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챕터 6.
테스는 발조차 디디지 못한 회의.
막사 안에서 진행된 회의는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고 있었다.
작전을 위한 열기 때문에 이어지는 게 아니었다.
‘엉망이야.’
막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귀족들, 회의를 핑계로 연회를 거나하게 벌이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알코올의 잔향, 바삐 오고 가는 무희…….
어느 하나 작전 회의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열기를 대신했다.
청각을 강화하지 않은 채로도, 들려오는 소음이란.
막사 주변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테스로서는 어이가 없을 정도다.
반대로 테스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레므나. 그는 얼굴이 벌게진 채 신이나 있었다.
“허허. 뭘 그리 인상을 찌푸리고 계십니까? 이리 분위기가 좋은데, 같이 맞춰 움직이지 않고요.”
“자네는, 이 상황에서도 술이 들어가나?”
“아무렴요. 안 들어가는 게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흐흐.”
그만 신나 있는 게 아니었다.
작전 회의를 한다는 막사 주변으로 있는 자들 모두 들뜬 게 보였다.
병사는 제대로 무장도 시키지 못하는 주제에, 출처 모를 고급스런 술들을 홀짝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껴있는 게 잔뜩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만.
옆에서 자리한 레므나 장원주는 진심으로 신난 듯 보였다.
술을 벌컥벌컥 마셔댔다.
“너무 답답해 마시지요. 어차피 이 회의란 게 다 관례 같은 겁니다. 저기, 저 반대편도 비슷한 상황일 겁니다. 분명히요!”
“후…… 과연 그럴 거라 생각하나?”
“아무렴요!”
회의를 위해 모이고. 흥청망청하는 게 전통이라니.
‘이런 건 우습지도 않은데…….’
차라리 기사 이반이 이끌었던, 공물행 의뢰가 더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때는 적어도 군율이라 할 만한 게 있었으니까.
하기야 그도 저 안에 자리해 있을 터이니, 별달리 다를 게 없을지도.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닐 텐데.’
잔뜩 인상을 찡그리는 테스.
그가 신경이 쓰였는지 레므나 장원주가 말을 보탰다.
“생각해 보십쇼. 어차피, 이 바닥에 있는 지휘관급만 해도 이백이 넘습니다. 무려 이백이요?”
“장원주부터 지휘관이랍시고 행세를 하고 있으니까.”
장원주, 기사, 남작, 자작, 백작. 군대를 이끌고 온 모두가 지휘관을 자처하고 있었다.
그 수를 다 세어 보면 300이 넘을지도 몰랐다.
“바로 그겁니다! 이런 지휘관들을 데리고, 누가 제대로 이끌 수 있답니까? 전설의 용사라도 그건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그러니 어차피 작전이란 게 뻔해집니다.”
“뻔해진다라.”
“거, 내일 한번 보십쇼. 중앙은 정예들이. 남, 자작이 우익을 맡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좌익을 맡는다, 이건가?”
“흐흐. 역시 테스 장원주님입니다! 바로 그거죠!”
레므나 장원주의 쓸데없는 아부를 깊이 받아들일 필요는 없었다.
다만, 그가 말한 바는 이해가 갔다.
‘무슨 작전을 짜든, 어차피 제대로 먹히지 않을 걸 안다 이거로구만…….’
어차피 이 세계의 영지전 자체가 중원의 군주들이 보기엔 애들 장난 수준이다.
미리 날짜를 잡고. 병사라고 해 봐야 제대로 훈련도 못 받은 자들 천지지 않은가.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보면, 차라리 지휘관끼리 술이라도 한잔 걸치며 우애를 다지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일지도 몰랐다.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막장이 되는 방식이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
“쯧…….”
저들이 저런 식으로 회의를 보내는 건 이해가 갔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과연 저 휘슬과 앙스 연합군도 우리처럼 해 줄지를 모르겠는데…….”
“허허. 뭐 그리 걱정이 많으십니까? 거 내일 보십쇼. 제가 말한 대로 뻔히 돌아갈 것이라니까요? 그때 잘 부탁드립니다!”
“흠…… 과연 그럴는지.”
뻔하다라.
과연 레므나의 말대로 중앙과 좌우익이 정면으로 벌이는 힘 싸움만 이뤄질까.
