구해야 할 터였다.
그 가운데서도 테스는 쉼 없이 날뛰었다.
“양가창진의 산개 형식으로.”
“명!”
바로 선봉에 가까워지자마자, 전공을 올렸다.
“죽여라. 지난번 낚시처럼 살릴 필요가 없다! 다 죽이고 쪼개!”
“명을 따라라!”
양가 창법에 버프 마법까지 덧씌우고 있는 그의 병사들이다.
적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쳐 내려간 지금. 전력 차는 더 벌어졌다. 그의 병사들은 양 떼 속에 섞인 호랑이가 됐다.
‘일당십은 넘어 버릴지도.’
사기를 잃은 적군. 충전한 아군. 차이는 명백했다.
그의 병사들이 가까워질 때마다 적들은 덜덜 떨어왔다.
“으아아! 살려 줘!”
제 목숨 줄인 창을 내팽개쳐 두고 도망치려 하는 자도 있었다.
공포에 정신이 나가 버린 거다.
“크아악.”
그러한 병사들은 결국 둘 중 하나의 결과로 죽임을 맞이했다.
테스군의 창에 꿰뚫리거나. 적 지휘관에 의해서 멱이 따이거나.
순식간에 선봉으로 치고 들어와 전공을 올리고 있는 테스.
그는 계속해서 병사를 지휘하면서도, 한 가지는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기감을 돋우는 것!
만이 넘는 양측을 기감으로 살피며 쏟아지는 정보는 그 자체로 고통. 하지만 그런 고통을 감내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역시 움직인다!’
돋운 기감 사이로 적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저들의 움직임이 그에게 읽혔다.
적을 베어 들어가며, 아군이 전진하는 전로(戰路)를 그려나가던 테스의 발걸음이 멈췄다.
“왜 멈추시는 건가요.”
“적이 움직인다! 모두 양가의 방진으로 진형을 바꿔!”
“명!”
저 멀리, 적 우익군 뒤편에서 움직이던 자들의 기세가 일변했다.
긴장이 살기로 바뀌었고.
진형을 쐐기 진형으로 바꾸더니 이내 전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