차라리 뻔하게 이뤄진다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아닐 거란 생각을 깊이 하며 테스는 레므나가 건네어 준 따뜻한 술 한 잔을 홀짝였다.
* * *
전쟁 전날에 술을 마신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경험했다만. 그는 이내 적응했다.
이 세계의 문화가 이렇다는데 그가 뭐라 한들 바뀔 일이 없을 테니까.
결국 동이 트고.
양측 군대는 식사까지 하고서 약속된 시간에 맞춰서 평원에 자리를 잡았다.
‘중원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네. 여기가 이상한 거야, 중원이 이상한 거냐? 참나…….’
속으로 혀를 차면서 테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작이 직접 이끄는 중앙군이 약 3천.
쟁쟁한 영주들이 포진한 우익군이 2천 8백.
그리고 테스 그 자신이 속한 좌익군은 2천 3백여 명 정도.
‘이게 군대냐?’
더 웃긴 점은 정예라는 중앙군을 포함해서 군대 모두가 제대로 된 진형이라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오와 열을 맞추는 건 생각도 않는다.
그나마 중앙군은 말을 탄 기사들이 중앙군 우측에 서 있어서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도. 궁병이 후방에 있다는 점이 위안거리일 수준이다.
‘군사 통제력이 영 미치지 못해.’
그래.
기사와 궁병을 제외하곤 어느 하나 진형을 갖추지 못했다.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이 엉성하게 늘어서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기사들의 돌격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게 생겼다.
‘개싸움이 되겠어. 숫자 차이는 있다만…… 소용이 없을지도.’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내공을 가졌고, 마법 실력도 향상되었다.
그뿐인가?
전생의 지식으로 병사를 강화시키고. 단련시켰다. 장비도 지원하여 소규모 전투에선 쉽게 지지 않을 터였다.
이제 와 보자면, 거의 일당십은 가능할 듯 보일 정도다.
다른 쪽 병사들은 비리비리한 수준이었으니까.
중앙군을 제외한 절대다수가 징집병이요.
‘저거…… 뼈만 남았네. 저런 사람만 수두룩하구먼. 이길 생각이 있기는 한 거야?’
사기가 있기는커녕 다리를 부들거리는 데다가. 무기라고는 나무를 깎아 만든 창 하나가 전부.
방어구는 있지도 않았다.
그런 그들에 비해서 무구를 완전히 갖춘 테스의 병사들은 비교가 안 될 정도다만.
‘양측이 형편없으니 누가 이길지 감을 잡기 힘들 정도야.’
그럼에도 여전히 승패의 향방은 보이지 않았다.
중앙군과 테스군을 제외하곤, 전부가 막장 상태이니 더더욱 예측이 되지 않았다. 전생을 겪은 테스라도 이런 전투는 겪은 바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테스군으로 전부 쓸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 그가 가진 병사 수는 고작 50명.
옆에 달라붙은 레므나 장원주를 생각해도 그 수가 8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일당십의 병사들이라도 저들 전부를 상대하는 건 무리이니, 전장을 뒤집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셈이 참으로 복잡해졌다.
차라리, 이 전쟁 상황에서도 웃는 낯을 하고 다가오는 레므나 장원주가 신기할 지경이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나야 뭐 잘 잤소. 당신은?”
“저도 잠은 푸욱 잤죠. 그나저나. 어쩌십니까? 제 말대로였죠?”
“확실히 그렇군.”
장원주는 여전히 속이 편해 보였다.
어제 그가 말한 대로 상황이 돌아감에 기분이 좋은 듯 보일 정도다. 앞으로 있을 전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거처럼 보일 정도.
하기야, 어제 레므나 장원주가 테스에게 은밀히 말했었다.
자신들은 좌익에서도 가장 안전한 중앙부에 위치하게 될 것이라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이 막장 전투에서 안전한 중앙. 그가 편안한 마음을 가질 만했다.
“히야, 여기 중앙에 있으니 다들 잘 보이기는 합니다. 과연 제가 자리 하나는 잘 맡아 오지 않았습니까?”
“잘도 맡아 왔군.”
과연 이 상황에서도 편안해하는 그의 친화력이, 전투 진형을 차지할 때도 먹힌 것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중앙의 자리를 갖게 된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이 녀석 친화력 하나는 타고났을지도.’
감탄이 이는 친화력이었다.
“흐흐. 감사해하셔야 할 겁니다. 덕분에, 꽤 많은 품을 들였으니까요.”
“……이것도 돈이 든 건가?”
“당연한 말씀을!”
“허…….”
아니 정확히는 그의 친화력 덕분이 아니라, 그의 수완이었었다.
바로 돈.
어쨌거나 이 상황에서도 돈을 써서 생존율을 높일 줄이야. 대단한 수완은 맞다.
‘전투의 자리까지도 돈으로 사고팔다니…….’
일 년이 넘도록 얼굴도 보지 못한 행정관장 슈발의 얼굴이 그의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건 왜일까.
이리 되면 빚을 지게 된 셈이었다. 빚은 바로 해결하는 게 맞는 터.
“그러면 나도 돈값을 해 줘야겠지. 병력 모두 가까이 모아.”
“무엇을 하시려고?”
“마법 부여.”
테스의 말에 레므나 장원주는 ‘정말입니까!’ 하고 놀라더니 자기 휘하의 병사들을 불러 모았다.
80의 병사가 모였다. 테스군과 비교해 레므나군은 확실히 약한 병사들이었다.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다만, 해 줘야지.’
그 모습에 테스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마나를 벼렸다.
“광역 힘 부여. 광역 민첩 강화. 광역 활력 생성. 광역 재생력 증가.”
병사들 사이로 순간적으로 빛이 스쳐 지나간다.
일정 범위 안에 들어가 있는 모두에게 마법적 효과가 적용된다. 비싼 값을 들여 얻은 마법은 병사들 전원에게 부여되었다.
“오오. 정말로 광역 마법을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효과는 여섯 시간.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하하! 돈을 쓴 보람이 있네요.”
호들갑을 떠는 레므나.
그의 호들갑을 들은 주변 병사들의 시선이 쏠린다.
하나같이 부러운 눈들을 하고 있었다.
마나는 못 느껴도, 버프 마법을 통해 흘린 빛을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를 챈 거다.
한 치의 힘 차이로 생사가 오고갈 수 있는 게 전장.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고. 저마다 희망을 가지곤 테스를 바라봤다.
‘호구도 아니고, 여기까지 해 줄 필요는 없지.’
저들의 부러워하는 눈빛을 테스는 더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가늠할 뿐이었다.
‘적어도, 내 병사들이라면 네 배는 쉽게 분쇄 가능해. 다섯 배부터는 내 쪽도 사상자가 나올 테고. 말이 일당십이지…… 피해를 감수하기는 해야 한단 말이지.’
그건 전력에 대한 현실적인 파악이었다.
‘문제는 특수병종인 기사나 마법사…… 어차피 엇비슷한 병력이라면 큰 문제가 없을 거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의 병력은 강했다. 특수한 상황만 아니라면 이 전장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있을 정도.
‘한 가지 걸리는 건 역시 저긴데…….’
하지만 걸리는 바가 있다.
상대 진형의 뒤쪽. 제법 강렬한 기운이 그쪽에서부터 느껴지고 있었다.
마법사이며 동시에 무인이기도 한 그이기에 느낄 수 있는 거였다.
‘역시 찜찜해. 쯧, 이럴 줄 알았으면 돈을 더 써서 준비해 올 걸 그랬나.’
이미 과한 준비를 했으나, 그럼에도 아쉽다.
테스는 입을 쩝 다시며,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았다.
레므나 장원주와 자신처럼 친한 장원주들끼리 서로 붙어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진영도 제대로 안 잡은 채로 병력도 붙어 있었다.
이제 전쟁이 어찌 될지는 신만이 알 수 있을 터.
두웅! 두웅!
북 울림이 시작되고.
“전구우우운!”
마법에 의해서 음성이 확산되며 전군에 울려 퍼진다.
“전지이이인!”
와아아아아아아!
중앙군. 좌익군. 우익군.
모두가 무질서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북소리 한 번이 신호가 된 듯 양쪽이 같이 내달렸다.
“우리도 가자고.”
“저야 테스 장원주님만 믿지요!”
그리고 테스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다.